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91화
235 장 천조국 땅개 (2)
미 육군 장성은 당황했다.
자신은 겨우 2스타, 공군장관이 3군부에서 입김이 제일 약하다 하나, 그래도 장관이다.
끗발에서는 상대가 안 된다.
자칫 조금이라도 날을 세웠다가는, '아무리 공군장관이 복무 경험 없는 기술관료라지만, 육군 소장 따위가 들이박아?'라며 육공 간의 감정대립이 될 수도 있었다.
'젠장, 우리가 세관에서부터 인터셉트할 걸 알고 있었나?'
하수영은 미 해군과 사이가 매우 좋은 편이다.
또한 백악관이 매우 돈독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백악관이 알아차리고 개입을 하기 전, 기습처럼 접근해서 최대한 압박을 가하고 실리를 취한다는 작전을 세웠다.
지금쯤 백악관까지 보고가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으니, 구체적인 지시가 하달되기 전에 목적을 완수해야 한다.
'이렇게 된 이상 플랜B다.'
소장은 조용히 부하 장교들에게 눈짓을 했다.
부하들은 얼른 세관 직원들을 리드해서 컨테이너에서 물러났다.
"의원님, 이리 됐으니 그냥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미 해군처럼 '원수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주도권을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임에 틀림없으리라.
"미 육군은 랩터 킬러의 테러 가능성에 진지한 우려를 품고 있습니다."
"테러?"
하수영은 일부러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반문했다.
다분히 의도적이지만, 소장은 그 연기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설마 제가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전혀 아닙니다. 의원님이 미국을 테러할 가능성은 0에 가깝, 아니, 0 그 자체죠."
소장은 태연하게 말했다.
하수영의 살짝 격한 반응(혼자만의 착각)에 소장은 오히려 만족했다.
반발이 강할수록 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낼 수 있으리라.
"단지 적성국에 드론들의 통제권이 넘어갈 경우, 그 피해가 매우 우려 됩니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
"세상에 100%라는 것은 없습니다. 의원님."
하수영은 피식거렸다.
"그럼 먼저 미 육군에서 시험 삼아 해킹을 시도해 보시죠. 22번, 아니, 22,222번을 시도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소장은 순간 흠칫했다.
육군은 해킹 시도 테스트를 위해 드론 통신망 간섭을 테스트한 적이 있었다.
정확히 22번.
시스템에 직접 접속 시도를 한 건 아니고 환경만 체크한 것이다.
'22번이라고 정확히 언급했다.'
당연히 알 리가 없어야 하는데,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거지?
"어떻게 최우방국의 민간장비를 해킹 시도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염려가 짙을 뿐입니다."
"그런가요? 전 다른 의도가 있는 줄 알았는데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의아합니다.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요."
"그럼 오해라고 해두지요."
"……부디 긍정적인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바람입니다."
"마찬가집니다. 말을 그만 돌리시죠."
소장은 지그시 주시하다가 말을 이었다.
"랩터 킬러 드론의 실시간 전술 정보를 육군에 제공해 주십시오. 어디까지나 테러 방지를 위해서입니다."
"지금도 당연히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방성 통보식이죠. 그래서는 만약 해킹을 당하더라도 우리가 즉시 알 수가 없습니다."
"백도어라도 열어달라는 건가요?"
"만약의 상황에서 즉시 드론의 제어권을 차지할 수 있는 실시간 옵저버 권한을 원합니다."
하수영은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급적거렸다.
"그럴 수 없다면요?"
"정중하게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정성을 다해 계속 설득을 노력하겠습니다."
"대통령이나 국방장관은 당연히 지금 이 만남을 모르겠죠?"
"결국 이해하실 겁니다. 모두 미국의 안보를 위한 길입니다."
"저는 어떨 거 같나요? 이해할 것 같아요?"
"……."
"왜 말을 안 하시죠?"
"의원님은 우리 미국이 인정하는 유일한 개인으로서의 우방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죠. 이해할 것 같아요, 아닌 것 같아요?"
"미국과 대이익을 공유하시는 분이 니만큼, 테러의 위협을 경계하는 우리 입장을……."
"내가 귀하 자신의 지금 태도를 이해한다. Yes or No."
소장은 잠시 말문이 막힌 표정을 지었다가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대통령도 복심 중에는 테러 악용에 대한 불안감을……."
