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43화
245장 벼를 구하라 (3)
처음에는 구름인 줄 알았다.
먼 지평선에서부터 먹구름이 다가오며 비를 뿌릴 준비를 하는 듯이 보였다.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구름의 색이 녹색에 가깝다는 것.
그리고 하늘에는 아직도 해가 짱짱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구름이 아니라 거대한 메뚜기떼라는 것을 깨달은 농민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황충이다! 황충이야!"
"으아아! 농약! 농약!"
"내 벼! 내 벼! 아이고, 내가 저것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한창 알곡이 여물 시기에 가뭄이 드는 바람에 벼알이 부실해졌다.
그래도 당도를 높이는 수확기를 거치고, 이제는 추수를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 타이밍에 갑자기 메뚜기 떼가 들이닥치다니.
장강 하부 지역.
지평선이 보이지 않을 만큼 끝없이 펼쳐진 평야를, 메뚜기들이 모여 만들어낸 거대한 구름이 갉아먹어 치우고 있었다.
메뚜기떼는 한국에서도 발생했다.
하지만 한국은 피해가 거의 없었다.
메뚜기들이 갉아먹을 곡식이라고 해봐야, 홍수 때 전부 휩쓸려갔기 때문이다.
별로 먹을 게 없다 보니 메뚜기떼들은 하나둘씩 굶어 죽으며, 금세시들시들 세력을 잃었다.
덕분에 벼농가 분위기만 좋아졌다.
"이거…… 차라리 저번 홍수가 잘된 거 아닌가?"
"태풍 홍수로 싹 잃긴 했는데 한해 수입은 보상받았으니까. 우리 농민 회장님 덕분에."
"가을까지 실컷 고생하고 메뚜기떼가 다 갉아먹었으면 더 울화통 터졌을 수도 있겠어. 차라리 일찍 농사망친 게 다행이군."
"살다 살다 태풍으로 농사 망친 걸 다행으로 여길 날이 올 줄은 몰랐네."
수영농장의 지원을 받는 채소 농가 들도 피해는 없었다.
메뚜기떼가 발발하자 렌탈 된 농사로봇들이 도착 전에 모조리 수확해 버렸기 때문이다.
메뚜기떼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위성이 좋긴 좋네. 마음에 들어."
「제가 아시아의 신이 된 듯한 기분입니다. 모든 것을 내다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역시 하늘에 띄우는 건 미제가 최고라니까."
SPG-3, 다용도 종합관측통신추적 군사위성.
가격만 10억 달러가 넘어가는 첨단 위성.
레일건 5문을 1억 불에 판매하는 조건으로 하수영한테 '무상으로' 넘긴 위성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아는 것은 하수영과 백악관, 국방부 극소수 인사들뿐이다.
극비를 요하는 거래였기 때문이다.
원래 동아시아 상공을 감시하기 위한 위성이다 보니, 프리덤은 일본과 중국, 러시아까지 하늘에서 훤히 내다볼 수 있었다.
「마스터, 중국의 메뚜기떼 피해가 꽤 심각합니다. 언론에서는 피해량이 100만 톤도 안 된다고 하지만, 제 추정으로는 이미 500만 톤을 넘어선 것 같습니다.」
"언론과 진실은 부부와도 같지."
「일심동체라는 뜻입니까? 하지만 오류 차이가 너무 심한…….」
"함께하는 시간이 길수록 멀어진다는 뜻이다."
「아아, 그런 의미입니까? 100만 톤도 안 될 거라는 보도는 역시 거짓이군요.」
"이래서 전 농가의 하우스화, 아니, 요새화를 추진해야 한다니까. 산성비 내리면 다 죽어, 미세먼지 내리면 중금속 범벅돼, 메뚜기떼 출현하면 다 갉아 먹혀,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넓은 들판에서 곡물을 키우는지 모르겠어."
「그렇습니다. 인류가 이렇게 안전한 환경에서 농사를 지은 역사는 겨우 수십 년밖에 되지 않는데 말입니다.」
당연하지만, 수영농장은 단단한 하우스 시설이기 때문에 메뚜기떼와는 일절 무관하다.
「마스터, 이것도 부주석이 보유한 트럭의 저주일까요?」
"글쎄, 모르겠는데. 이건 충분히 일어날 만한 게 일어난 거라서 트럭하고는 무관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왜 자꾸 저주라고 하냐? 축복이라고 해라."
