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99화
236장 육 그리고 해공 (4)
"무선 전기 한번 써보시겠습니까?"
해군 참모총장은 저녁 식사 겸 독대 자리에서 하수영이 꺼낸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정말이십니까?"
"제 드론들은 평화와 번영, 농사를 위해 로한 박사가 정성스레 조립하고 세팅해 준 것이니 제공해 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해군이 운용하는 드론이 있다면 도와드리죠."
해군도 모터형 드론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전기가 무제한 공급되기만 한다면, 드론은 얼마든지 업그레이 드를 할 수 있다.
당장 내일부터 제작에 들어가도 몇 주 안에 금방 뚝딱 하고 쓸 만한 놈들이 튀어나올 것이다.
이리되면 해군은 굳이 수영농장 드론에 군침을 흘릴 이유가 없어진다.
"당연히 제한이 있겠지요? 몇 대까지 지원을 해주실 겁니까?"
"글쎄요. 특별히 숫자에 제한은 안두려고 하는데. 일단은 1,000대 정도? 그냥 요식적으로 두는 상한선이라고 생각하시죠."
이 정도면 제한이 전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해군 참모총장은 뜻밖의 제안에 그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꾸신 건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우리 드론은 비싸기만 한 농사용이니까 군에 적합하진 않고요. 군드론에 동력 정도 제공하는 거는 나쁘지 않을 거 같아서요."
하수영은 쉬지 않고 접시를 비워 나가면서 말을 이었다.
"이번에 육군의 만행에 해군이 어쨌거나 도와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뜻도 있고, 육군이 괘씸해서 끓려주기도 해야 할 거 같아서요."
"육군을 꿇려준다니요? 아!"
"랩터 킬러를 자기들이 통제해야 한다고 노래를 불러대다가 사고까지 쳤는데, 그냥 넘어가면 서운하죠. 백악관이 제재를 하겠지만, 저 역시 사적 제재를 조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수영은 조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이번 미국 방문, 사실 미 육군 때문에 계획했습니다."
해군 참모총장은 불현듯 얼마 전에 품었던 의문을 떠올렸다.
'컨테이너 6대 중 5개씩이나 실수로 가져오는 게 있을 수 있나?'
라는 의구심 말이다.
이거 설마?
"땅개들 앞에서 자랑도 좀 하시고, 약도 올려주시고, 멘탈 공격도 좀하시고 그래 주세요."
해군 참모총장은 씩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땅개 놈들, 제대로 염장을 질러주겠습니다."
"대외적으로 무선 전기 기밀은 지키셔야 합니다. 조금 힘드시겠네요."
"괜찮습니다. 극비 신형 배터리라고 하면 누가 따질 수 있겠습니까?"
군용 신제품은 이게 좋다.
누가 의심을 품고 캐물어도 '응 군기밀이야. 너 군사 스파이?'라고 해버리면 그만이니까.
"공군과 적극 협력하시면 더 좋은 결과를 내실 수 있을 겁니다."
"아, 공군 드론에도 무선 전기를 주기로 하신 겁니까?"
"하나보다는 둘이 낫죠. 혼자만 소외받는 서러움이 더해지면 더 좋고요."
육군 총장 앞에서 사근사근 잘 웃기에 전부 너그럽게 넘어가 준 줄 알았는데.
'혹시 무선 전기 정보 취급인가를 중재한 것부터가 포석인가? 에이, 이건 좀…….'
하수영은 다음 날에는 공군 참모총장과 저녁 독대를 하면서 같은 이야기를 했다.
공군 드론에 무선 전기를 제공한다는 말에 참모총장은 당연히 크게 반색을 했다.
"그런데 공군 드론은 거의 다 제트기 아닌가요? 프로펠러형은 거의 없어서 해군만큼 큰 도움은 안 되겠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공군의 주력 무인기 MQ-2 포식자는 프로펠러로 추진력을 얻습니다. 엔진을 모터로 교체하면 무한히 비행할 수 있습니다."
"아하, 아직 프로펠러 무인기를 쓰고 있었네요."
공군 참모총장은 순간 그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렸다.
'아직'이라는 말이 마치 '미 공군의 드론 수준이 예상보다 수준 이하구나'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에이, 그럴 리가. 내가 과민한 거겠지.'
