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983화 (983/1,270)

프랜차이즈 갓 983화

234장 농부가 삽을 들었으면 (2)

사람들은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감히 수영사채께…… 홍보를 당해?"

"누추한 우리에게…… 수영사채가 홍보를 하신다고?"

"이건 분명히 스팸 광고가 틀림없어!!"

수영사채는 금융계의 아이돌이다.

재정이 가장 튼튼하고, 이자도 높으며, 국가 신용도보다 높다.

-한국이 망해도 수영사채는 망하지 않는다. 수영사채의 실제 자산대부분은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그전에 미국은 어떤 일이 있어도 수영그룹이 망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 전쟁 위기? 미국은 차라리 선제적으로 북한을 증발시킬 것이다.

-러시아도 잊지 마라. 우크라이나에 쏟던 정성으로 북한을 '불곰'해줄 것.

그간은 예금을 맡기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일반 예금이 너무 한정되어 있다.

수영사채는 이제껏 한국에 존재하지 않았던, 특수한 형태의 금융업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먼저 들어간 선구자들만 하염없이 부러워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예적금+펀드 특판 홍보를 당했으니..

쉽게 믿을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CVN 케이블을 통해서 대대적으로 나온 광고임에도 그랬다.

"수영사채가 뭐가 아쉬워서 광고 따위를 하냐?"

"예금 제한만 풀어도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서 달려들 텐데."

"저것은 해로운 허위 광고다."

"누가 수영사채를 사칭하는 소리를 내었어?"

"프리덤, 저 광고 내용이 사실이야? 수영사채에서 내보낸 광고가 맞아?"

"프리덤, 수영사채는 일반 예금은 더 못 받는 거 아니었어?"

이에 프리덤이 대답했다.

-주인님, 저것은 수영사채에서 내보낸 광고가 맞습니다.

-수영사채는 앞으로 제한 없이 일반 예금을 받기로 했습니다.

-시중은행보다 예금리가 1% 높고, 예금 보호 5,000만 원 상한이 없다는 게 장점이군요.

"헉! 보호가 안 되는 게 왜 장점인데?"

예금 만기를 맞이해서 이전을 알아보던 이는 기겁했다.

원래 보호 상한액이 있어야 안심이 되는 것 아니었나?

-무조건 원금 보호가 되기 때문이죠. 수영사채가 망해서 돈을 못 주는 것보다는 예금 보호 공사가 망하는 게 더 현실적일 겁니다.

"아, 그런 소리였어?"

-우체국은 국가가 예금 전액 보장하는 거 아시죠? 수영사채는 한국이 망해도 보장 능력이 살아 있을 겁니다.

"나 이번에 만기예금 싹 다 수영사채에 옮기고 싶은데. 수영사채 본점이 청담에 있던가?"

-수영사채를 찾아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제게 한마디만 하시면 됩니다.

"아아! 그 한마디?"

-네, 그 한마디입니다.

"좋아, 프리덤. 수영사채에 관한 모든 걸 너에게 맡길게."

-권한 허용 대상 수영사채, 확인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폭발적으로 수영사채 신규 가입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기존 예금 가입자 중에서 한도 때문에 돈을 못 넣은 이들도 마구마구 예금 이동을 시작했다.

처음 수영사채가 설립되었을 때 일어났던 1차 뱅크런.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2차 뱅크런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매일매일 쏟아지는 신규 가입자, 신규 계좌, 신규 수신액에, 수영사채 직원들은 샴페인을 터뜨렸다.

"으하하하! 예금이 마구마구 복사되고 있다구!"

"와씨, 신규 가입 받기 시작하니까 장난 아니네요."

"전 지금 무서워지려고 그래요."

"이러다가 대한민국 은행들 전부 다 망하는 거 아닌가요?"

"이거 금감원 제재 들어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걱정 마, 걱정 마. 군사 꼴랑 천명 거느린 황제가 천만대군 제후국토벌하는 거 봤어?"

"토벌 들어오면 오히려 땡큐죠. 바로 들이받아서 황제 자리 뺏어 버리면 그만."

"아, 혹시 그걸 노리고 회장님께서 제한 풀어버리신 건?"

"혹시 설마?"

0.1%의 금리에도 신경을 쓰는 이들에게 1%의 금리 차이는 벙커버스터나 마찬가지.

