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63화
230장 천기누설 (3)
하수영은 청담수영병원에서 왕세경과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인술을 베푸는 병원 오너가, 무시무시한 무기의 주인이라니. 이거 참 공교롭구먼."
"그렇게 무시무시한 무기는 아닙니다."
"나도 주워들은 건 있네. 레일건이라는 무기가 미국도 포기한 최첨단 대량살상병기라지?"
"대량살상병기는 절대 아니고, 그냥 좀 성능 좋은 포문일 뿐인데요."
"자네 그 전투함 한 척이면 일본 함대 전부를 3분 안에 쓸어버릴 수 있다던데?"
"에이, 그건 절대로 불가능하죠."
"그래?"
"네. 해상자위대 함정들이 3분 안에 한곳에 집결하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모이기만 하면 3분 안에 다 쓸어버릴 수 있다. 그 소리 아닌가?"
"알아서 고맙게 모여주면 못 쓸어버릴 게 뭐가 있겠습니까?"
왕세경은 조용히 턱을 쓰다듬었다.
"너무 무기에만 신경 쓰지 말고, 청담 스코프에도 좀 신경을 써주게. 내가 하도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야."
"실리콘밸리와 미 군수업제 공단을 합친 것 이상의 복합공단을 만들어야 가격을 다운할 수 있는데, 정부가 그 돈을 안 주잖습니까."
"지금까지 얼마나 줬지?"
"이제 겨우 50조 원 줬습니다. 이거 가지고 어떻게 양산해요. 공장 몇 개 밖에 못 짓겠네."
1,520억 원짜리 청담 스코프를 몇 백, 몇천만 원 단위로 떨어뜨리기 위한 대규모 양산화 투자.
하지만 정부가 돈을 주지 않으니 갈 길이 요원하다.
"그리고 부이사장님도 청담 스코프로 관료들이 숟가락 얹으려는 거 괘씸해하지 않았나요?"
"아, 괘씸한 건 괘씸한 거고, 실명환자들 안쓰러운 건 안쓰러운 거고, 이래 봬도 내가 병원 부이사장일세."
"돈 좀 팍팍 지원해 주면 좋은데. 하여튼 모피아놈들은 국고 좀 연다고 하면 벌벌 떨어대서 뭘 할 수가 없어요."
"그래도 남항순 기재부 장관은 요즘 자네한테 꽤 우호적인 거 같던데. 가끔 병원 찾아와서 자네 안부를 물어본다네."
"그래요? 왜 그러죠?"
"그 있잖나. 저번에 그 친구 아들이 골프 치다가 다쳐서 죽을 뻔했는데 닥터헬기가 골든타임 안에 출동해서 응급수술해서 살아났지. 그 뒤로 자네한테 마음이 돌아선 거 같던데."
"그럴 리가 없습니다. 수영사채 총 수신액이 1,500조 원이 넘어서 그런걸 겁니다. 게다가 대부분이 외화죠."
"그런가? 내 생각이 들렸나?"
"현직 모피아 수장입니다. 자기 아들 살려줬다고 줄 바꿀 리가요. 1,500조 원이라면 몰라도요."
"근데 그 정도 돈이면 어떻게든 부스러기 좀 주워 먹으려고 정치인이고 판검사고 간에 기웃거리기도 한데, 뭐 좀 없나?"
"가끔 선동과 날조 기사 뜨는 거 말고는 그다지 없네요."
"역시 덩치가 너무 커지니까 그 하이에나들도 군침만 흘리고 다가오질 못하는구먼. 우리 세경그룹이 한창 잘나갈 때에는 말이야. 김이고 소고기고 간에 바닥에다가 현찰 꽉 깔아서 명절마다 뿌리지 않으면 이놈들이 세무조사다. 횡령조사다. 뭐다 하면서 귀찮게 굴었어."
