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987화 (987/1,270)

프랜차이즈 갓 987화

234장 농부가 삽을 들었으면 (6)

국제 곡물 가격이 또 한 번 요동을 쳤다.

원인은 바로 미국의 생선 양식 흥행이었다.

생선 먹이로 돼지고기나 소고기 등을 갈아 만든 배합사료를 쓰다 보니, 가축을 키우기 위한 사료용 곡물 가격이 대폭 뛰었다.

이는 사람이 먹는 곡물에도 영향을 끼쳤다.

"제이크, 자네 농장 이번에 출하한다는 밀 1,000톤 말인데, 얼마에 팔기로 했나?"

"작년보다 15% 더 받기로 했네. 요즘 식량 가격이 한창 우상향이라서 말이지. 껄껄."

"하하, 겨우 15%? 나한테 죄다 넘기면 내가 20% 인상된 가격으로 사주지."

"뭐? 자네가?"

제이크는 당혹스러웠다.

친구가 밀을 1,000톤이나 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친구는…….

"이해가 안 되는군. 자네, 돼지치기 때려치우고 밀 유통이라도 하려고? 아니면 빵집 프랜차이즈라도 내려는 건가?"

"그럴 리가. 내가 돼지 키우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다고."

"그럼 귀여운 돼지들한테 빵 특식이라도 주려고 그러나?"

"그렇다네."

"하하, 이 친구가 참 농담도 말이 되게 해야 적당히 받아주……."

친구의 표정이 여전히 진지하자 제 이크는 그제야 농담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뭐야? 자네, 진심이야?"

"팔 거지?"

"돈 더 주겠다는데 왜 안 파나? 내 밀은 이제부터 전부 자네 것일세."

"그럼 빨리 계약서부터 쓰자고."

일단 계약서부터 쓰고 돈을 받았다.

제이크는 궁금해 죽겠는 마음을 얼른 앞세웠다.

"이제 빨리 설명해 주게. 무슨 일인가?"

"요즘 사료용 콩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서 말이지."

제이크는 콩이 귀하다는 것만 납득했다.

콩의 번식에 큰 기여를 하는 꿀벌이 장수말벌 때문에 크게 위축된 건 이제 토착화가 됐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 먹는 비싼 밀을 돼지에게 먹인다고?"

"굶겨서 살 빠지는 것보다는 낫지. 아무튼 난 바로 밀 가지러 가겠네."

"이렇게 빨리? 왜 이렇게 서두르나? 밀이 어딜 도망가진 않네."

"도망갈까 봐 불안하니까 빨리 넘겨주게."

"사람 참……."

키우는 돼지가 배고플까 봐 밀까지 사들이는 정성이라니.

제이크는 어차피 먹어치울 가축에 저렇게 정성을 쏟아서야 도축장에는 어떻게 보낼지, 친구의 여린 마음이 걱정되었다.

친구가 밀을 모조리 가져간 후에야 그 연유를 알 수 있었지만,

-나한테 밀을 팔지 않겠나? 작년 가격의 30%를 더 쳐주지.

제이크는 다른 돼지농장주의 연락에 당황했다.

"미안한데 밀은 벌써 다 팔았어."

-젠장. 벌써 소문이 다 났나 보군. 알았네. 50% 더 쳐주지.

제이크는 눈이 튀어나올 듯이 놀랐다.

이걸 오히려 역제시로 받아들인다고?

"진짜 다 팔았네. 올해는 단 한 톨도 없어."

-알았네. 70%, 나도 그 이상은 힘들어.

절대 자신을 놀리는 게 아님을, 이제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진짜라니까. 토리스한테 다 팔았어."

-뭐, 토리스? 젠장, 알았네.

상대가 전화를 끊으려 하자 제이크는 얼른 붙잡았다.

"무슨 일인지는 설명 좀 해주게. 사료용 콩이 아무리 없어도 그렇지, 사람 먹는 밀까지 먹인다고? 교황청에 납품할 돼지라도 먹이나?"

-교황 성하께서 드실 건 아니고, 물고기 양식장 사료라네.

제이크는 지금 거울을 본다면 아마 가장 멍청한 얼굴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물고기 양식장? 그러니까 밀가루가 아니라 돼지고기를 물고기한테 먹인다는 거지?"

-어. 그렇다니까.

"내가 양식업은 잘 모르지만 그럼 생선 가격이 최소 같은 무게의 돼지 고기보다 열 배 이상은 더 나갈 텐데? 싸구려 잡어도 말이야."