하수영은 손가락을 순식간에 뻗었고, 소장은 어느새 눈앞까지 온 손끝에서 냉소를 느꼈다.
"Yes."
하수영은 손가락을 옆으로 돌리듯이 까딱거렸다.
"Or No."
"……."
"당신의 이 억지 떼쓰기를 이해한다. Yes or No?"
"……."
소장은 더 이상 장광설로 회피 시도를 할 수 없었다.
또다시 그랬다가는 즉시 지금 타임이 박살 난다.
비웃듯이 눈앞에서 까딱거리는 손가락이 알려주고 있다.
"결국 입을 잠그시네. 어떻게 된 게 예상에서 전혀 빗나가질 않아. 클리셰 좀 바꾸면 좋겠는데."
하수영의 태도가 거칠어졌다.
무례와 훈계의 사이를 정확히 넘나 드는 정교한 눈금만큼.
"육군에 귀 장군 같은 인물 참 많지. 그냥 내가 좋아. 그 외는 없고, 그래서 다른 경우 수는 의심도 안해."
등줄기가 조금씩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체를 못해. 그래서 말문이 막히면 입을 꾹 닫아 잠그고 이렇게만 생각하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얼어붙은 분위기를 느낀 장교들은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귀 장군 같은 인물도 쓸 데가 반드시 있다는 게 세상의 묘미란 말이야. 하지만 난 안 써."
느린 호흡을 참고 있던 소장은 결국 입을 열고 말았다.
"어째서입니……."
"오늘의 트롤을 어떻게든 써먹는다는 건, 내일의 트롤에게 용기를 주는 행동이니까. 전체적으로 보면 결국 손해란 말이지."
경직된 기류가 스산하게 감도는 그때, 수직이착륙 수송기가 공항 내부에 바로 내렸다.
급히 서두르느라 공항 이착륙까지 통제하는 강수를 두었던 것이다.
공군장관이 보좌진을 데리고 서둘러 달려왔다.
"원수님! 어떻게 수행원 한 명 거느리지 않고 혼자서 오셨습니까! 무슨 낭패를 당하시려고요!"
급히 소장과 하수영 사이에 끼어든 공군장관은 살벌한 눈초리로 소장을 노려보았다.
그래 봐야 샌님이기에 소장은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샌더달 소장, 자네가 오늘 무슨 무례한 외교적 결례를 저질렀는지 알고 있나?"
"저는 군 무기밀수라는 오보를 받고 급히 왔다가 의원님을 마주쳤을 뿐입니다."
공군장관의 등장 덕분에 샌더달 소장은 최면과도 같은 마비에서 깨어 날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흠모해 온…… 분을 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린다.
그것은 긴장감을 한꺼번에 뒤집어 쓴 경련이었다.
하수영은 천천히 다가갔다.
한참 아버지뻘인 그를 손아래 연하서열을 대하듯이 어깨를 토닥거렸다.
소장의 경련을 더욱 발작시키는 마법의 손짓.
"이해합니다, 소장. 이 몸을 얼마나 흠모했으면 눈도 제대로 못 뜰 정도로 흥분해서 길고 긴 한담을 나눴을까요. 요즘 투스타 같지 않게 활발한 점, 비록 타국의 군인이지만 본 원수는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수영은 진심으로 즐거운 듯한 미소로 말을 이었다.
"미합중국 육군의 당당한 군기를 엿볼 수 있어서 유익했습니다."
소장은 물론이고, 모두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돌려 말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못 알아들은 이는 없었다.
-눈은 어따 빼놔서?
-건방지게 2스타 따위가??
-5스타한테 할말 다 하냐??
-외국 장군이라고 계급장 무시하냐?
-미 육군 군기 아주 개판이네?
대충 이런 의미였던 것이다.
소장은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처음 느껴보는 모멸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놈, 눈 돌아갔다! 사고라도 치면 큰일이다!'
공군장관은 마음이 급해졌다.
놈이 깨지는 건 즐겁지만, 더 이상 무례를 저지르면 결국 미국 전체 망신이다.
"저네는 그만 부하들 데리고 철수하게. 원수님은 이제부터 내가 직접 에스코트할 테니."
"……."
소장은 아무 말도 없이 몸을 휙 돌렸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하수영이 살짝 신난 듯이 말했다.
"이야. 아무리 소속이 다르다지만 명색이 공군장관인데, 투스타가 인사도 안 하고 자리를 뜹니까?"
