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28화
242장 용왕의 진노 (3)
"용왕의 솔방울을 발사하고 나면 잠수함 균형이 좀 불안정해지긴 하겠지만, 기항으로 복귀하는 데는 문제 없을 겁니다."
하수영은 모듈 하나를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이건 최종 병기니까 이걸 왔다는 건 죽어라 튀어야 한다는 걸 뜻하겠죠."
"용왕의 솔방울? 혹시 이 어뢰 이름입니까?"
"네, 제가 그렇게 지어봤는데 별로 인가요? 표정이 안 좋은 거 같습니다."
"아닙니다, 원수님, 정말 어뢰의 정체성과 위력에 딱 맞는, 아주 멋진 이름입니다."
"후후, 어떤 군함이는 이 용왕의 솔방울에 처맞으면 곧바로 용궁 구경을 해야 할 겁니다."
***
어뢰 성능시험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해군은 부랴부랴 발사 및 위력 테스트를 준비했다.
해군 자체 내부 발사 테스트이기에 모든 것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테스트에는 가장 먼저 소형 핵융합로(무선전기)를 장착한 도산안창호 급이 나섰다.
축전기 2개를 모두 제거한 자리에 모듈을 고정시키고, 발사 포인트까지 이동했다.
"빨리빨리 들고 어뢰실로 이동해!"
"원수님은 혼자서 모듈 서너 개씩도 들으셨다! 빨리빨리 움직여!"
승조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모듈을 계속 어뢰실로 운반했다.
모듈 조립과 발사관 장착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진짜 무겁긴 더럽게 무겁네."
"무슨 어뢰가 이렇게 무거운 거야?"
"근데 듣기로는 이 어뢰 한 발이 우리 잠수함 한 척보다 더 비싸다고 하던데……."
"뭐야? 어뢰에 핵폭탄이라도 넣었나? 뭐가 그리 비싸?"
"진짜 핵폭탄도 그 정도로 비싸진 않을걸?"
전투통제실에서 어뢰에 발사 정보 입력을 마쳤다.
목표는 50km 밖의 해역에 떠 있는 낡은 바지선.
관통력 측정을 위해서 바지선의 좌우 측면에 각각 두터운 티타늄 합금장갑판을 둘렀다.
"원수님은 어디 계시지?"
"줌왈트 2번함에서 참모총장님과 함께 관측하고 계십니다."
"2번함이면…… 장강필 대령님이 지휘하시는 함정인가?"
"예, 그렇습니다."
잠수함장은 입술을 질근질근 씹었다.
"티타늄 다리를 얻고 현역으로 다시 복귀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꼭 한번 실제로 만나 뵙고 싶었는데."
"다리 움직임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바지 입고 운동화 신으면 의족이라는 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라고 합니다."
"청담 스코프의 기술력을 생각하면 의족은 오히려 아주 쉬운 영역이겠지."
잠수함장은 잠시 청담 스코프를 군사무기로 도입하면 전투력이 얼마나 향상될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는 사이, 지휘부에서 발사 명령이 떨어졌다.
"1번 발사구 주수."
"1번 발사구 주수 완료."
"발사."
"발사."
포뢰장이 우렁차게 복창하고 곧바로 발사 버튼을 눌렀다.
함체에서 어뢰가 빠져나가는 둔탁한 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
"줌왈트 2번함에서 기만체 발사! 어뢰를 향해 달려들고 있습니다!"
사전에 정해진 대로, 줌왈트가 안전 영역에서 방해공작을 시행했다.
미국산 기만체가 어뢰를 속이기 위해서 달려들었으나, 어뢰는 철저히 무시한 채 목표로 삼은 바지선을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줌왈트 2번함! 예정대로 요격 어뢰 발사에 들어갔습니다!"
기만체가 실패하자 곧바로 요격 어뢰가 발사되었다.
그런데 요격 어뢰가 탐신음을 발신한 순간이었다.
"으악! 요격 어뢰 폭발!"
"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엄청난 굉음과 동시에 폭발했습니다!"
"함장님! 우리 어뢰에서 요격 어뢰폭발과 거의 동시에 굉음이 울렸습니다! 음탐기 시간대로는 0.01초도 차이 나지 않습니다!"
***
"요격 실패! 어뢰 격추!"
줌왈트 2번함 지휘관, 장강필 함장은 주먹을 부르르 쥐었다.
이제는 내 다리보다 더 내 것 같은 로봇발이 그런 마음에 동조하듯,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설마 탄자를 발사해서 어뢰를 격추한 것인가?'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뢰가 물속에서 탄자 한 발을 발사해, 정확히 자기를 노리는 어뢰를 격침시켰다고?
