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27화
242장 용왕의 진노 (2)
중소형 잠수함의 근무 상황은 열악하다.
한 번 항해를 나가면 비좁은 선체에서 몇 주 이상 갇히다시피 지내야 한다.
침상 자체도 상하좌우로 비좁기 때문에, 관짝이라는 별칭까지 있을 정도다.
'차라리 관이 잠수함 침상보다는 넓을 거다. 이런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잘됐습니다. 승조원들 인권 침해 하는 이런 열악한 시설 따위는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게 나아요. 이참에 18척 모두 해군 박물관으로 보냅시다."
"그게, 원수님, 저 중 1,800톤급 9적은 전력화가 된 지 이제 몇 년밖에 안 됐습니다. 벌써 퇴역을 시키기에는 조금……."
"승조원은 귀중한 인력이죠? 그렇죠?"
"그, 그렇습니다."
총장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수함사령부 사령관(2스타)은 뒤편에서 흐뭇하게 끄덕이고 있었다.
'원수님이 다시 우리 잠수함사령부를 보셨어. 마침내 우리를 보셨어!'
오하이오급 핵잠 2척을 던져 주신 후, 오랜만에 다시 주신 용왕님의 눈길이다.
이 은총이 부디 쉬이 걷혀지지 않기를.
"일당 몇만 원 더 준다고 해도 근무 지원자 모집하기 힘들죠? 다들 기왕이면 수상함을 타려고 할 테니까요. 안 그래요?"
"맞습니다."
"그러니 작전사령부에서는 한번 잠수함에 온 사람은 절대로 안 놔주고 전역시킬 때까지 붙들어두고 있으려 하고요."
"……."
"그렇다고 잠수함 출신이라고 나중에 뭐 보직에 더 우대를 해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전단장, 함대장 같은 것도 수상함 출신들이 서로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더 유리하고."
잠수함 사령관은 왈칵 눈물이 날 뻔했다.
어쩜 저렇게 우리 잠수함 부사관, 장교들의 처지를 잘 아실까.
"그렇게 힘들게 봉사하는 인재들인데, 겨우 돈 몇 푼이 아까워서 저런 쬐끄만 잠수정에 낑겨서 바다를 지키게 하겠다는 겁니까?"
'돈 몇 푼이 아닙니다. 척당 수천억 원입니다.'
해군 총장은 차마 그 말이 입 밖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저 소형 핵융합로, 미국에 수출하면 개당 1조 원은 받아야 해요. 내가 그냥 공짜로 주는 거니까 그 돈아껴서 우리 잠수함이나 새로 만듭시다."
다시 말하지만, 개당 가격은 수백만 원 수준이고 그마저도 외장 케이스가 원가 90% 이상을 차지한다.
'수출하게 되면 배 한 척당 1조 원은 받아먹을 수 있으니까.'
"그, 원수님. 우리 해군은 주로 영해에서 작전을 펼치기 때문에 선체가 클 필요는 없습니다. 너무 크면 수심이 얕은 서해에서는 오히려……."
"잠수함이 서해 그 비좁은 곳에 들어갈 생각을 왜 합니까? 거기는 어차피 수상함들도 안 들어갈 텐데."
"……."
"일본 수상함들이 거길 들어가겠어요? 죽을 게 뻔한데? 아니면 중국수상함이 들어가겠어요? 서해는 미사일과 전투기로 지켜야지, 그 얕은 데에 배를 집어넣을 생각을 하면 안되죠."
나름 그럴듯한 이유를 꺼냈다고 생각했는데 한 방에 격침.
"정 안 되면 저 잠수함들은 그냥 외국에 팔아치웁시다. 거기에 돈 보태서 새끈하게 덩치 큰 놈들로 정예화해서 만들죠."
***
참모총장은 결국 하수영의 논리에 졌다.
물론 이 자리에서 결정을 내릴 순없다.
전력증강 사업이라는 것은 최종적으로 행정부의 승인이 있어야 되니까.
"총장님만 결심하시면 국방부는 제가 책임지고 설득하겠습니다."
원수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데, 총장은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저희 해군은 늘 그랬듯이 원수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잘 결정하신 겁니다."
불안감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참모총장은 결국 잘될 거라고 믿었다.
해군 잠수함 전력이 몇 단계는 대폭 업그레이드되는 일 아닌가.
심지어 잠수함 건조 사업을 하수영이 맡아서 진행하는 게 아니니, 특혜 논란에서도 자유롭다.
