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81화
233장 흑자부도(3)
핵융합 발전소 건으로 연락이 왔을 때, 더즈렌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연방정부에서 우리 주에 핵융합발전소를 도입하기로 결정이 난 모양이군. 안전하고 깨끗한 전기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 정중하게 초대장을 보내게."
"알겠습니다. 주지사님."
그러나 초대장을 발송하려고 준비하던 중에 해리스 상원 의장이 직접 찾아왔다.
"더즈렌, 이 기회에 당신이 직접 한국을 방문하는 게 좋을 거 같소."
"해리스? 매일같이 미사일 위협이 쏟아지는 그 위험한 휴전국으로 직접 가란 말입니까?"
태어나서 한 번도 미국을 벗어나 본 적 없는 더즈렌의 눈에, 한국은 딱 그런 나라였다.
최근 나노소프트의 수영레스토랑 독점 논란으로 인지도가 높아지기는 했지만,
"수영조명은 보통 회사가 아니오. 나노소프트의 요식업 프랜차이즈 본사와 같은 그룹입니다."
"그건 압니다. 요즘 농업기업들이 확실히 잘나가는 듯합니다. 핵융합연구에까지 투자를 하는 걸 보니 말입니다."
더즈렌은 핵융합 발전소의 가치를 알고, 캘리포니아 도입에 찬성이었다.
하지만 이미 확정이 난 건을 가지고 굳이 자신이 그 먼 한국까지 갈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이었다.
은근히 이런 부분에서 시야가 어둡다고 할 수 있을까.
해리스가 눈썹을 작게 찌푸렸다가 다시 말했다.
"아마도 수영그룹에서는 전기 요금을 가지고 협상을 하려는 모양이오."
"연방정부에서 그것까지는 아직 협상하지 않은 모양이군요.
"전기 소비 당사자가 직접 협상을 해야 할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뭐, 연방 정부가 판을 깔아주었으니, 디테일은 우리 주정부에서 채워 나가는 게 맞겠죠. 아, 그런데 연방 정부 보조금은 없습니까?"
"보조금은 이미 충분히 지출했습니다."
"우리는 받은 게 전혀 없습니다만? 받기로 예정된 것도 이야기는 못 들었고요."
해리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리 줌왈트 구축함이 실패했어도, 척당 실질 건조비가 100억 달러가 넘는 최신 구축함을 그냥 넘겼겠습니까?"
"호오, 그게 묶음 거래였군요."
"수영발전소 캘리포니아 도입 비용은 당연히 주정부에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뭐, 발전소 하나 더 짓는 게 돈이 얼마나 더 들겠습니까? 듣자니 핵융합로 건조비가 그리 비싸지 않은 거 같던데요."
"주지사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는 훨씬 더 쌀 겁니다. 송전설비도 이미 연방정부에서 다 깔아놓았으니까요."
"송전설비……?"
주지사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갸웃거렸다.
무선 전기의 존재를 모르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해리스는 극비리에 무선 송전탑 재료로 미 연방이 강릉에 공급한 금 2,000톤을 말하는 것이다.
"더즈렌 주지사, 지금부터 말하는 것은 백악관에서도 극비로 취급되는 내용입니다. 그러니 먼저 여기에 서명을 해주시오."
상원의장이란 사람이 보안서약서를 내밀자 더즈렌은 어이가 없었다.
"뭔데 이렇게까지 엄중하게 비밀을 지키는 겁니까?"
"핵융합 발전소 관련 극비사항이오. 그 이상은 서명하기 전에는 말해줄 수 없소."
얼마간 고민하던 더즈렌은 결국 펜을 들어 서명을 했다.
"나 이거 참. 살다 살다 상원의장이 내미는 보안서약서에 서명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자, 이제 말해보세요."
"캘리포니아를 위한 핵융합 발전소는 사실 이미 가동 중이오. 마음만 먹으면 오늘 당장에라도 깨끗한 핵융합 전기를 공급할 수 있소. 물론 캘리포니아 전역을 커버하기에는 아직 무리지만."
"발전소가 완성되었다니? 농담이 너무 심하십니다. 아직 발전소를 어디에 지을지 부지 선정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발전소는 강릉에 있소."
"예? 설마 해저 전력 케이블을 통해서 전력을 공급받는단 말입니까? 그 먼 거리에서요? 전력 손실이 장난이 아닐, 아니, 해저 케이블로는 대도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텐데요?"
