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93화
235장 천조국 땅개 (4)
하수영의 예상대로 검문을 한 육군 근뇌파는 뒤집어졌다.
"아니, 이건 설마 랩터 킬러 2세대 모델?"
"이렇게 클 줄이야!"
"이 정도 크기면 거의 사이즈만으로 준 군전투용입니다!"
"공군 놈들은 이런 걸 반입 허가했으면서 전혀 관리감독을 하지 않는단 말인가!"
"어떻게 이런 전투 드론을 정규병 호위 하나 붙이지 않고 민간이 혼자 돌아다니게 놔둘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수송 차량에 변변찮은 무장 하나 없습니다. 이건 정말 미친짓입니다! 만약 불손한 무리들이 중간에 탈취라도 했다면!"
드론의 테러 무기화를 우려하면서도, 수송 차량이 무장하지 않았음을 비토하는 것은 조금 그렇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 이 칼날 돌출 장치를 보십시오! 이 정도 탑재 공간이면 충분히 경기관총 정도는 장착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근뇌파 중에서도 합리적인 태클을 거는 이는 있었다.
"그런데 이 정도 크기와 무게라면 전기 배터리로 움직이기에는 가동시간이 너무 무리일 것 같은데요?"
"칼날 돌출장치 들어내고 경기관총을 장착하면 무게가 더 무거워질 테니, 동력장치를 바꾸지 않는 한은 전투용으로 의미가 없겠습니다."
물론 근뇌파 내의 그런 소신 발언은 곧 잡아먹혔다.
"그거야 배터리를 엔진으로 교체하면 그만이지! 랩터 킬러가 기존 드론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겨우 무장이나 프리덤 그룹 특유의 멋지게 잘빠진 디자인 따위가 아니야!"
"맞다. 랩터 킬러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 놀라운 전술상황판단 능력에 있으니."
"개 100마리에게 쥐여준 소총보다 병사 한 명에게 준 권총 한 자루가 더 무서운 것처럼 말이다."
"살충 레이저로 주요 적군 인사의 눈을 정확하게, 스스로 판단해서 멎게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지적전투 능력인 줄 모르나?"
누가 이들에게 근뇌파라는 부당한 멸칭을 붙였는가?
"랩터 킬러는 그 전투인공지능이 99.9%를 차지하고 있고! 무장이나 가동 시간, 크기 따위는 모두 거들 기만 할 뿐이다!"
"아아, 제가 잠시 착각을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사령관님!"
"공군 이 머저리들 같으니. 이런걸 어떻게 호위 차량 한 대도 없이 알아서 이동하라고 맡길 수 있단 말인가!"
트레일러 운전대를 잡았던 백인 남자 운전수가 시가를 문 채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거, 다 끝났으면 빨리빨리 좀 보내주쇼. 지금 바빠 죽겠구만."
대령 한 명이 굳은 얼굴로 운전수에게 말했다.
"유감이지만 귀 차량은 보내줄 수 없습니다."
"아니, 뭐가 문제요? 요즘 미군들은 막 민간인 차량 멈춰 세우고 물건 뒤지고 그래도 되는 거요? 너 몇 군번이야?"
분위기가 험악해지려고 했지만, 이쪽은 비무장 퇴역 군인 출신 운전수 한 명.
수영농장 대형 드론을 만재한 컨테이너는 그렇게 압류되었다.
해당 부대는 즉시 컨테이너를 펜타곤으로 보내서 국방장관에게 보고했다.
"차관님, 이걸 보십시오! 무장과 동력만 교체하면 마구잡이로 도시를 휘젓는 살상 능력이 될 드론입니다!"
"고작 살충용 농사 드론을 가지고 육군이 너무 과민반응하는 거 아닙니까? 장관님이나 대통령님이 아시면 별로 좋지 못할 겁니다."
"당연히 아셔야지요! 우리가 보고서를 작성했으니 가감 없이 그대로 백악관까지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근뇌파는 육군 내 사조직이나 반란을 꾀하는 무리가 아니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미 육군과 평화, 안보, 그리고 국가를 사랑하는 군인들의 정체성일 뿐이다.
