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95화
235장 천조국 땅개 (6)
레넌 총장은 참 많은 것을 봤다.
랩터 킬러들이 꿀벌들을 얼마나 충실하게 따라다니는지를.
작은 야생 꿀벌집이라고 허투루 여기지 않고 지켜주는 것을.
심지어는 랩터 킬러 1기가 단독으로 장수말벌집을 발견해서 소탕 작전을 벌이는 것도 실시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이야, 오늘 운이 좋네요. 요즘 랩터 말벌들이 하도 꼭꼭 숨어서 찾아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정말 운 좋게 찾아냈습니다."
"좋은 구경을 한 거군요. 감사합니다. 저도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커다란 활엽수 나뭇잎 사이에 교묘하게 숨어 있던 장수말벌집이 발각되었다.
관측각이 전혀 안 나올 것 같은데, 어떻게 찾아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저런 복잡한 이미지 영상을 오차없이 실시간으로 분석해 내다니. 저런 관측 능력이야말로 무인 드론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다.'
레넌은 그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그 어떤 인공지능도 저렇게 완벽하게 현장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고, 정확한 행동을 취할 수도 없다.
'역시 사람과 독서 토론도 가능한 인공지능을 만들어낸 과학자의 발명품답다…….'
요즘 한창 이름을 날리는 헤슬라 자동차의 자율주행 기능이 떠올랐다.
프리덤을 자율주행 AI로 장착한 후, 헤슬라 자동차는 오류 없는 완벽한 주행 실적을 달성했다.
헤슬라 자동차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사고를 낸 적이 없었다.
드문드문 정말 귀하게 잡히는 작은 접촉 사고 따위도, 프리덤의 잘못이 아니었다.
자동차 성능, 주변 환경 등을 비롯하여 물리적으로 대처 불가능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당한 과실 0% 짜리 접촉 사고들뿐이었다.
그 기술이 적용되었으니, 랩터 킬러들도 저렇게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이는 것이리라.
"저건 '오토'라는 애칭을 가진 개체로, 살충용 개체 중에서는 최신 기술이 적용된 모델입니다. 생김새만으로는 구분이 안 되지만요."
"그렇습니까?"
"네, 다른 랩터 킬러보다 더 뛰어난 상황인지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중앙컴퓨터의 통신이 두절된 경우에는 현장 지휘 역할도 수행합니다."
"저런 개체가 몇 개나 더 있습니까?"
"아직까지는 1대뿐입니다. 시험 삼아 여흥으로 만들어진 개체라서요. 사실 통신 문제가 끊길 일은 없다 보니, 굳이 예비 지휘 개체를 많이 둘 필요는 없거든요."
"……통신이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 든 끊어질 수 있습니다. 전투부대는 항상 적의 통신 교란 작전을 대비해야 합니다."
하수영은 피식거리며 말했다.
"안전한 미국 본토 내에서 그런 회복 불가능한 통신 두절 사태가 일어날 일이 있을까요?"
"……."
"거듭 말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농기계입니다. 애당초 인간과의 전쟁을 상정하고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애당초 인간을 적으로 상정한 적이 없다.
레넌 총장은 머리에서 맑게 울리는 깨달음의 충격을 느꼈다.
흡사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현역 장성인 자신의 입에서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정교한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퇴치 시스템.
그대로 현재 군에 이식해도 진화된 전투력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 대단한 전투 플래폼인데도, 한 번도 인간과의 전쟁을 가정한 적이 없는 설계 사상이라니.
"저는 흙을 사랑하고, 흙을 추구하는 농부입니다. 자나 깨나 어떡하면 농사를 더 잘 짓고,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신선하고 품질 좋은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을까만 생각하죠."
"……."
"랩터 킬러 역시 그런 설계 사상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수영은 레넌 총장의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덧붙였다.
"육군은 그런 랩터 킬러의 설계 사상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습니까?"
"……."
"그냥 군인의 눈에는 랩터 킬러가 그저 무기로밖에 보이지 않겠지요.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랩터 킬러는 꿀벌과 농가를 수호하기 위한 농업용 살충 기구일 뿐입니다."
레넌 총장은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농업, 그리고 식량 안보.
그 앞에서 이렇게 진지한 이한테 아이처럼 떼를 쓰기만 한 느낌이다.
