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74화
232장 참치로 맺은 의리 (1)
전 농토의 요새화.
국회에서 몇 번이나 논의되었지만 번번이 무산되곤 했다.
한국 영토가 좁다고는 하나, 전국개활지 논밭을 태풍에 끄떡없게끔만들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의 생각은 대체로 이랬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재작년부터 태풍이 심했어도 식량공급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안 그래도 돈 나갈 데가 많은데 굳이?"
"큰돈 들여 뚜껑을 씌우느니, 물난리 날 때마다 복구를 하는 게 훨씬 싸게 먹힌다."
"어차피 쌀뿐만 아니라 다른 곡물들도 수영농장에서 무한으로 복사하고 있지 않은가?"
"굳이 그렇게까지?"
전국의 농토, 축사까지 완전 개조하려면 최소 10조 내지 28조 원의 예상이 소요될 것이라는 보고에, 국회는 완전히 관심을 놓았다.
"지금도 멀쩡히 잘 굴러가는데 굳이 큰돈을 낭비할 필요가 있겠나?"
"차라리 그 돈으로 한강 정비사업이나 하는 게 낫겠지."
"수영농장이 있으니 괜찮다. 아무 문제없다."
하수영도 사비를 들여 콘크리트 강화유리 하우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혜택을 받는 것은 본래 비닐하우스 농가들뿐.
곡물 등을 키우는 개활지 논밭 농가는 대상이 아니었다.
여의도 농성과 물대포 현상을 본 전성렬이 하수영한테 물었다.
"자네라면 논밭에도 하드 하우스를 깔아주는 건 문제가 없을 텐데?"
"문제야 없죠. 그거 얼마나 한다고요."
건설사와 제철업체도 거느리고 있으니 비용은 더욱 절감되리라.
"그럼 왜 개활지 논밭은 놔두는 건가?"
"디바인드 앤 룰이죠."
"분할통치? 갑자기 그게 왜?"
"너무 오냐오냐해 주기만 하면 당연한 줄 생각합니다. 그래서 적당한 부분에서 방치의 시련을 겪게 해주거죠. 계산된 자선이자, 기부입니다."
"하 사장 자네가 농어촌에 엄청나게 베풀기는 했지……."
"많은 걸 도와줄 순 있어도, 전부 도와줘서는 안 됩니다. 자기 힘으로 부딪치고 깨져보고 그런 경험도 유지를 시켜줘야 해요. 그래야 제가 베푼 걸 고마워하고, 말을 잘 듣죠."
"뭐, 개활지 논밭에 뚜껑 안 달아줬다고 자네 책임인 것은 아니니까. 근데 그것을 자네 탓으로 돌리고 징징거리는 사람들도 나오지 않겠나?"
전성렬은 수십 년간 사업을 하면서 온갖 군상을 다 봤다.
당연히 그런 사람들도 나올 것이다.
람보르기니 트랙터, 담수헬기, 유류, 사료, 비료, 농기구 등등 온갖 지원을 받았어도, 받은 고마움은 없고 더 해달라는 시커먼 욕심만 가득 한 사람들.
그런 이들은 비율적으로 늘 존재한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상하게 목소리를 안 내요. 뭉쳐서 좀 소란도 피우고 그래야 하는데."
"꼭 기대하는 것 같네만?"
"좋은 본보기를 보여줄 수 있잖아요. 한 번씩 본보기를 보여줘야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데, 왜 아직도 조용하지? 너무 잘해줘도 불만이 가지는 사람은 꼭 있는 법인데."
전성렬은 농담처럼 말했다.
"그럼 자네가 부추겨 보지 그러나? 보통 권력자들은 그런 짓 많이 하던데."
"옛날에야 많이 했죠. 일부러 안하는 겁니다. 우주 정복이 목표도 아닌데 뭐 굳이 그렇게까지 냉철하게 할 필요가 있겠어요?"
"자네가 그리 말하면 꼭 진심 같다니까. 우주 정복이 불가능할 거 같지 않아서 무서워."
"불가능은 없습니다. 가능에 도달하는 시간이 얼마냐 문제일 뿐이죠."
"그럼 여의도 농성에는 말을 아껴야겠군."
"네. 국회가 물난리 날 때마다 복구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걸 확실히 각인시키는 게 좋겠죠."
"그런데 어차피 수영농장이 있으니 아무 문제가 없지 않나?"
하수영은 풀썩 웃으며 반문했다.
