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14화
239장 프랑스 멀티농장 (3)
수영농장 로봇들이 탄소발자국에서 자유롭냐면, 당연히 아니다.
하드웨어 부품들은 거의 대부분 해외에서 구매한 것들이다.
미국 기업들은 부품 생산 과정에서 석탄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썼고, 또 환경에 해로운 유독물질을 공정과정에서 사용했다.
'그 점을 걸고넘어지면 프랑스는 농사지을 때 삽 하나도 써선 안 되지. 삽에 들어가는 철도 결국 탄소발자국이 묻어 있을 텐데.'
"세상에 환경오염 기여율이 0%인 물건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도 이로봇들은 농기계 중 가장 적은 오염도만 기여했고,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는 전혀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을 겁니다."
"태양광 패널을 통해 충전하는 방식이라고 들었습니다. 패널과 배터리는 공정 중에서 오염 물질과 온실 가스를 대량으로 발생시키는, 대표적인 공산품입니다."
프랑스 차관은 여전히 느긋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지속적으로 패널과 배터리를 교체해야 할 텐데, 앞으로는 환경오염을 전혀 일으키지 않을 거라고요?"
"패널과 배터리 교체 주기는 매우 깁니다."
"그래서 제로인가요? 그건 아니잖습니까."
이쯤 되면 시비를 걸자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코즈펠트 역시 느긋하게 대응했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우리 로봇들이 농지 단위면적당 발생시키는 환경오염이 가장 낮은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원하는 것을 말씀하십시오."
"원하는 것이라. 마치 꼭 노리는 게 있어서 일부러 트집을 잡는다고 말씀하시는 거 같습니다."
"하하, 그렇게 느끼셨다면 착각입니다. 저는 빨리빨리 진행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프랑스인들처럼 느긋하게 업무를 진행할 성격이 못 돼서요."
"우리의 여유 있는 워크 문화는 오랜 혁명적 투쟁으로 쟁취한 겁니다."
"존중합니다. 제가 존중하는 것처럼 저의 시간도 존중해 주십시오."
"이런…… 거듭 말씀드리자면 저는 환경부 차관으로서 여러 가지 확인할 게 있을 뿐……."
"제가 농장 일이 급한 거라고 오해 하시나 본데, 이건 취미일 뿐입니다."
"취미라고요?"
차관은 그 말에는 처음으로 동공이 가늘게 떨리며 동요를 드러냈다.
코즈펠트는 시계를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은퇴 이후 취미 겸 부업으로 농장을 미리 세팅해 놓으려고 바쁜 와중에 휴가를 낸 겁니다. 전투기 생산과 판매 일정이 잔뜩 밀려 있어서 앞으로는 이런 시간을 내기 어렵거든요."
급한 것은 곧 복귀해야 할 본업이지, 지금 하는 농장 세팅이 아니다.
그런 메시지가 차관의 머릿속에 정확하게 박혔다.
"이번에 농장 세팅을 못 하면 내년휴가 때나 다시 진행을 할 수 있겠군요."
"그러니까 농장 로봇들의 환경오염에 관해서 진지하게 논의하자는 거 아닙니까?"
프랑스의 논리는 억지였지만, 코즈펠트는 거기에 동요하지 않았다.
무기 사업을 하다 보면 온갖 진상과 블랙 컨슈머들을 보게 된다.
자동소총을 들고 목숨을 협박하는 갱단을 맞닥뜨리는 것은 훈장 획득과도 같은 이벤트.
이런 억지에 당황할 정도로, 코즈펠트는 온실 속에서 사업해 오지 않았다.
가볍게 기선을 잡은 뒤, 코즈펠트는 차관과 몇 시간이고 느긋하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메탄 포집에 관련된 단어가 나올 법하면 그는 귀신같이 화제를 돌려서 차관을 애타게 만들었다.
'말도 안 되는 탄소발자국을 트집잡는 것은, 메탄 포집 물꼬를 내 입으로 트게 만들고 싶단 거지.'
차관이 원하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바로 코즈펠트의 다음 발언을 얻어내는 것.
'농업 중에 나오는 탄소발자국이 문제라고요? 그럼 메탄 포집으로 상쇄를 하면 되겠습니까?'
하지만 상대방이 원하는 걸 훤히 하는데, 그걸 쉽게 내줄 수는 없지.
코즈펠트는 있는 대로 애간장을 태우며 차관을 지치게 만들었다.