그저 좋은 장난감을 탐내듯이 랩터킬러의 통제권을 달라고 조르기만 하는 육군이, 그의 눈에는 얼마나 하찮게 보였을까.
"농부들이 군인을 존중하듯, 군인도 농부의 흙을 소중히 여겨 주십시오. 군인들이 먹는 모든 것들은 흙에서 나오고, 랩터 킬러는 작황을 지켜주는 최종병기입니다."
하수영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농기구는 농부의 손 안에 있을 때 가장 제 역할을 빛낼 수 있습니다. 군인의 손에 들어가면 농기구가 아니라 무기가 될 뿐입니다."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랩터 킬러를 농기구라는 생각으로 접근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의 랩터 킬러 모델을 살인병기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럴 바엔 차라리 그 돈으로 제대로 된 무기를 만드는 게 훨씬 효율적일 겁니다."
랩터 킬러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돈만 생각하면, 무기로 전용하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다.
물론 육군이 통제권을 얻으려 한 것은 그 비효율성을 고려해도 강력한 테러 무기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었지만,
"랩터 킬러는 강력한 해킹 방지 기술이 적용돼 있어서 테러 집단에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없습니다. 만약 그런 테러 집단이 있다면, 그전에 이미 미국의 핵미사일 전부가 탈취되어 있을 겁니다."
그때 랩터 킬러 2기가 편대를 이룬 채 어딘가로 바쁘게 날아가고 있었다.
하수영의 안색이 변했다.
"큰 이벤트가 터진 거 같습니다. 우리도 어서 가봅시다."
"네, 의원님."
총장 일행도 하수영의 뒤를 따라 허겁지겁 수풀을 헤치며 움직였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외딴곳에 홀로 있는 한 야생 꿀벌집이 나타났다.
그리고 한 마리의 오소리가 꿀벌집을 따기 위해 주변을 서성거리며 앞발을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었다.
꿀벌들은 시끄럽게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오소리를 쫓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오소리는 일벌들의 방어를 아랑곳하지 않고 꿀벌집을 따려고 했다.
그때 랩터 킬러가 추가로 현장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2기 이외에도 총 8기가 모였고, 편대를 이뤄서 오소리를 향해 돌진했다.
퍽! 퍽! 퍽! 퍽!
8기의 드론은 교대로 오소리를 향해 몸통 박치기를 시도했다.
몸통 박치기가 끝나고 중심을 잡는 사이, 다시 다른 드론이 달려들어 육탄 충격을 가하며, 오소리의 정신을 빼놓았다.
그동안에는 호버링 중인 드론들이 오소리를 향해 레이저를 쏘며 털을 지져댔다.
결국 오소리는 꿀벌집을 포기하고 콧김을 내뿜으며 돌아갔고, 흥분한 일벌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추가 습격이 없는지를 정찰했다.
상황 종료를 확인한 드론들은 1기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다른 곳으로 이탈했다.
"흉악한 오소리로부터 귀여운 꿀벌집을 지켜냈군요. 어때요, 기특하지 않습니까?"
레넌 총장은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동에 젖은 채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몸을 아끼지 않고 꿀벌을 구하기 위해 달려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 꿀벌은 천적이 너무 많아서 멸종 위험도가 너무 높습니다. 그리고 랩터 말벌뿐만 아니라 오소리, 곰 등으로부터도 지켜내야 합니다."
"곰과 맞설 수도 있습니까?"
"그냥 무작정 부딪치는 거죠. 당연히 기체가 파손될 때도 있습니다. 콜을 받은 곰 사냥꾼이 올 때까지만 버틴다는 전략입니다."
"그럼 손해도 크겠군요."
"곰과 싸우느라고 파손된 기체 값만 따져도 수백만 달러는 될 겁니다. 뭐 어떻습니까. 대신 몇십만 마리가 넘는 꿀벌들을 지켜냈는데요."
분위기는 어느새 한껏 숙연해져 있었다.
군인들은 랩터 킬러를 그저 무기로만 봤던 자신들의 일차원성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꿀벌 수호를 통해 농업의 생태계, 나아가 전 세계 식량안보에 이바지하려는 이의 소중한 도구를, 군사안 보라는 이름으로 멋대로 취하려 했다니.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런 무기, 아니 이런 도구는 그 의의를 가장 깊이 이해하는 이의 손에서 다뤄지는 게 옳습니다."
