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40화
244장 대륙의 파이프 (4)
통화 속 발머 스틴은 밝은 목소리로 흔쾌히 수락했다.
-중국 공략이요? 그런 건 제가 전문입니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아시겠지만 중국은 뭐 장사 좀 하려면 무조건 자기네 기업들과 합작을 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나중에다 털리고 손해만 보고 쫓겨나는 경우도 많고요."
-우리 나소가 하면 다릅니다. 떼먹는 것도 만만해야 떼먹을 수 있는 거지요.
"그럼 나노소프트의 중국 무역 인프라를 한 번 빌려보겠습니다."
-그런데 류이엔 그룹에는 무역권을 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류이엔 회장은 좋은 파트너입니다. 하지만 한 바구니에만 몰아 담는 것은 좋지 않죠."
-아아.
"그리고 중국 내에서 생산하는 버섯과 달리, 직접 수출은 나중에 중 국 정부와 몇 번쯤 얼굴을 붉힐 거 같거든요. 류이엔 그룹에 그런 부담을 줄 수는 없죠."
-오, 몇 번씩이나. 이번에는 회장님도 칼을 간 모양입니다.
"대륙의 지…… 아니, 용을 잡으려면 그래도 진지하게 달려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수영 회장님이 직접 챙기는 사업이니만큼, 저도 온힘을 다해서 돕겠습니다.
발머 스틴은 대륙이니만큼 하수영도 진심으로 나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교역전쟁이 제대로 승리할 때까지 끝까지 진두지휘할 것이라고 오해했다.
'발머 스틴이라면 안심할 수 있지. 적당히 초반에 재미 보고 난 다음에 떠넘겨도 알아서 잘할 사람이잖아.'
이런 생각을 알았다면, 발머 스틴의 초기 각오는 조금 다른 형태로 다져졌으리라.
-우리 나노소프트가 앞장을 서면, 중국 정부라 해도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생선을 가득 들고 들어간다면 더욱 그렇겠지요.
"역시 나노소프트, 든든합니다. 실리콘밸리의 황제다운 카리스마예요."
-음이 전쟁이 승리로 끝나면 수영레스토랑 분점이 진출을 해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만.
"그냥 중국 사업권은 나노소프트에 드리죠. 북미 사업권과 동일한 조건으로요."
-오, 감사합니다. 이거 더욱더 확실히 동기부여가 되는데요.
"별말씀을. 이게 순리에 맞는 거지요."
***
다음 날, 발머 스틴이 청담동에 도착했다.
비행시간을 고려하면, 통화를 끊자마자 바로 준비해서 날아온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인 중국 사업 이야기 전에, 지난 이야기로 회포를 가볍게 풀었다.
"사실 북미 사업은 이제 더 이상 제가 손을 댈 만한 영역이 없습니다."
"이미 평정이 됐나 보군요."
"네, 아직 레스토랑이 진출하지 않은 주지역이 있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입니다. 수영파우더, 엘릭서 고춧가루 덕분에 냉동식품 시장도 99% 이상 장악했습니다."
미국은 냉동식품 시장이 크게 발달되어 있다.
워낙 땅이 넓다 보니 외식 한 번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시민들은 픽업트럭으로 주기적으로 냉동식품을 사서 집에 쟁여 놓는다.
나노소프트는 냉동식품 제조업체를 닥치는 대로 인수해서 엘릭서 고춧가루를 첨가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했다.
그 맛에 중독된 시민들이 늘어나며 점유율을 왕창 올렸고,
"99% 이상이요?"
하수영도 그 말에는 놀랍다는 듯이 흥미롭게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되나요? 미국에서요?"
"됩니다. 되더군요."
"그래도 반독점법 때문에 힘들 텐데. 괜찮은 겁니까?"
"저희가 직접 파는 냉동식품은 전체의 60% 정도 됩니다. 나머지 40%는 다른 식품회사들이 갈라 먹고 있지요."
하수영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나머지 회사들에 식자재를 제공하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엘릭서 고춧가루를 조건으로 걸고, 대신 식재료는 우리 회사로부터 전량 수입하도록 했습니다."
완제품은 시장의 60% 정도만 만들어 팔지만, 나머지 경쟁사들에 부품을 판다.
이러면 겉보기에는 60%지만 실제로는 99%, 물론 미국은 이런 꼼수를 대비한 규제장치들을 마련해 두고 있지만…….