"제가 나중에 농장 여러 개 관리 귀찮다고 미국이나 러시아로 통합해 버리면요?"
"……그럴 계획이 있었어?"
"아뇨, 아직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 변덕이라는 게 있잖아요. 국회는 당연히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 자영농 생태계를 유지해야 하고요."
"……허허."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제가 영원히 경기도에서 농사지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네요. 물론 저야 특별한 일 없으면 계속 경기도에서 농사지을 거지만, 국회와 정부는 최악을 대비해야죠."
"자네 말이 옳군. 좋아."
"계속 물난리 나고, 복구와 생활비만 보조하는 흐름은 안 좋죠. 나중에는 곡식 한 톨 생산 안 하는데, 왜 지원을 해주냐는 여론이 생길 수도 있고요. 그러면 결국 농사 직종이 없어집니다."
"하긴 지금이라도 자네가 곡물 가격을 올려 버리면 이 나라는 꽤 타격이 크겠지."
"코스피를 최소 500 정도는 떨어뜨릴 수 있을 겁니다."
"그 정도면 이 나라는 그냥 망했다고 봐도 될 거 같네만."
***
일본 제일의 스시 프랜차이즈 도우야 초밥은 한때 수영양식장과 참치로 맺어진 동맹이었다.
그러나 선대회장이 죽고 도우야 산 쿠라가 회장이 되면서 그 결속은 끊어졌고, 이제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쌀 등 매장에 필요한 식재료들까지 수영농장에서 구매하는 조건에 신임회장이 불만을 품은 까닭에서 빚어진 참사였다.
이제 도우야 산쿠라는 누구보다 그 결정을 크게 후회하고 있었다.
"또야? 또 까였어?"
"네, 회장님. 미팅을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칼같이 거절당했습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라고 하지 않았나!"
도우야 산쿠라는 처음에는 자신만 만했다.
일본의 우수한 품종쌀과 다른 곡물, 채소들을 쓰지 않고 어찌 한국산을 쓴단 말인가.
참치 따위야 바다에서 얼마든지 잡아오면 그만이고, 일본은 참치 양식의 원조이자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니까.
그가 인생은 실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바로 세계어획대란의 심화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던 어획대란은 갈수록 심해지기만 했다.
"회장님, 어자원 부족으로 어류 가격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지. 초밥 가격을 올려.
물가 상승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가격 인상이라고 공지해."
처음에는 가격을 올려서 해결했고,
"회장님! 어류가 너무 부족합니다! 이대로는 방문객들의 기존 수요를 맞출 수 없습니다!"
"식재료가 부족하면 일찍 문을 닫으면 되지, 뭐 그리 대단한 문제인가? 그리고 어시장을 독점해서라도 물고기들을 쓸어오게."
업계 1위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어부들을 협박하고 어시장을 독점했으며.
"회장님! 참치가 더 이상 잡히지 않습니다! 원양참치어선들이 모두 텅 빈 배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참다랑어가 씨가 마른 거 같습니다!"
"우리 일본은 세계 최대의 참치 양식장을 갖고 있는데 무슨 대수인가? 당분간은 자연산 참치를 내놓을 수 없다고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게."
그러나 이번만큼은 언 발에 오줌누기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회장님, 참치 양식장들이 모두 폐업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뭐야, 폐업이라고?"
"네! 전국의 모든 참치 양식장들이 폐업을 준비 중입니다!"
"아니, 어째서?"
그제야 도우야 산쿠라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참치는 스시의 생명이다.
일본 소비자들의 참치 사랑이 얼마나 각별한 수준인가.
그런데 바다에서도 잡을 수 없는 데, 양식장들도 문을 닫는다고?
그럼 참치를 어디서 구하라고?
"참치 양식장들이 대체 왜 문을 닫는 건가?"
"참치 사료로 쓰이는 고등어나 정어리 같은 생선들이 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팔 수 있는 참치는 한꺼번에 다 팔고, 치어도 방류해서 사업을 접었다고 합니다."
수영양식장에 '님들 치어 사실?' 이라고 제안을 했지만, 응 필요 없음. 이라고 거절당한 일화까지는 알지 못했다.
"고등어가 잡히지 않으면 양식장에서 사오면 되는 거 아닌가!"
"……다른 양식장들도 다 폐업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어째서!"
"양식장 사료는 대부분이 바다에서 잡은 잡어들을 갈아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바다에서 물고기가 통잡히지 않으니……."