백악관은 귀찮은 보고를 받았고, 대통령은 주요 참모들과 의논했다.
"이건 공군에서 알아서 처리하기로 결정이 난 사항 아닙니까? 그런데 왜 아직까지도 소란입니까?"
육군이 랩터 드론의 본토 내 통제권을 얻기 위해 야단법석인 것은 잘 안다.
그들의 주장에 일리와 충성심이 넘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대통령은 하수영의 장난감에 굳이 손을 댈 마음이 없었다.
사이 나빠질 수 있는 일을 뭐하러?
'테러 조직이 드론 통제권을 얻어서 도시에 테러를 가할 가능성이라니……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들어줄 수야 없지.'
"아무래도 하수영 의원님이 육군과 직접 교섭을 시도할 모양입니다."
"그래요?"
"네, 육군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일부러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정작 육군은 그것도 모르고 투우사에게 돌진하는 황소처럼 움직이고 있지만요."
"그럼 우리도 일단 지켜봅시다. 아, 육군이 절대 선을 넘지 않도록 엄중히 주의를 주는 건 잊지 마시오."
"물론입니다. 대통령님, 너무 큰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조금 과격하고 애국심이 넘치지만, 육군도 우리 미국의 자랑스러운 방패입니다."
"방패라고 하는데 적을 짓밟는 데에 눈이 뒤집힌 철퇴 같아 보일 때 있어서 말이오."
***
6대의 트레일러 차량 중에서 총 4대가 근뇌파 검문에 걸렸고, 모두 압류를 당했다.
그러나 당황한 것은 하수영이 아니라 근뇌파, 그리고 육군 지휘부였다.
"왜 아직까지 아무런 항의도 없는 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검문에 걸려서 압류당했다는 걸 모를 리도 없을 텐데요."
"미확인 무기수송이라는 명분으로 압류한 게 너무 약했던 건 아닌가?"
육군은 나중에 둘러댈 말을 만들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정체불명의 무수송'이라는 이유로 신형 랩터킬러들을 압류했다.
하수영의 항의가 들어오면 육군참모총장이 당당히 만나러 나가서 진지한 대화 테이블을 열어볼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쪽이 아무리 좋아요를 눌러대도 상대는 전혀 반응이 없으니, 미칠 지경이다.
역시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내야 하나?
"세관에서 이미 샌더달 소장과 한번 트러블이 있었으니, 근뇌파가 작정하고 붙으려 한다고 오해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오해가 깊을수록 좋지. 그런 그럴수록 당연히 우리 지휘부에 항의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쩌면 근뇌파가 우리 지휘부의 의중을 이행하기 위해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그러면 안 되는데."
참모총장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하자 참모차장이 가슴을 펴고 말했다.
"그럴 리는 없으니 안심하십시오. 만약 그랬다면 벌써 펜타곤이나 백악관에 항의를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정보는 없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랩터 킬로의 활동 영역, 고도, 패턴은 엄연히 말해서 우리 육군이 관할해야 합니다. 하수영 의원도 그걸 알 겁니다. 그러니 굳이 우리 지휘부와 트러블을 만들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기다리지만 말고 우리가 먼저 들어가는 게 좋겠군. 다혈질 부하들의 과격한 실수를 정중히 사과 하면서 말이야."
"가시는 길에 압류한 드론들도 모두 챙겨가는 게 모양새가 더 보기 좋겠습니다."
"그 후에 랩터 킬러의 운용 미래를 함께 고심하면 되겠어. 좋아, 준비하게."
"네, 컨테이너 4대는 모두 수송 헬기에 달아놓았습니다. 지금 즉시 운반하면 될 거 같습니다."
"그런데 하수영 의원은 어디에 있나?"
"랩터 킬러 기지가 있는 캘론 목장으로 향하고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곳으로 이동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좋아. 근뇌파 친구들, 이제 검문소그만 철수하라고 명령을 내리게. 못 들은 척할 게 뻔하니 빼도 박도 못하게 확실히 전달하도록."
"네, 총장님."
***
4대의 트레일러를 챙겨서 캘론 목장에 도착했을 때, 하수영은 캘론과 함께 한창 바베큐 파티를 벌이고 있던 중이었다.
