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23화
241장 포도와 설탕 (1)
신임 총장은 얼마 마시지도 않은 술이 확 깨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네, 공군이 언제까지 대기권 내에서 놀 거 같아요? 결국 우주군 체제로 가야 합니다."
"그런…… 우주군이라니, 정말 그런 시대가 오겠습니까?"
정식으로 우주군 체제를 운용하는 나라는 미국뿐인데?
"제 생각에는 빠르면 10년, 늦어도 20년 안에는 공군이 우주군으로 전직을 하게 될 겁니다. 그때 제가 좀 도와줄 수 있죠."
"저도 공군 출신이지만,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F35 같은 건 공군한테 그다지 필요가 없는 겁니다. 어차피 대기권 내 전투기니까요. 우주군은 공기가 필요 없는 우주전투기를 몰아야죠."
신임 총장은 잠시 상상을 해보았다.
대기권 밖에서 100% 로켓으로 움직이는 전투기를 탄 공군, 아니, 우주군의 활약이라니.
정말 그런 시대가, 빠르면 10년 안에 펼쳐질 수 있을까?
'아무리 원수님이라고 해도 그건…… 아니지, 원수님이 겨우 3년도 안 되는 사이에 이룬 게 더 말이 안 되지 않나?'
하수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태연히 질문을 이었다.
"집을 고를 때, 뷰 중에서 어떤 뷰를 가장 선호하시나요?"
"뷰? 풍경 말입니까? 저는 그런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관사 생활을 하는지라 뷰에 대한 관심도가 지극히 낮았다.
"본인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집을 고를 때 어떤 뷰를 선호할 거 같습니까?"
어느새 주변의 장성과 장교들도 하수영과 총장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파크뷰? 한강뷰? 오션뷰? 마운틴뷰? 북극뷰? 남극뷰? 어느 뷰가 가장 비쌀 거 같습니까?"
"서울에서는 아무래도 한강뷰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뉴욕에서도 허드슨강 뷰가 꽤 선호되는 것처럼요. 아, 저도 허드슨강의 기적 되게 재밌게 봤었는데."
중간중간 잠시 삼천포로 빠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사람을 정신없게 만드는 하수영의 화법은 이제 다들 익숙해진 상태였다.
"어스뷰 앞에서는 그 모든 게 무용지물이죠."
"……."
다들 잠시 정신이 혼란해졌다.
어스뷰?
Earth View를 말하는 건가?
"한강, 파크, 들판, 마운틴, 오션, 남극, 북극, 그 모든 뷰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어스뷰의 시대, 언제가 반드시 옵니다."
"……."
"궤도권에 초대형 거주 스테이션이 생기면 어스뷰에 대한 인기가 하늘을 치솟을 겁니다. 창문 커튼을 열면 끝없는 지구의 표면이 광활한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거예요. 얼마나 많은 부자들이 몰려들지 상상이 가십니까?"
듣고 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 초대형 거주 스테이션이 과연 언제 생길지는 의문이지만…….
"우주도시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객실 수천 개 정도의 우주 호텔만 생겨도, 어스뷰에 대한 수요는 치솟습니다. 그리고 그런 곳에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역시 우주 농장을 만들어서 띄워야죠."
우주 농장이라니.
늙은 해병들은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며, 하마터면 잔을 떨어뜨릴 뻔하기도 했다.
"우주 농장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금의 공군이 가진 힘만으로는 안 됩니다. 우주에 전투력을 투사할 수 있는 체제가 되어야 해요. 결국, 공군은 우주군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원수님은 마치 미래를 내다보고 오신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임진왜란 때만 해도 대륙을 불태우는 폭탄이 초음속 미사일로 지구를 날아다닐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잖아요. 그렇게 말하면 다들 안 믿었습니다."
"……."
"그런 미래, 반드시 옵니다."
아무튼 해병군 창설을 축하하는, 하수영이 베풀어준 자그마한 파티는 즐거웠다.
로봇들이 모두 서빙을 한 덕분에 외부에는 일절 소식이 흘러나가지 않았고, 해병들도 끝없이 나오는 만찬에 만족했다.
"배 없는 상륙부대는 존재 의의가 없죠. 앞으로 해병군은 상륙함의 운용까지 독자적으로 갖춰나가야 합니다. 더 이상 해군과 한집 두 형제는 아니지만, 이웃집 사이 관계는 유지 될 겁니다."