"전 오히려 불만이에요. 이렇게까지 무시로 일관하면 좀 무리해서라도 들이댈 만도 한데, 왜 이렇게 조용한 건지 모르겠어요."
"원전 놈들하고 붙은 건 그럼 뭐고?"
"그거야 핵융합 때문에 걔들이 발작해서 달려든 거고요. 걔들, 제 돈훔쳐 먹을 생각은 못 냈습니다. 어림없죠."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풀고 있는데,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오, 준식이! 이제 온 거냐?"
"네, 회장님. 아, 의원님도 같이 계셨군요."
부이사장실에 얼굴을 들이민 20대 청년은 하수영을 보고 반가워했다.
청담 스코프 1호 수혜자.
태어날 때부터 어둠 속에 살다가, 스물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빛을 깨달은 이.
"두 분에게는 언제나, 정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수영을 보자마자 서준식은 코끝이 붉어지며 눈물을 쏟을 기세였다.
"이 친구는 볼 때마다 이런다니까. 아참, 서준식이가 국제 수학올림피아드에서 또 우승을 했어."
"오.. 좋네요."
"지금 한국대 수학과에서 열심히 학업에 정진하고 있네. 우리 그룹에서도 요긴하게 쓸 만한 인재이지 않을까?"
"부이사장님과 제가 힘을 합쳐 눈도 만들어줬는데 당연히 티타늄 안구가 부식될 때까지 부려먹어야죠. 서준식 씨."
"예! 부이사장님!"
"졸업하면 우리 농장에 들어오는 겁니다?"
"저야 영광입니다! 그런데 저는 농사일은 하나도 모릅니다만."
"설마 트랙터 운전하라고 시키겠어요? 걱정 마세요. 밭일에는 수학자가 할 일이 넘쳐납니다."
농사를 잘 모르는 서준식은 도대체 그런 게 있나 하고 속으로 의아해했다.
어쨌거나 평생의 은인이 자신을 긴히 써준다면 그저 감사하고 가슴 벅찰 일이다.
왕세경이 흐뭇해하며 끼어 들었다.
"농사일 말고, 저기 청담 스코프공단에 투입해서 써먹으면 어떻겠나?"
"흐음. 스코프 양산 공단이라……."
"준식이 이 녀석도 자기가 입은 수혜를 다른 많은 사람들이 누렸으면 하는 욕심이 있거든. 거기에 넣어주면 누구보다 잘할 걸세."
"그런데 거기는 아직 한참 멀었죠. 이제 삽도 안 떴으니까요.."
"연봉은 날 봐서라도 잘 챙겨 주게."
"우리 농장이 줄 수 있는 건 월급 밖에 없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화기애애하게 이야기 중, 별안간 프리덤이 끼어 들었다.
-주인님, 서해그룹 이창영 회장님이 매우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뭐? 이창영이가?"
왕세경은 갑작스러운 보고에 미간을 찌푸렸다.
"또 심장 문제야? 내가 그래서 우리 병원에서 수술받으라고 누차 말을 했거늘!"
-심장보다는 간 문제가 더 큽니다. 연락은 그렇습니다.
"간? 심장이 제구실을 못 하니 이제는 간도 너덜너덜해지는군. 살 수는 있다더냐?"
-그것까지는 없었습니다. 비서실을 통해 온 연락입니다.
"한 번 가봐야겠군."
"부이사장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저도 이제 운전 잘합니다."
"나도 기사 있어. 자네는 어여 검사나 받고 들어가서 공부해."
왕세경은 기어코 서준식을 내쫓았고, 하수영이 덤덤하게 말했다.
"서해서울병원이라면 여기서 좀 멀군요."
"이제 그 정도 거리는 괜찮네. 거의 문제없어."
"그래도 성주신이 성주단지 (신이 깃드는 그릇 : 수영병원)에서 멀어 질수록 신력이 약해져서 위험해지는거 아시죠?"