레넌 총장은 한껏 초연해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랩터 킬러의 뛰어남에 주목해서 육군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저 육군의 이기적인 욕심 같군요."
"미 육군은 이미 충분하고도 넘칠만큼 강력합니다. 그 어떤 테러 조직이 감히 미 육군의 방어를 뚫고 이 농토까지 들어와서 랩터 킬러에 해킹을 시도조차 할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도 미국의 꿀벌들을 지켜주십시오. 그리고 미국의 식량안보를 랩터 말벌들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십시오."
"미국과 저는 흙으로 맺어진 동맹입니다. 흙은 피보다 더 두텁고, 영원하지요."
"흙으로 맺어진 동맹……."
"우리 모두는 흙에서 났고, 흙에서 난 것을 먹으며, 결국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갑니다."
"감명 깊은 말씀입니다."
레넌 총장은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불현듯 근뇌파가 떠올랐다.
'그놈들은 절대로 납득하지 않을 텐데.'
애초에 납득을 할 수 있다면 근뇌파라 불릴 일도 없었으리라.
처음에는 근뇌파를 제물로 바쳐서 하수영의 호의를 사서 젠틀하게 통제권을 넘겨받으려 했었다.
그러나 랩터 킬러의 탄생 사상을 깊이 이해한 지금, 근뇌파는 위험분자가 되었다.
감히 반역이나 항명 따위를 하진 않겠지만, 하수영한테 결례라도 저지르면 육군 전체의 망신 아니겠는가.
레넌 총장은 그런 고민을 가슴에 깊이 안은 채 육군기지로 복귀했다.
하지만 다음 날, 그런 고민을 싹날려 버릴 만한 보고를 받았다.
"총장님! 큰일입니다!"
"뭐야, 무슨 일인가?"
"하수영 의원님이 잘못 가져왔다는 그 4대의 컨테이너 말입니다! 조류사냥용 랩터 킬러가 잔뜩 실린 컨테이너가!"
"알지. 그게 왜?"
떠올리기 싫은 상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설마 아니겠지, 하는 작은 바람은 헛된 희망으로 사그라져 버렸다.
"오늘 새벽, 근뇌파 놈들이 캘론목장에 침투해서 모조리 훔쳐간 모양입니다!"
"뭐야? 아니, 이런 미친놈들이!"
"코펠스 사령관이 샌더달 소장을 불러서 호통을 하고 추궁했지만, 한사코 부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정황이 근뇌파의 짓이란 걸 알려 주고 있습니다! 샌더달 소장의 지시로 움직인 부대가 캘론 목장으로 향한 흔적이 있습니다!"
"이건 항명이야! 이놈들이, 전부 군사재판소 앞에 서고 싶은 건가!"
엄밀히 말하자면 항명이 아니라 군절도범죄가 되겠지만.
레넌 총장 앞에서는 항명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서둘러 참모를 불러다가 의논하는 한편, 샌더달 소장을 호출했다.
그나마 샌더달 소장은 호출 명령에는 거역하지 않고 바로 달려왔다.
"샌더달 소장, 자네가 한 번 뺏은 컨테이너를 내가 반환했는데, 그걸 다시 훔쳤다지? 이건 나에 대한 항명인가?"
"총장님, 저는 훔치지 않았습니다. 억울합니다."
"그럼 자네 부대의 이 병력 움직임은 어떻게 설명하겠나?"
레넌 총장은 병력 이동 분석 보고서를 흩뿌리듯이 내던졌다.
샌더달 소장은 정말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는, 저는 이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럼 자네는 아무것도 모른다? 자네 부대 기지에는 랩터 킬러 컨테이 너가 없다? 내가 그런 주장으로 받아들이면 되겠나?"
"사실 컨테이너는 있습니다. 저도 조금 전에 확인을 하고 온 겁니다."
"뭐라고?"
"어찌 된 노릇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부대에 그 컨테이너들이 있었습니다. 부대 병력 이동 사실도 있었고요. 그런데 저도, 부사단장도 지시를 내린 적이 없습니다. 현장 지휘관은 군사경찰에 끌려가서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총장은 이걸 믿어야 하는지, 아니면 근뇌파 놈이 끝까지 모른 체 잡아떼는 건지를 고민해야 했다.
그 순간, 백악관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조용했다는 사실이 퍼뜩 떠올랐다.
'설마 우리 육군의 말 안 듣는 얼룩말 무리들을 길들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