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94화
235 장 천조국 땅개 (5)
랩터 킬러 무선전기 수신칩은 크기가 매우 작기에 삽입이 간편하다.
때문에 하수영은 육참총장이 도착하기 전에 작업을 마무리하고, 바베큐 파티까지 느긋하게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역시 보조배터리 추가였나?'
참모총장은 태연함을 유지하려 했다.
신형 랩터 킬러에 비하면, 멀티배터리팩은 물품 자체는 대단하지 않다.
그러나 823회차 분석보고에 의하면 지금도 충분히 치명적 대인공격능력을 갖춘 랩터 킬러가, 얼마나 더 강해졌을지 우려된다.
"의원님, 랩터 킬러는 준군사 무기나 다름없습니다. 성능 업그레이드작업은 우리 육군과 사전협의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국방부와 협의했고, 미군은 실무이행자일 뿐입니다. 사실은 정확하게 해야지요. 저는 공군을 통해 문제 없이 반입을 했습니다."
하수영의 말대로, 정확히는 국방부의 소관이다.
육군이 자기들 관할이라며 박박 우기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
"공군에서 신형 랩터 킬러 도입을 허용했단 말입니까?"
"아, 그건 잘못 실린 거라고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렸는데요. 다시 연해주로 보낼 거니까 염려하지 마시죠."
"개조 부품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우리 육군도 알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기밀사항인데요. 육군 참모총장이 정보취급 인가가 되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할 거 같습니다."
레넌 총장은 속으로 조금 어처구니 가 없었다.
아니, 무기 중에서 육군 참모총장이 정보취급 인가가 없는 게 있을 수 있나?
"국방부에 직접 문의해 보시죠."
총장은 자신만만하게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현 국방부 장관은 현역 시절 자신과 친하게 지냈던 선임.
전역한 지는 10년도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예, 장관님. 저 레넌 대장입니다. 예, 질문드릴 게 있어서요. 이번에 하수영 의원님이 들여온 랩터 킬러개조 부품이 뭡니까?"
한껏 미소 지은 채 대화를 이어나 가던 도중 얼굴이 굳어졌다.
그가 경직된 채 통화를 끊자, 하수영이 실소를 머금은 채 물었다.
"취급 인가자가 아니라고 하죠?"
"……."
이럴 수는 없었다. 이럴 수는…….
미합중국 본토 지상에서 활동하는 무기 플래폼의 업그레이드 부품을, 육군 참모총장이 접근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니.
'설마 엄청난 성능의 배터리라도 되는 건가? 혹시 전고체 배터리?'
전해질을 액체 대신 고체로 채워 넣어 안정성을 높이는 차세대 배터리.
그 기술이 도입된 배터리일까?
'아니야,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고체 전해질 외에도 리튬이 아닌 다른 신물질을 사용해서 만든 차세대 배터리인가? 로한 박사라면 충분히 그런 걸 만들 수 있겠지.'
총장은 프리덤, 반수성 금속처리 기술, 상용 핵융합로를 만든 로한의 능력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 기존 배터리를 뛰어넘는 월등한 성능의 신물질 배터리가 틀림없다. 군사뿐만이 아니라 산업경제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그래서 국방부에서도 장관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목적지는 다소 엉뚱했지만, 중간과정은 그럴듯하게 잡아갔다고 볼 수 있으려나?
'그럼 이거 랩터 킬러가 더 위험해진 거 아닌가?'
검소하게 잡아서 배터리 성능이 5배로 증가했다 치자.
전력 위험성으로만 보면 5배가 아니라 20배, 그 이상이다.
일부 화력의 증가는 군단 전체에 배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포탄 개별 파괴력이 10%만 증가 했다고 해서, 포병부대 전체의 화력이 10%에서 그치지 않는 것처럼.
'이렇게 되면 랩터 킬러는 더더욱 우리 육군의 통제를 받아야만 한다. 이건 대통령이라고 해서 양보할 수 없다. 우리 미합중국의 본토 안보를 위해서 당연한 조치다.'
더욱 강력한 동력을 탑재한 랩터킬러는 더 넓은 반경, 더 긴 활동시간, 그리고 더 많은 레이저 발사횟수를 확보하게 된다.
레넌 총장이 결심을 굳히는 순간, 하수영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미 육군은 랩터 킬러에 관심이 많았었죠?"
"미국 영토 지상에서 활동하는 모든 준군사 무기는, 반드시 미군의 감시나 통제하에 놓여 있어야만 합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참 군인이로군요."