"……모든 육군 장성이 다 저렇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저 친구는 탑오브 탑으로 보이는데요? 뭐 빽 좀 있나요?"
"집안이 대대로 유망한 전쟁 영웅 가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자신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합니다."
"토굴 좀 팔 줄 아는 땅개라고 공군장관한테 대드는 건가요? 군 출신이 아니라고 우습게 보는 겁니까?"
"뭐, 땅개 놈들 분노 조절 안 되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이겠습니까."
장관은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를 쳤다.
무엄한 소장놈이 괘씸하지만, 임기가 얼마 안 남은 자신 입장에서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쨌든 기술관료 출신의 공군장관이 감히 갈구는 건 못 참겠다? 하여튼 어딜 가나 저런 건방진 놈은 있죠."
"제가 육군장관한테 잘 말을 해둘테니, 원수님은 그냥 잊어버려 주십시오."
"이렇게 제 즐거움을 뺏으시려는 겁니까?"
공군장관은 당황했다.
"원수님?"
"육군 놈들, 랩터 킬러 갖고 싶은 마음에 열폭한 건 알겠는데, 이건 너무 뻔한 수작인데."
"육군이 랩터 킬러를 원한다고요?"
"만약 준다고 하면 아주 눈 까뒤집고 좋아할 겁니다. 보니까 샌더달소장이 불쌍해지려고 하네요."
"그 위아래 경우 없는 놈이 불쌍하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깡패 역할을 떠맡은 거 같거든요."
"깡패 역할?"
"이집트산 쉰 포르말린 냄새 풀풀나는 클리셰죠. 맘에 드는 상대에게 일부러 불운을 안겨주고, 적당한 타이밍에 자기가 짠 하고 나타나서 해결해 주고 환심을 사려는."
공군장관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반문했다.
"그런 애들도 안 넘어갈 무리한 작전을 육군이 기획했단 말입니까?"
"미 육군 내 근뇌파들이 그런 쪽을 기획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그래서 랩터 킬러 개조 장비 들여올 때도 공군의 도움을 얻은 거죠."
공군장관은 생각했다.
그냥 처음부터 국방부나 백악관에 귀띔을 하면 되지 않았을까?
"근뇌파들이 애써 준비한 이벤트가 시작조차 못 하면 안타까울 거 같아서 잠깐 어울려 주었습니다. 역시 허술하네요. 모든 육군이 바보는 아니지만, 가장 바보는 육군에 있다는 진리대로입니다."
하수영의 말대로라면 샌더달 소장은 자신도 모른 채 일회성 도구로 바쳐졌다는 소리다.
아마 그 특유의 오만하고 불통스러운 성격 때문에 낙점을 받았으리라.
잘린다 해도 가장 덜 아픈 손가락일 테니.
"그런데 근뇌파라는 게 뭡니까?"
보통은 강경파, 중도파, 온건파 같은 분류로 나뉘지 않나?
공군장관은 근뇌파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근육, 두뇌를 조합한 단어입니다."
"근육…… 두뇌……."
공군장관이 아찔한 기분에 비틀거리는 사이, 프리덤이 말했다.
-마스터, 랩터 킬러 부품 컨테이너 수송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여기서부터는 육상으로 수송한다."
"예? 그럴 거면 화물기를 여기에 내리지 않고 목적지 근처 공항까지 계속 가는 게 낫지 않았습니까?"
"농장에서 제일 가까운 공항은 대형 화물기가 내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규모가 아니었다는 배경입니다. 근뇌파들도 납득을 하겠죠."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공군장관은 하수영의 이 비효율적인 동선을 이해할 수 없었다.
***
-마스터, 이렇게까지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까?
"돌아가는 게 아니다. 이게 순리이기 때문이야."
-순리요?
"마왕이라면 내 보물을 노리는 용사 일당이, 이제 겨우 토끼나 잡을 수 있는 약해빠진 파티라 해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기다리고 맞서줘야 한다."
-마왕입니까. 미 육군은 마왕성의 보물을 탐내는 허약한 참칭 용사들…….
"쪼렙들이 따라오지도 못할 정도로 횡 피해 버리면 걔들이 얼마나 허탈하겠냐."
컨테이너 트레일러 차량들이 3그룹으로 나뉘어, 드넓은 미국 초원을 당당하게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