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78화
232장 참치로 맺은 의리 (5)
씨호크 헬기에 탄 도우야는 가까워지는 줌왈트 후미 갑판을 보며 가슴이 조마조마하게 타들어 갔다.
옆에서 고리야마 상무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감탄사를 터뜨린다.
'무슨 군함이 이렇게 생겼지?'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 기괴하다.
긴 이등변삼각형처럼 선수가 매우 뾰족했다.
함교도 삼각뿔을 세워서 단면을 이리저리 잘라낸 것처럼 반듯한 직선으로만 되어 있다.
아무리 둘러봐도 곡선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삼각뿔을 이리 저리 자르고 붙여서 만든 것 같은 형태.
적의 탐지 레이더 파장을 반대편으로 반사하기 위한 디자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일본 미필의 눈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 형태였다.
함교로 안내된 도우야는 마침내 하수영을 만나볼 수 있었다.
"오, 어서 오세요. 내 배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법률상 소유주는 한국 해군이지만, 하수영이라면 그렇게 말을 해도 된다.
"처음 뵙겠습니다. 도, 도우야 산쿠라입니다."
완벽한 원주민 발음에 도우야는 살짝 압도당해서 말이 조금 떨렸다.
미군, 한국군까지 잔뜩 몰려 있고 자신은 혼자이다 보니, 도우야는 기가 눌릴 수밖에 없었다.
"고리야마 사장님께 들었습니다. 그래, 나를 만나고 싶어 했다고요?"
"어, 음. 그게……."
이상하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만나기만 하면 할 말이 잔뜩 있었는데, 머릿속을 표백한 듯이 온통 뉴런이 새하얗기만 했다.
"왜요, 쌀 소송 2심에서는 뒤집을 수 있을 거 같습니까?"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 매장이 수영농장 쌀만을 쓰기로한 계약을 위반해서 걸린 소송.
현재 1심에서 도우야 초밥이 패소하고, 2심이 진행 중인 상태인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 아닙니다. 2심은 바로 취하하겠습니다. 그, 그 말씀을 직접 만나 뵙고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니, 그러면 먼저 취하부터 하고 그 다음에 만나자고 하는 게 순서 아닌가? 일본은 원래 그런 식으로 화해를 요청합니까? 이상하네, 이상해."
"그, 그게 아니라……."
대화가 길어질수록 계속 압박감이 심해진다.
온실 속에서만 자라온 도우야는 이런 중압감을 견디기 힘들었다.
금방이라도 이들이 달려들어 자신을 두들겨 패는 건 아닌가, 하는 공포가 짙어졌다.
"저, 저는 오늘 경매장에서 2억 엔이나 썼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진 나머지 그런 말까지 해버렸다.
순간 뱉어놓고도 자신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당황했다.
"2억 엔이면 얼마 안 썼군요. 에이, 기왕 암시장에 온 거 좀 더 쓰시지."
도우야는 스스로도 창피해서 그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진짜 뜬금없이 왜 그런 이야기를 했지?
그만큼 긴장했었나?
"항소 취하한다니까 더 할 말이 없군요. 알았습니다. 이만 돌아가세요. 헬기로 도쿄까지 보내드리겠습니다."
하수영이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서려고 하자 도우야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회장님! 부디 저희 도우야 초밥과 다시 거래를 재개해 주십시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옆으로 한껏 벌려서 바닥을 짚은 뒤, 정수리가 잘 보이도록 머리를 힘껏 박았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도게자.
사죄를 청하는 일본 궁극의 굴욕.
"아니, 그랜절도 아니고 무슨 도게자입니까? 그렇게 자기들 규격만 고집하니까 소니가 비디오 시장에서 퇴출당했지."
"회장님! 요, 용서해 주십시오!"
"진심으로 굴욕을 청하고 사죄를 하고 싶었으면 상대의 기호 정도는 미리 알아둬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난 그랜절 아니면 안 받아요."
하수영이 손을 내정자 미 수병들이 다가와서 도우야를 강제로 일으켰다.
도우야는 두 팔을 허우적거리면서 어떻게든 도게자를 다시 취하려고 했다.
그러나 수병들은 조금의 반항도 용납하지 않고 그를 끌고 가버렸다.