"우리는 그 회사들의 주식을 단 1주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지배관계로 얽힌 게 없어요. 그리고 수영농장산 농산물 판매를 '중개'할 뿐입니다."
"어쩐지 미국 농산물 판매량이 계속 늘어난다고 했어요. 냉동식품 시장까지 접수하셨군요."
"전미 식자재 유통시장까지 접수하고 싶은데, 안 그래도 얼마 없는 사티아의 두발이 청문회장에서 뽑혀나 갈까 봐 염려돼서 숨을 고르는 중입니다."
당신이 타인의 두발을 걱정할 두피는 아니지 않느냐, 라는 말이 나올 뻔했다.
발머 스틴 역시 사티아 아델과 마찬가지로 탈모인이다.
발머 스틴은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빙긋 웃어 보였다.
"그 목마름을 중국 대륙에서 풀면 되겠군요."
"이거, 제가 사냥견을 풀어야 할 자리에 호랑이를 푸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웃고 계시군요."
"즐겁잖아요. 이런 거."
여흥이 가득한 하수영의 눈빛을 보며, 발머 스틴은 잠시 작은 소름이 돋았다.
그는 실리콘 밸리의 무수한 경쟁사들을 떠올렸다.
그 회사들을 지휘하는 CEO들과 천재들을 한 명씩 상기했다.
"래플, 윈텔, IBM, ADM, 엔도비, 마이크론…… 그 회사들은 진짜 서진파운드리가 종합반도체에 진출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렇죠? 이쪽은 최대한 봐주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종이칼로 찌르려고 할 때마다 얼마나 답답한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우리 NS 이사진도 알아야 합니다. 제가 구세주를 물어왔다는 것을요. IT 회사가 무슨 요식업이냐고 투덜거리는 친구들 볼 때마다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그냥 확 회사 분할해 버리는 건?"
"하하, 분할은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직 나노소프트 CEO는 청문회장에 세우기 좋은 대타입니다."
"하긴, 이제 발머 스틴 씨는 그런 자리에 나가기에는 너무 짬이 찼죠."
"현역 시절에 그렇게 많이 섰는데, 은퇴하고 나서 또 서기는 싫더군요.
***
그렇게 나노소프트는 생선, 신두, 콜라, 엘릭서 드링크의 중국 유통권을 얻었다.
권리를 얻자마자 발머 스틴은 중국내의 인맥을 활용해서 굳건한 문을 두드렸다.
첫 미끼는 김범석이 설계한 대로 생선이었다.
중국 역시 어획대란으로 인해 14억 인민들이 생선 부족에 신음하고 있는 국가.
어획대란 이전에는 소비량이 약 7,000만 톤이었다.
그러나 현재 유통량은 약 10만 톤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추정된다.
그마저도 물량 대부분이 수영양식 장의 해상경매에서 나온 물량이 암시장에서 나도는 것이었다.
당연히 가격도 웬만한 부자들은 접근도 못 할 만큼 비쌌다.
"발머 회장님, 수영양식장 물량을 정식으로 우리 중국에 유통한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정말 한국 시장과 비슷한 가격 수준으로 판매한다는 거죠?"
"네, 당연하죠."
"허어, 그럼……."
"정식 유통이니만큼 정부에서도 교역 장려를 해주지 않겠습니까?"
발머 스틴이 넌지시 물었고, 수오미 부회장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이거 다른 회사에 넘겨주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수오미는 전자기기회사, 생선 수입같은 건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요즘 생선 시장이 얼마나 바닥을 치고 있는가.
이 건을 가져올 수만 있다면, 큰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유통업체 소개 말고, 저희 수오미가 직접 핸들링하는 건 어떻습니까?"
"수오미 하지만 수오미는 전자 회사가 아닙니까?"
"내륙유통에 관해서는 철저합니다. 나노소프트도 IT 회사이면서 식품시장에 진출했는데, 우리 수오미도 그런 개척 정신을 본받고 싶습니다."
"음, 수오미가 직접 핸들링해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결과만 확실하다면 말이죠."
"확실할 겁니다."
"좋습니다. 단, 중국에 합자회사를 세우지 않는 방향으로 가려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이 정도 아이템이라면 당국에서도 뭐라 하지 않을 겁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내국인에 일정량의 지분을 줘야 한다.