그리고 해병들은 하수영이 술잔과 마이크를 놓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좋은 점이라면, 누가 듣든 말든 자기 할 말만 떠드는 타입이었다.
일부 소수 그룹이 자기 말을 듣지 않고 자기들끼리 놀고 있어도 눈치 전혀 안 준다. 신경도 쓰지 않는다.
'꼭 무슨 공연장 스피커 같은데.'
라는 생각을 잠시 떠올린 어느 중년 해병은 자신의 불신을 자책했다.
"참! 제가 조만간 필리핀 쪽에 양식장을 새로 지을 거거든요."
"필리핀 양식장!"
"네, 따뜻한 그쪽 바다에서 잘 자라는 물고기들 때문이죠. 통영 양식 장에서 못 키울 것도 없는데, 온도까지 갖춰지면 더 높은 수확량을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원양 강습상륙까지 작계에 반영을 해야겠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리고 필리핀만이 아닙니다. 전 세계 곳곳에 멀티농장, 멀티 양식장을 늘릴 겁니다."
"그것들을 다 지키기 위해서 앞으로 해병군의 정예화가 정말 중요하겠습니다, 원수님."
"산지직송이 중요하듯이, 소비지 직산 역시 중요합니다. 특히 식재료가 그렇습니다."
아무튼 축하 파티는 즐거웠다.
시커먼 남자들만 잔뜩 모였음에도.
***
해병군 신임 총장은 공군에 슬쩍 우주군 체제전환 이야기를 흘렸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언젠가는 이 뤄질 것 같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원수님은 이제 겨우 22살, 창창한 인생을 생각하면 우주 농장이 언젠가는 불가능하지도 않을 테지.'
그러나 공군에서는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믿지 않았다.
그보다는 앞으로 해군과 해병군에 얼마나 더 많은 전투기가 배치될 예정인지, 혹시 공군에는 전투기를 나눠줄 계획이 없는지를 더 궁금해했다.
"우주 농장이라니요. 설령 그런 게 정말 나오더라도 제가 전역하고 죽은 다음일 겁니다."
"그보다 정말 앞으로 해군과 떨어져서 해병대가 독자적으로 상륙의 모든 것을 담당할 수 있게 바꾸는 겁니까? 해군은 지원만 하고요?"
"해병군도 하수영 원수님이 전부 사비로 월 100만 원씩 추가 급료지원을 해줍니까? 그런 이야기는 아직 없습니까?"
"상륙함을 전부 해병군에 넘기는 대신, 해군에는 아예 완전한 사출식 항공모함을 사주기로 했다는 말이 정말입니까?"
해병군 총장은 깊이 탄식했다.
역시 자신의 목소리로는 신뢰를 주기 어려운, 너무 큰 발상이었을까?
하수영이 직접 그들과 어울리며 말을 했다면 결과는 달랐을까?
***
한국에 들어온 코즈펠트는 밝은 얼굴로 하수영을 찾았다.
"F35B를 전부 해병대에 줘서 독립시키실 줄은 몰랐습니다."
"다 큰 자식은 빨리빨리 내보내야 죠. 언제까지 끼고 살 수는 없잖아요."
"미군조차도 해군과 해병대를 완전히 독립시킬 계획은 아직 없는데 말입니다."
"이건 기호도의 문제죠. 한집 두형제로 굴리든, 이웃집 형제로 굴리는 말입니다."
"그럼 F35C 300기는 그대로 유지되는 겁니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코즈펠트는 속으로 쓴웃음을 흘렸다.
회사 경영진과 주주들이 좋아하겠다.
F35B 즉시 인도로 인해, 선주문한 300기에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을 거라 각오했지만, 그럴 염려가 사라졌으니.
"부사장 승진하셨다면서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회장님 덕분입니다."
"그래도 본인이 센스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승진한 거죠. 결국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주변이 받쳐줘도 안 되거든요. 아참, 프랑스 농장은 어떤가요?"
코즈펠트는 프리덤이 정말 하수영한테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프리덤한테 아무것도 못 들으셨군요."
"일부러 안 묻습니다. 이런 건 본인한테 직접 들어야 재미도 있고, 같이 시간도 보낼 수 있고, 그런 거죠."
