프랜차이즈 갓 1057화
247장 답답해서 내가 공장 (6)
-20억 달러라고?
통화 너머로 한껏 흥미로워 하는 목소리가 돌아온다.
그의 주인, 안살린 왕자의 반응이다.
아무리 막대한 재산도, 뛰어난 미녀도, 사회의 명예도 다 필요 없이, 오로지 지질학적 탐사에만 매달리는 주인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모습.
-10억 달러면 간단하게 끝날 줄 알았는데. 한국 재벌들 중에서 경매품의 잠정 가치를 알아본 이들이 있었나??
"그런 거 같습니다.
-그렇다 해도 한국 재벌 수준으로 예술품 하나에 20억 달러까지 따라 붙을 재력은 안 됐을 텐데.
예술품.
안살린 왕자가 수제 스포츠카 1호기를 대하는 안목의 정체성이다.
공개 제작 영상만 봐도 차량 디자인은 으뜸이었다.
여기에 하수영이 제작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프리미엄, 훗날 그의 이름값이 더 오르면 엄청나게 가격이 뛰어오르리라.
사후에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작품이 겨우 1, 2억 달러에 낙찰되는 것은 예술성에 대한 모욕이다.
그래서 안살린은 지하크를 시켜 10억 달러에 매너입찰을 하라고 한것.
-내가 한국을 쉽게 여겼군. 하긴, 이제 경제력이 한 자릿수에 드는 부유강국인데.
"그래도 놀라운 저력이었습니다."
-20억 달러까지 따라붙은 건 대단하지. 그게 집단이든 뭐든 간에. 아무튼 수고했네.
***
안타까운 석패였다.
후원회 노인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하나가 되어 피눈물을 흘렸다.
이래서야 하수영을 열렬히 지지하는 후원회의 자존심을 지켰다고 볼 수 있겠는가?
재계에서도 감히 무시 못 하는, 알아주는 부자로서 품어왔던 자존감이 한순간에 박살이 나버린 듯했다.
「주인님,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안살린 왕자가 보유한 모든 광물 광산과 기업, 부동산을 다 합치면 5조 달러를 훌쩍 넘으리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과 마지막까지 용감하게 싸워서 끝내 진 것입니다. 패배는 아쉽지만, 절대로 부끄러워 해야 할 패배가 아닙니다.」
「안살린 왕자도 우리 청담동의 저력에 틀림없이 놀라워하고 있을 것입니다.」
노인들은 프리덤의 위로에 저마다 조금씩 기운을 되찾았다.
"그래, 덤이야. 네 말이 맞구나."
"졌지만 잘 싸웠어. 마지막까지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네 번째 계획을 뛰어넘었다."
"이미 한계치 금액을 적어낸 상황에서 집까지 팔아서 추가로 돈을 낼각오를 다들 보였으니, 우리 후원회가 얼마나 단합이 잘되는지를 확인 할 수 있었다."
"그것만 해도 정말 뜻깊은 자산이야."
***
충격적인 경매가 끝나고, 장효주와 로한은 1호 차량과 함께 단상 아래로 사라졌다.
어둠이 무대 위를 감쌌다가 빛에 물러난 후, 포뮬러 레이서복을 입은 하수영이 헬멧을 옆구리에 낀 채 나타났다.
연예인들이 기쁜 표정으로 박수를 쳤고, 재벌 총수들도 분위기에 따라서 격식 있게 천천히 박수를 쳤다.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모든 귀빈여러분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수영모터스의 하수영입니다."
하수영은 사방을 둘러보며 눈인사를 하고는 말을 이었다.
"제 정성이 들어간 1호 차량을 20억 달러에 낙찰받으신 안살린 교수님, 지금 이 자리에는 없지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차량은 곧 배송해 드릴 테니 그 무한한 속도에 마음껏 취해보시기 바랍니다."
하수영이 위로 무언가를 튕기는 듯한 손짓을 하자, 후방에 조명이 여럿 들어오며 나머지 8대 차량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저희 수영모터스의 주력 상품은 모터입니다. 그러나 모터 외에도 스포츠카, 그리고 캠핑카를 주문 제작해서 판매할 예정입니다. 그 외의 차량은 아직 제작 계획이 없습니다."
그 말에 백두자동차 백동원 사장이 누구보다 속으로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수영그룹이 헤슬라와 손을 잡고 국내 시장을 잠식하려 들면, 아무리 깡패 점유율을 자랑하는 백두자동차라 해도 맞서기 버겁다.
