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76화
232 장 참치로 맺은 의리 (3)
고리야마는 그 이상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도우야 산쿠라는 300만 엔이나 내야 하는 게 아까워서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먹었다.
고리야마 역시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전부 먹었다.
100만 엔이나 되는 밥값 걱정 때문에 노비타 상무만 제대로 식사를 들지 못했다.
"노비타 군, 이 귀한 생선 초밥을 남기다니. 몸이 안 좋은가?"
"아, 아닙니다."
"아니라면 남기지 말고 모두 드세요, 상무님. 아주 귀한 음식 아닙니까?"
도우야가 살짝 압박을 가하자 노비타는 서둘러서 초밥을 입에 집어넣었다.
확실히 씹을 때마다 입안에서 살살녹는 게 느껴질 정도로 훌륭한 음식이다.
"잘 먹었습니다, 고리야마 사장님."
"그래, 내일 보세나."
"네, 알겠습니다."
300만 엔이라는 대출혈을 감당한 도우야는 그렇게 회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도우야는 새벽 0:30경에 항만으로 도착했다.
제법 쌀쌀한 새벽바람을 맞아가면서 기다리는데, 고리야마가 나타났다.
"왔군. 자, 일본의 생선 암시장을 경험할 준비는 되었나?"
"예, 고리야마 사장님."
도우야는 긴장으로 몸이 가늘게 떨렸다.
생선 암시장.
주로 최상류층이 이용한다는 그 지하 시장은 도우야도 언뜻 들어봤다.
생선을 구할 만한 곳은 수영양식장뿐이니, 아마 주요 공급처이리라.
어쩌면 비밀 생선 경매 현장을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현금을 두둑하게 준비하라고 한 거겠지.'
도우야는 현찰 2억 엔을 준비했다.
서류 가방에 1만 엔짜리로 꽉꽉채워 넣어서 들고 있었다.
두 명 이외에 아무도 없다 보니 조금 불안하기는 했다.
고리야마가 아니라 제3자 강도 따위가 나타날까 봐.
"저기 오는군."
그때였다.
작은 보트 여러 척이 항만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보트들은 항만에 정박해서 단단히 고정했고, 건장한 남자들이 부두에 내려서 보트를 지키기 시작했다.
2시가 가까워 오자 부두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암시장에 참가하는 경매업자들인가.'
도우야는 본능적으로 그들이 도매상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심지어 그중에는 도우야의 눈에도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다들 같은 업계이다 보니 서로 아는 척을 할 법도 한데,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벌써부터 긴장감이 흘렀다.
정확히 2시가 되자 보트를 지키던 남자들이 손짓을 했다.
아마도 타라는 신호인 것만 같다.
"어서 가지."
고리야마는 느긋하게 가장 먼저 나서서 보트에 올랐다.
다들 고리야마의 우선권을 암묵적으로 존중해 주는 분위기였다.
보트에 타서 가방을 꽉 끌어안은 도우야는 문득 부두를 순찰하는, 세관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절대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도우야는 바짝 긴장했다.
'어?'
그런데 놀랍게도, 세관 직원들은 보트와 사람들을 본체만체하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역시 재벌들이 이용하는 암시장, 세관도 벌써 구워삶은 것인가.'
손끝에 땀이 고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보트는 하나둘씩 항만을 떠나서 바다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항구가 사라지고, 사방에는 수평선만 보이고 있었다.
"어디까지 가는 겁니까?"
"영해를 벗어나야지. 그럼 암시장이 영토권 안에서 버젓이 열릴 줄 알았나?"
"……."
"조금만 더 가면 된다네."
얼마를 더 이동했을까.
저 멀리 초대형 화물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트들이 차례차례 측면에 접근했고, 갑판의 고정줄이 내려와서 보트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갑판에는 살벌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건장한 남자들이 있었다.
군인? 아니면 조폭?
도우야는 자신이 호랑이굴에 들어왔음을 느끼고 정신을 바짝 다잡았다.
모든 방문자들이 차례차례 배 안으로 들어섰다.
