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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1052화 (1,052/1,270)

프랜차이즈 갓 1052화

247장 답답해서 내가 공장 (1)

세이브렌은 아직도 헤슬라 프리덤모델 첫 시연의 충격을 기억한다.

전기차 글로벌 1위의 성취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지금까지 우리가 만든 AI는 대체 뭐였지?'라며 크나큰 좌절감을 겪어야 했던 그 날.

그때의 충격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괴물 같은 모터가 툭 튀어 나왔다.

사실 이번 테스트를 제안받았을 때, 미국 본사는 발칵 뒤집어졌었다.

'또 에릭 박사가?'

'이번에는 모터라고?'

헤슬라의 전기차 3대 핵심 요소는 AI, 모터, 그리고 배터리다.

AI는 뇌, 모터는 심장, 배터리는 간에 비교할 수 있으리라.

뇌라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하청업체에 내준 헤슬라는 오히려 더욱 발전을 이루며, 2위와의 격차를 더더욱 벌렸다.

'헤슬라 프리덤'은 북미에서만 AI 기능 사용이 가능하지만, 그 하나 차이가 대단한 폭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슈퍼을은 뇌를 넘어서 심장까지 노리려고 한다.

바로 이 모터가 그 첨병이다.

'모터의 파워 하나만큼은 헤미 프로젝트 이상이다.'

헤미, 헤슬라가 양산 계획을 발표한 전기 트레일러 차량이다.

30톤 이상의 화물을 싣고 90km/h 이상으로 800km를 달릴 수 있게 설계된 전기 트레일러.

헤슬라는 진작 출시 발표를 했지만, 주행 테스트 중에 문제들이 계속 발견되어 미루고 있었다.

전기 슈퍼카, 전기 픽업트럭의 생산량 폭증도 못 맞추고 있다는 상황이 좋은 변명이 되어 주었다.

이미 출시한 모델들도 생산량을 못맞추는데, 미출시 트레일러가 좀 늦어질 수도 있는 거지, 라는 명분이다.

하지만 로한의 신형 모터는 100톤 화물을 실은 모듈 트레일러까지 힘차게 끌었다.

심지어 고작 1개의 모터만 장착했을 뿐이다.

30톤짜리 전기 트레일러를 움직이기 위해 헤슬라는 4개의 고성능 모터를 달았었는데.

'파워 하나만큼은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배터리가 해결되지 않으면…….'

오죽하면 발전기를 장착한 초고중 량 화물 전용 트럭을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

아무튼 이 모터는 힘 하나는 압도적이다.

다만 배터리가 해결되기 전에는 상용화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을 뿐.

그런데 당장 5,000개를 납품하고 싶다니.

"제가 모터 들어간 완성차를 전부 사겠다고 했으니 문제는 없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성능 보증이 되지 않는 모델을 출시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헤슬라의 브랜드 이미지 문제입니다."

"음, 프리덤 주행AI 공급자의 부탁인데도 어려울까요?"

"……."

세이브렌은 하마터면 휘청거릴 뻔했다.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되는 궁극의 밸런스 붕괴 카드가 나와 버렸다.

"혹시 저희가 끝내 주저하면 프리덤 공급 계약에 영향이 끼치게 되는지……."

"아뇨,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이거 안 들어준다고 그 계약을 깨버리면 그건 갑질밖에 더 되나요? 서해그룹도 그런 짓은 안…… 아니, 많이 하는구나. 걔네는."

"……."

"아무튼 다음에 계약 갱신 때는 참고 사항이 조금 붙을 수 있겠죠?"

갱신 때 핸디캡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정당한 권리 행사이다.

세이브렌은 눈 딱 감고 자신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시다면……."

"괜찮습니다. 제가 철회할게요."

"아닙니다. 그렇게 원하시는데 당연히 저희가 해드려야지요."

"정말 괜찮아서 하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했어요. 50km도 못 가고 퍼져 버리는 차들이 5,000대나 돌아다니면, 아무래도 회사 이미지가 안 좋겠죠."

하수영은 틈을 주지 않고 계속 말했다.

"헤슬라의 AI 공급자로서도 좋은 일은 아닌 거 같네요. 그냥 제가 깔끔하게 철회하겠습니다."

하수영이 진심으로 제안을 거두는 모습에, 세이브렌은 마음이 한결 놓였다.

원래 이런 사람이다.

무리한 요구는 절대 하지 않고,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관계를 추구하는.

