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1010화
238장 다큐에 진심인 농부(2)
"그날의 생생한 감정이라…… 아, 약간의 연출이나 각색이 조금 들어 가도 상관없죠?"
"그럼요. 진실을 너무 왜곡하는 수준만 아니라면 괜찮습니다. 다큐라고 해서 무조건 팩트 그대로 재연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무슨 느낌인지 알겠습니다. 한번 해보죠."
그리고 드디어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첫 장면은 바로 하수영이 황비버섯을 열심히 재배하는 장면.
다들 구슬땀을 흘리며 흙을 갈구고, 포자를 뿌리고, 버섯을 채취하는 장면을 기대했다.
"……."
"……."
그런데 하수영은 의자에 털썩 앉아서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피디 등 촬영팀은 당황했지만, 카메라가 돌아가는 중에 물어볼 수는 없었다.
다른 출연자가 그랬다면 피디 역시 카메라를 끄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겠지만, 상대는 하수영이 아닌가.
'왜, 왜 저러시지?'
그때였다.
갑자기 뒤편에 있는 컨테이너 문이 열리고, 드론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공중곡예를 부리는 편대처럼 질서 있게 진형을 짠 드론들은, 곧바로 밭 지면에 가까이 붙어 천천히 비행하면서 포자를 뿌리기 시작했다.
첫 편대가 포자를 다 뿌리고 나자 다음 편대가 이번에는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비행 드론들이 나서자 100m X100m짜리 밭은 순식간에 포자 살포가 끝났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하수영이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끝났습니다. 이제 바로 수확하는 씬으로 넘어가면 되나요?"
"……."
"저쪽에 있는 밭에다가 똑같은 사이즈로 다 자란 황비버섯 준비해 놨습니다. 아무래도 화면이 튀면 안돼서 최대한 비슷하게 꾸며놨어요."
"회, 회장님. 지금 이게 다 끝난 겁니까?"
"네, 황비버섯 살포는 이걸로 다 끝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쭉 이렇게 작업을 하셨다고요?"
"송이버섯은 처음에는 손으로 했었지만, 황비버섯은 처음부터 드론으로 했죠. 나중에는 송이버섯도 드론을 했고요."
"……."
"제 과거 조사했으면 나올 텐데요? 마케미야 트러스트에 송이버섯 팔아서 번 돈으로 농사용 로봇부터 조립했습니다."
"……."
피디는 좌절했다.
그래도 초반에 황비버섯 재배를 시작할 때, 구슬땀을 흘려가며 몸으로 힘들게 작업하는 모습을 담고 싶었다.
그래야 밭에서 금이 발견되었을 때, 시청자들이 극도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수조 원에 달하는, 나라를 뒤흔들었던 그 조선시대 수집가의 금 유물말이다.
"회장님, 황비버섯 재배하실 때 단 한 번도 손으로 하신 적이 없으십니까?"
"네, 단 한 번도."
"……."
"손 작업하는 그림이 필요한 거면할 순 있는데, 그럼 너무 왜곡이 되지 않을까요?"
촬영진은 당황해서 잠시 우왕좌왕하다가 방향을 수습했다.
"음,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예 로봇 농사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끝판왕?"
"네. 회장님께서 사용하시는 최고 좋은 농사 장비를 1화부터 보여주는 겁니다."
"그럼 잠시 노트북 좀 빌립시다."
피디는 얼떨결에 하수영에게 노트북을 내주었다.
하수영은 몇 가지 영상을 노트북에 다운받은 뒤 피디를 불렀다.
"이거 한 번 보시죠."
"네, 회장님."
하수영한테 눈도장 한 번 박아보려고 촬영 현장까지 나온 박 작가도 뒤에서 목을 내밀었다.
영상이 재생되었다.
먼저 광활하고 푸른 지구의 모습이 나타났다.
드문드문 흰 구름 사이로 한반도 지형이 보인다.
지형이 점차적으로 확대되면서, 어느 자그마한 산악 지형을 비춘다.
포커스가 올라가면서 사람들이 산에 모여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딘가 많이 익숙한 모습인데.'
그렇게 생각하던 피디는 포커스가 더욱 확대되자 그만 뒤로 넘어질 뻔했다.
"이, 이거 지금 머리 위에서 우리들 찍고 있는 거 아닙니까!"
"네, 위성으로 지금 찍고 있습니다. 렌즈 하나를 확대해서 녹화한 걸 다 운받은 건데, 어때요?"
"위성이라고요?"
"뭔가 농사의 끝판왕이 될 만한 자극적인 소재가 필요하다면서요?"
"……."
피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다고 갑자기 위성 같은 게 튀어나와??