대형 저장고의 문이 열리고, 커다란 수조가 반듯하게 놓인 풍경이 보였다.
수조 안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는 여러 종류의 생선들을 보자, 도우야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렇게 신선한 생선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 광경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경매가 시작되었다.
업자들은 앞을 다투어 숫자를 부르며, 원하는 생선을 확보하기 위해서 경쟁을 시작했다.
고리야마는 경매에 전혀 참전하지 않고 느긋하게 즐기고 있었다.
고등어 한 마리에 25만 엔까지 치솟는 걸 보며, 도우야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만 같았다.
"고등어는 보통 25만 엔 정도에서 낙찰되지. 중간상이 5만 엔 정도를 먹고, 최종 소비자는 30만 엔에 받는다네."
"……여기가 암시장입니까?"
"그렇다네. 바다 위의 암시장이지."
"이렇게 영해 밖에서 열린다면, 일본 순시선들이 손을 쓸 수가 없겠군요. 보안도 유지될 테고요."
그 말에 고리야마가 조용히 웃었다.
"도우야 군, 정부에서 전혀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아까 세관직원이 우리를 못 본 체하는 게 뇌물을 먹여서라고 생각하나?"
"……예?"
"정부는 암시장을 건드릴 수 없어. 정부 고관들 역시 암시장의 주요 고객층이거든."
"……아."
"물론 웬만한 관료는 30만 엔짜리 고등어를 턱턱 사먹기 부담스럽지. 보통은 재벌가로부터 선물을 받아서 먹는 식이지."
일본 정부가 묵인할 수밖에 없는 생선 암시장.
도우야는 가벼운 전율이 흘렀다.
동시에 크게 자책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수영양식장과 틀어지지 않는 것인데.
"자네도 참여해야지. 설마 그 돈을 다시 들고 돌아갈 건 아니지?"
도우야도 어쩔 수 없이 경매에 참가했다.
그는 마리당 수십만 엔이나 줘가면 서까지 생선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 정도 재벌은 아니었으니.
하지만 입장료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내려놓은 채 경매에 어울렸다.
사회지도층의 이중성이 제대로 드러나는 현장.
공식 경매에서 낙찰받아 온 물량은 정부가 전량 강제수매해서 유통하면서, 뒤에서는 암시장 물량을 자기들끼리 나눠 먹는다.
일반 국민들은 한 달에 생선살 한점 먹으면 감지덕지인 수준인데, 그들은 수십만 엔짜리 생선을 즐긴다.
마침내 경매가 모두 끝났고, 업자들은 저마다 만족한 표정으로 생선 박스에 인증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본인 낙찰품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증명이었다.
도우야도 백지 스티커를 받아서 매직으로 이름을 쓰고, 생선박스에 붙였다.
"돌아가는 길에 항구로 같이 보내 줄 거니까 염려하지 말게."
"저 스티커를 붙이지 않은 생선박스들은 뭡니까? 양도 가장 압도적으로 많은데요."
"아, 저건 오늘 우리 고리야마 스시에 들어갈 물량이야. 경매와는 상관없지."
"……."
도우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 함을 느꼈다.
남들은 고등어 한 마리에 수십만 엔씩 줘가면서 낙찰받는데, 혼자서 예전 수준으로 가격을 치렀겠지?
'그런데 하수영 회장은 언제 나타나는 거지?'
분명히 이 배 어딘가에 있을 텐데.
도우야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자 고리야마 상무가 흐릿하게 웃었다.
"하수영 회장님은 이 배에 없으시네. 지금 오는 중이라고 들었어. 자, 갑판으로 나가지."
갑판에 나오자 업자들이 저마다 돌아갈 준비에 한창이었다.
화물선 선미 도크가 열리면서, 중형 사이즈의 선박이 생선들을 싣고 빠져나왔다.
중형 화물선이 보트들을 따라 도쿄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정지! 정지! 여기는 일본의 영해권이다! 귀선들은 모두 정지하고 검선에 응하라! 반복한다! 정지! 정지!여기는 일본의…….