자연을 벗삼아 조화롭게 사업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상생이 뭔지 안다.

"그럼 남은 테스트나 좀 마저 할까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굵직한 테스트는 끝났지만, 미세한 테스트는 아직 남아 있었다.

헤슬라 임직원들은 신형 모터가 파워 하나만큼은 엄청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체중 50㎏대의 사람이 수백㎏의 역기를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것과 같다.

문제는 잠깐 들어 올리고 바로 탈진해서 아무것도 못 한다는 점이지만…….

'로드러너 프로젝트(배터리 개발)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할 명분이 생겼다.'

그렇게 세이브렌은 미국으로 돌아왔다.

경영진 회의에서 자신이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설명하고, 배터리 문제해결을 최우선으로 매달려야 한다고 설파했다.

"EU는 2035년까지 디젤차 완전 중지를 선언한 상태입니다. 전기 승용차는 우리가 공고한 1위지만, 화물차 시장은 아직 정해진 승자가 없습니다."

임원들이 귀를 열고 주의 깊게 듣는다.

"한국의 백두자동차는 수소연료전지 화물차를 차세대 플래폼으로 내세웠습니다. 수소연료전지 분야에서 우리 헤슬라는 백지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와서 경쟁을 벌이기에는 늦은 감이 있습니다."

수소연료전지차량도 전기차다.

수소를 연료로 써서 전기를 만든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일반 전기차가 전원 플러그를 꽂아서 충전을 한다면, 그 대신 수소연료전지 차량은 탱크에 수소를 채워 넣는다.

"전기 화물차 시장은 전기 승용차시장과 사뭇 다릅니다. 수영그룹의 신형 모터를 상용화할 수만 있다면, 후발주자들을 모두 나가떨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승용차 시장은 독점이 불가능하다.

어느 정도 상향 평준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기 화물차 시장은 다를 것이다.

차주들은 모터에서 오는 강력한 파워를 피부부터 느낄 테니까.

후발주자들의 시장 진입 시도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

상용화하기만 한다면.

임원들이 한마디씩 의견을 냈다.

"테스트 결과를 보면 정말 놀라운 파워로군요. 100톤의 모듈 트레일러까지 능숙히 끌었다니, 전력 문제만 해결되면 당장에라도 우리 모든 차량에 탑재하고 싶은 모터입니다."

"역시 에릭 박사는 대단합니다. 레일건을 상용화한 게 얼마나 됐다고, 그새 이런 대단한 모터를 만들다니요."

"기본 전기를 많이 잡아먹긴 하지만, 중량을 100톤 이상으로 올렸음에도 전기 소모량은 유의미하게 증가하지 않는군요.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요?"

"대형 화물을 운반하기에 오히려 적합하다는 의미겠지요."

다양한 의견이 오고 간 끝에, 창업주가 결정을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모터를 우리 것으로 확보해야겠습니다. 반드시 독점공급권을 따도록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세이브렌은 곧바로 하수영한테 전화를 걸었다.

이 기쁜 소식을 하루빨리 하수영한테 알려주고 싶었다.

"회장님, 우리 헤슬라에서는 귀사의 신형 모터의 독점공급권을 원합니다. 원하는 모든 조건을 맞춰드릴테니, 저희와 함께 상용화를 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 저 람보르기니하고 벌써 계약 했는데.

"네? 람보르기니요?"

세이브렌은 눈앞이 컴컴해졌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람보르기니 가 내연기관에 영원한 작별을 선언했던가.

몇 년 안에 모든 라인업을 전기차 위주로 세팅하고, 내연기관은 더 이상 생산하지 않겠다던.

-이사님이 아는 람보르기니가 아닙니다. 다른 람보르기니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람보르기니 회사가 두 개잖아요. 슈퍼카 만드는 데 말고 트랙터 만드는 데요. 전 거기하고 ODM 계약을 했어요.

ODM 계약.

고객의 상표를 붙이는 것은 OEM과 같지만, 위탁자가 제품 설계와 생산을 주도적으로 한다는 점이 다르다.

-동력 빼고 나머지는 람보르기니 기술을 쓰기로 하고, 동력 부분은 모터와 배터리 포함해서 우리가 책임지기로 했어요. 회사도 한국에 차리기로 했습니다.

세이브렌은 정신이 탈출할 것만 같았다.

주행 테스트를 한 게 얼마나 됐다고, 벌써 다른 회사와 계약을 해?