벌써 밤 6시.
한참 전에 퇴근을 했어야 하지만, 차관은 퇴근을 잊은 채 자신을 상대 하느라 기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오후 4시면 업무 땡이라고 콧노래를 부르며 귀가하는 나약한 프랑스관료 따위가, 치열한 로비와 살인적인 일정이 오고 가는 전투기 사업에서 단련된 나를 체력으로 이기겠다고?'
밤새도록, 아니, 며칠 내내 술을 곁들여가면서도 상대해 줄 수 있다.
결국 밤 7시도 되지 않아 차관은 자리를 파했다.
"아직 통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벌써 돌아가시는 겁니까?"
"나머지는 내일 다시 이야기를 하도록 하시지요.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전혀요. 아직도 쌩쌩합니다. 하루종일도 할 수 있습니다."
"……내일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십시다."
"음, 일단은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지친 몸을 겨우 일으켜 출근한 차관은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뭐? 코즈펠트 이사가 미국으로 돌아갔어?"
"네. 휴가가 갑자기 끝났다며 록히드 마틴 본사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당분간은 프랑스 농장에 신경 쓸 여유도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이런……."
어제 그렇게 '밤새도록' 고생한 건 대체 뭐란 말인가?
눈앞이 노래지는 듯했다.
하루, 이틀, 그리고 사흘……
코즈펠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세관에 맡겨놓은 로봇 컨테이너도 잊어버린 듯이 전혀 연락이 없었다.
화물을 돌려줘야 하는 입장에 처한 프랑스는 난감했다.
이게 아닌데, 자신들이 원한 것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수영농장의 프랑스 진출을 미끼로 코즈펠트를 회유해서 메탄 포집 안테나를 설치하는 게 진짜 목적이었단 말이다.
그렇게 2주라는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언제나 느긋하기만 했던 차관은 2주라는 시간이 이렇게나 지독하게 안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코즈펠트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는 2주라는 기간은, 마치 2년처럼 길고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에서 소식이 날아왔다.
***
"마르딘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코즈펠트가 보냈다는 대리인이었다.
차관은 이번에는 절대 실수하지 않겠다는 듯이 단단히 마음을 다잡고 그를 만났다.
내각의 여러 인물들로부터 이미 사전에 단단히 주의도 받고, 질책도 들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코즈펠트가 미국으로 떠나버린 것은 자신의 책임이 되었고, 앞으로 출셋길에 방해받지 않으려면 뒷수습이라도 잘해야만 했다.
'먼저 이 대리인이 어디까지 권한을 받고 왔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당연히 농사 로봇 이용 허가에 관한 연장 논의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대리인은 첫마디부터가 폭탄이었다.
"그럼 화물은 오늘 바로 빼도 되겠습니까?"
"예?"
차관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대리인의 표정은 전혀 변함이 없이 느긋했다.
"아, 저는 귀중한 화물이 통관이 안 돼서 묶여 있으니 일단 회수해 달라는 지시를 받고 와서 말입니다. 오늘 바로 항공편으로 빼겠습니다."
차관은 하마터면 '그건 안 됩니다!' 라고 외칠 뻔했다.
당사자가 사라지고 대신 대리인이 나타나니, 이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화물을 뺀다고요? 그거 말고 다른 지시를 들은 것은 없습니까?"
"네, 일단 반입이 막혔으니 화물을 원래 발송처인 한국으로 갖다 놓으라는 지시만 받았습니다."
"……."
"그게 제가 대리인으로서 맡은 업무입니다."
차관은 순간 코즈펠트의 압박 전술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자신은 사라지고 뜸을 들인 후 대리인을 보내 신속하게 협상을 종결짓는 방법.
고전적이지만 효과는 아주 좋다.
'정말 압박하는 것인가? 아니면 본업에 바빠서 취미는 잠시 접어두려는 것인가?'
어느 쪽인지 확정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간에 무슨 상관이랴.
자신은 협상 자체를 파토 낸 것 때문에 상부에서 눈총을 받고 있는 몸.
어떻게든 다시 협상을 열어야 했다.
그를 위해서는 이 대리인을 잘 구슬려야 하리라.
"제가 보기에는 코즈펠트 이사님은 황비버섯 농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요."
"전 그런 건 모릅니다. 지시받은 업무만 수행하면 그만입니다. 아, 혹시 오늘 당장 반출이 어려운 겁니까?"