"너무 좋습니다. 당장 록히드마틴을 때려치우고 프랑스에 정착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웃들도 다들 친절하고요."
"저런, 주말농장이 제대로 힐링이 된다니 다행입니다. 그래도 본업에 충실하셔야 하는 건 아시죠?"
"당연하지요."
"그럼 이참에 포도도 키워 봅시다."
"포도를요?"
갑자기 포도 이야기가 나오자 코즈펠트는 조금 의아했다.
원래 자신은 포도 농사를 지을 생각은 없었다.
황비버섯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뜬금없이 웬 포도?
"자, 여기 우리 특제비료를 먹고 자란 포도에서 추출한 설탕입니다."
"포도에서 설탕을 추출하면 너무 가격이 비싸지 않겠습니까?"
이론적으로 설탕은 모든 식물에서 추출할 수 있겠지만, 비싼 포도에서 추출하면 가격 경쟁력이 너무 없지 않나?
'괜히 사탕무, 사탕수수에서 추출하는 게 아닐 텐데……. 무슨 이유에서?'
"자, 이 특제비료 포도 설탕이라는 게 말이죠. 무슨 효능이 있냐면, 혀에서 달기는 엄청 단데, 장내 흡수가 잘 안 됩니다."
하수영은 이번에도 '전혀'라는 말대신에 '잘'이라는 말을 썼다.
코즈펠트는 '그럼 문제가 있는 설탕 아닌가?'라고 생각을 하다가, 순간 벼락이 정수리에 내리꽂는 충격을 맛봤다.
그의 표정 변화에 하수영은 사악한 웃음을 흘렸다.
"역시 이사님, 아니, 부사장님은 듣자마자 바로 알아차리시는군요."
"이건, 이건 다이어트계의 혁명이 되겠군요! 아니, 혁명이 아니라 파괴자! 정복자가 될 아이템입니다!"
"대변 배설물이 좀 많아진다는 단점이 있겠지만, 다이어트 효과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죠."
"수영콜라는 전 세계의 탄산음료 중독자들을 구원해 줄 겁니다!"
"지금 콜라에 들어가는 설탕을 남미 농장에서 들여오고 있는데, 프랑스 농장으로 공급처를 바꾸면 좋겠죠."
"남미는 아무래도 불안하겠습니다."
"코카잎이나 다른 것들은 어쩔 수 없지만, 남미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돌릴 수 있는 것들은 돌리려고요."
미국, 유럽 등 잘 사는 나라들에 사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이 뭐겠는가.
바로 다이어트다.
현대인들은 영양소의 지나친 과잉으로 이상대사증후군(성인병)에 시달리는 게 일상이니까.
"원래는 나무를 심고 2, 3년은 되어야 포도가 열리지만, 이제부터 묘목을 심고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죠. 나무는 미리 준비해 뒀으니 공수해서 그대로 심으면 됩니다. 내년부터 수확을 할 수 있겠군요."
"앗, 나무가 준비되었다면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를 하셨군요."
"그렇다고 해둡시다."
엘릭서 비료로 성장 속도를 높여서 며칠 만에 키워낸 성목이라는 진실은 그렇게 묻혔다.
'처음 농업을 시작하셨을 때부터 이미 다양하게 준비를 해두셨군.'
그렇게 코즈펠트의 머릿속에 긍정적인 효과만 남게 되었다.
"수영농장에서는 포도 농사가 어려운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프랑스산 포도에서 추출한 설탕'이라고 하는 게 글로벌 시장에는 더 잘 먹히지 않을까요?"
"과연,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누가 값비싼 포도로 겨우 설탕이나 만들 거라고 생각하겠습니까?"
"다이어트 설탕이니까 아주 비싼물건이 되겠죠. 나무는 총 10만 그루를 준비해 뒀으니, 싣고 가시면 됩니다."
"항공기로는 어림도 없는 물량이군요."
항공기를 최대한 긁어모아도 여러번 반복을 해야 하고, 모두 실어 나르려면 시간이 걸린다.
반면 배는 오래 걸리지만, 초대형 화물선 한 척만으로 모두 실어 나를 수 있다.
수송 완료까지 걸리는 시간은 결국 비슷비슷한 셈.
"그냥 배로 운송하겠습니다."
"해적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