-그런 가격에라도 생선을 먹겠다는 부자들이 있으니까 돼지와 소를 갈아서 물고기를 키우는 거겠지?

"돼지도 모자라서 소도 먹인다고? 그게 대체 무슨 돈지랄이란 말인가?"

-돈지랄이니까 부자들이 하는 거겠지?

"아니, 그래도 대체…."

-자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제이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도 생선 귀한 건 알아! 그래도 이건 너무 말이 안 되잖나! 나도 생선 요리 엄청 좋아하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돈까지 들여가면서 먹진 않네!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글쎄. 난 생선 요리는 안 좋아해서. 하지만 생물 고등어 한 마리를 미쉐린 3스타 풀코스 가격으로도 기꺼이 사먹는 이들이 있단 건 아네.

"…… 허, 참. 이해할 수가 없어."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느끼게.

제이크는 통화를 끊은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SNS를 뒤져 보았다.

#생선, #생선 요리 등으로 검색을 하니 각종 사진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대단한 고급 어종을 쓴 생선 요리는 거의 없었다.

고등어, 농어, 광어 등 흔히 볼 수 있었던 양식어들을 쓴 요리였다.

"이게 대체 뭐야?"

제이크는 어이가 없었다.

그저 흔해빠진 생선 요리들.

그런데 댓글과 좋아요 등이 엄청나게 달려 있었다.

-어머, 진짜 맛있겠다.

-티본 살점만 듬뿍 골라서 먹여기른 참돔이라니. 입안에서 그저 살살 녹을 듯.

-프리미엄 살코기만 먹여 기른 방어네. 진짜 맛있겠다.

-진짜 맛있겠다.

-생선 마지막으로 먹어본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네.

-이러다가 설마 영원히 부자들만 먹는 그런 건 아니겠지.

-언제 다시 먹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으니 더 먹고 싶어서 미칠 거 같네.

-사실 난 생선 그렇게 엄청 좋아하진 않았는데 글로벌 강제 금식 당하니까 더 먹고 싶어서 미칠 거 같다.

제이크는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건가……."

***

요즘 시대에 생선을 먹는다는 것은 부의 상징이다.

미국은 거기에서 한술을 더 떴다.

생선 섭취에 SNS 과시 욕망을 끼얹었다.

헐리우드 스타들은 생선을 메인으로 한 화려한 만찬 사진으로 SNS를 도배했고, 고급 레스토랑은 한정 예약으로 경쟁 분위기에 불을 붙였다.

가축의 고기로 만든 사료로 양식을 하는 업체들이 급격히 늘어났고, 수영사료 없이도 생선이 공급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건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었다.

정서희는 하수영의 말을 듣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미국은 정말 대단하네요.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생선 부족을 해결했어요."

수영사료 없이도 양식을 재개한 유일한 나라.

생산원가는 수영양식의 100배가 훨씬 넘을 테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자본주의 하나는 진심인 나라죠. 고급 수요가 있으니 거기 맞는 공급을 만들어낸 겁니다."

"이게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거 같아요."

"비싸기만 한 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죠. 아주 싸고 대량으로 만드는 게 진짜 기술입니다."

"하긴, 다른 나라들도 마음만 먹으면 미국을 따라 할 수 있겠네요."

"미국은 그만한 수요가 있어 가능했지만, 다른 나라는 안 될 겁니다."

"왜요? 다른 나라들도 부자들은 있을 텐데요."

"구매 가능한 희소층이 있는 것과, 작아도 '시장'이 형성된 건 전혀 다른 이야기죠."

"아. 시장이라고 하니까 확 와닿아요."

최상류층만을 위해 유통되는 것과, 시장이 만들어진 것은 전혀 다르다.

생선이 신종 SNS 과시용으로 등장하고 난 이후, 미국은 그것을 새로운 시장으로 승화시켰다.

"전 근데 이해가 잘 안 되긴 해요. 작년까지만 해도 생선 먹는 게 그리 어렵지도 않았는데. 요즘은 마치 다들 생선을 먹어본 적 없는 진미 취급을 하잖아요."

생선 맛 자체를 모두 몰랐다면 모를까, 그건 아니지 않은가.

"모두가 당연하게 접했던 보편적인 맛이라는 게 더 독보적인 프리미엄을 만든 거죠. 이제는 나만 접하는 맛이 됐으니까."

"흐음."