스포츠카와 대형 캠핑카는 애초에 백두자동차가 고려하지 않는 모델이고,
"2인승 스포츠카 Acinonyx Jubatus(치타) 모델은 충전 서포트 서비스가 일괄적으로 들어갑니다. 즉, 소유주가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무인 자율주행 충전차가 따라붙을 겁니다. 그러니 사생활 보호는 안심하세요."
'무인카가 충전을 담당한다고? 그럼 확실히 사생활 불안감은 없겠군.'
백동원은 조금씩 불안감이 스미기 시작했다.
시원한 질주가 아니라 도심 안에서 세컨드카로 사용한다면, 주행거리 50km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충전을 신경 쓸 필요 없이 무인 충전차량이 알아서 채워준다고 하지 않는가?
'이거, 이러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 지는데.'
"1호 차량에만 제공되는 서비스라고 생각하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우리 수영모터스에서 판매하는 모든 차량은 충전 서포트 서비스가 기본 옵션으로 제공될 것입니다."
"정말 사막 한가운데에서도 충전을 하러 와주나요?"
"네, 그렇습니다. 다만 충전을 위한 실시간 위치추적은 어쩔 수 없이 제공해 주셔야겠죠? 당연히 충전을 위해서만 사용하며, 모든 정보는 실시간으로 폐기됩니다. 바로 3분 전의 차량 위치조차도 기록되지 않습니다."
연예인들의 눈빛에 흥미가 깃들기 시작했다.
주행거리가 50㎞라고 해서 구매는 전혀 생각조차 없었는데, 충전 서포트 서비스라는 게 꽤 괜찮지 않은가?
"정말 완전 무인카가 와서 충전을 해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북미에서는 이미 5단계 자율주행을 실현했습니다. 사람이 운전대를 잡을 필요가 전혀 없죠."
하수영은 자신 있게 보증했다.
"완벽한 프라이버시! 일일이 충전에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사막 한복판까지 찾아가서는 충전 서비스! 제로백 2.4초! 최고속력 360km/h의 파워풀한 모터 성능!"
8대의 스포츠카와 캠핑카가 그에 응답하듯, 일제히 헤드라이트를 번쩍번쩍 점멸했다.
"페라리가 부럽지 않은 초고성능 Acinonyx Jubatus 스포츠카 풀옵션가격이 단돈 1,900만 원입니다!"
"처, 천구백만 원이라고?"
"말도 안 돼!"
"페라리 타이어 하나 가격으로 페라리보다 더 빠르고 뛰어난 스포츠카를 누려보십시오! 제 이름으로 성능, 품질, 서비스, 그리고 감성까지 모두 보장합니다!"
***
그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판매가 진행되었다.
8대 중 7대의 스포츠카를 1,900만 원에 판매한다는 것.
판매는 구매 의사를 밝힌 참가자 중에서 추첨으로 뽑았다.
그리고 한 명도 빠짐없이 구매 의사를 밝혔다.
1,900만 원이면 초청자들 입장에서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 가격이었으니.
최종적으로 후원회 노인 중에서 2명, 연예인 중에서 5명, 재벌 중에서는 백두자동차 백동원 사장이 뽑혔다.
일부는 공교롭게도 자동차 사업가 백동원이 뽑힌 것을 보고, 추첨에 혹시 어떤 의도적인 조작이 있지 않나 의심하기도 했다.
구매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신기한 특약이 발견되었다.
"이 특약은 뭔가요?"
"중고판매를 할 때 구매가인 1,900만 원을 초과한 돈을 받지 않는다는 약정입니다."
"이 약정을 위반하면 어떻게 됩니까?"
"충전 서포트 서비스가 종료될 수 있습니다."
리셀러를 막기 위한 특약.
되팔이를 몇 번을 하든 간에 1,900만 원을 넘기면 충전 서포트를 해주지 않는다는 것.
이러면 웃돈을 줘서라도 사고픈 구매자를 억제할 수 있게 된다.
비싼 돈 주고 깡통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저희 수영모터스는 과도한 리셀링을 막기 위해서 출시되는 모든 일반형 차량에 같은 조항이 적용될 예정입니다."
"일반형? 그럼 고급형도 있습니까?"
"아직 출시 예정입니다. 고급형 라인은 이런 제약이 없습니다. 경매에 나온 1호 차량처럼 말입니다."