"그건 제가 따로 알아봐드리겠습니다. 염려는 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럼 나중에 천천히 알려 주십시오. 기왕 프랑스에 온 김에, 저는 천천히 파리 구경이나 좀 하겠습니다. 사실 예전부터 등산로 정상에서 에펠탑을 구경해보고 싶었거든요."
대리인이 한껏 느긋한 웃음을 지으며 일어나자 차관은 울화통이 터질 뻔했다.
지금 느긋하게 파리에서 등산이나 하겠다고?
누구는 당장 승진이 막히게 생겼는데?
'파리에는 등산할 곳이 없다고, 이 양반아! 양키놈이 쿠엔틴 영화도 안봤냐!'
대리인은 한술 더 떠서 더 느긋하게 굴었다.
오후 2시만 되어도 '응? 프랑스에서는 슬슬 퇴근 준비할 시간 아닙니까? 이렇게 늦었는데 업무 이야기를 하자고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부러 반출 허가를 내지 않고 화물을 세관에 묶어두고 있는데도, 자기 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느긋했다.
한 번은 하도 답답해서 아래 직원을 시켜서 슬쩍 확인해 보니, 대답이 가관이었다.
"어차피 저는 시간당 페이를 받습니다.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돈도 많이 받고 좋은 거지요, 허허."
코즈펠트가 자기 입장을 밀어붙이기 위해서 압박 전술을 하는 것이냐고?
차관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건 심해도 너무 심하지 않은가.
***
[록히드 마틴, 전투기 생산라인 대폭 늘린다!]
[F35, 향후 20년간 록히드 마틴을 먹여 살리는 주요 효자가 될 듯!]
[한국에 F35C 300기를 납품하려면 지금 생산 라인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수영양식장, F35 추가 납품할 의향이 있음을 밝혀 록히드 마틴을 뒤집어놓다.]
[이미 300기를 사기로 했는데, 거기서 수량을 더 늘린다고?]
가끔 쏟아지는 군수산업 외신을 확인하면, 록히드 마틴은 눈코 뜰 새없이 바빴다.
객관적으로 코즈펠트가 주말농장에 신경 쓸 겨를은 없어 보인다.
차관은 너무 애가 타서 대리인을 닦달했지만, 대리인이 '그래서 오늘은 화물 뺄 수 있습니까?'라는 말만 하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환경부 장관은 얼굴을 볼 때마다 성화였다.
"그래서 메탄 포집 안테나는 도입을 할 수 있는 건가, 없는 건가? 대체 협상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협상 당사자가 미국으로 가버려서 지금으로써는 더 이상의 진전이 어렵습니다."
"수영그룹 본사에 몇 번이나 우회해서 말을 넣어도 계속 무시당한 거 알고 있지? 그만큼 중간책들이 발언력이 없어서네. 코즈펠트 이사는 전 투기 사업 담당자인 만큼 수영그룹에 영향력이 높아."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럼 서둘러 그놈을 만나서 포집안테나를 얻어내야 할 거 아닌가!"
시도는 다 해봤다.
대리인을 통해 슬쩍 포집 안테나이야기를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대리인은 특유의 능글맞은 표정으로 '화물은요?'라고만 대답할 뿐이다.
이자는 정말이지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돈만 챙기려고 프랑스에 온 것 같다.
"차관님! 코즈펠트 이사가 유럽에 왔습니다!"
"뭐? 좋아! 바로 만난다!"
주먹을 불끈 쥐던 차관은 불현듯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프랑스에 온 게 아니라, 유럽에 왔다고?"
"네, 어제 스페인에서 출발해서 지금 이탈리아에 있습니다."
"뭐? 그럼 우리 프랑스는 패싱했다는 거 아니야? 스페인, 이탈리아는 뭐 때문에 들른 건가?"
"포도 농장 알아보고 있다는데요?"
"안 돼! 마르딘에게 연락해라! 지금 당장 그를 만나야겠어!"
이번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마음이 급한 차관은 마르딘을 만나서 공적자금으로 합법적인 '급행료'까지 지불했다.
"원래는 안 되는 건데, 하도 간절하시니 제가 특별히 자리 잡아드리는 겁니다."
"고맙소."
"그리고 저는 화물이 계속 묶여 있는 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코즈펠트 이사님께 도움을 요청한 겁니다. 차관님께 차 한 잔 얻어 마신 것도 없는 겁니다."
"물론이오."
차관은 그렇게 한껏 얌전해진 채 코즈펠트 이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