"그리고 전파방해 등 전자전을 펼치는 데도 막대한 전기가 필요합니다. 무제한 작전 시간, 무제한 전자전을 펼칠 수 있는 겁니다. 전술 능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하게 됩니다."
하수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모습이 심드렁하게 여기는 듯해, 공군 참모총장은 더욱 열심히 설명을 했다.
"연료통을 떼어내고 그 대신 더 많은 무장을 실을 수도 있습니다. 무인기 1대가 10대 이상의 몫을 해낼 수 있게 될 거라고 기대합니다."
"알겠습니다. 무선 전기 비밀은 잘 지켜주시고, 육군은, 알죠?"
"네, 땅개 놈들이 배 아파서 땅을 뒹굴뒹굴 굴도록 만들어주겠습니다. 혹시 내일은 레넌 총장을 만나십니까?"
하수영은 피식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오늘 새벽에 바로 뉴욕으로 떠납니다."
"아."
"그래야 육군이 더 충격을 받겠죠?"
공군 참모총장은 레넌 총장을 떠올렸다.
지금쯤 육군이 가장 마지막 면담차례인 줄 알고 열심히 브리핑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수영이 해군과 공군만 만나고 곧바로 떠버렸다는 걸 내일 알게 되면, 레넌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또 얼마나 절망할까?
그 모습을 상상해 보니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꼴좋다. 땅개 자식들! 아주 꼴좋아!'
속으로 히죽 좋아하다가, 불현듯 궁금한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원수님, 육군이 랩터 킬러에 침 바른 것처럼 행동을 해온 것 하나 때문에 이러시는 겁니까? 아니면 다른……."
"육군에 뭐 억하심 같은 거 있냐고요? 비슷합니다. 안 좋은 감정 있어요."
하수영이 랩터 킬러 말고도 미 육군과 안 좋을 일이 뭐가 있던가?
공군 참모총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짚이지 않았다.
애초에 미 육군과 하수영은 접점자체가 별로 없는 편이었다.
"인류 역사상 육군은 3군 중에서 가장 처음 만들어졌고, 군의 기원이잖아요. 어느 나라든지 가장 먼저 육군이 만들어지죠."
공군 참모총장에서 입맛이 쓴 말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놈들은 아주 욕심이 많아요. 육군 주제에 무슨 상륙정도 가지려 하고, 헬기도 가지려 하고, 전투기도 가지려 하고, 조기경보기도 가지려 하고, 또 미사일 기지도 가지려고 하죠."
"육군의 끝없는 욕심이야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죠."
"심지어는 권력도 가지려고 합니다. 어느 나라든 쿠데타 군부는 죄다 육군이잖아요."
역사적으로 육군 내부에 수병부대, 항공부대 같은 게 생기고, 그게 덩치가 커지면서 따로 해군, 공군으로 분리해오는 경우가 제법 있다.
"아무튼 이놈들은 뭐만 나왔다 하면 죄다 자기 건 줄 알아요."
"어, 맞습니다. 우리 미 공군이 처음 해군 소속의 항공편제에서 공군으로 분리설립이 되던 당시에도 그랬었죠. 느닷없이 육군에서 육상항공부대로 편입 관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병종이고 무기고 병사도 편제고 간에 배가 터지도록 안에 집어넣으려고 하는 꼴이 마음에 안 들어서요. 그래서 제가 육군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러고 보니 원수님이 육군 사병 출신인데 해군으로 가버려서 한국 육군의 질시가 장난 아니라고 했었지.'
"육군은 해공군에 비해 사병 숫자에 너무 강하게 집착해요. 똥별들이장성 보직 수 유지하려고 절대로 다이어트를 안 하죠. 저출산 시대에 남들 죄다 스마트 군대 만든다고 난리 치는데 말이에요."
하수영의 얼굴에 조금씩 붉은 분노가 깃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육군 똥별들 욕심 때문에 징병제가 더 없어지기 힘든 겁니다! 안 그래도 징병제 폐지에 이것저것 장애가 많은데! 당장 우리 머리 위에 있는 나라들도 있고!"