발머 스틴은 그냥 수산물만 파는 것으로 첫 단추를 꿨다.
"한 해에 240만 톤의 물량을 보증할 수 있을 겁니다."
"한 달에 20만 톤입니까. 살짝 아쉽습니다."
살짝이 아니라 많이 아쉬워하는 게 보인다.
중국이 잘나갈 때는 한 달에 580만 톤 이상도 소비했으니까.
너무 적은 양이지만, 그마저도 감사할 정도로 어획대란은 심각하다.
"당분간입니다. 지금 수영양식장이 전 세계 어시장을 책임지고 있다 보니, 할당량을 빼기가 빠듯해서 말입니다."
"수십 배 이상으로 늘어나도 우리 수오미는 거뜬히 핸들링할 수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발머 스틴은 수오미를 통해 중국에 생선을 공급했다.
어획대란 이전에 비하면 비싼 가격이지만, 암시장 거래가격에 비하면 합법적인 가격.
수오미의 생선 수입은 암시장 단속에 골치 아픈 공산당의 두통을 씻어주었다.
"수이창 부회장, 정말 이 가격에 수입하는 게 맞는 거요? 혹시 알려지지 않은 다른 조건이 붙은 것은 아니오?"
"절대 아닙니다, 국장님, 울릉도 양식장에서부터 수송까지 모든 걸 떠안는 조건으로 책정된 가격입니다."
"으음, 이 가격으로 이만한 물량이 꾸준히 들어온다면 암시장은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겠군."
"예, 저도 그리 기대합니다."
"근데 왜 나노소프트는 수산물유통기업도 아닌 수오미와 거래를 한 거요?"
"그런 나노소프트도 IT 기업이죠. 발머 스틴 회장이 가진 중국 인맥 중에서 수산물 쪽은 전혀 없을 겁니다."
"그건 그렇겠군. 근데 물량이 너무 적은데, 계속 이만큼만 들어오는 거요?"
몇 초 전만 해도 이만한 물량이라며 만족감을 표해놓고는, 다시 슬그머니 말을 바꾼다.
"그 부분은 제가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적어도 연간 1,000만 톤은 되어야 인민들의 불만을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을 듯한데……."
"수영양식장이 규모를 거듭 늘리고 있으니, 시간이 해결해 줄 겁니다."
"당에는 내가 잘 설명을 하리다."
"고맙습니다."
***
생선은 꾸준하게 들어왔다.
수오미가 마련한 선박들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울릉도를 드나들었다.
울릉도에서는 수오미를 위해서 따로 빼놓은 물량을 바로바로 내주었고, 수오미 선박들이 귀항하면 항구에서는 곧바로 어시장 경매가 열렸다.
수오미는 어시장 경매에서 원가의 10배 이상으로 팔아치우며 많은 이득을 남겼다.
혼자 먹으면 탈이 나는 법, 수오미는 그 이익을 아낌없이 주변과 나누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익을 본 것은, '저렴한 가격'에 생선을 먹을 수 있게 된 일반 소비자들이었다.
물량 보장 형태로 생선 판매계약을 맺은 것은 수오미가 처음이기에, 공산당도 대강 만족했다.
"기왕이면 황비버섯농장처럼 수영양식장이 직접 진출했으면 했는데 말입니다."
"지금 생선시장 독점자나 다름없어서 앞으로도 그럴 마음은 없어 보이 더군요."
"그래도 첫 거래를 텄다는 게 중요 하지요. 인민들의 식탁에 적게나마 생선을 공급할 수 있게 돼서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전국적인 가뭄 때문에 올해는 곡물 수확량이 줄어들 거 같은데, 참으로 걱정입니다."
"뭐, 쌀이 모자라면 수입을 하면 되지 않겠어요? 우리가 세계의 공장노릇을 하며 번 돈이 얼마인데 그깟 쌀 수입이 어렵겠습니까?"
적당히 생선 맛에 길들여졌다 싶을 때, 나노소프트에서 슬그머니 새로운 카드를 꺼냈다.
"사은품입니다. 생선을 한꺼번에 100kg 이상 구매하는 VIP 위주로 하나씩 지급하십시오."
"이게 뭡니까?"
"신두라는 건데, 한국에서 꽤나 인기를 끄는 간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