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1015화 (1,015/1,270)

프랜차이즈 갓 1015화

239장 프랑스 멀티농장 (4)

"아, 메탄 포집 플래폼이 필요하셨습니까? 그럼 진작 그렇게 말씀을 하시지."

코즈펠트는 전보다 한결 더 느긋해진 채로 차관을 상대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하수영회장님을 뵙게 되면 한 번 언질을 드리겠습니다. 프랑스에서 메탄 포집 플래폼을 원한다고 말입니다."

"정말 그래주시겠습니까?"

"그럼요. 말 한 번 전달해드리는 게 뭐가 어렵다고 사양하겠습니까."

차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뭐라고 했지?

말 한 번 전달해 준다고?

'진지하게 나서서 중재를 해줄 마음은 전혀 없다는 건가?'

그럼 이쪽이 곤란해지는데.

혹시 농장에 관해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둘러봤는데, 둘 다 마음에 들더군요. 노년에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두 곳에 모두 별장을 짓고 왔다 갔다 하면서 포도와 버섯 농사를 즐겨보렵니다."

"예? 그게 무슨…… 이미 낭트 지역에 사놓으신 농지는 어떻게 하시고요?"

"프랑스에서 이렇게 로봇 농사가 어려운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냥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정착하기로 했습니다."

차관은 머리에서 핏기가 빠지는 걸 느꼈다.

지금까지 대리인만 보내놓고 나 몰라라 했던 게 진짜 압박이 아니라, 깔끔하게 포기했던 것이라고?

'쉬운 포기에서 나오는 여유였단 말인가…….'

눈앞이 팽글팽글 도는 듯한 어지러움을 겨우 견디며, 차관은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 이미 농지까지 구매하신 겁니까?"

"아직입니다. 마르딘 이 친구에게 좋은 농지를 봐놓으라 부탁을 했으니, 천천히 결정을 해주겠지요."

그 천천히가 얼마나 사람 속 터지게 하는지, 당신이 반드시 알아야 해!

그 친구는 절대로 대리인 같은 것을 시키면 안 되는 게으른 친구라고!

"그래서 프랑스에 다시 들리지 않으셨던 겁니까?"

"화물도 이미 빠진 상황에서 이유가 더는 없었죠. 그 친구 권유 때문에 차관님을 만나러 오긴 했지만, 겨우 그런 거라면 통화를 해도 괜찮았을 겁니다."

코즈펠트는 여유롭게 외부를 둘러보면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기왕 파리에 왔으니 명품 회사와 미팅이나 한 번 해봐야겠군요."

명품 회사와 웬 미팅?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의문이 들었다.

"아, 한국에 판매하는 전투기 건으로 유럽 명품 브랜드와 콜라보를 해볼까 해서요. 실물기 조종석 시트를 명품 가죽으로 마감할 수는 없지만, 장식용이라면 괜찮으니까요."

이 사람은 정말, 더 이상 프랑스농장에 관심이 없다. 확실하다.

그 점을 깨달은 순간, 차관은 안 그래도 얌전해져 있던 태도에서 완전한 무장해제가 되었다.

'가만? 조금 전에 뭐라고 했지?'

순간 번개 같은 생각이 차관의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그런데 아까 화물도 이미 빠진 상황?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농사 로봇 컨테이너들 말입니다. 이미 한국으로 다 빠져나간 것으로 아는데요."

"잠식만요.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애초에 마르딘은 화물을 빨리 빼달라는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한 적도 없었다.

공문이나 정식 민원서 한 장 내는 일 없이, '언제 빠지죠?'라고 구두로 물어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세관도 더욱 느긋했던 것이고,차관은 급히 청사에 연락을 취해서 자세한 내역을 확인했다.

그리고 득의만만해진 미소를 지으며 나섰다.

"코즈펠트 이사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화물은 아직 공항에 있습니다."

"그래요? 이상하군요."

"아무래도 마르딘 그 친구가 거짓말을 한 거 같은데요. 뭐, 그 친구가 일 처리하는 걸 보고 있으면 충분히 그럴 법도 합니다."

"거짓말을 할 친구는 아닌데……. 아마 다 처리된 줄 알고 있었는데 프랑스 세관이 뒤통수를 친 모양이군요."

"예?"

차관은 기겁을 할 뻔했다.

아니, 왜 이야기가 그렇게 되냐고!

일 처리도 제대로 못 한 대리인 잘못이 아니라, 일 잘한 대리인을 뒤통수 친 프랑스 세관 탓이라고?