'이렇게까지 육군에 유감이 깊으실 줄이야. 그런데 그게 미 육군과는 무슨 상관…… 그냥 육군이란 종류자체가 싫다는 건가?'
하수영은 이까지 바드득 갈았다.
"결국 언젠가는 없어져야 할 병종녀석들이 너무 자리 욕심만 과해요."
"언젠가는?"
의미심장한 말에 공군 참모총장은 눈을 반짝였다.
하수영은 표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비행기술이 계속 발달하다 보면 결국에는 육해공이 아니라 3차원 공간 통합군 체제로 가지 않겠습니까? 땅바닥을 달리는 육군은 흡수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아! 그렇지요! 맞습니다! 그게 바로 군의 미래죠!"
당연히 공군이 주도하게 될 미래.
비록 3군 중 가장 늦게 태어났으나, 그런 먼 미래에는 공군이 모든 것을 주도하게 되리라.
***
"음, 내가 너무 과했나? 나도 모르게 흥분을 해버렸네."
-마스터답지 않게 열혈이 넘쳤습니다. 육군이란 병종에 그렇게 강한 유감이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아주 먼 옛날 뺑이 치던 트라우마 때문에 그래. 와, 진짜 PTSD라는 게 무섭다니까. 그게 벌써 언겠적 일인데, 전생을 몇 번이나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불쑥불쑥 폭발한단 말이지."
-그냥 평범한 사병으로 징병당하셨던 겁니까? 마스터라고 항상 세상 주도하는 삶만 사셨던 것은 아니군요.
"하필 입대 한 달 남겨두고 그 스트레스 때문에 전생 기억이 돌아오는 바람에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었지. 몇 년만 일찍 돌아왔어도 군대 안 끌려갈 준비를 해놓을 수 있었는데."
-저런, 그래도 군 생활은 잘하셨겠습니다.
"그냥 돈으로 해결했다."
-어떻게요?
"입대하기 전까지 로또 미친 듯이사서 당첨금 받고, 그걸로 주식선물해서 불렸지. 시간이 없어서 천억정도밖에 못 만들었어."
-메가밀리언 당첨이면 더 많이 불릴 수 있었을 텐데, 입대 한 달 전이면 출국이 안 됐겠군요.
"응, 덕분에 군 생활은 편하게 했어. 자대 신병배치 받고, 분대장이 데려갈 때 내가 딱 이랬지. 걔 돈없어 보였거든."
하수영은 아주 먼 옛날을 잠시 상기했다.
***
"분대장님, 전화 한 통만 하게 해주십시오."
오랜만에 받은 신병이 똘똘해 보여서 신이 난 분대장은 황당해서 돌아봤다.
'미친…… 이거 A급인 줄 알았는 데, 완전 폐급이었어?'
눈 똑바로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저 꼴을 보라.
분대장은 왜 하필 이런 폐급 관심 병사 후보가 자신의 분대에 들어왔는지, 눈앞이 아득해졌다.
"신병. 네가 지금 사회 물이 덜 빠져서……."
"저 부잡니다. 군 생활 편히 하고 싶습니다. 전화 한 통 하게 해주시고 계좌번호 불러주시면 지금 바로 천만 원 넣어드립니다."
원래라면 '너 미쳤냐?'라는 반응이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바로 천만 원. 이란 말에 분대장은 저도 모르게 목울대가 올라갔다.
"지금 즉시?"
"네, 바로 확인 가능합니다. 재산관리 변호사한테 넣어달라고 할 겁니다."
"너…… 무슨 재벌 아들이나 그런 거냐?"
"재벌 아들은 아니지만 부자는 맞습니다. 전화 한 통 하게 해주십시오."
심각한 고민에 시달리던 분대장은 믿어서 나쁠 게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슬쩍 신병을 데려가서 공중전 화를 쓸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자신의 계좌번호도 메모지에 적어서 건넸다.
"응, 김 변. 난데 지금 자대 배치 받았다. 지금 이 계좌로 바로 천만 원 입금해."
그리고 신병은 정말 저 말만 하고는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1분 안으로 입금될 겁니다. 여기서 바로 확인하고 가십시다."
그리고 정말로 텔레뱅킹을 통해 입금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너너, 대체 뭐…… 아니, 뭐 하시는 분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