도우야 산쿠라는 멍청한 얼굴로 반문했다.
"물고기 양식에 물고기 사료를 쓴다고?"
"예. 고등어 1kg을 생산하려면 10kg 이상의 잡어가 필요합니다. 양식 고등어를 사료로 쓰면 양식 참치 단가가 오히려 자연산보다 비싸집니다."
"……."
그렇게 도우야 산쿠라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거대한 모순의 순환고리를 목격한 것이다.
첫 붕괴까지 오래 걸렸을 뿐이지, 연쇄 붕괴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일본의 시장에서 생선이 증발했다.
어촌에는 부두에 묶인 채 놀고 있는 어선들만 있었다.
매일 새벽을 열던 어시장 경매는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전국의 모든 양식장에서 사람이 떠났다.
바다를 싹싹 긁다시피 해서 생선을 잡아오는 어선들이 있긴 했다.
그러나 평년도 어획량의 0.001%도 채 되지 않는 물량이었다.
그것들은 매우 비싼 가격으로 부유층에 팔렸고, 일반인들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한 마리에 30만 엔(300만 원)이 넘어가는 고등어를 무슨 배짱으로 먹겠는가?
"해상 어시장 경매는? 수영양식장에서 매일 바다에서 경매를 연다고 하지 않았나? 그걸 들여오는 업자들도 있을 거 아닌가?"
"그거는 정부에서 강제로 전량 수매해서 유통을 관리합니다. 지금 생선은 거의 전략물자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회장님."
"으아아아! 이럴 수는 없는 거야!"
도우야 초밥뿐만 아니라, 모든 스시 매장은 상당수 메뉴를 삭제해야 했다.
생선 초밥, 생선알 초밥은 사라졌다.
계란, 유부 채소, 소고기, 돼지고기, 오리고기, 닭고기 초밥들이 고객들을 맞이했다.
-참치가 없다니! 이건 절대로 초밥 1인분이라고 할 수 없어!
-넙치! 넙치를 주시오!
-도미 초밥은 그럼 이제 영영 맛볼 수 없는 건가? 안 돼! 이건 저주야, 저주!
젊은 혈기에 취해 악수를 두었던 도우야 산쿠라는 너무 늦게 정신을 차렸다.
"고리야마! 고리야마 상무를 만나야겠다! 그 사람은 수영양식장과 친했으니까 협상을 할 수 있을 거야!"
"회, 회장님! 고리야마 사장님은……!"
"지금 당장 안내해! 내가 그 사람 앞에서 도게자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 위기를 극복해야겠다!"
"고리야마 사장님이 우리 도우야 초밥을 도와줄 리가 없습니다!"
"나도 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그렇게 팽을 당했으니 그 속에 얼마나 서운함이 쌓여 있겠는가! 그 사람을 내치자고 한 자들을 좌천시키고 용서를 구할 것이다!"
"……."
"……."
임원들은 그저 기가 막혔다.
애초에 고리야마가 부친의 가신이라는 이유로 순장한 것은 도우야 산쿠라 본인이 아닌가.
이제 와서 남 탓이라니.
"수영양식장과 화해만 성사시키면 부회장 자리를 줄 테니까 어서 약속을 잡아보게! 어서!"
빠드득.
공석인 부회장 승진이 예정되어 있던, 도우야 산쿠라의 최측근이 들리지 않게 이를 갈았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제가 책임지고 약속을 잡아보겠습니다."
"노비타 상무님? 하지만 고리야마사장은……!"
"오, 노비타 상무. 역시 자네밖에 없군. 어색하지 않게 자리를 잘 만들어주게."
"예, 회장님."
노비타 상무는 들리지 않게 다시 한번 이를 갈았다.
***
"고리야마 상무가 여기에 있다고?"
도쿄 번화가에 위치한 빌딩의 1층 스시 매장.
많은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뜻 봐도 홀은 사람들로 꽉 차있고, 종업원들이 분주하게 서빙을 하고 있다.
"고리야마 상무가 스시를 차렸어?"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뭐 이렇게 사람들이 줄을 서서…… 뭐야?"
그때 도우야 산쿠라의 눈에 확 들어오는 정문 입식 메뉴 안내판이 있었다.
[오늘의 런치 특선 메뉴 - 1인분 9,900엔]
[참치, 고등어, 도미, 연어, 광어, 문어]
[참치 1인 메뉴를 주문하실 경우 맥주 1병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