SF영화도 이런 식으로 만들면 고증 제대로 하라고 욕을 먹을 것이다.
"발사 목표를 향해 다가가고 있습니다! 실행 포인트까지 앞으로 10초!"
함교 내에 짙은 긴장감이 맴돈다.
참모총장도, 군수참모부장도 모두 식은땀을 쥔 채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장강필 함장은 영광스럽게도 줌왈트 승무원 중에서 유일하게 어뢰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하수영이 귀띔을 해준 덕분이다.
수많은 레일건 탄자를 일시에 터뜨려서 적함을 벌집으로 만들어버리는, 레일건 탄자유탄 어뢰라니.
'용왕의 솔방울이라.'
전혀 우습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름이다.
오히려 가벼워 보이려고 하는 위장속에 섬뜩한 무서움을 숨긴 것으로 보인다.
"3! 2! 1! 0!"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바지선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들 폭발이 잘못된 건가 싶어 당황하는 사이, 장강필 대령이 외치듯이 물었다.
"음탐병! 소나 반응은?"
"예정포인트에서 정확히 굉음이 발생했습니다! 목표 바지선에서 희미한 피탄음이 수없이 들렸지만, 폭음은 없었습니다!"
"피탄음이 수없이 들렸다고?"
"영상, 들어옵니다!"
줌왈트가 날린 무인기에서 바지선 영상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멀리서 볼 때는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확대를 해보니, 바지선에서 검은 연기가 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바지선에 실린 소량의 기름이 유폭되어 불이 붙은 것이다.
무인기가 고해상도의 사진을 찍어서 전송을 해왔고, 함교에서는 신음섞인 탄성이 일어났다.
"말 그대로 벌집이로군……."
바지선은 수없이 많은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다.
너무 깔끔하게 관통되었기에 형체를 유지했고, 그래서 오히려 멀쩡해 보였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좌우 측면에 붙인 티타늄 합금 장갑에도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레일건 탄자는 티타늄 합금 장갑을 2중으로, 바지선 선체까지 함께 관통해 버린 것이다.
'이게 가능한가? 탄자가 1천 발이라 쳐도, 1천 개의 레일이 필요한데, 그걸 어뢰 하나에 어떻게 욱여 넣었지?'
레일건은 탄자를 튕겨내기 위한 선로가 길게 늘어져 있음으로 인해 발사력을 높인다.
일제 발사를 위해서는 탄자 수만큼 레일을 설치해야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어뢰 하나에 대체 어떻게?
장강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괴물이었다.
"어떤가요, 함장님?"
하수영이 어느덧 옆에 서서 조용히 물었다.
장강필은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말도 안 되는 괴물입니다.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떤 점이요?"
"탄자마다 전용 레일이 있어야 일제 발사가 가능할 텐데, 그 많은 탄자와 전용 레일을 작은 어뢰 한 발에 어떻게 욱여넣을 수 있는지, 전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꼭 물리적인 레일이 있어야 탄자가 그 위를 달릴 수 있는 건 아니죠."
"설마 플라즈마 레일……!"
"괜히 어뢰 한 발에 인공 태양을 넣은 게 아닙니다. 정말 아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거든요."
"……이해했습니다."
수많은 탄자들이 달릴 수 있는 무형의 레일을 플라즈마로 형성하고, 그 탄자들을 초음속으로 일제히 튕겨내기 위한 막대한 자기장을 단숨에 뿜어내는 가공할 무기.
당연히 인공태양 정도는 되어야 그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장강필 함장은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원수님, 차라리 핵융합 폭발을 일으켜 주변을 불태우는 게 더욱 위력적이지 않겠습니까?"
생각을 해보니 그렇게 하면 핵폭탄 못지않은 열과 폭발 에너지를 뿜어 낼 수 있을 거 같았다.
모든 핵융합 연료를 일제히 반응시켜서 발산하면, 작은 태양이 폭발할 정도로 가공할 위력이 발생하지 않겠는가?
"쉿. 어디 가서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돼요. 용왕의 솔방울은 그런 잔인무도한 대량살상병기가 아니라, 핀포인트 대함 어뢰란 말입니다."
"그, 그런……."
"에너지 효율이 별로죠? 근데 따지고 보면 모든 무기들이 다 그래요. 전 세계가 일제히 모든 무기를 폐기하는 거야말로 가장 효율적인데, 아무도 안 그러잖아요."
"……."