고리야마 사장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거 원, 제 입장만 난처하게 된 거 같습니다. 그나저나 단단히 혼을 내실 줄 알았는데, 별로 흥이 안 나 시나 봅니다."
"줌왈트에 태워봤으니 됐습니다. 원래 그게 목적이었거든요."
"아아!"
고리야마는 묘한 감탄을 느꼈다.
그러니까 도우야에게 감히 누구를 건드렸는지 한 번 압도적인 벽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서…….
"확 물에 빠뜨려 버릴까, 가게를 전부 뺏어버릴까, 고민이 살짝 들긴 했는데 그랜절 하나도 제대로 못 하는 거 보니 확 식네요."
"……."
"뭔가 좀 바락바락 반항도 하고 기어오르기도 해야 농락하는 재미도 있는 건데. 너무 약한 것들은 밟는 재미도 없어요. 악도 없고, 창의성도 없고."
"……."
"그래서 도우야 초밥 접수는 언제 개시하실 겁니까?"
고리야마는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지금 도쿄 가맹점주들과 은밀히 이야기를 진행 중입니다. 점주들은 물량 개런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물량은 문제없습니다. 그런데 아시죠? 다른 가맹점에도 같은 가격을 주진 못합니다."
"아이구, 그래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점주들은 예전 수입 수준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납품 가격을 조정할 겁니다."
고리야마는 메뉴를 10배 이상의 가격으로 판다.
하지만 생선 납품가는 예전 수준.
그래서 매출의 90% 이상이 그가 가져가는 순이익이 된다.
재료 가격은 그대로인데 판매 가격은 10배 이상인 덕분이다.
고리야마가 끌어들이는 다른 가맹점들도 메뉴 가격은 동일하게 유지 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 매장 생선 납품가는 본점과 동일한 수준이 될 수 없다.
어획대란 이전 기준으로, 점주들이 가져가던 몫만큼 마진을 남길 수 있도록 생선 납품가를 상향할 것이다.
"도우야 초밥 도쿄 매장만 다 끌어들이면 다 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머지 매장들은 시간문제일 뿐이 죠."
"그래요. 도우야 초밥은 이제 저무는 해고, 앞으로는 고리야마 초밥의 시대죠."
고리야마는 순간 살짝 어두운 표정을 보였다.
"돌아가신 선대 회장님께는 너무 죄송해서……."
"비즈니스일 뿐입니다. 사장님은 그분에게 그만한 노동을 대가로 치렀으니, 그런 죄책감은 갖지 마십시오."
"그래도 마음이라는 게……."
"생선 초밥을 안 내놓는 초밥집은 도태되어야 하는 게 맞지요. 자연선 택이에요, 자연선택. 다윈이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
멀어지는 줌왈트를 바라보며 도우야는 발버둥을 쳤다.
자신을 다시 돌려보내 달라고 악을 썼지만, 아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왜? 어째서?
굴욕적인 도게자까지 취하며 진심을 보였거늘, 왜 용서해 주지 않는 것인가?
이미 본사는 마이너스 행진에 시달리고 있었다.
생선 초밥이 없는 초밥집을 찾는 손님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동안 쌓아놓은 현금으로 버티고 있지만, 이대로는 2년 이상 버티기 어렵다.
적어도 6개월 안에 시장이 나아질 거라는 시그널이라도 있어야 한다.
본사에 도착하자, 암시장에서 보낸 생선들이 도착해 있었다.
본사 임직원들은 이런 생선을 어디서 구했냐고 눈이 휘둥그레지며 신임 회장의 수완을 칭찬했다.
2억 엔이나 주고 낙찰받았다는 걸 알면 다들 뒤집어지겠지.
일반 매장에서 제값을 받고는 절대로 팔 수 없는 가격이니까.
그날부터 도우야는 고리야마 스시를 찾아갔다.
매일 본점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중재를 빌었다.
고리야마가 모습을 보이기라도 하면 곧바로 도게자를 취하며, 다시 한번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무언으로 빌었다.
그때마다 고리야마는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도우야는 도게자를 하느라고 그것을 볼 순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고리야마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고리야마 스시 앞에서 사죄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청천벽력 같은 보고를 받았다.
"회장님! 도쿄의 모든 가맹점들이 계약 해지를 요청해왔습니다!"
"뭐야?"