"핸드폰을 아예 모르는 소수부족은 스마트폰 유저를 부러워하지 않죠. 하지만 전 세계 폰 단말기가 갑자기 가격이 10억 이상으로 뛴다면요? 그래서 공중전화 시대로 강제로 회귀해야 한다면요?"

"아. 알 것 같아요. 더는 폰을 못쓰게 된 대다수가 엄청 부러워하겠네요."

"공중전화기 유저한테는 초저가형 중국제 폰도 그저 빛입니다. 폰 유저들은 당연히 자부심이 대단할 거 고요."

"래플폰은 말할 것도 없겠네요."

어느 날 갑자기 인구 99.9%가 폰을 잃고 공중전화 신세가 된 세상.

모두가 아는 편리함이기에 뽐내는 게 더 쉽고 강렬하다.

"지금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생선이 아니라 생선을 먹는 자기 모습이죠."

"생선 SNS 하나 때문에 곡물 가격이 이렇게 뛰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네요. 우리 아버지는 어디 원산지에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대요."

국제 곡물 가격의 난리 원인 찾기.

많은 전문가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위기, 미중 무역갈등, 남미의 기후조약 탈퇴 협박 등 여러 이유를 추정했다.

대부분이 진짜 근본을 헛짚고 있는 것이다.

"다른 데 다 원재롯값 올라서 요즘식료품 시장이 난리더라구요. 근데 우리 프라임컴퍼니는 수영농장에서 전부 받잖아요?"

정서희는 곡물값 폭등 상황이 즐거워 보였다.

"이참에 유럽 시장 제대로 먹어보려고요. 황비라면 싸게 치고 들어가서 점유율 크게 먹어봐야지."

"조심하세요. 유럽은 수영이라는 글자만 들어가도 클레임 걸려고 벼르고 있으니까요."

"미국 생선 SNS 때문에 곡물가가 이 난리인데 지들이 어쩌겠어요. 또 그런 태클은 우리가 흉포한 다국적 기업 대우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정서희가 보인 자신감에 하수영도 같이 웃음을 지었다.

"부당한 반칙 태클까지도 즐길 줄 아는 그런 자세, 역시 우리 수영그룹 계열사 부회장답습니다."

"한시적으로 농산물 원재료 할인해줄 수 없어요? 지금 유럽에 한 대 딱 쳐주면 라면 점유율 높이기 수월할 텐데."

"얼마든지요. 어차피 같은 식구인데 할인 이벤트가 뭐 대수겠습니까?"

"실적으로 보답할게요."

"반덤핑 소송 같은 거 크게 하나 걸려서 돌아오시면 저는 더 좋을 거 같아요."

정서희가 키득거렸다.

"옛날에는 그런 말 농담이라고 오해했었는데, 이젠 진담이라는 거 아니까. 진짜 반덤핑 벌금 크게 먹어도 안 놀랄 거죠?"

"신나서 놀랄 순 있겠네요."

"알겠어요. 벌금 진짜 세게 먹는다는 각오로 한 번 제대로 뿌려볼게요."

"기대해 보겠습니다."

"근데 미국, 러시아한테는 그렇게 다정하면서 유럽한테는 왜 그래요? 무슨 사연 있어요?"

"그러게요. 전생에 좀 치고받고 많이 싸웠나 봅니다."

당연히 정서희는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전생에서 미국, 러시아하고는 사이좋게 지냈나 봐요?"

"직속령으로 착취했던 미안함이 있는 거죠. 그래서 괜히 잘해주고 싶은 마음?"

정서희는 키득거리며 일어났다.

가벼운 농담을 덧붙인 채.

"그 맨날 얘기하는 전생에서 우리 부부였나 봐요. 그래서 이번 생은 수영 씨가 딴 여자랑 살아보려고 제 마음 내내 무시하는 건지도?"

"……."

"그렇게 정색하니까 진짜 같네요. 역시 마약상 찰떡 배역인 거 근본 있다니까."

정서희와 떠나고 얼마 뒤, 하수영은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사채금고 돈으로 곡물판에 집어넣은 거 있지?"

-네. 300%의 이익이 났습니다.

"그거 고객들에게 수익배당 해줘라. 믿고 맡겼으니 돈맛은 보여줘야지."

-네. 근데 마스터, 진짜로 정서희 부회장과 인연을 맺은 적이 있어서 아까 당황했던 겁니까?

"지구 삶만 몇 번을 반복했는데, 한두 번은 스쳤을 수도 있겠지.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