"핵융합 폭탄, 로한 박사가 못 만드는 게 아닙니다. 농장이 그런 대륙파괴병기 같은 걸 운용하면 세상이 어떻게 보겠습니까? 피 묻은 손으로 키워낸 작물에 어떤 웰빙 프리미엄을 붙일 수 있겠어요?"
"제가 너무 생각이 짧았습니다, 원수님."
"아닙니다. 그래도 곧바로 그런 발상을 떠올리신 것 자체가 대단한 거 같네요. 혹시 다른 생각은 없나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장강필 함장이 말했다.
"로한 박사는 마음만 먹으면 핵융합 폭탄쯤은 언제든지 만들 수 있다는 걸, 레일건 탄자유탄 어뢰를 통해서 보여줬습니다. 정보를 입수한 나라들도 거기까지 눈치를 챌 겁니다."
장강필은 안색이 굳어져서 말을 이었다.
"본함은 아직 인수인계 중인 미군들이 조타를 맡고 있습니다. 그들도 당연히 오늘 실험을 봤을 테고, 자세한 내용은 모르더라도 미국에 정보가 흘러가는 것은……."
"어차피 상온 핵융합에 성공한 이상, 핵융합 폭탄 기술개발은 이미 완성된 거나 마찬가지죠. 미국도 그 점은 알고 있을 겁니다."
"괜찮은…… 겁니까?"
"중요한 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죠. 미국은 제가 얼마나 평화와 번영을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아마도 누군가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것도 농부가 이렇게 군축에 열을 올리냐고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강필에게 있어 하수영은…….
'이 무쇠 다리가 네 것이냐?'
'아닙니다.'
'그럼 이 강철 다리가 네 것이냐?'
'아닙니다. 제 다리는 부하를 구하려다 사고로 산산조각이 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장하구나. 상으로 이 티타늄 다리를 네게 주마. 페이결제 기능도 넣어두었다.'
잃어버린 단백질 다리 대신 티타늄다리를 내려주신 산신령, 아니, 용왕같은 존재.
"세상 모두가 원수님 같았다면, 지구상에 전쟁이란 없는 단어가 되었을 겁니다."
"제가 양식장 경호를 좀 과하게 하는 거, 이유 알죠?"
"물론입니다. 불필요한 분쟁을 막기 위해 오히려 압도적인 힘을 갖추시는 거 아닙니까?"
"역시 장 대령님은 저를 잘 이해하신다니까."
"누구보다 평화를 사랑하시기에 분쟁억지력을 갖추기 위해 경호에 힘을 쓰시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하수영은 나지막한 웃음을 흘리며, 눈짓으로 참모총장 쪽을 가리켰다.
"저쪽은 난리가 났군요."
"예. 마음 같아서는 해군의 모든 어뢰를 레일건 탄자유탄 어뢰로 교체하고 싶을 겁니다."
전투함보다 더 비싸긴 하지만, 확실하게 적 전투함을 잡을 수 있다면 교전비에서는 오히려 우위가 아닐까?
물론 해군의 재정으로는 어림도 없겠지만…….
"궁극 병기라는 게 그렇게 쉽게, 많이 갖출 수 있는 게 아니죠."
"제 생각에는 원수님이 배치해 주신 2기가 끝일 거 같습니다. 1발에 1조 원이 넘어가는 어뢰라니, 국회에서 절대로 승인이 나지 않을 사업입니다."
"뭐, 됐어요. 잠수정 빨리 다 팔아 치우고 좀 큰 잠수함으로 전부 도입해서 승조원들이 조금이라도 쾌적하게 근무할 수 있다면, 저는 더 바랄게 없습니다."
장강필은 하수영의 마음 씀씀이에 다시 한번 감동했다.
저분이 바로 우리 해군의 자랑스러운 원수시다.
그때 갑자기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졌다.
장성 한 명이 하수영을 향해 헐레벌떡 뛰어와서 외쳤다.
"원수님! 비상입니다!"
"무슨 일이죠? 설마 해적으로 위장한 일본 해상자위대가 동해 양식장을 덮쳐서 물고기들을 다 털어갔나요? 그렇다면 당장 도쿄상륙작전을……!"
"아닙니다! 수영농장 화물선이 아덴 만에서 해적들한테 쫓기는 중이라고 합니다!"
"아니, 그럴 수가! 이제야 최상급 패닉룸을 써먹을 수가 있겠, 아니아니! 이 나쁜 해적놈들을 당장 섬멸해야겠습니다! 이왕 이리된 거 줌왈트 끌고 바로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