"이런, 귀찮게 됐군."
갑자기 일본 순시선이 나타나서 경고방송을 시작하자, 보트와 중형 화물선이 모두 멈췄다.
"사장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야당 쪽에서 손을 쓴 거 같네. 호시탐탐 생선 암시장을 노린다는 소문을 들었어. 그게 하필 오늘이 될 줄이야."
자민당에 반대 각을 세우는 1야당이라면 부호들의 먹거리를 위해 불법적으로 막대한 국부가 유출되는 것을 두고 보기 싫었으리라.
권력자들이 항상 화합을 하는 것은 아니니.
순시선이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접근을 해오기 시작했다.
"젠장, 야당 놈들이 아무래도 오늘을 단단히 벼르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암시장을 들리는 날을 정확하게 노렸어."
고리야마는 이를 살짝 갈았다.
"하수영 회장님이 암시장에 나타나는 것을 노려서 현장을 잡아서 항의 하려는 모양이군."
"왜 그러는 겁니까?"
"그야 놈들은 재벌들이 생선 한 마리에 수십만 엔씩 써대는 꼴을 보기가 싫으니까! 트러블을 만들어서 암시장 자체가 열리지 않게 하려는 수작이라고!"
일본 전체의 공정을 생각한다면, 야당의 방침이 옳을지도 모른다.
국민 대다수가 생선 먹거리를 박탈 당했는데, 재벌과 고위관료들은 호화로운 식생활을 즐기고 있으니..
그때였다.
뿌우우우웅! 뿌우우우웅!!
순시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요란한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까부터 깔려 있던 짙은 안개를 헤치고, 날카롭게 각진 은백색 전투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위이이잉!
선수 갑판에 돌출된 함포덮개가 좌우로 벌어지며, 모습을 드러낸 포신이 순시선을 정확하게 조준했다.
동시에 외부 스피커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귀함은 순시선으로 위장한 해적선인가?
-아니다. 우리는 일본 해상보안청소속이다.
-그런데 왜 민간 선박을 겁박하는가? 당장 물러날 것을 요구한다.
-우리의 검선을 방해하지 마라. 이것은 명백한 주권 침해다.
-여기는 공해다. 침해 행위는 귀선이 먼저 시작했다. 당장 물러나라.
겨우 700톤급 순시선은 1.6만 톤급 스텔스 구축함 앞에서 보잘것없이 초라했다.
내부에서 우왕좌왕하는지 순시선은 얼마 동안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한편 도우야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체 언제?'
1.6만 톤짜리 전투함이 이렇게 가까이 접근할 동안, 전혀 인지를 하지 못했다니.
"아, 회장님이 드디어 오셨군."
"설마 저 전투함에 타고 있다는 말입니까?"
"몰랐나? 저 배가 바로 수영양식장경비선 중 하나라네."
"저런 큰 군용 전투함을 고작 어장경비선으로 쓴단 말입니까? 아니, 한국은 개인 전투함을 허용합니까?
이게 무슨!"
원래 도우야는 국제정세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하수영이 줌왈트 구축함 3척을 구매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군사 쪽에도 무지한 터라, 각진 모양을 가진 전투함이 존재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반복한다. 민간상선 겁박을 중지하고 물러나라.
-귀선들이야말로 검선에 응하라.
-거절한다. 이곳은 공해다. 검선에 응할 의무는 없다.
뿌우우우웅! 뿌우우우웅!
그때 멀리서 커다란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소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방향이었다.
"왔습니다! 아타고급! 마야급! 공고급! 이지스함 3척이 지원을 왔습니다!"
순시선 함장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레이더 화면에 선명하게 나타난 함정들 반응이 반갑기 그지없었다.
"여기는 일본의 경제수역이다. 고로 일본의 바다란 말이다. 어딜 감히 생선팔이 따위가!"
아무리 스텔스함이라고 해도, 이런 가시범위 안에서는 효용이 없으리라.
함장은 다시 한번 외부 스피커에 대고 외쳤다.
"무장을 해제하고 검선에 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