두두두두두!
요란한 로터음과 함께 육군 헬기 비행대가 나타나자 캘론은 눈썹 위에 손바닥을 얹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육군이 헬기까지 타고 무슨 일이지? 컨테이너까지 매달고 온 걸 보니…… 수송 작전이라도 펼치는 중인가?"
"아, 잘못 배송된 택배 돌려주려고 배달지까지 직접 들고 온 거 같은데요?"
"잘못 배송된 택배? 혹시 저 컨테이너를 말하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포장은 한 번씩 뜯어본 거 같지만요."
비프스 캘론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중요한 물건은 아닌 모양이군요. 하수영 사장님 반응이 그리 태연한 걸 보니 말입니다."
"돈과 미국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거라서요.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죠. 그리 비싸지도 않은 편이고."
"아하, 그렇습니까."
비프스 캘론은 조용히 끄덕거렸다.
대당 부품원가가 수백만 달러 이상이라는 걸 알았으면 표정이 바뀌었겠지만.
"그런데 미국만 있으면? 그건 무슨 뜻입니까?"
"하드웨어 주력 부품들이 거의 다 미국산이라서요. 부품들을 미국에서 사서 한국에서 조립을 한 거죠. 일부부품과 소프트웨어는 한국산입니다."
"호오, 무엇입니까? 랩터 킬러 업그레이드 부품은 아닐 텐데."
"누가 다가오는군요."
헬기가 적당한 곳에 착지하고, 육군 장성들이 내려서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캘론과 하수영은 당연히 그들이 누군지 몰랐다.
"포스타가 이런 외진 곳까지 직접 오다니. 하수영 사장님이 온 걸 알고 있나 봅니다."
비프스 캘론은 편안한 표정이었다.
육군 대장이라고 해봐야, 농축산업대기업 오너인 그에게는 동네 아저씨만도 못하다.
"안녕하십니까, 하수영 의원님, 저는 미합중국 육군 참모총장 레넌 대장입니다."
"하수영입니다. 저한테는 무슨 용무이신가요?"
"실은 제 부하 장성 중 일부 말썽쟁이들이 사고를 쳤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정중히 사과드리고, 수습을 위해서 왔습니다."
"아, 그 투스타 짬찌 말씀하시는 건가요? 괜찮습니다. 부대만 달라도 아저씨인데, 병사 9만도 안 되는 타국 군대 최고참이 뭐 계급으로 보이겠어요?"
한국 해군은 최근 급격한 증원에도 불구하고 9만이 안 된다.
"과격한 기질을 가진 부하 일부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무단으로 검문해서 컨테이너를 압류했다는 보고를 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놈들은 지휘부가 확실히 징계를 할 데니,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레넌 총장은 눈썹 하나 까딱 않은 채 정중히 사과와 말을 이었다.
"컨테이너들은 다시 모조리 챙겨왔습니다. 매우 중요한 물품이던데,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이 일이 우리 미군과의 관계에 금이 가지 않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애초에 육군과는 금 갈 것도 없는 데, 뭐 어때요? 저는 괜찮습니다."
하수영은 밝게 웃으며 말했지만, 레넌 총장은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애초에 금 갈 것도 없다?
지금 육군에는 대놓고 선을 그은 것인가?
"그리고 뭐 대단한 물건들도 아닙니다. 원래 연해주로 보낼 건데 잘못 실었거든요."
"잘못 실었다고 하셨습니까?"
"네. 다시 돌려보낼 테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안 돼!
신형 랩터 킬러가 다시 미국을 빠져나가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어!!
육군의 바램은 싸우고 뺏는 게 아니라, 멋지고 성능 좋은 랩터 킬러운용통제를 맡고 싶을 뿐이란 말이다!
"그, 그럼 컨테이너 6대 모두가 잘못 실은 화물이란 말씀입니까?"
"아뇨, 5대만요. 1대는 제대로 실렸던 터라 개조보수를 다 끝내고 지금 이렇게 바베큐 파티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아니, 시간이 얼마나 됐다고 그 많은 랩터 킬러들 업그레이드 작업을 다 마쳤다고? 그것도 혼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