"그럼 나머지 18척은 아무것도 들어내지 말고, 그냥 소형 핵융합로만 추가로 장착하는 걸로 합시다. 나중에 외국에 팔려면 온전히 유지하는 게 낫잖아요."
"네, 그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핵융합로 무게가 그리 많이 나가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막말로 연료탱크를 풀로 채우는 게 돈이 훨씬 더 많이 든다.
"도산안창호급은 개조 작업을 꽤 오래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전후좌우 밸런스를 맞추는 것도 일이다 보니……."
"후방 2번 축전지도 빼야 합니다. 그래야 수중에서 균형이 맞습니다."
"연료탱크를 완전히 비우게 되니 평형수 조절 문제도 다시 잡아야 하고……."
"신형 핵융합로 잠수함은 아예 설계부터 다시 잡아야 할 거 같습니다. 지금 도산안창호급은 일단 있는 대로 균형을 맞춰서 쓰고요."
무거운 부품들이 빠졌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만큼 균형성에 변화가 생긴 것이기에, 거기에 맞춰서 역으로 채워줘야 한다.
"가장 무거운 축전지 2개가 모두 빠졌으니, 그만큼 뭔가를 채워야 합니다. 그래야 안정성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도산안창호급을 설계한 백두중공업이 다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하수영과 여러모로 인연이 깊은 조선소.
지금 이 순간에도 하수영이 발주한 초대형 화물선 남은 수십 척을 만들고 있는 곳이다.
백두중공업 사장 백진택의 오른팔인 한두철 상무가 군수참모부장을 찾아왔다.
"참모부장님, 축전지를 빼면 아무 래도 수심 한도에서 손해가 큽니다. 부족한 편의시설을 보충하고, 모자란 무게는 무게추로 맞추는 게 최선일 듯합니다."
"축전지가 부피와 무게 모두 상당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신형 도산안창호 급에는 이 점을 꼭 설계에 반영해 주셔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원수님이 마음먹으셨으니 이 사업은 반드시 진행이 될 겁니다. 설계는 지금부터 미리미리 서둘러 주십시오."
"네,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하수영이라는 이름 자체가 가지는 신용은 절대적이다.
그럴 일은 없지만, 이 사업이 중간에 엎어져서 손해만 봐도 괜찮을 정도로, 백두중공업은 지금까지 하수영 덕분에 많은 이익을 봤다.
당장 한두철 상무만 해도 하수영덕분에 보너스 50억 원을 받을 예정이다.
화물선 100척 중 남은 40척을 모두 기간 내에 납품하게 될 경우, 백진택이 받는 2조 원의 포상금 중에서 받게 된다.
그렇게 축전지 제거 등 개조작업으로 인한 균형 변화 논의를 마무리 짓기 직전, 하수영이 군수참모부를 직접 찾아왔다.
그는 캠핑카가 아닌, 트레일러를 직접 몰고 왔다.
"군수참모부장님, 와보시죠. 제가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원수님?"
"로한 박사가 참모부장님의 근심을 싹 씻어줄 선물 하나를 추가로 만들었습니다."
트레일러에 실린 5개의 물체를 본 군수참모장은 가볍게 신음했다.
"어뢰입니까?"
"네. 로한 박사가 나운중공업에서 만들었습니다."
영화 찍고 여배우와 스캔들 뿌리기에 바쁜 그 양반이 대체 설계는 언제 한 거지?
군수참모부장은 로한이 정말 사람이 맞는가 싶었다.
'그런데 나운중공업은 레일건 개발업체 아닌가? 근데 거기서 어뢰를 만들었다고?'
정확히는 로한이 혼자서 다 만들었고 나운중공업은 설비만 빌려줬을 뿐이다.
하지만 무기개발사업 면허 때문에 레일건은 나운중공업의 이름표도 달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수영농장의 자회사로 편입된 상태였다.
왜 농장이 무기제조사를 갖고 있는지는 블랙코미디에 나올 법한 소재이지만…….
"그런데 나운중공업은 어뢰 관련설비가 전혀 없을 텐데요."
"설비야 다른 회사 것을 이것저것 조금 빌렸죠. 공장시설도 빌려서 썼고요."
"겉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어뢰로 보입니다."
어뢰는 모두 3기였다.
이걸 축전지 대신 놓아서 무게 균형을 맞추라고?