"케이블은 필요 없어요. 전기는 무선으로 바다를 건너올 테니까."
더즈렌은 한참 동안 말문이 막혀 있다가, 얼빠진 숨소리를 내뱉었다.
"지금 나더러 그걸 믿으라는 겁니까?"
***
상원의장의 설명을 들은 더즈렌은 주저 없이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캘리포니아는 주 GDP가 세계 5위수준으로, 한국보다 잘 산다.
현직 주지사가 방한하는 것은 국가 입장에서도 중요한 이벤트였다.
더즈렌 주지사는 '개인적 휴가' 라며 철저히 국빈 대우를 사양했다.
그러나 한국을 한 번도 밟은 적없는 그가 휴가를 핑계로 강릉을 찾았으니, 누가 봐도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더즈렌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하수영입니다."
"실리콘 밸리의 큰손이시라고 들었습니다."
더즈렌은 부랴부랴 벼락치기로 공부를 좀 했다.
핵융합 발전소와 서진파운드리, 나노소프트의 수영레스토랑이 모두 명으로 묶인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랐던가.
특히 미국에서 줄곧 살았던 것처럼 완벽한 본토식 발음은 더욱 그의 고개를 숙여지게 했다.
"이렇게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미국으로 넘어가려고 했었는데요."
"아닙니다. 어떻게 감히 하수영 회장님께 먼 길을 오라 가라 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제가 와야지요."
"전 미국 가는 거 좋고, 편하게 생각합니다. 어차피 미국 가려고 했었어요."
"그럼 다음에 들어오실 땐 제가 대접을 하겠습니다."
"하하, 같이 엽총 사냥이나 한 번가면 재밌을 거 같네요."
대충 인사를 나눈 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더즈렌은 잔뜩 분위기를 잡고 낮게 말했다.
"핵융합 전기를 캘리포니아 위장발전소에 무선으로 보내서 공급하는 방식이라고 연방 정부로부터 귀띔을 받았습니다."
"음, 주정부는 알고 있는 게 좋을 거라고 판단을 했나 봅니다."
"지금 주정부에서는 오로지 저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위장 발전소를 관리하려면 주지사가 알고 있는 게 좋겠죠."
"송전은 지금 즉시 가능한 겁니까?"
"네, 지금 즉시. 이미 모든 준비는다 끝났습니다."
"……."
"풍력 발전소 일대에 리시버를 달아놨습니다. 위장 발전소가 만들어질 때까지는 그곳에서 전기를 공급하면 될 겁니다."
더즈렌은 감탄해서 중얼거렸다.
"전문가들이 뒤집어지겠군요. 풍력 발전소로는 말도 안 되는 출력이 뿜어져 나올 테니 말입니다."
"그걸 이제 잘 위장을 하셔야죠.
전력에 붙은 꼬리표를 바꿔 달아야 합니다."
"그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다만 제가 의원님께 직접 듣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하세요. 얼마든지."
"핵융합 무선 전기는 얼마나 깨끗하고, 또 안전합니까?"
하수영은 잠시 차를 마셨다.
찻물이 넘어가는 그 짧은 시간이, 더즈렌 주지사에게는 꽤나 길게만 느껴졌다.
"전기를 만드는 데, 보내는 데, 탄소 배출 제로, 여러 설비 제조에서 탄소 배출과 환경오염이 아주 약간 발생할 수 있겠습니다만, 0이나 마찬가지로 의미 없는 수준입니다."
"……."
"무엇보다 핵융합은 그 어떤 재난에서도 안전하죠. 다시 새로 지어야 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위험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핵융합 무선 전기를 도입하면 캘리포니아가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까요?"
"요즘 탄소 발자국이니 택소노미니 친환경정책 문제로 골치 아프시죠? 적어도 전기 하나만큼은 그 걱정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습니다."
더즈렌은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전기만큼은, 완전한 해방……."
"전기는 이제 자유예요! 이보다 더 청정하고, 안전하고, 무한히 생산되는 전기는 없습니다. 심지어 무선이라서 편리하기까지 해요! 한 번 상상해 보세요. 모든 자동차가 무선 전기로 충전 걱정 없이 굴러가고, 스마트폰 유저들은 충전을 생각할 일이 없을 겁니다."
더즈렌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배터리 업체들은 확실히 망하겠군요."
