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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966화 (966/1,270)

프랜차이즈 갓 966화

230장 천기누설 (6)

하수영은 1002호로 이동했다.

가장 구석 병상에서 김범석이 김상희를 끌어안고 펑펑 울고 있었다.

사망 소식과 동시에 심장 이식을 강요받느라 얼굴도 확인하지 못했던 그 딸이 살아 있었으니, 눈물이 마구 솟구칠 만하다.

"주인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상희가 죽은 게 아니었습니까?"

"어, 뇌사인 척 꾸며서 심장을 찌내려고 했던 거다. 그럼 진짜로 죽었겠지."

"어, 어떻게 손녀에게 이런 악독한 짓을!"

"김유신인지 뭔지 하는 그놈 단독범행이더라. 병원장은 공범이고, 아마 의사 중에도 가담자가 더 있겠지. 그건 경찰에서 알아봐 줄 거다."

부친의 짓이 아니라 단독범행이라는 말에 김범석의 표정에 안도감이 스쳤다.

그래도 생부가 천륜을 어기지는 않았다고 하니, 천만다행이었다.

하수영은 김상희를 돌아보며 불렀다.

"김상희."

"……네, 회장님. 정말 감사해요. 대충 들었어요. 회장님 아니었으면, 저는……."

"그건 됐고, 위자료 받아야 할 거 아냐?"

"네? 위자료요?"

"그래. 손해배상금하고 위자료해서 거하게 받아내야지. 뭐를 받고 싶어?"

"네?"

김상희는 당혹감에 얼굴이 빨개졌다.

죽었는지도 모르고 돌아다니다가 이제 막 살아났는데, 위자료 목록따위를 생각해 두었을 리가.

"잘 모르겠지? 그럼 나한테 맡겨. 이 대감님이 신경 써서 두둑하게 챙겨준다."

"네? 대감님?"

"원래 외거노비 가족이 어디 가서 맞고 오거나 그러면 대감님이 나서서 챙겨주는 거야. 그러니 딱 기대하고 있어. 째끈하게 챙겨주마."

"오오! 우리 상희, 주인님 덕분에 횡재하게 생겼구나!"

"아빠. 질질 짜면서 그렇게 말하니까 뭔가 기분이 이상해."

"질질 짜다니! 아빠가 언제 울었다고!"

"지금도 우는데? 그만 울어. 이러다가 모근 다 죽겠어."

외거노비 부녀가 궁상을 떠는 걸 무시한 채, 하수영은 왕세경에게 말했다.

"이창영 회장은 우리 병원으로 보내서 치료하기로 했습니다. 부이사장님이 이송에 함께 동행해 주세요."

"알았네. 차사가 붙는 걸 막으려면 내가 따라붙어야겠지."

"네, 부탁드립니다."

"상희 이 아이 위자료를 이창영이한테 직접 받아낼 생각이군?"

"이현덕 부회장한테는 많이 못 뜬 어낼 거 같아서요."

"자기 책임도 아니면 현덕이 그놈이 많이 내줄 리도 없지."

***

이창영은 청담수영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다.

곁에 쭉 붙어 있던 다섯 명의 저 승차사들은 구급차를 태연히 따라왔다.

분명히 천천히 걷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뒤를 돌아보면 차사들은 구급 차 바로 뒤에까지 따라붙어 있는 상태였다.

절반 조금 넘게 왔을 때였다.

-때가 되었다. 명패를 꺼내라.

-이창영, 이창영, 이창…… 윽!!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왕세경이 허허 웃으며 빈손을 흔들었다.

그가 던진 것은 바로 청담수영병원에서 가져온 새 수술장갑이었다.

차사들이 놀라서 반응했다.

-그대, 우리가 보이는가?

-이런, 성주신이다!

-이럴 수가! 한양의 성주신은 모조리 사라졌다고 들었거늘!

-얼마 전에 대왕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새로운 성주신인 것 같다!

-새 성주신이 터 잡은 곳은 한강아래일 터인데, 어째서 이곳까지?

그제야 왕세경의 정체를 깨달은 차사들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성주단지에서 멀리 벗어나서 약해진 성주신이다! 우리 모두가 달려 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차사들이 달려들 기세이자, 왕세경은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 머리에 썼다.

가장자리가 닳고 닳은 밀짚모자였다.

기세 좋게 달려들려던 자사들은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튕겨 나갔다.

-이게 뭐지? 다가갈 수가 없다!

-무언가 거대한 힘이 저 성주신을 보호하고 있다!

-이럴 수가! 성주단지에서 멀리 떨어져 약해진 게 아니었나?