"아니면 프랑스 특유의 게으른 일문화 때문에 세관에서 누락을 시킨 건가? 차관님이 한 번 확인해 줄 수 있겠습니까?"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아, 급한 건 아닙니다. 다만 비싸고 귀중한 화물인데 괜히 세관에 오래 있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세관도 난처할 겁니다. 그 컨테이너들, 다 합치면 부품값만 수억 달러는 되거든요."

수억 달러라는 말에 차관도 혈관이 뒤집어질 뻔했다.

아니, 무슨 로봇이 그렇게 비싸??

그런 비싼 로봇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게 말이 되나? 뭐 남는 거라도 있나?

한편 코즈펠트는 속으로 비웃는 한편, 답답함도 느끼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마지막에 다시 또 자존심을 세울 건가? 하여튼 프랑스 놈들은 협상이 뭔지 전혀 모르는군.'

무려 메탄 포집 플래폼 도입이다.

대통령이 발 벗고 나서서 달려들어도 부족할 판에, 환경부 차관 한 명을 보내서 간이나 보고 있다니.

'자존심을 세우는 것은 좋지만, 그 자존심이 어디 밥을 먹여주던가?'

이 정도로 차려줬으면 이제 자존심내려놓고 스푼을 드는 게 낫지 않은가?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아예 굶게 될 판인데.

'잘못했다, 봐달라, 앞으로 잘하겠다. 이 세 마디 하는 걸 그렇게 어려워해서야.'

쩔쩔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차관을 보니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했다.

'그래, 늘 침공하고 약탈하고 불태우고 그런 식으로 부와 번영을 쌓아 온 야만스러운 유럽인의 후예들이 협상이 뭔지나 알겠어?'

칼과 총 들고 윽박지르기만 하면 식민지가 하나둘씩 생겨나던 기억에 젖은 놈들이다.

밀고 당기고 하는 과정에 자기객관화를 깨달아 가는 정신적 성장이 뭔지나 알까??

'그냥 낭트 농장은 나중에 사람 써서 키워야겠다. 스페인이 요즘 경제난에 많이 허덕이니까 괜찮겠어.'

코즈펠트는 파리 인근 농장의 꿈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즐거웠습니다."

그가 미련 없이 자리를 떨치고 일어서서 차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래도 차관 자리까지 올라간 연륜이 온힘을 다해 알려주고 있었다.

지금 잡으라고! 못 잡으면 끝이라고!

"컨테이너 즉시 풀어드리고, 지금까지 지연된 것에 대한 배상도 하겠습니다! 낭트 농장을 가꾸시는 데 전혀 무리가 없도록 내각 차원에서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그제야 코즈펠트는 멈칫 했다.

"그래요? 그러실 필요. 없는데……."

"아닙니다! 심사가 너무 늦은 점을 사과드리겠습니다! 이제 모든 심사가 끝났으니, 아무 문제 없이 프랑스에 정착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정착이 아니라 별장 농장이나 하나 짓자는 거지만, 흠. 어쨌든 잘됐군요."

'참나, 여기까지 와서야…… 하여튼 자존심 빼면 시체인 나라답다니까.'

프랑스가 메탄 포집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는 코즈펠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행동거지를 보면, '아닌 거 같은데?'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나 같았으면 진작 대통령, 최소총리가 전용기 타고 청담동으로 벌써 날아갔다.'

자존심 세우느라고 여기저기 우회해서 말 넣기 바쁘니, 뭐가 진행되는 게 있나.

'가격만 맞춰지면 도입을 해줘도 괜찮을 거 같았는데, 아무래도 아니야.'

농장 운영을 위해서 메탄 포집 플래폼 도입을 중재하는 것은 코즈펠트의 권한, 원래 코즈펠트는 포집 플래폼 건설을 담당하는 프라임건설에 일감을 넉넉하게 물어줄 생각이었다.

미국에서 취하는 폭리가 '치명적 재정 위기'로 보일 정도로, 프랑스에서 마진의 늪에 허우적거리게 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 자존심 덩어리들은 조금 더 굶겨야 해. 그래야 길이 잘 들어서 얌전해지지.'

그 뒤에 프라임건설이 삽을 들고 침공, 아니, 진출을 해도 늦지 않으리라.

오히려 프랑스의 자존심이 겸손으로 숙성된 만큼 더 높은 이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

지금까지 느릿느릿하게 진행되던 모든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모든게 초고속으로 진행되었다.