아니, 위성은 또 언제 마련했대?
"그리고 여기 더 있습니다. 나머지도 마저 보시죠."
다음 영상은 어느 건물 실내였다.
복도 좌우를 가득 채운 것은 끝없는 컴퓨터 부품의 향연.
한눈에 보기에도 값비싸 보이는 거대한 첨단장비 관리시설이었다.
"이건 무엇입니까?"
"농장 관리 컴퓨터입니다. 아직 구버전이긴 한데, 그래도 몇백억 이상은 들었죠. 중고 슈퍼컴을 사서 업그레이드한 거라 싸게 먹혔거든요."
"……."
"여기 신형 모델을 조립할 부품들도 잔뜩 사놓은 거 있는데, 이것도 방송에 내보내면 그림이 제법 나오지 않을까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헬기 로터음이 요란하게 들리는가 싶더니, 대형 헬기 1대가 하늘에 나타났다.
곧이어 헬기에서 레펠이 떨어지며, 사람으로 보이는 그림자 여럿이 레펠을 타고 미끄러지듯이 밭으로 하강을 시작했다.
'잠깐? 사람이 아니다?'
피디 등 촬영팀은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헬기에서 내린 것들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형상을 본뜬 로봇이었다.
은백색 광택이 반짝이는 메탈합금바디, 크고 작은 타원형 구체를 얹은 듯한 몸과 얼굴.
어딘지 통통해 보이면서도 유연하고 복잡하게 움직이는 팔다리 관절.
얼마 전, 정선 카지노에 나타나 SNS를 뜨겁게 달궜던 바로 안드로이드 로봇들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면 손작업이면서, 또 손작업이 아닌 게 되죠. 손은 손이되 로봇 손이니까."
"……."
"피디면, 이 정도면 그림이 제법 나올까요?"
"그, 그림 하나는 정말 기똥차게 잘 나올 거 같습니다. 소재가 너무 넘쳐나는군요."
"원래 뭐든지 부족해서 문제지 넘쳐서 문제 될 건 없다고 했습니다."
"피디님! 지금 좋은 장면이 막 생각났어요! 우리 초반부 다시 갈아엎어요!"
그리하여 영상 컨셉이 다시 바뀌었다.
하수영이 없는 밭에서 드론이 다시금 날았고, 50기에 달하는 안드로이드들이 드론과 다른 농사로봇들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모니터링을 마친 하수영이 물었다.
"이렇게 되면 제가 논밭에서 나올 구석이 없어지는 거 같은데요?"
"회장님은 1화 초반부터 논밭에 나오시진 않을 겁니다. 아까 그 장면도 삭제를 할 거고요. 대신 청담동저택에 편히 앉으셔서 현장 지휘감독을 보고받는 장면을 넣겠습니다."
"음, 그것도 멋있어 보입니다."
피디는 시원시원하게 촬영을 진행했다.
"자, 이 다음에는 농사 안드로이드들이 농사를 짓던 도중 땅 위로 유실된 금덩이들을 발견하고, 회장님은 청담동에서 그것을 보고받고 무척 놀라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한달음에 농장까지 달려왔다?"
"네, 그 장면부터 찍겠습니다. 카메라 들어갑니다. 준비해 주십시오."
하수영은 아까 피디가 당부했던 말을 떠올렸다.
"금 유물을 처음 발견한, 그 날의 감정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것……."
"네, 그 점만 신경 써 주시면 좋은 그림이 나올 거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한 번 몰입을 해보죠."
S#3. 금 유물 유실현장.
안드로이드 로봇들이 주변을 포위 하면서 관찰하고 있고, 드론들이 부산하게 날아다니면서 접근하는 거수자가 없는지 경계한다.
하수영 : 이게 뭐죠? 금이라고요?
비서 : 네, 회장님. 농지 아래 묻혀 있던 금이 나왔습니다. 이 일대 전체에 금 유물이 묻혀 있는 거 같습니다.
하수영 : 이럴 수가! 왜 하필이면 내 땅에서 금이 나온 거죠!
비서 : 예?
하수영 : 금 문화재라니! 이러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잖아!!
절규하는 하수영, 당황하는 비서.
(재연배우는 대본을 벗어난 애드립에 실제로 당황했다)
하수영 : 저기도! 여기도! 저곳에도! 이렇게 논밭들이 가득한데 왜 하필이면 내 땅이냐고! 이런 멧돼지도 주워 먹을 게 없어서 안 올 것 같은 야트막한 산이냐고!
비서 : 회장님, 진정하십시오.
하수영 : 지금 진정하게 됐어요? 문화재청 놈들은 또 건수 잡았다고 좋아라 물어뜯으려고 달려들 텐데. 안 되겠습니다.