고객들이 줄줄이 이탈하자 시중은행들은 비명을 지르며 금감원으로 달려갔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고객들이 수영사채로 이탈하고 있어요!"

"수영사채는 지금 한도 상한에 걸린 것 아니었나요?"

"WST인가에서 들어온 거, 그거 아직 다 채워 넣지도 못 하지 않았나요?"

"지금 수영사채가 고객들을 쓸어담고 있단 말입니다!"

금감원은 은행들의 불만이 폭주하자 얼른 상황을 살폈다.

수영사채의 수신총액을 조회하고는 기절초풍을 할 뻔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수영사채 총수신액이 2,00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이 중 본인예치액은 1,250조! 나머지 750조가 일반예치액입니다!"

"얼마 전 WST 120조로 유예기간을 맞았는데 630조가 오히려 더 늘다니!"

빚을 채워 넣으랬더니, 오히려 몇 배로 더 늘린 꼴이다.

(물론 진짜 빚은 아니다.)

그래서 금감원 부원장이 손수 하수영을 찾아갔다.

"그래요?"

하수영은 처음 듣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원장은 그런 반응에 오히려 안도했다.

하수영이 작정한 게 아니라면, 이제 잘 수습을 하면 되는 일이다.

"제가 일단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네, 의원님."

잠시 어딘가 통화를 한 후, 하수영이 몹시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이런. 부원장님의 말씀이 사실이군요."

"그렇지요? 그러니까 이제라도……."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그만큼 잔고를 잘 채워 넣겠습니다."

부원장은 몹시 멍청해진 얼굴로 반문했다.

"예?"

"3,150조가 넘으려나요? 좀 큰돈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채워 넣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의원님?"

"아, 그리고 서버 오류라고 합니다. 디버깅했으니까 이제 중단되었을 겁니다."

부원장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 이게 아닌데…….'

"저어. 의원님. 이게 그렇게 간단히 흘려보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다른 은행들은 뱅크런 때문에 패닉 상태입니다."

"그럼 어떡해요?"

"오류 이전으로 사태를 되돌리셔야……."

"정말 그렇게 할까요? 한국대 경제학과 87학번, 행시 88년 패스, 서초구 모란고등학교장 배우자와 한국대 미술학과 재학생 23살 딸과 함께 역삼동 주 크로팰리스 A동 13층에서 행복하게 사시는 뉴월드 강남점 VIP 트리니티 등급의, '현직 금융감독원 박전훈 부원장님'의 지시대로 모든 신규 가입, 개설, 예금을 취소 한다고 뉴비 고객님들께 통지하면 될까요?"

부원장은 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언제 봤다고 하수영이 자신의 신상을 저렇게 줄줄이 꿰고 있단 말인가?

아니, 그것보다는…….

'고객들한테 전부 내 이름으로 덮어씌우겠다고?'

전국의 수백만, 수천만 일반 예금주들한테 신상을 탈탈 털리고 조리 돌림을 당할 걸 생각하니, 그저 끔찍했다.

"휴, 말씀이 없으시네요. 저는 심약해서 이런 침묵의 압박을 견디지 못합니다."

하수영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제가 졌습니다. 알겠습니다. 지엄하신 금감원 박전훈 부원장님의 명으로……."

"잠깐, 잠깐만요! 의원님!"

"네, 박전훈 부원장님."

들어갔어!

분명히 이름에 악센트가 들어가 있다고!

"으음, 생각을 해보니 굳이 선량한 제3자 피해자를 다수 양성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3,150조 원을 채워 넣으라는 뜻인가요?"

"그것이 순리이지 않겠습니까?"

"근데 만약 유예기간을 못 지키면 어떡하죠? 청문회에 서야 되나요? 큰일인데."

"설마 청문회까지 열릴……."

"청문회 드레스 코드는 한 번도 생각을 안 해 놨는데, 뭘 입어야 어울리지?"

"……."

"순박한 농부? 야성의 농부? 졸부 농부? 스마트 파머? 부원장님, 어느게 나아 보여요?"

이미 얼이 빠진 부원장은 넋이 삭제된 얼굴로 말했다.

"무슨 차이가 있는 겁니까……?"

"……."

