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75화
232장 참치로 맺은 의리 (2)
런치 특선 메뉴가 1인당 9,900엔.
한국 돈으로는 10만 원에 가까운 금액.
일반적으로는 말도 안 되게 비싼, 장사하기 싫은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 가격이다.
하지만 '고리야마 스시'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의 얼굴은 밝았다.
"오늘 간만에 제대로 생선 초밥으로 포식 좀 하겠어."
"요즘 어딜 가도 야채와 육류로 만든 초밥밖에 없어서 슬펐는데. 도쿄에 아직도 이런 가게가 남아 있었다.
니."
"런치 특선 메뉴가 겨우 9,900엔? 진짜 양심적인 가게로군."
줄을 선 이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매우 다양했다.
젊은 커플, 아이를 데리고 있는 부부, 중년 부부와 청소년기 자녀, 노부부 커플, 노부모를 모신 대가족, 직장인 일행…….
메뉴 안내판을 자세히 확인한 도우야 산쿠라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참치 코스 1인분이 겨우 5만 엔밖에 안 한다고? 뭐가 이렇게 싼건가?"
어획대란 전이라면 일본에서도 꽤나 비싼 가격이다. 사업자 접대를 할 때라면 모를까, 일반인은 갈 엄두를 내기 힘든.
하지만 지금은 일본에서 생선을 구하기 힘든, 조리하지 않은 생물 고등어 한 마리에 30만 엔이나 하는 시대다.
런치 특선이 9,900엔이고 참치 코스가 5만 엔이면 무척 '양심적인' 가격인 것이다.
도우야는 노비타를 돌아보며 따지듯이 물었다.
"여기가 고리야마 상무가 새로 차린 가게인가?"
"네, 회장님."
"일본 전역에 생선이 씨가 말랐는데, 이 친구는 어떻게 생선 초밥을 파는 거지? 업자들이 한국 해상 경매장에서 들여오는 건 정부가 강제로 거둬들이고 있다면서?"
"그건……."
"아아! 알겠어! 수영양식장에서 고리야마 상무에게 특별히 제공해 주는 거군? 맞지 않나? 그게 아니고서야 생선을 안정적으로 구할 순 없을 테니까."
"맞습니다."
"좋아. 고리야마 상무를 잘 구슬리면 수영양식장과 화해를 할 수 있겠어. 어서 들어가세나."
도우야는 줄을 무시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입구 쪽에 있던 종업원이 서둘러 앞을 막으며 만류했다.
"손님, 줄을 서셔야 합니다."
"뭐라고?"
"저희는 아직 번호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서요. 줄을 서시지 않으면 대접을 해드릴 수 없습니다. 다른 손님들을 생각해 주세요."
슬쩍 돌아보니 손님들의 얼굴에도 불만과 경멸이 가득했다.
도우야는 변명하듯이 말했다.
"아니, 나는 식사를 하러 온 게 아니라 다른 볼일이 있어서 온 겁니다. 그러니 줄을 설 필요가……."
"무슨 일인가?"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린 도우야는 캐주얼 트레이닝복을 입은 50대 남자를 볼 수 있었다.
고리야마 상무, 아버지의 밑에서 지금의 도우야 초밥을 만든 최측근이다.
"아, 고리야마 상무님. 저 상무님을 만나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줄을 서지 않으면 들어올 수가 없다고 하네요."
"아, 오랜만이군. '도우야 군'."
도우야 군?
순간 도우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삼촌뻘의 연배이지만 고리야마는 자신 앞에서 늘 깍듯하게 대해주었다.
왕자를 대하는 신하처럼 늘 정중했다.
그런데 지금 표정은 반가워하는 기색은 있어도, 어려워하거나 대우해 주는 느낌은 없다.
편안히 하대하는 태도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줄이야. 반갑네. 그런데 일단 가서 빨리 줄을 서야지 않을까?"
"예?"
"지금 이 순간에도 줄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네. 어서 가서 줄을 서야 조금이라도 빨리 식사를 할 수 있지 않겠나?"
"저는 식사를 하러 온 게 아니라……."
"식사가 아니면 무슨 용무로 음식 점을 들어온단 말인가? 그럼 축객령을 내릴 수밖에 없네."
"……줄을 서겠습니다."
"미안하군. 프리패스 같은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아서 말이야. 이해해 주게."
"아닙니다."
도우야는 불쾌한 마음이 들었지만, 애써 억눌렀다.
지금은 자신이 아쉬워서 찾아온 게 아닌가.
'장사가 잘되다 보니 가슴에 바람이 찼겠지. 그럴 수 있어. 내가 참아야지.'
도우야는 일단 참고, 말없이 가게를 나와서 노비타와 함께 줄을 섰다.