하수영의 잔혹한 눈빛, 비서를 당황케 하다.
하수영 : 다 묻어버립시다.
비서 : 회장님?
하수영 : 묻고, 없던 걸로 합시다.
피디는 컷 타이밍을 한참 전에 놓친 채, 멍하니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미 현장은 하수영이 피시든, 카메라 감독이든, 상대 배우든 간에 멱살 잡고 끌고 가고 있었다.
NG라는 생각이 몇 번이고 머릿속을 맴돌았으나, 차마 회장님을 향해 '컷! 컷!'을 외친다는 하극상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속도 모르는 박 작가만 모니터링을 하면서 깔깔 웃고 있었다.
"대박! 대박! 아유, 시원시원해라!
역시 우리 회장님, 마약상 김주환 연기하실 때 카리스마가 살아 있으시다니까!"
"……."
"피디님, 대본하고 조금 다르긴 한데 이 장면 그대로 써도 될 거 같은데요? 시청자를 막 사로잡는 그런 흡입력이 넘치잖아요."
"지금 다큐 방송에서…… 농사에 방해되니 금 문화재를 묻어버리자고 지시한 장면을 그대로 내보내자고?"
이건 건설 카르텔 고발 다큐에 나와야 할 장면이 아닌가??
"어차피 속 터져서 그냥 나온 말이잖아요. 잠깐 울화통 터뜨리고, 그 뒤에 회장님이 문화재청에 제대로 협조해서 발굴 돕는 모습 나오게 하면 되죠."
박 작가는 열연을 마친 하수영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잘하면 진짜 사나흘이면 1화촬영은 다 끝날 거 같은데요. 얼른 얼른 찍고 하우스 농장으로 넘어가요."
단단한 하우스 농장.
금 유물 발굴 때문에 서락산에서 물러났던 하수영이 옮겨간, 지금의 농장이다.
그리고 1화 마지막에서 하수영은 다시금 서락산으로 돌아오게 된다.
박 작가는 촬영장소에서 반대 방향에 위치하고 있는, 거대한 원통형 건물(신형 테라리움)을 돌아보며 웃었다.
"석양이 쫙 깔리면서 저 테라리움농장 배경 잡아주고, 그렇게 딱 1화가 끝나면 그림 하나는 진짜 살겠는데요."
"……."
"나이든 어르신들 정말 깜짝 놀랄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가 이렇게 농사짓고 있단 거 알면 얼마나 감동받을 거야. 여기에 비교 영상으로 미국의 일반 농장도 교차해서 보여주면서 강조하는 거죠. 어때요?"
촬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던 피디도 마침내 웃었다.
"그래! 컨셉이 조금 튀면 어때? 어차피 우리는 단 명의 시청자만 만족시키면 되는 거 아니겠어?"
"맞아요. 단 한 명의 시청자."
"수십만, 수백만 명의 시청자가 과장이 심하다고 손가락질하고 비웃어 보라지. 우리는 딱 한 명의 시청자만 웃게 하면 되는 거야."
"힘내 보자고요, 피디님."
그렇게 촬영장은 뜨거운 파이팅 분위기 속에서 계속 호흡을 이어갔다.
***
얼마 후, 마침내 테스트 영상 제작이 끝났다.
정식 방송은 한참 멀었지만, 방송국은 하수영을 위해서 아이맥스 극장 하나를 대관했다.
그리고 하수영과 CVN 그룹 회장과 임원, 케이블 사장 등등이 모여서 함께 관람했다.
-농사가 첨단산업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죠. 선진국에서는 박사학위자들이 농사를 짓습니다.
-한 톨의 새로운 종자가 탄생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유전공학자들이 갈려 나가는지 아십니까?
-야만의 시절, 제국주의는 커피와 사탕수수 농사를 위해 인간을 노예로 부렸습니다.
-하지만 지성의 시대인 지금, 수영농장에서는 실리콘과 합금으로 노예를 만들어서 부립니다.
인공위성의 시야에서 보이는 농지 풍경.
농지를 뒤덮은, 비행 드론과 안드로이드, 커스터마이징 된 트랙터와 콤바인 기계화 로봇 군단.
그 기계군단을 조종하는, 청담동어느 지하에 비밀리에 존재하는 슈퍼컴퓨터.
생산한 농산물을 전국 곳곳에 실어 나르는 수억짜리 볼보 트레일러, 수십만 톤에 달하는 거대한 화물선.
마지막은 바로 석양을 뒤에 지고 있는, 거대한 원통형 테라리움 빌딩이 장식하며, 그렇게 1화가 끝났다.
어느 임원이 조용히 옆에 물었다.
"이거 다큐 맞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