"순박은 멜빵바지에 삽을 들 거고요. 야성은 4륜 무한궤도 트랙터를 탈 겁니다."

"……."

"졸부는 보석으로 잔뜩 치장한 지게를 멜 거고, 스마트는 흰 가운에 안경과 ADM사 CPU를 가슴에 부착할 겁니다."

"……저는 그나마 졸부가 가장 무난, 아니 멋있을 거 같습니다. 아니, 잠깐만요! 이게 아닌데!"

"역시 학살의 농부가 낫겠죠?"

"그게 아니라! 아니아니, 그건 보기에 원래 없었습니다!"

갑자기 학살의 농부는 뭐야?

그런데 왠지 듣고 싶다.

"그나저나 학살은 뭡니까?"

"후후, 순순히 내 옥수수를 사가면 이 도시를 살려 주겠다는 죽음의 곡물 상인이죠. 물론 황금만 받습니다."

처음 들어 봤다.

죽음의 무기 상인도 아닌, 죽음의 곡물 상인이라니.

부원장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럴 때가 아니다!'

하수영의 페이스에 말린 것을 자책하며, 부원장은 얼른 생각을 정리했다.

"신규 예금주를 내보낼 필요 없습니다! 청문회에 설 일, 없습니다! 제 이름을 공식 언급하실 필요도! 없을 겁니다!"

"네? 하지만 지금 시중은행들이 부원장님을 매달려고 하는 거 아니었어요?"

제 목이 매달리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하마터면 그렇게 물어볼 뻔했다.

"전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이미 쌀이 익어 밥이 되었는데 누가 이제와서 술을 빚으려 하겠습니까? 숭늉을 만들어야죠."

"오, 굿문장이에요."

"의원님은 아무 걱정 마십시오. 수영사채는 끊임없이 번창할 겁니다."

부원장은 청와대 대통령실 캐비닛어딘가에서 잠자고 있을 '금융 기획안'을 떠올렸다.

밉기만 한 상급기관 놈들의 아이디어지만 지금은 그게 답이다.

'은행들 살리자고 내가 죽을 순 없다.'

부원장은 주저 없이 돌아갔다.

자신이 조용히 입을 다물면, 어차피 금감원장의 책임이다.

'총리의 심정을 알 것 같다.'

***

수영사채를 포함한 국내 주요 은행들의 총수신액은 3,200조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원래 2,000조 원대였던 액수가 커진 것은, 수영농장이 중국과 미국에서 끌어온 매출이 몽땅 몰렸기 때문이다.

예금주들이 수영사채에 몰렸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은행들이 쪼그라들었음을 뜻한다.

2차 뱅크런으로 인해 시중은행들은 다시 한번 곡소리를 내며 허리를 졸라매야 했다.

수영사채는 2,100조 원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금융위 임상훈 사무처장이 하수영을 찾아왔다.

"의원님, 시중은행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서 심상치 않습니다."

"그러게 금융위에서 진작 제 민원을 해결해 줬다면, 제가 악질 민원인의 길에 빠지지 않았을 텐데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립할 능력이 안 되면 애초에 금융업을 시작하지 말았어야죠."

임상훈은 마른침을 삼키며 덧붙였다.

"대통령께서 나설 모양입니다."

'어쩔 수 없이'라는 말은 고민 끝에 뺐다.

"예적금리를 시중은행과 동등하게 하는 선에서 타협을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이제 수영사채는 총액의 50%까지 일반예금을 유치할 수 있으며……."

"이제 와서 그렇게는 안 되죠."

하수영은 고개를 저었다."

"시중은행은 법정한도가 8%, 자가 한도를 20%로 잡는데요?"

"하지만 수영사채는 지분이 전혀 분산되어 있지 않아……."

"네, 그렇죠. 그러니까 딱 30%로 합시다."

내 돈이 30이라면, 일반 예금은 70까지 받게 해달라.

"스콜피온을 꺼냈으면 은행밭이라도 갈아야 하는 게 참된 농부입니다."

"네? 스콜피온? 그게 뭡니까?"

"힘 좋은 벌목 차량이에요. 전갈처럼 생겼죠. 나무 한 그루 뽑아서 쪼개는데 몇 초면 충분하죠."

은행밭 앞에서 벌목 차량이 부르릉시동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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