왕세경은 인자하게 허허 웃으며 말했다.

"성주신황제의 땀이 듬뿍 담긴 작업 모자다. 일개 차사들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아니지."

-젠장, 일단 물러난다!

-하지만 망자를 신줏단지 안으로 데려가 버리면 우리가 손을 쓸 수가 없어집니다!

-언제까지 신줏단지 안에서 살 수는 없는 법! 그때를 노리면 된다!

-하지만……

-대왕님의 명령이다! 절대 성주신 황제를 상대하지 말라고 하셨다! 잘못하면 명계 전체가 공격을 받게 된다!

결국 차사들을 이를 갈면서 물러났고, 이창영은 무사히 수영병원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수술을 할 필요도 없었다.

약물 처방 등 응급치료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창영은 정신을 차렸다.

완치된 것은 아니지만, 당장은 황천강 앞에서 이승 쪽으로 몸을 돌린 것이다.

서해서울병원 의사들이 봤다면 절대로 믿지 못할 광경이었다.

***

"……이렇게 된 걸세."

깨어난 이창영에게, 왕세경은 차분히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저승차사, 자신이 성주신이라는 사실 등은 당연히 뺐다.

이창영은 의외로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그런가…… 김유신이, 그 친구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친구요."

"이창영이, 이 모든 건 결국 자네가 짊어져야 할 걸세."

"왕 회장님, 김유신이 그 친구는 어찌 되었소?"

"병원장과 함께 구속됐네. 가담한 의사 두 명도 함께. 선처를 바라는가?"

"다른 이도 아닌 내 손녀를 죽여서 나를 살리려 했는데, 선처를 바란다면 내가 천륜마저 역행하는 말종이 되지 않겠소?"

"흐흐, 다른 이유가 아니라 본인 자신을 위해서 그러지 않겠다니. 자네는 역시 변한 게 아무것도 없구먼."

"왕 회장님, 하수영 의원을 불러 주시오."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다네."

잠시 후 하수영이 병실에 들어섰다.

연 입원료가 1,000억 원인 VIP실은 아니고 평범한 1인실이었다.

이창영은 '공식적으로는 VIP실 입원료를 지불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그 머슴놈이 왜 그랬는지는 들었습니까?"

이창영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들었네. 결국 돈을 바라고 한 짓이었다고?"

"만약 그놈 뜻대로 되었다면, 얼마까지 지불하셨을 겁니까? 솔직하게."

"탓하지 않을 텐가?"

"그럼요. 어디까지나 가정이니까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지요."

허탈한 웃음을 몇 번이고 곱씹던 이창영이 천천히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지만, 세상에 알려지면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테지."

이창영은 정말 몰랐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은 의식불명이었고, 모든 것은 김유신이 주도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공개되는 순간 손녀의 목숨을 팔아 연명한 추악한 늙은이가 될 뿐이다.

그런 리스크까지 저울에 올려서,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나를 살린 것, 그리고 김유신이 그놈의 입까지 막아야 한다면……. 적어도 10조 원 이상은 지불해야 하겠지."

"그놈 전 재산이 1,250억 원 정도 더군요.."

"그새 조사를 했나 보군, 맞네. 아마 그 정도쯤 될 게야."

"천억을 가진 놈이 10조 원을 가질 수 있다면 충분히 눈이 뒤집어질 만하겠죠."

조 단위 재산.

여기서부터 진정한 재벌의 영역으로 갈리게 된다.

김유신은 천억대 이상의 자산가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조 단위 재벌이 되는 것에 끝없는 동경을 품고 있었으리라.

"그래서 나는 죽는 건가? 자네가 봐준 천기대로 따랐는데?"

"제가 준 점괘는 전 재산을 서자에게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공식적인 전 재산을 모두 주었네. 이 정도는 문제없다고 자네도 말하지 않았나?"

"문제 될 가능성이 적다고 했지, 100%라고는 안 했습니다."

"그럼 자네의 천기가 틀린 거 아닌가?"

"틀리지 않았죠. 비자금까지 전부주었더라면 애초에 이렇게 틀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이창영이 지친 와중에도 의아함을 보이자, 하수영은 차분히 설명했다.

"비자금마저 모두 털어냈다면, 정말 회장님이 빈털터리라면, 김유신 그놈이 애초에 이런 짓을 벌이지 않았을 겁니다."

결국 돈 때문에 한 짓이니.

병원장을 끌어들이고, 김상희를 차에 치이게 하고, 뇌사로 꾸미려고 시도하는 등의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되면 결국 내가 죽는다는 건 변하지 않을 텐데?"

