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982화 (982/1,270)

프랜차이즈 갓 982화

234장 농부가 삽을 들었으면 (1)

수영사채는 1금융보다 금리가 좋다.

그리고 1금융보다 안전하고, 튼튼하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어떻게든 수영사채에 조금이라도 돈을 많이 넣어 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5:1이라는 비율은 그런 욕망을 제지하는 브레이크였다.

그러나 예치 비율을 2:1까지 조정하게 되면?

안 그래도 부실해진 다른 은행들이 더욱 고달파질 것이다.

총리는 벌써부터 자신을 찾아와서 죽겠다고 하소연을 하는 은행장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듯했다.

"1:1까지 내리는 것은 좀 곤란하지 않겠나? 애초에 1인이 단독으로 보유하는 특수은행이라고 너무 많은 특혜를 줬어. 이 정도 안전장치는 당연히 있어야 해."

"총리님, 수영사채는 하수영 의원 개인의 예치금만 1,250조 원이 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기존 시중 은행 1위의 수신고를 능가하는 수준입니다."

"……."

"기존의 잣대로 규제감독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사료됩니다. 금융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수영사채에 어울리는 잣대를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국무총리는 임상훈 사무처장을 빠히 쳐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놈, 수영사채에 혹시 좋은 자리라도 낙점을 받은 건가?'

돈 만지는 모피아 카르텔 놈들의 욕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아는 총리는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이것들이 아무래도 단체로 뭐가 좋은 대가를 약속받은 모양인데?'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수영사채 칭찬 일색으로 기획보고서를 올릴 리가 없지 않은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티나게 밀어주기를 하면 나중에 국감에서 얼마나 털리려고, 설마 국감전에 모두 수영사채로 도망친다는 건 아니겠지?'

보고서 예측 내용이 너무 아름답다.

수영사채에 씌워진 규제를 풀어주는 게 이 나라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는 장밋빛 희망투성이이다.

총리 눈에는 너무 노골적으로 수영사채를 옹호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참모들 생각도 비슷했다.

"금융위 보고서 말이야.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하수영 의원이 얼마 전 금융위 본관을 직접 찾아가서 뒤집어 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대낮에 당당하게 본관을 들어갔고 그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다.

좁디좁고 말 많은 관료 사회에서 퍼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직접 뭔가를 보장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아마 개별적으로 따로 접촉해서 약속을 해줬겠죠."

"뭘 보장했는지는 모르지만 다들 제대로 눈이 돌아간 것 같습니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나올 줄이야."

"수영그룹 눈치 하나만 보면 된다, 뭐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다들 제대로 눈이 돌아갔어요."

금융위 직원들이 들었다면 억울해 미치려고 할 것이다.

모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민원에 정성껏 행동한 것뿐이다.

사심은 거의 담지 않고, 객관적인 팩트 중심으로 작성한 보고서인데.

총리실에서는 큰 대가를 약속받은 로비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총리님, 시중은행들 보호하려면 수영그룹이 금융업을 장악하는 걸 막아야 합니다."

"수영그룹은 결국 산업자본, 수영사채가 금융을 지배하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아무리 수영농장이 경제에 큰 기여를 했다 해도, 아닌 건 아닌 겁니다."

"1:1 비율을 허용하면 수영사채는 머지않아 금방 수신액 3,000조 원을 돌파할 겁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제조업체가 최대 규모의 은행까지 보유하게 되는 겁니다."

수영사채의 일반인 예금은 다른 은행에 비해서 적은 편이다.

5:1 비율 강제유지 조항 덕분이다.

총리는 어느 정도 마음을 굳혔다.

"좋아. 그렇다면 금융위 이 깜찍한 공 친구들은 어떻게 할까? 도대체 뭘 보장받았기에 눈치도 보지 않고 이런 걸 대뜸 총리실에 토스하지?"

"그렇다고 징계 조치를 하면 하수영 의원과 너무 대립각을 세우는 모양새가 됩니다. 그건 좀 부담이 되지 않을까요?"