"그렇다면 랩터 킬러를 ……."
"바베큐 같이 즐기실래요? 그리고 장수말벌 퇴치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한 번 보러 가는 게 어때요?"
"……."
"초기 전차는 트랙터에 합판과 기관총을 단 놈이라고 하죠. 하지만 트랙터는 어디까지나 밭을 갈기 위해서 만들어진 놈입니다."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였다.
"농기구를 무기로만 볼 게 아니라, 농지에서 농부와 작물을 위해 어떻게 활용되는지, 계급장을 내려놓고 농부의 시선에서 한 번 체험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농기구, 말입니까? 랩터 킬러가 농기구란 말씀입니까?"
"네, 본질은 농기구입니다. 진드기 잡는 드론을 개량하다 보니 장수말벌 퇴치용으로까지 진화를 한 거 죠."
레넌 총장은 충격받은 얼굴이 되었다.
랩터 킬러가 농기구라니…….
살충용으로 쓰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는 한 번도 '랩터 킬러 농기구'라는 개념을 머릿속에 떠올려 본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랩터 킬러는 무기라는 개념만 갖고 있었다.
"지금까지 랩터 킬러를 무기로만 보셨나 보군요."
"예, 그렇습니다……."
"과일 깎는 칼이나 총검용 단도나 똑같은 칼이지만, 누구도 과도를 보고 '무기'라는 개념을 먼저 떠올리지 않습니다."
하수영은 자리에 앉으며 손짓으로 같이 앉기를 권했다.
레넌 총장이 자리에 앉고, 휘하 부하들은 병풍처럼 그 뒤에 죽 각을 잡고 섰다.
하수영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부위를 잘라내서 먼저 총장에게, 그리고 그의 부하들에게 권했다.
"감사합니다."
총장 및 육군 부하들은 당연히 사양하지 않고 고기를 먹었다.
그들은 혀 전체를 짜르르 울리는 강력한 감칠맛에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어떤가요, 아주 맛있죠?"
"예, 아메리칸식 과장이 아니라 진심으로, 정말로, 몹시 맛있습니다.
지금까지 먹어본 바베큐 중에서 최고입니다."
"수영농장은 항상 최고만을 추구합니다. 설령 그게 말벌 퇴치 같은, 남들 눈에 보기에는 사소한 영역일지라도요."
"……."
하수영은 고기를 먹으면서 대화를 주도했다.
총장 등 육군 일행은 조용히 고기를 씹으면서 경청에 집중했다.
비프스 캘론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꿀벌이 농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나요?"
"잘은 모릅니다."
"먼저 아몬드는 멸종합니다. 당근, 양파도 마찬가집니다. 결국 사람의 손으로 인공수분을 해야 하는데, 수확량이 1/1,000 이하로 줄어들고 가격도 폭등합니다."
"……."
"궁극적으로는 쌀, 보리, 밀, 옥수수 같은 것들만 식량으로 남겠죠. 바람의 힘으로 수분이 이뤄지는 것들요."
어느덧 통구이 바베큐는 거의 뼈만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은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사소한 채소 같은 것들도, 최고 부유층의 전유물이 될 겁니다. 마치, 생선처럼 말이죠."
총장 등 육군들은 하수영의 말에 점점 홀리듯이 빠져들고 있었다.
"미국에 상륙한 아시아 거대말벌, 랩터는 본토에서보다 몇 단계는 더 강해졌습니다. 덩치가 더 커졌고, 번식력과 생존력, 활동 범위, 심지어 식욕도 더욱 증대했습니다."
여기에 표적 살충제에 대한 내성까지 생겼다.
화이저사가 계속해서 개량을 시도 하고 있지만, 내성 획득 속도를 따라잡는 것은 힘들 것이다.
"괜히 미 농무부에서 랩터 킬러에 집중하기로 한 게 아닙니다. 꿀벌은 그런 장수말벌이 탐내는 먹잇감이니까요."
"그런 생태계까지는 잘 몰랐습니다. 농업 쪽 안보도 꽤 심각하군요."
"군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죠?"
"보급입니다."
레넌 총장은 주저하지 않고 말했고, 하수영은 옅은 웃음을 지으며 질문을 이었다.
"보급품 중에서 하나만 꼽자면?"
"식량이죠. 군인은 이틀만 굶어도 제대로 싸울 수 없습니다."
"랩터 말벌은 그 식량안보를 송두리째 박살 낼 수 있는, 아프가니스탄 테러 조직이나 북한보다 더 무서운 강적입니다. 심지어 5.56밀리 탄환이나 MLRS 미사일, 전차 같은 걸 쓸 수도 없죠."