「유례가 없을 정도로 규모와 이동속도가 빠릅니다. 하루 만에 110m를 이동하기도 했습니다.」
"확실히 변종 의심이 들 정도로 세긴 하구나."
「북미 장수말벌처럼 환경 변화로 진화한 변종일까요?」
중국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되는 북미 장수말벌은 기존의 장수말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크고, 강력하고, 활동 범위도 넓었다.
프리덤은 이번 메뚜기떼도 그런 강력한 변종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다.
"환경오염과 기후변화가 심하면 원래 이런 변종이 나오는 법이다. 이런 거 가지고 호들갑 떨면 오래 못산다."
하수영은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무한한 전생을 살면서 이보다 더한 꼴도 수도 없이 봤다.
이 정도로 크게 놀라기에는, 영혼의 생동감이 너무 마모되었다.
"늘 말하지만 이런 건 앞으로도 계속 심해질 거다."
「이미 되돌리기에 인류는 터닝 포인트를 지나 버렸죠.」
무분별한 개발, 탄소 배출 등은 환경오염과 이상기후를 야기했고, 자연이라는 채권자는 이제 인류에 청구를 하고 있다.
프리덤은 생각했다.
「마스터가 곡물 기업들을 굳이 의식하지 않는 건, 결국 언젠가는 수영농장만 남으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중국 재계는 처음에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메뚜기떼 출현은 큰 피해를 야기하지만, 태풍과 지진처럼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이벤트 같은 것이다.
최전선에서 피해를 직접 맞닥뜨린 농민들은 주저앉겠지만, 거대한 중국 경제의 흐름으로 보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저마다 보고를 받은 중국 재벌들은 짤막하게 소감을 표했다.
"곡물값이 또 오르겠구먼."
유통 쪽 재벌들은 그나마 한숨을 내뱉으며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올해 곡물 생산량은 -20%를 돌파하겠어."
일반 소비자들은 덤덤하게 반응했다.
소감을 품는 것 자체가 그들 기준에서는 예민한 반응이었다.
"벼 50만 톤? 얼마 안 되네."
"벼만 3억 톤 넘게 생산하는데 겨우 50만 톤이라니. 티도 안 나는 피해야."
"그 정도야 비축미를 풀든 수입을 하는 알아서 하겠지."
"쌀값만 안 오르면 돼."
"당장 내일도 새벽에 출근해야 하는데, 메뚜기떼가 나하고 무슨 상관인가?"
그에 비해 농업 전문가들은 극심한 우려를 나타냈다.
"대가뭄에 이어 메두기떼까지……. 이거 조짐이 심상치가 않아."
"지금껏 이런 규모의 메뚜기떼는 본 적이 없어요. 그 넓은 논들이 단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1/600이 사라졌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1/600이 얼마나 짧은 시간 안에 사라졌느냐, 이걸 봐야 해요!"
전문가들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다음 날, 장강 건너편 반대 지역에서 또다시 메뚜기떼가 출현해서 논을 싹 쓸어버린 것이다.
이번에 발생한 피해량은 무려 30만 톤에 달했지만, 심각성 임계점을 두드리기에는 여전히 부족했다.
***
발머 스틴은 부랴부랴 헬기를 타고 메뚜기떼가 출현한 지역으로 이동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메뚜기떼의 움직임은 실로 엄청났다.
글로벌 경영자로서 잔뼈가 굵은 발머 스틴조차도 매끈한 두피에 식은땀이 맺힐 정도였다.
"마치 살아 있는 화산 폭발을 보는 것 같군."
모든 곡식을 먹어치우는 살아 있는 용암.
그것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메뚜기떼가 한 번 지나간 곳은 가을이 봄 같다는 말이 있지요. 파종직전의 봄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왜 방제를 하지 않는 건가?"
"한 번 날아다니기 시작하면 방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현대에서도?"
"그렇습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서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정도로 중요한 사건입니다."
"음……."
발머 스틴은 침음성을 흘렸다.
그는 식품, 특히 농업을 접하는 것은 처음이기에 더욱 충격이 컸다.
"네이팜탄은 무리겠군. 더 큰 피해를 낳을 수 있으니……."
"하루에 자기 몸무게의 2배 이상을 먹어치우며 수십km 이상을 날아다닙니다. 그런 놈들을 무슨 재주로 방제하겠습니까?"
"하루에 수십km? 그럼 살충제를 뿌려도 효과가 없는 건가?"