어뢰는 당연히 잠수함 전방에 놔야 발사가 용이한데, 이러면 전투 상황에서 효용이 너무 떨어지지 않을까??
'아니, 애초에 어뢰발사관까지 옮기는 것 자체가 일일 텐데.'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하수영이 덧붙였다.
"조립 모듈식이라서 평소에는 해체해 뒀다가 유사시 어뢰발사관까지 옮긴 다음 조립해서 발사하면 될 겁니다."
"아, 축전지 대신 들어가는 점을 고려해서 모듈식으로 만든 겁니까?"
"네, 전후방 2곳에 나눠서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옮겨서 조립해서 사용하면 됩니다. 이래 봬도 전체 무게는 꽤나 무겁거든요."
'그래 봐야 어뢰 한 발 더 추가하는 건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어뢰가 대단해 봐야…….'
"그래 봐야 어뢰 한 발 더 추가하는 거라서 신통치 않으시겠지만, 이건 정말 궁극의 어뢰입니다."
군수참모장은 생각을 읽힌 것 같은 느낌에 속이 뜨끔했다.
"그러니까 정말, 꼭 필요할 때만 써야 합니다. 적의 항공모함이나 주력 전투함을 잡을 때. 사실 이거 대항모용 어뢰거든요."
"대항모용 어뢰라고요?"
그 말에 군수참모부장은 귀가 솔깃했다.
제대로 된 항모전력을 운용하는 곳이라고 해봐야 미국 정도지만, 항모전용 어뢰라고 하니 가슴이 간지러 워진다.
"시험발사도 해야 하니까 일부러 3발을 만들었어요. 아, 4발째부터는 이거 3발 값까지 쳐서 돈 받고 팔거니까 그렇게 아시고요."
"물론이지요. 성능만 확실하다면 이거 3기도 해군에서 정식으로 값을 치르겠습니다."
해군은 받은 게 많은 입장.
하지만 계산은 확실히 치러야 한다.
무상공여는 무상공여, 유상제공은 유상제공.
"일단 여기 소형 핵융합로가 들어갔습니다. 이 모듈 보이시죠? 이게 핵융합로입니다."
"어뢰에 핵융합로라고요!"
군수참모부장은 기겁했다.
아니, 그거 돈 받고 팔려면 1조 원은 받을 거라고 하지 않았어?
그 비싼 걸 소모성 무기인 어뢰에 달았다고?
'그래서 4발째 주문부터는 제값을 받을 거라고 못을 박으신 거구나…….'
당장 이 어뢰 3발만 해도 해군은 제값을 치를 능력이 안 될 테니까.
"대체 어뢰에 핵융합로를 다신 이유가 뭡니까? 무한 사정거리를 위해 서인가요?"
확실히 지구 반대편까지 헤엄쳐서 적함을 침몰시키기에는 좋겠다.
유도능력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이놈이 전기를 많이 먹는 어뢰라서 그래요. 어쩔 수 없이 핵융합로를 달아야 했죠."
"전기를 많이 먹다니요?"
어뢰가 전기를 먹을 일이 뭐 있다고?
군수참모부장은 도저히 이해가 안갔다.
그러다가 퍼뜩 든 생각에, 그의 안색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나운중공업에서 만들었다고 했지?'
원래 레일건을 연구하던 회사고, 로한이 손을 대면서 눈부시게 부상한 무기회사.
"레일건 탄자유탄 어뢰라고 부르면 됩니다."
무시무시한 이름.
명칭부터 이미 뚜렷하게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군수참모부장은 충격에 잠시 굳어 있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레일건 탄자를 발사하는 어뢰입니까?"
"네, 대량의 레일건 탄자를 한꺼번에 발사합니다. 전방으로 부채꼴 탄착 범위를 형성하기 때문에, 발사한 잠수함은 아무 피해가 없어요."
"……."
"일제 발사된 탄자들이 어뢰 전방의 반경 10km 내를 덮쳐 버리죠. 물론 거리가 멀수록 피탄 회피 가능성이 커지겠지만, 이건 어뢰잖아요?"
함체에 부딪치거나, 혹은 지근거리까지 충돌해서 터지는 무기, 어뢰.
"항모는 벌집이 돼서 30분 안으로 침몰할 겁니다. 수천 개 이상의 구멍이 숭숭 뚫릴 텐데, 무슨 재주로 침수를 막겠어요?"
그 말을 듣고 군수참모부장은 왜 하수영이 궁극의 어뢰라고 말했는지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