"혹시 5,000대 즉시생산 조건을 저희가 주저해서입니까?"

-그건 아니구요. 람보르기니에도 이야기를 해봤는데 거기는 그냥 뭐든지 무조건 OK하더라고요.

"……."

-그래서 그 자리에서 ODM 계약하고, 한국에서 즉시 생산하기로 했네요. 벌써 법인 설립 신청도 넣고 공장도 세팅하고 있습니다.

무슨 공장 세팅을 이렇게 빨리 시작한다고?

-국내 트랙터 제조회사도 인수하기로 했거든요. 구두 계약하고 나서 바로 라인업 갈아치웠죠.

세이브렌은 탈출하려는 정신을 억지로 다잡았다.

그래도 농기구 트랙터라면 아직 희망은 있다.

"그럼 전기모터 농기구 트랙터를 개발하시는 겁니까?"

-네. ODM으로 생산하는 물량은 전부 제가 구매하기로 했죠. 어차피 우리 말곤 못 만들어서요.

람보르기니는 결국 돈 받고 상표와 기술만 제공하는 셈이다.

"트럭 트레일러는 그럼……."

-아, 그것도 생산하기로 했어요.

"혹시 배터리 문제는 이미 해결이 되신 겁니까?"

그 며칠 사이에 로한이 뚝딱 하고 차세대 배터리라도 만든 것일까??

-그건 아닙니다.

세이브렌은 순간 늪에 빠졌다가 동앗줄이 내려온 심정이 되었다.

-주행 거리는 얼마 안 되겠죠. 그건 발전차량을 붙이든지, 서울에 2m마다 전용 충전소를 쫙 깔든지 해서 해결을 볼 셈입니다.

세이브렌은 이제야 하수영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모터 실사용 이력을 미리미리 쌓으시려는 거군요."

-네. 그래도 총주행 거리가 많이 쌓일수록 사람들도 쉽게 인정을 해주겠죠. 시간은 금이라고요.

세이브렌은 가슴을 쥐어뜯을 듯이 안타까웠다.

한없는 자책감이 속을 가득 메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5,000대 납품과 발주를 그 자리에서 받아들이는 건데.

권한이 없고, 이미지에 훼손이 된다는 겁 때문에 주저한 결과가 이렇게 돼버렸다.

그래도 수습은 해야 하기에, 체면이 서지 않지만 세이브렌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저번에 제안하신 납품&발주에 관해서 생각이 있으신지……? 경영회의에서 긍정적인 결론이 나와서 그렇습니다."

진실과는 다르지만, 우선은 계약을 따내야 회사에서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

-그럼 ODM 주시겠어요? 여기 한국에서 우리 모터 넣은 헤슬라 차량을 직접 생산하겠습니다.

"ODM이라고요?"

-지금 헤슬라는 물량 소화도 제대로 못 하잖아요. 일반 승용차도 주문하면 언제 받아볼지 모르는 상황인데. 헤미 트럭도 한없이 지연되고 있고.

억울했다.

비겁하게 팩트로 공격하다니!

-ODM을 주셔야 저도 원하는 기간 안에 물량을 만질 수 있을 거 같은데.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람보르기니에 집중하는 게 낫죠.

일생일대의 순간이다.

자신이 이런 큰 계약을 결정할 권한은 없다.

하지만 5,000대 납품&발주를 머뭇거린 날갯짓은 람보르기니 ODM이라는 태풍으로 이어졌다.

알고 보니 이것도 작은 날갯짓이고, 더 큰 태풍이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면?

세이브렌은 일생을 걸고 도박을 하기로 했다.

"제 이름을 걸고 ODM을 드리겠습니다. 기술진도 최대한 빨리 꾸려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모든 지원을 아낌없이 퍼붓겠습니다."

-그냥 공장하고 차량 설계도와 기술 라이선스만 전부 주시면 됩니다. 그럼 알아서 할게요.

당연하지만 생산이라는 게 설계도 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설계도는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스타트 요건일 뿐이다.

공장을 짓고, 설비를 구축하고, 공정라인을 세팅하고, 양산 과정을 최적화하며 수백 가지가 넘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은 노하우의 영역.

"정말 그거면 되겠습니까?"

-대신 금요일까지 결정해 주세요. 대답 없으면 거절로 알고 람보르기니 ODM에 올인하겠습니다. 거긴 벌써 설계도하고 기술 다 오픈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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