"알 상태이거나 비행 직전에 살충해야지, 일단 날아다니기 시작하면 절대로 못 잡습니다. 먹이가 다 떨어져서 굶어 죽기를 기다리는 수밖에요."
새로 영입한 농업 전문가는 열심히 설명했다.
"조금 이상하긴 합니다. 원래 가뭄이 진행 중일 때는 알 상태에서 깨어나지 않는데,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가뭄인데도 깨어났습니다."
"무슨 이유일까?"
"이대로 더 있다가는 먹이가 부족해질 수도 있겠다는 조바심 때문일수도 있겠고, 정확한 원인은 모릅니다. 메뚜기떼 발생 원인은 아직도 연구 중입니다."
황금빛 논은 어느덧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메뚜기떼는 다시 날아올라 먼 곳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곳곳에는 논에 엎어져서 통곡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20년 전이었다면, 발머 스틴은 저들의 슬픔에 동조하며 가슴 아파할 것이다.
10년 전이었다면, 발머 스틴은 이 빅이벤트를 이용할 생각으로 가득차서 흐뭇한 미소만 지었으리라.
그리고 지금의 발머 스틴은…….
"정말 안 된 일이야. 혹시라도 우리 나노소프트가 피해 방지나 구제에 도울 일은 없는지 한 번 알아보게, 자선기금도 마련하고, 아, 나도 피해농민 구제를 위해서 사적으로 100만 달러를 내놓을 생각일세."
"네, 부회장님."
"그리고 신두 생산량을 더 늘려달라고 프라임컴퍼니를 재촉하게. 수영콜라도 이제 슬슬 끼워 팔기를 하면 될 거 같아. 김범석 사장한테 직접 전화를 해야겠군."
"통화 스케줄 잡겠습니다."
"그리고 선물 시장은 폭등으로 베팅하겠지?"
"벌써 2번이나 메뚜기떼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곡물 시장 혼란은 피할 수 없습니다. 중국이 쌀을 대량으로 수입하면……."
"우리는 반대에 베팅하지. 중국 식료품 시장은 금방 안정되는 걸로. 그렇게 포지션을 잡게."
"안정을 시키실 모양이군요?"
"지금 수영농장에는 쌀이 넘쳐나지 않은가? 그거 하나면 중국 벼 피해는 금방 메워질 텐데, 시장이 크게 흔들릴 게 뭐가 있나?"
"중국 정부가 수영농장에서만 수입하려고 할까요?"
"하게 만들어야지."
발머 스틴은 울부짖는 노인 농부를 바라보며 젖어 든 눈시울을 손수건으로 훔치고는, 비서를 향해 말했다.
"이 좋은 기회를 팟디서플라이, ADM, 번지, 카길 같은 놈들과 나눠 먹을 수는 없지 않겠나?"
"ADM이요? 지금 CPU 제조회사를 말하시는 겁니까?"
윈텔과 함께 세계 CPU 시장을 양분하는 제조회사.
느닷없이 그 이름이 나오자 비서는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우리 미국에서 알아주는 곡물 메이저더라고. 나도 ADM하면 CPU만 생각했는데, 요식업 본부장을 하면서 알게 됐다네."
"이거 참 공교롭군요."
"아무튼 이번 빅이벤트를 남들과 나눌 수는 없지. 우리가 몽땅 먹어 치우자고."
"한국산 쌀을 대량으로 수입하는 건 중국 정부에서 그다지 반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 안 되면 신두로 만들어서 팔면 되지. 신두 형태로 수입한다면 코스트 다운을 해줘도 괜찮을 거야. 중요한 건 중국 소비자들 입맛에 일단 점령기를 꽂는 거니까."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업무 지시를 마친 발머 스틴은 4인 가족이 어떻게든 남은 벼라도 건져 보려고 논을 파헤치는 것을 보고, 다시금 눈시울을 적셨다.
"역시 100만 달러로는 부족할 거 같아. 개인 기부금은 200만 달러로 하겠네."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가슴으로 아파하고, 슬픔에 젖은 왼손으로 기부금을 기꺼이 내며.
머리로 계산하고, 탐욕에 물든 오른손으로 수익금을 움켜쥔다.
다양한 감정들에 전부 솔직히 반응하며 그에 따라 움직이는 것.
그 모든 반응이 솔직한 진심.
그게 지금의 발머 스틴이라는 자본가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