직원들은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몇 번이나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과도한 리셀링을 막기 위해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약관이니, 부디 너그럽게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되팔 생각은 없고 내가 계속 소장할 거긴 한데. 확실히 이런 식이면 웃돈 되팔이는 못하겠군요."
"웃돈 주고 사봤자 50km 달릴 때마다 일일이 충전해 줘야 한다면, 너무 귀찮은데. 차라리 물량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지."
***
장효주는 모델비로 10호 차량을 선물받았다.
핸들에 No.10이라고 넘버링 각인 이 된 모델이었다.
주차된 차가 앞으로 굴러오자, 옆에서 주효정이 손뼉을 치며 좋아라했다.
"좋겠다. 차 너무 이쁘다. 아, 추첨에 떨어져서 너무 아까워. 이거 나한테 팔면 안 돼?"
"안 돼. 내가 모델 해서 받은 거라고, 한번 태워줄 수는 있어."
"그럼 우리 지금 이거 타고 해운대 가자."
"해운대?"
"갑자기 수영펜션 요리 먹으면서 놀고 싶어서 그래. 콜?"
수영펜션은 항상 예약이 꽉 밀려있다.
하지만 하수영이 손님 대접을 위해 상시 비워두는 프리미엄 객실이 있다.
"어차피 며칠간 일정도 없잖아? 출고 테스트도 할 겸 신나게 바다까지 달려보자. 응?"
"그럼 부산펜션 말고 독도펜션 가는 게 어때? 거기는 길도 덜 막히고 금방 갈 수 있을 텐데."
독도펜션은 절경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펜션시설 자체는 해운대에 비해 뒤처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주효정이 끄덕였다.
"그러자. 그럼 독도펜션 다녀오자. 아, 수영 씨는?"
"안 그래도 후원회 분들하고 뒤풀이해야 한다고 나 바람맞았어."
"우리 효주 화났겠네. 언니랑 같이 시원하게 달리면서 풀면 되겠다."
장효주는 행사장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하수영을 확인했다.
레이서복을 입고 헬멧을 옆구리에 낀 채, 그는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열심히 떠드는 중이었다.
말은 그가 주도적으로 하고, 주변 사람들은 주로 맞장구를 치면서 듣는 쪽이었다.
"하여간에 맨날 바빠."
***
장효주와 주효정은 스포츠카에 탄 채 서울을 벗어났다.
차 뚜껑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동쪽으로 빠르게 질주했다.
본인이 직접 밟기에는 100km/h도 무섭지만, 프리덤이 알아서 운전을 해주기에 마음 편히 속도를 즐기면 되었다.
어느덧 동해시가 나타났고,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해상교량에 진입했다.
수평선을 거치자 울릉도가 모습을 드러냈고, 다시 독도대교로 갈아타서 수십 ㎞가 넘는 길을 빠르게 달렸다.
소금바람을 맞으며 독도펜션 앞에 정차한 뒤, 두 여배우는 큼지막한 선글라스로 얼굴을 한껏 가린 채 내렸다.
신이 나서 얼굴이 발그레해져 있던 주효정이 불현듯 말했다.
"잠깐, 근데 주행거리가 50km라고 하지 않았어? 우리 못해도 400km는 넘게 달렸을 텐데?"
"어, 그러네? 오면서 한 번도 충전안 했던 거 같은데? 어떻게 된 거지?"
「중간중간 잠깐 정차하는 사이에 충전했습니다.」
"거짓말. 그랬다면 우리가 몰랐을 리가 없잖아?"
「두 분이 너무 즐겁게 대화를 나누시느라고 충전하는 걸 못 보신 겁니다. 아무튼 충전했습니다.」
"말도 안 돼. 고속도로에서 한 번도 쉬지 않고 50km 이상 달렸을 텐데?"
「아닙니다. 제가 중간에 49km씩 끊어서 잠깐잠깐 정차를 했습니다. 두 분이 대화에 집중하시느라고 못알아차리신 겁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아무튼 충전했습니다. 워낙 자연스러워서 못 알아차리신 겁니다. 앞으로도 배터리는 신경 쓰지 마시고 주행을 즐기시면 됩니다.」
장효주 외에, 오늘 차량을 추첨구매한 이들이 끊임없이 듣게 될 말.
-아무튼 충전했습니다.
-주인님이 못 보신 겁니다.
-무인카가 한 충전을 차주가 모르게 하라, 이게 수영모터스의 원칙입니다.
-아무튼 몰래 했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