거의 1시간을 기다려서야 도우야는 겨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도우야가 들어서자 고리야마가 반갑게 맞이했다.
"이리 오게, 도우야 군."
"도우야 군입니까? 다른 손님들과 똑같이 줄을 섰는데, 손님 대접은 안 해주시는 겁니까?"
뼈를 담아서 말하자 고리야마는 별다른 변화 없이 끄덕거렸다.
"그렇군. 알겠네. 똑같은 손님 대접을 원한다면 그렇게 해줘야지. 코마츠, 여기 이 손님 좀 안내해 드려라."
"네, 사장님!"
코마츠라 불린 여직원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고, 고리야마는 주저 없이 등을 돌렸다.
도우야가 당황해서 얼른 그를 붙잡았다.
"고리야마 상무님? 갑자기 왜 이러시는 겁니까?"
"똑같은 손님 대접을 해달라며? 그래서 직원에게 안내를 맡겼는데, 문제 있나?"
"그, 그런……."
"도우야 초밥 회장님이시다. 신경써서 대접해 드려라."
"네, 사장님. 알겠습니다."
이대로는 말을 꺼내지도 못할 것 같아서, 도우야는 얼른 자신을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그냥 전처럼 도우야 산쿠라로 대해주십시오."
"전처럼? 왕자님 대접을 해달란 말인가?"
"……편하신 대로 해주십시오."
고리야마는 코마츠 직원에게 눈짓을 했고, 그녀는 눈치를 채고는 다른 곳으로 갔다.
"난 이제 도우야 초밥 직원이 아닐세. 그러니 상무라고 불릴 이유가 없지."
"……네, 고리야마 사장님."
"이쪽으로 오게나."
고리야마는 도우야와 노비타를 한 적한 룸으로 안내했다.
그래도 대접을 해주려나 보다 하고 도우야가 한숨을 돌렸다.
"VIP 오마카세 코스가 있는데, 메뉴는 그걸로 하는 게 어떻겠나?"
"네, 그걸로 부탁드립니다."
"참, 가격은 300만 엔일세."
"예? 300만 엔이라고요!"
도우야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노비타도 그 가격에는 놀랐다.
물론 상류층이 생물 고등어 한 마리를 30만 엔에 사먹는 걸 생각하면, 아예 말이 안 되는 코스 가격은 아니다.
상류층 인사들은 기꺼이 그 돈을 내고 와서 밥을 먹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보통 사람들을 상대로 적당히 비싼 가격으로 장사하는 곳이 아닌가?
"고리야마 사장님, 메뉴판에 그런 코스는 없습니다만?"
"당연히 없지. 진짜 VIP들을 위한 메뉴니까. 가게 문을 닫고 나서 딱 10팀만 받는다네."
"……."
"1인분에 100만 엔이니까, 그렇게 비싼 가격도 아닐세. 암시장에서 생물 도미 한 마리가 50만 엔도 넘게 거래되는 건 알고 있겠지?"
어획대란 이후 일본에는 생선만을 취급하는 전대미문의 암시장도 생겨난 상태였다.
정부의 눈을 피해서 몰래 생선을 거래하는 시장으로, 마약이나 금 등의 밀수보다 더 삼엄한 보안을 자랑하며, 주로 상류층이 고객이다.
"이 매장이 양지에 나와 있어서 그나마 1인분에 100만 엔만 받는 걸세. 그러니 다행인 줄 알아야지."
"……그런데 왜 3인분입니까? 저희는 둘……."
"나한테 뭐 할 말이 있어서 온 게 아니었나? 마침 나도 배가 고파서 말이야."
"주십시오. 3인분."
3인 점심값으로 300만 엔을 지출하다니.
도우야는 아까워서 미칠 것 같았다.
아무리 많은 부를 물려받았어도, 식사 한 끼에 이렇게 큰돈을 쓰는 건 처음이었다.
도우야 초밥이 일본 제일의 프랜차이즈라고 하나, 미쓰비시 같은 진정한 재벌에는 전혀 비할 바가 아니었다.
고리야마는 직원을 불러서 주문을 전달했고, 자신도 룸 테이블에 앉았다.
"그래, 잘들 지내고 있나? 내가 요즘 도우야 초밥 소식은 잘 몰라서 말이야."
"실은 상황이 많이 어렵습니다. 생선 초밥을 낼 엄두는 내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역시 그렇군. 뭐, 어딜 가나 요즘은 다 마찬가지 아니겠나. 생선 구경하기 힘들지."
"그런데 여기 고리야마 스시는 생선 요리를 마음껏 내고 있군요. 그것도 무척이나 합리적인 가격으로 말입니다."