"변했을 겁니다. 범석이 그놈이 나한테 자기 애비를 살려달라고 무릎을 꿇었을 테니까요.."

"자네가 내 심장을 고쳐줄 수 있다고? 그럼 애초에 범석이한테 내 전 재산을 주면서 돌아갈 필요가 없지 않았나?"

"범석이 부탁쯤은 되어야 제가 운명 역행을 도와주지, 별로 친하지도 않은 재벌 회장 목숨을 뭐하러 연명해 줍니까?"

"……."

"천기라는 게 그렇습니다. 지나간 뒤에야 그렇게 얽혀 있다는 걸 알수 있어요."

"정말…… 지금 자네에게 나를 살릴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 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줄 가능성이 없습니다. 범석이 딸이 죽을 뻔한 게 아니었어도, 내가 그렇게까지 질서를 흐트러뜨릴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전 재산을 받은 것에 감동한 김범석의 부탁.

오직 그것만이 완전 소모된 이창영의 명을 다시 이어갈 유일한 수단이었다.

눈썹을 파르르 떨던 이창영이 힘없이 말했다.

"그럼 이제라도 다시 바로 잡으려면……."

"늦었죠. 한 번 누설한 천기는 이미 비틀어졌고, 이제 새로운 천기로 이어졌습니다."

"방법이, 방법이 정녕 없는 겐가? 이제라도 범석이 마음을 돌린다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여기까지 와서? 그게 가능할 거 같습니까?"

궁지에 몰린 이창영은 하수영이 짓고 있는 조소를 깨닫지 못했다.

애초에 하수영이 굳이 자신을 청담수영병원으로 데려와 살려준 이유를 몰랐으니,

"바뀐 천기를 다시 봐드리겠습니다. 이건 서비스입니다. 복채는 필요 없습니다."

"고맙네. 정말 고맙네."

"들으면 그런 마음이 싹 가실 겁니다."

"……?"

"회장님 사후에도 서해그룹은 번창할 겁니다. 계열사들은 지금보다 더 번창하고, 경영도 더 높은 궤도에 오를 겁니다."

하수영은 안도감이 피어나는 이창영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 안에 이씨 일가의 자리는 없습니다."

"……!"

이창영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룹은 번창하는데, 자신의 가문은 쫄딱 망한다는 뜻 아닌가?

"막을 방법이 있습니다. 범석이한테 그룹을 송두리째 넘기십시오. 서해라는 이름이 붙은 것들은 전부다."

"범석이만이 그 액을 비껴간다는 뜻인가?"

"그리고 회장님이 숨겨둔 비자금, 마지막이자 회장님의 전부인 그 재산, 모두 상희에게 넘기세요."

"……!"

"그럼 서해그룹 총수는 여전히 회장님의 핏줄이 차지하게 될 겁니다. 대를 이어서 말이죠."

"천기에 오류나 과장은……."

"천기를 걸고 거짓을 말하진 않습니다."

"……."

이창영의 안색은 흙빛이 되었다.

범석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천기,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비자금을 내놓고 그룹을 범석이에게 주지 않으면, 하수영이 언젠가 그렇게 만들어버리겠다는 뜻일까?

이창영은 그것을 확인할 자신이 없었다.

언젠가 하원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천기를 걸고 거짓을 말하진 않습니다.

수백 번이 넘은 정교한 점괘에서 그는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정말 미래를 훤하게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정도로 정확하고 자세한 점괘들을 받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지금의 그룹을 만들었다.

그렇기에 하수영이 누설한 천기를 신뢰할 수 있다.

"그리 하겠네."

이창영은 힘없이 대답했다.

***

-이창영 회장을 굳이 살린 이유가 궁금했는데, 위자료를 대신 받아주려고 그러셨군요. 일단 이창영이 정신을 차려야 제대로 위자료를 뜯어낼 수 있으니까.

"살린 것도 아니다. 심장이식 못받으면 어차피 죽어. 내 병원에 있는 동안은 괜찮겠지만."

-그런데 그 천기 말입니다. 그대로 따르지 않으면 마스터께서 서해그룹에서 이씨 일가를 도려내겠다는 뜻입니까?

"완전히 도려내지던가, 범석이 하나라도 붙여놓던가, 선택을 해야겠지."

하수영은 심드렁하게 말하며 김범석한테 전화를 걸었다.

"범석아. 상희 말인데."

-네! 아주 건강하고 씩씩합니다! 모두 주인님 덕분입니다! 어흐흐흑!

"아니아니, 그거 말고, 걔 수영사채 계좌 있대?"

-예?

"없으면 적금 하나 들라고 해라. 내가 잘 불려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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