"으음. 하수영 의원이 내가 자기를 들이박는다고 생각하겠지?"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걸 통과시키면 국감에서 분명히 개털릴 텐데."

금융위만 털리고 끝나는 게 아니다.

국회에서는 총리실에서 주도해서 수영사채 규제를 풀어줬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수영 그 친구는 여야에도 좀 기름칠을 치고 그랬으면 얼마나 좋아. 그럼 국감 따위 걱정 안 하고 이거 편안하게 승인해 줬을 텐데."

그 말에는 총리실 직원들도 조금 어이가 없었다.

아니, 하수영이 비정치인도 아니고 엄연히 정치인인데, 무슨 같은 정치인끼리 기름칠이란 말인가?

총리는 속으로 계속 생각을 했다.

'이걸 내가 승인해서 좋을 게 전혀 없단 말이지. 그렇다고 퇴짜를 놓으면 하수영 그 친구한테 원한만 사는 꼴이고…….'

한참 동안 고민하던 끝에 총리는 명쾌한 결론을 내렸다.

"이거 딴 데 넘기도록"

"예? 다른 곳에 넘기라면 어느 부처를 말씀하시는 건지……?"

"그걸 내가 콕 집어서 말해줘야 하나? 자네들이 알아서 넘길 만한 부서를 선별해야지!"

직원들은 저마다 당황했다.

총리 업무를 토스할 만한 부처는 딱 한 군데밖에 없지 않은가?

"설마 청와대에 넘기시라는……?"

"어허! 그 무슨 요상한 소리를 하고 앉았나! 내가 이 기획을 보다 잘추진할 수 있는 권한 있고 유능한 부서에 넘기라고 했지, 언제 대통령께 정치적 부담을 지우라고 했나!"

그러니까 청와대로 토스해라, 대신 나는 모르는 일이다, 너희들이 알아서 한 거다.

총리가 원하는 시나리오가 이런 것인가?

"난 애초에 이런 보고서는 받은 적도 없는 걸세! 다들 알았나?"

"예……. 총리님."

잃을 게 많은 고위정치인일수록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걸 두려워한다.

이 조정이 실행되면 수영사채, 그리고 일반 예금자들은 좋다.

하지만 또다시 막대한 예금이 빠져나가는, 뱅크런에 시달리게 될 시중 은행들에게는 비극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기획을 추진한 인물, 혹은 그 세력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금융위에서 하수영의 민원으로 열심히 만든 기획안은 청와대까지 올라갔다.

대통령은 기획을 확인하고 물었다.

"금융위는 총리실 직속 아니었나?"

"맞습니다. 대통령님."

"그런데 거기서 만든 기획이 왜 내 집무 책상 위까지 올라온 건가?"

이런 건 당연히 총리 전결로 처리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은근한 질책.

"설마 총리실에서 넘긴 건 아니겠지?"

"금융위와 총리실 실무진이 논의한 결과 대통령님의 결단이 필요할 정도의 사이즈라고 판단을 해서 올린 거라고 들었습니다."

"들었다? 그렇다면 사실은 다를 수도 있다는 거군?"

총리가 은행들에게 책잡히기 싫어서 나 몰라라 한 거 아니냐는 뜻이다.

"아무래도 총리가 이 안건에 크게 부담을 느끼고 몸을 사리는 듯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국의 총리가 자기 전결 처분 내의 공무를 상사한테 떠넘겨? 이게 말이 되는가?"

대통령은 이상하리만치 분노했다.

수십 년간 총리와 사이좋은 친분을 유지한 정치적 동반자치고는 거센 분노였다.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그런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이런 빅엿은 자기가 알아서 짚어지고 가야지, 대통령께 떠넘기다니. 이번에는 총리가 너무 심하긴 했다.'

그렇다고 총리씩이나 되는 이를 불러다가 질책을 할 수도 없는 법.

아무리 대통령이 임명했다지만 그래도 일국의 2인자가 아닌가.

"비서실장, 총리실로 다시 돌려보내는 건?"