컨테이너들은 즉시 세관을 통과했고, 낭트 농장까지 프랑스 경찰들이 강도를 대비해서 에스코트까지 해주었다.

농장의 적당한 위치에 컨테이너들을 늘어놓자, 곧바로 로봇들이 일제가동을 시작했다.

로봇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태양광 패널을 꺼내서 볕이 잘 드는 곳에 설치한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위장 패널이다. 물론 패널 자체는 모두 진짜고.

이제 무선 전기로 동력과 통신을 해결하는 농사 로봇들은 외부의 전력 공급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주변에 포도 농장이 많군요.」

코즈펠트는 주변을 둘러보며 프리 덤과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나도 원래 와인 농장과 하우스를 말년에 운영하려고 여기에 농장을 샀지. 문제가 있는 거냐?"

「그렇지 않습니다. 작물을 키우기에 매우 좋은 기후입니다.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군요.」

"괜히 프랑스가 식량자급률 300%이상을 찍는 게 아니지."

「그래도 미국에 비하면 초라하죠. 그렇지 않습니까?」

"하하, 미국은 자본과 장비빨이 좀 쎈 거고. 그래도 프랑스가 축복받은 기후 환경 가진 것은 인정해 줘야지."

농사 로봇들은 곧바로 밭을 갈기 시작했다.

컨테이너가 아니라 따로 실려 온 로봇 트랙터들이 밭을 갈기 시작했다.

기존 트랙터에 프리덤의 전자통신장비를 이식해서 자율운행이 가능한 차량이다.

정비만을 전담하는 로봇이 있기에, 사람이 없어도 아무 문제는 없다.

트랙터 같은 대형장비는 아직 엔진 룸을 교체하지 않아 기름으로 돌아간다는 게 조금 아쉽지만, 밭이 갈려 나가자마자 곧바로 농사로봇들이 그 뒤를 따르며 포자를 살포하고, 엘릭서 비료를 그 위에 뿌려댔다.

「이틀 정도면 채집이 가능하도록 성장 속도를 조절하면 되겠군.」

황비버섯의 생장 기간은 보통 사나흘 정도.

수영농장에서는 심는 동시에 채집이 가능할 정도로 엘릭서 비료의 농도를 조절하지만, 보는 눈이 많은 여기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이틀 정도면 좀 빠르긴 해도 납득은 가는 생장 속도인 셈이다.

사람이라고는 전혀 없이 로봇들이 움직이는 농장의 모습이 신기했는지, 주변 농장 주인들이 하나둘씩 몰려왔다.

"류카 농장이 팔렸다더니, 이제야 새 주인이 밭갈이를 시작한 건가?"

"오, 혹시 당신이 여기 농장이 새주인이오? 반갑소. 난 바로 북쪽에서 맞대고 있는 포도 농장 주인이 오."

"아니, 근데 저 로봇들은 대체 뭐요? 엄청 비싸 보이는데? 혹시 우리도 저런 거 어디 가서 살 수 있나?"

"요즘 농장 인부들이 도통 게을러빠져서 효율이 잘 안 나. 흠, 저 로봇들은 쉬지 않고 부지런한 걸 보니, 농장에 도입해도 되겠는걸?"

"엄청 비쌀 거 같은데."

"근데 지금은 파종하기에는 한참 때가 늦지 않았소? 여름도 지났는데 이제 와서 뭘 심으려고?"

코즈펠트는 새 이웃들을 두 팔 벌려 유쾌하게 환영했다.

"반갑습니다. 제가 여기 농장주입니다."

정확히는 하수영이지만, 그렇게 자세하게 소개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농지는 자신의 것이지 않은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포도 농사는 아니고 황금비단우산버섯을 키워볼 작정입니다."

"황비버섯을? 여기는 죄다 포도 농장이라 황비버섯을 키우기에는 기후가 적당하지 않을 텐데요?"

"안 그래도 키우기 까다로운 그 놈을 포도 키우던 농지에서 키우겠다고요?"

"아이고, 이보쇼. 미국에서 온 사업가 나으리. 프랑스에서 농사는 그렇게 짓는 거 아니에요."

"황비버섯을 키우려면 무조건 하우스에서 소규모로 해야 합니다. 이런 개활지에 대충 살포한다고 얼마나 생착을 하겠어요? 아마 천 분의 일도 못 자라날 걸요?"

"아니, 황비버섯 키우려면 발효된 참나무잎을 밭 전체에 골고루 깔고 그 위에 뿌려야 하는데, 지금 그냥 맨땅에다가 포자 살포하는 겁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