"우주선이 있는데 열기구를 타고 우주로 나갈 수는 없잖습니까?"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태연히 차를 따르며 덧붙였다.
"하지만 소형화는 아직 멀었으니 너무 큰 걱정은 마십시오. 아직은 리시버가 차량에 들어갈 날도 한참 멀었습니다. 큰 건물 같은 곳에나 설치가 가능한 수준이죠."
"언제쯤 소형화가 이뤄지겠습니까?"
"가까운 시일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완성되더라도 시장이 충분히 대비할 시간은 줄 겁니다."
"자비로우시군요."
"다 같이 잘 먹고 살자는 게 흙이 바라는 정신이거든요. 저는 흙 파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더즈렌은 하수영의 온화한 미소가 참으로 인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인텔과 ADM에서 수십억 달러가 넘어가는 엄청난 부품을 구매한 큰손이라는 점 때문인지, 더 후광이 비춰 보이는 거 같다.
더즈렌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깨끗하고, 안전하고,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하며, 규제를 받을 일이 없는 값싼 전기라. 정말로 퍼펙트 그 자체입니다."
"잠시만요, 주지사님? 뭔가 오류가 있는데요."
"예?"
"저는 싸다고는 한 적이 없습니다."
"전력생산 비용이 꽤나 소요되는 겁니까?"
"아뇨, 그건 아니죠. 물론 단가는 저렴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한 독점품목을 누가 덤핑처럼 풀겠어요?"
"그것은……."
"가장 비싸게 공급되는 전기를 기준으로 딱 20%만 더 비싸게 팔겠습니다. 와, 이렇게나 양심적일 수가 없네요."
이런 태도를 예상 못 한 더즈렌은 당황해서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까지 올라간 오랜 정치적 관록은 지금 이 순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정치 공세에서 어디 이런 훅을 경험해 봤어야 말이지.
"그 모든 리스크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대신, 고작해야 20%가 더 비쌀 뿐입니다. 솔직히 이 정도만 해도 덤핑 수준이죠. 제가 아니라 딴놈이 주인이면 어땠을까요? 몇 배수로 가격을 높여서 받았을 걸요?"
가벼운 협상이 이어졌다.
그러나 20%를 더 얹어주는 조건으로 깨끗하고, 안전하고, 환경 규제에서 완벽하게 자유롭다.
결국 더즈렌은 수영조명과 MOU를 체결하고 강릉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물론 세상에는 무선 전기의 존재를 숨겼다.
[수영조명, 캘리포니아에 핵융합발전소 수출하기로 결정!]
[발전소만 지어주고 끝나는 게 아니다! 발전소를 운영하며 지속적으로 전기 판매할 예정!]
[캘리포니아 주정부, 안정성과 청정성을 고려하여 전기료 20% 이상 프리미엄 약속하다!]
[수영발전소가 향후 캘리포니아에서 매년 벌어들일 돈은 얼마인가?]
[캘리포니아는 시작일 뿐, 결국 북미 전체가 무공해 청정 핵융합 전기를 원하게 될 것.]
[캘리포니아, 1차로 500억 달러의 대금을 집행하기로 결정하다!]
한국 금융위는 어느 정도 다듬어진 보고서를 총리실에 올리기 전 다시 한번 내용을 추가했다.
"1차로 500억 달러라니. 수영사채가 자기 조달 비율을 맞추기 위해서 정말 노력하고 있군요."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500억 달러를 즉시 조달 가능한 것만 해도 수영사채의 신용도는 AAA급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초우량금융업체가 자기자본의 20%밖에 일반 예금을 받을 수 없게 강제한다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예요, 낭비. 예금 이자도 시중은행보다 1%씩 더 주는데 말입니다."
"국민들도 왜 수영사채에 예금 못하게 막아놨느냐고 불만이 많습니다. 이건 정말 풀어줘야 됩니다."
"전기 수출은 앞으로도 막대한 캐시카우가 되어줄 테니까, 수영그룹은 수영조명 하나만 쥐고 있어도 영원히 망할 일은 없겠습니다."
'수영사채 예치비율 조정에 관한 보고서'는 그렇게 총리 손까지 올라갔다.
두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최소 자본금을 100조 원으로 상향.
총수신액에서 일반 예금주 돈을 지금의 1/6에서 1/2까지 허용해 주는것.
국무총리는 보고서를 읽고 짧게 말했다.
"근데 이거 허용하면 1금융이고 2금융이고 죄다 망하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