"아무래도 모양새가 너무 좋지 않습니다. 대통령님 체면까지 훼손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그럼 할 수 없군."

대통령은 감정을 지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조용히 묻어두게. 아예 폐기하지는 말고, 금융 정책 캐비닛에 잘 보관해 둬."

"대통령님? 그 말씀은……."

"누가 되든 다음 대통령이 알아서 하겠지."

남은 임기 동안 굳이 남에게 원한을 살 마음은 없었다.

***

"이상하다. 왜 아직까지도 반응이 없지?"

-금융위가 특히 민원에 둔감하게 반응하긴 하는데, 그래도 마스터가 손수 나섰는데도 이렇게 조용한 건 이해가 안 가는 반응입니다.

"역시 한 자리 안겨주지 않고 정중하게 합법적인 민원을 넣는 건 아무 소용이 없군."

-모피아는 정말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내가 지금까지 해외에서 벌어온 외화가 1조 달러가 훨씬 넘을 텐데, 내 수출 드라이브를 돕진 못할망정이렇게 나오다니."

-시중은행들처럼 8%까지 바란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지금의 83.3%에서 50%까지만 조절해달라는 민원을 이렇게 읽씹하다니요.

"그럼 다시 쳐들어가야지. 강경 민원인이라는 게 뭔지 보여줘야겠다."

그래서 하수영은 다시 금융위를 찾아갔다.

임상훈 사무처장은 사무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선후배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을 등으로 받아가며, 하수영 앞에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저희도 50%까지 규제를 완화하는 게 수영사채, 일반 예금자, 금융질서, 그리고 이 나라 경제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기획제안서가 표류하고 있습니다."

"표류?"

"대통령실과 국무총리실에서 다음 정권으로 넘기기로 한 모양입니다."

임상훈 사무처장은 열심히 일러바쳤다.

어차피 벌써부터 레임덕을 맞이한 대통령.

철밥통 공무원이 의리를 지키기에는 찰나이고, 하수영의 영향력은 영원하다.

"이럴 수가. 아직 1년도 훨씬 넘게 남았으면서 벌써 말년 병장 놀이라니."

"그렇습니다. 수영사채 비율 조정이 1년만 늦게 시행되어도 엄청난 잠재력을 그대로 상실하는 꼴인데, 말입니다."

"사실 이미 많이 잡아먹었죠. 애초부터 1:1 비율을 했었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맞습니다."

임상훈은 열심히 하수영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한테 잘 보이면 나중에 퇴직하고 수영사채에서 좋은 자리를 맡을 수 있지 않을까?

"태업에는 같은 방식으로 맞서는 게 최고죠."

"맞습니…… 예?"

"처장님. 수영사채가 당장 수신액비율을 1:1까지 맞춰 버리면 무슨 일이 생기죠?"

현재 수영사채는 5:1 비율을 유지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이행하지 못한다고 해서 죄는 아니다.

범죄란 죄를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의무를 저버렸을 때 성립되는 것이니까.

임상훈은 하수영이 무슨 뜻으로 말하는 건지 알아차렸다.

"금감원에서 경고를 하고, 시정조치 명령을 내리면서 유예 기간을 줄겁니다. 지금 유예 기간인 상태처럼 말이죠."

"유예 기간을 지키지 않으면요?"

"한 번 더 유예 기간을 줍니다. 두번의 시정 명령이 추가로 붙고, 최후통첩 이후에도 권고가 이뤄지지 않으면 고발 조치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고발 조치 보다는 청문회를 열어 원인 파악에 나설 겁니다."

의무를 어긴 수영사채를 범죄자로 만드는 게 아니라, 원인을 찾아서 정상화를 시키는 게 가장 큰 목적이기에,

"청문회가 열리고 공론화가 되면 비율 조정 추진에 탄력이 붙을 겁니다."

"가만히 있든, 일을 저지르든, 1:1비율은 합법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거네요."

"네,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임상훈은 하수영이 몰라서 물어본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보다는 자신에게 앞으로의 행보를 예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수영은 웃었다.

"예적금 특판 시작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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