"우리야 질 좋은 생선을 싸게 제공해주는 양식장이 있어서 말이지."
도우야는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궁금하고 물어보고 싶은 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수영양식장에서 공급받는 것은 확실할 텐데, 일본 정부가 중간에서 가로채지는 않는 걸까?
"뭐, 어딘지는 도우야 군도 알고 있겠지. 수영양식장일세."
"정부에서 태클을 걸진 않습니까?"
"그러려고 했지. 그런데 하수영 회장님이 한마디 하셨네. 본인이 납품하는 물건에 손을 댔다가는 일본 업자들은 다시는 어시장 경매에 참여 할 수 없을 거라고 말일세."
"정부로서는 손을 들 수밖에 없었군요……."
"하수영 회장님은 배려심이 아주 깊으신 분일세. 납품 가격도 어획대란 이전의 수준만 받고 계시고 있으니까."
도우야와 노비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납품가가 예전 수준이라고?
메뉴 가격은 10배 이상으로 올려서 받고 있는데?
그런 1인분을 팔 때마다 음식 가격의 거의 95% 이상을 남겨 먹는다는 소리 아닌가?
"런치 특선을 9,900엔에 파는데도 양심적인 가격이라며 고객들이 칭찬을 해주고 있어. 허허, 참 세상사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수영양식장이 고리야마 사장님을 정말 돈독히 생각하나 봅니다……."
"참치로 맺어진 의리가 어디 가겠나? 하수영 회장님은 의리를 정말 중요시 여기는 분일세. 그분이 도쿄에서 참치 해체 쇼를 하셨을 때, 내가 누구보다 열심히 박수를 쳤던 것도 기억해 주신다네."
중요한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 어느덧 요리가 나왔다.
VIP 전용 오마카세라는 말이 틀리진 않았다.
온갖 진미를 섭렵한 도우야조차도 보는 것만으로 입에 군침이 돌았다.
일본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맛있고 진귀한 생선으로 만든 초밥들이 접시에 한 가득이었다.
'접시 하나에 100만 엔, 접시 하나에 100만 엔…….'
새어나오려는 피눈물을 틀어막으며, 도우야는 식사를 했다.
한편 노비타는 설마 자신 몫은 사비로 내라는 건 아닌지 걱정하느라 음식이 제대로 넘어가질 않았다.
'에이, 설마. 그래도 회사 경비로 처리를 하시겠지…….'
고리야마는 셋 중에서 가장 편안한 표정으로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언제나 정중했던 태도만을 기억하는 도우야는 그런 표정이 너무 낯설었다.
식사를 마치고 난 후 고리야마가 맥주로 입가심을 하며 말했다.
"비싼 거 사게 했다고 원망하지 말게. 이 정도는 접대를 해야 나도 겸상해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지, 안그러면 얼굴을 맞댈 이유가 없으니까."
뼈가 있는 말이었다.
승계와 동시에 순장 처리를 했으니, 이야기라도 나누려면 이 정도는 네가 당연히 지불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100만 엔짜리 메뉴도 얻어먹고, 동시에 300만 엔의 매출을 올린다.
감히 자신을 순장시켰으니, 꿩도 내놓고 알도 내놓고 해야 이야기라도 들어주지 않겠나.
"예전 일은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사장님께 부회장 자리를 드릴 테니, 다시 회사로 돌아오셔서 모두를 이끌어 주십시오."
도우야는 동시에 머리를 깊이 숙였다.
진심으로 미안한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진심으로 보이도록 열심히 노력했다.
"됐네. 난 하수영 회장님의 배려와 의리 덕분에 이런 좋은 가게도 차릴 수 있었고, 도우야 초밥에 다니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돈을 벌고 있네. 뭐 더 좋은 꼴을 보자고 거기로 다시 돌아가겠나?"
"고리야마 사장님! 도우야 초밥은 사장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안 그래도 그분도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네. 내일 새벽 1시에 항구로 오게."
"예?"
"왜, 하수영 회장님을 만나 뵙기 싫은가?"
"그, 그건 아닙니다만."
도우야는 당황했다.
하수영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래서 고리야마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느긋했던 것인가?
"난 사신 역할만 할 뿐일세. 그분이 뭐 때문에 자네를 기다렸는지는 몰라."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고리야마는 입술 뒤로 감춘 조소에 그 말을 씹어 삼켰다.
"충고 두 가지를 하지. 현금을 두둑이 챙기고, 그분께 절대 말대꾸하지 말게."
"……예."
현금은 왜 두둑이 챙기라는 거지?
도우야는 그 점이 이해되지 않아 머리를 계속 굴렸다.
고리야마가 흐릿하게 웃었다.
"자네는 아주 운이 좋아. 생선 암시장 경매는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암시장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