장수말벌이 테러조직보다 더욱 무서운 강적이라니.
몇 시간 전에 들었다면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하수영의 설명에 집중하는 지금, 레넌 총장은 진지하게 그 말을 받아들였다.
"미국은 지금도 충분히, 넘치도록 강력합니다. 만약 미국을 멸망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존재를 꼽으라면, 저는 랩터 말벌을 꼽겠습니다."
"겨우 곤충 따위가 멸망으로 미국을 멸망으로?"
"겨우 곤충 따위가 아니죠. 이미 랩터 말벌은 남미에까지 퍼졌습니다. 콩 농사가 괜히 망한 게 아닙니다."
"콩 대흉이 랩터 말벌 때문입니까? 그럼 올해 곡물 가격이 폭등한 이유도……."
"근본적으로는 랩터 말벌이 굴린 스노우볼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미국에 랩터 킬러를 도입했지만 경호 지역만 지켜낼 뿐, 랩터 말벌은 계속해서 번성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바베큐가 모두 떨어졌고, 하수영은 툭툭 털고 일어났다.
"자, 이제 보러 가시죠. 랩터 킬러들이 어떻게 꿀벌들을 수호하는지 말입니다."
비프스 캘론은 소리 없이 껄껄 웃으며, 산악용 오프로드 차량들을 꺼내왔다.
휴대용 디스플레이에 수도 없이 많은 흰점이 반짝이며 움직이고 있었다.
"이게 이 지역에서 활동 중인 전부 랩터 킬러들입니다."
"중앙에 노란 점이 찍혀 있는 것들은 뭡니까?"
"충전이 필요해서 귀환 중인 개체들을 표시하는 겁니다. 빨간 점이 박힌 것은 살충 활동을 수행 중이라는 뜻입니다."
"아무 표시도 없는 개체들은 통상 정찰 활동 중인가 보군요."
"네, 그렇습니다."
"옅은 파란색으로 표시된 지역은 무엇을 나타내는 겁니까?"
"랩터 킬러가 실시간 감시 중인 구역을 나타내는 겁니다."
"거의 빈틈이 보이지 않는군요. 철저한 수색 능력입니다. 우리 육군 수색대도 본을 받을 만한 수색 대열입니다."
총장이 감탄하자 장성 중 한 명이 보이지 않게 식은땀을 흘렸다.
아마도 앞으로 수색정찰 수행능력에 대해 쏟아질 총장의 갈굼을 걱정하는 것이리라.
"여기 아무것도 안 하고 정지해 있는 개체들은 무엇입니까?"
"경호 임무를 수행 중입니다. 꿀벌들이 몰려서 꿀을 채취하고 있나 봅니다. 어디 보자…… 채소밭이로군요. 한 번 가볼까요?"
차량은 곧바로 해당 위치로 이동했다.
나무가 사라지고, 넓게 펼쳐진 채소밭이 보였다.
차에서 내린 레넌 총장은 윙윙거리며 열심히 날아다니는 꿀벌들을 볼 수 있었다.
"곧 꿀을 얻기 힘들어지다 보니 꿀벌들이 여기에 집중적으로 모여서 한탕을 서두르고 있군요."
'하, 한탕이라고?'
"저기 조용히 떠 있는 랩터 킬러가 보이시나요? 저놈이 지금 꿀벌들을 지켜주고 있는 겁니다. 요즘 랩터말벌들이 영악해서 꿀벌 본진보다는 사냥을 나온 꿀벌들을 잡아가려고 하거든요."
"영악하다고요?"
"랩터 킬러의 존재를 랩터 말벌들도 이제는 인지를 한 거죠. 그래서 놈들도 이동 시에는 지면에 최대한 가까이 붙어서 저공비행을 하며 탐지를 피합니다."
"……."
"벌집도 깊숙한 곳에 철저히 위장을 해서 짓기 때문에, 랩터 킬러가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있으면 탐지가 힘듭니다."
하수영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고, 총장 일행은 들으면 들을수록 이게 농부의 방충 작업인지 군사 작전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심지어 선공대를 보내서 꿀을 채집하는 벌들을 습격해서 이목을 끈후, 꿀벌집 빈집털이를 시도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 이후 야생 꿀벌집은 단 1분이라도 경계의 눈길을 떼지 않습니다."
총장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해도……."
하수영이 말을 받았다.
"경계 실패는 용서할 수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