"생선 재료 납품을 계약위반 행위로 들어서 해지를 통보했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니, 없는 생선을 어떻게 납품을 하라는 건가! 이건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라고!"
법적으로는 계약위반이 맞다.
하지만 불가항력적인, 전 세계적 재난이 아닌가?
그런데 이때다 싶어서 해지 통보를 하다니.
정신이 번쩍 든 도우야는 얼른 본사로 돌아가면서 내용을 확인했다.
"차 돌려! 제일 가까운 매장으로 가겠다!"
"옙!"
그러나 가장 가까운 매장에 도착한 도우야는 망연자실했다.
"고리야마…… 초밥? 여기가 우리 가맹점이 맞는 건가?"
"마, 맞습니다. 그런데 간판이……."
고리야마라 적힌 새 간판이 달려있었던 것이다.
매장 앞에는 손님들이 줄을 지어 서 있고, 입구에는 입간판 메뉴가 세워져 있었다.
메뉴에는 온갖 생선 초밥이 가득히 적혀 있었고, 가격도 눈이 튀어나올만큼 비쌌다.
"이, 이럴 수가…… 고리야마 그놈이 내 뒤통수를 치다니."
도우야는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했다.
평생 아버지를 모신 가신, 마지막까지 순장의 길을 택한 고리야마가 이럴 줄이야.
이것은 배신이다.
오랜 가신 전통을 가진 일본에서는 절대로 용납받지 못할 배신.
모시던 주군이 죽었다고, 감히 주군의 가문을 배반한단 말인가?
다른 가맹점들도 똑같다는 것을 확인한 도우야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고리야마 본점으로 달려갔다.
종업원들이 막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장으로 쳐들어가서 고리야마의 멱살을 쥐며 따졌다.
눈이 뒤집어진 채 분노를 쏟아냈지만, 고리야마의 반응은 덤덤했다.
"충성이 전통 문화?? 그만큼 반역도 많았다는 걸 모르는가, 도우야?"
"고리야마 상무, 당신이 어떻게 우리 도우야 가문에 이런 짓을……."
"봉급을 내려주지 못하는 주군은 섬길 가치가 없네. 하물며 나는 내 쳐진 몸, 도우야 가문은 나의 과거이지 현재가 아닐세. 미래는 더더욱 아니지. 아무것도 아니야."
"크윽……! 아버지가 얼마나 당신을 아끼셨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소!"
"내 모든 도리는 다하고 회사를 나왔네. 외부 경쟁자로서 당당히 승리했을 뿐. 하지만 선대 회장님께 입은 은혜는 감사하게 생각하네. 그래서 보은 겸 기회를 주지."
기회라는 말에 도우야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우야 초밥을 내게 팔게. 값은 서운하지 않게 쳐주겠네."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선을 못 내놓는 초밥집을 초밥집이라고 할 수 있나? 이대로면 2년 안에 자산을 다 까먹고 폐업을 해야 하네."
"그러니까 당신이 수영양식장에서 납품받을 수 있도록 도와만 주면……!"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 나는 더 이상 도우야 가문의 가신이 아니야."
고리야마는 냉정하게 도우야를 돌려보냈다.
아직 현실의 냉혹함을 더 깨닫고, 차갑게 자신을 담금질하는 시간이 필요하리라.
얼마 후, 도우야 산쿠라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소식을 들은 임원들이 매일같이 도게자를 하며 도우야를 설득한 덕분이다.
"이것만이 회사가 살아날 길입니다!"
"이대로는 버틸 재간이 없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 가치만 떨어 집니다!"
도우야 네가 받을 돈 역시 줄어든다. 그렇게 간접적으로 압박을 한 게 주효했다.
일본에서 도우야 초밥은 완전히 간판을 내렸고, 고리야마라는 새 간판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1위 스시 체인점을 인수한 고리야마는 가장 먼저 전국의 가격을 일제히 올렸다.
안 그래도 비싼 가격이 더 오르자 소비자들은 당황했지만, 매장에서 일하는 요리 명인들의 자부심은 거칠 게 없었다.
"가격은 자존심이라고! 가격을 낮게 받는 건 우리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거란 말이다!"
"우리 초밥에 불만이 있으면, 다른 곳에 가서 실컷 드시오!"
물론 장사는 아주 잘됐다.
장사가 잘되는 만큼, 수영양식장도 돈을 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