"우리 하수영 성주신황제께서 명계와 평화협정을 맺었는데, 뭐가 걱정인가?"
"그래도요. 명계놈들은 실적에 눈이 멀면 입을 싹 씻는 못된 습성을 갖고 있어서 완전히 믿기는 어렵습니다."
"음, 그럼 가지 말까?"
"아니, 제가 이렇게까지 말하면 같이 가달라고 부탁을 하셔야죠. 기어이 제 입으로 꺼내게 만드셔야 되겠습니까?"
"뭐야, 그런 거였어? 난 자네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고 그랬던 거지."
"부이사장님이 성주단지 멀리서 돌아다니다가 명계에 끌려가고, 구출하기 위해서 다시 명계를 뒤엎어야 하는 게 번거로운 거죠. 자, 갑시다."
그렇게 왕세경은 하수영의 캠핑카를 타고 같이 서해서울병원으로 이동했다.
"이 캠핑카는 언제 타도 승차감이 끝내준단 말이지. 나도 회장질 할 때 세단 따위 타지 말고 이런 거나 타고 다닐걸."
"부이사장 차로 한 대 뽑아드릴까요?"
"됐네. 뭐 얼마나 돌아다닌다고. 난 병원 안에 있는 게 마음이 편해."
성주신이 성주단지 안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거야 당연한 일이다.
어느덧 캠핑카는 서해서울병원 정문 사거리에 도착해서 신호를 기다.
렸다.
왜애애애앵! 왜애애애앵!
그때 요란한 사이렌과 함께 구급차 한 대가 빠르게 병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왕세경은 무심하게 말했다.
"저 응급환자, 살겠구먼."
"그래요?"
"응. 구급차를 따라오는 저승차사가 안 보여."
"나중에라도 찾아올 수 있지 않습니까?"
"내가 쭉 봤는데, 명부행이 결정된 이들은 구급차부터 차사들이 따라붙더라고."
"이것들이 참나. 빠져가지고는 아주 그냥 지들 편한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네."
하수영이 투덜거렸고, 왕세경은 슬쩍 미소를 흘렸다.
"근데 자네도 볼 수 있지 않나?"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거의 감거나, 닫아둡니다."
"꼭 필요한 때라……. 혹시 세상이 아주 위태롭거나 세상 이치가 크게 흐트러지거나, 그런 경우를 말하는 건가?"
"재미 극대화에 도움이 되냐 안 되냐, 그런 경우를 말하는데요?"
"……."
"게임 공략, 아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 이해를 못 하실 테고, 문제집푸는데 그냥 풀이부터 봐버리면 푸는 재미가 없잖아요? 정말 꼭 필요한 때 아니면 풀이는 안 보는 게 문제집 푸는 흥미를 유지할 수 있죠."
"그, 그렇군. 역시 우리 성주신황제는 여러모로 대단해."
***
병문안을 왔지만, 이창영을 직접 만나거나 대화를 할 수는 없었다.
이창영은 VIP실 중환자 병석에서 에크모를 달고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건가?"
"간 쪽은 차도를 보였는데, 심장이 다시금 급속히 나빠졌습니다. 심정지도 한 번 왔고요. 지금 언제 깨어 나실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김유신 전 부회장이 침울한 표정으로 대신 설명했다.
이창영의 부인, 홍희수 관장은 상당히 덤덤한 안색으로 둘을 대했다.
"하 무당, 이런 일이 온다는 걸 회장님도 알고 있었나요?"
"네. 그때 점을 보면서 제가 말씀드렸죠."
"회장님이 이번에 다시 일어날 수는 있는 건가요?"
"그건 천기누설이라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
"원래 타인의 천기를 들으시려면 막대한 복채를 치르셔야 합니다. 같은 천기라도 본인이 듣는 것과, 타인이 몰래 듣는 것은 대가가 다르죠."
"……그렇군요."
눈이 휘둥그레진 왕세경은 하수영을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물었다.
"자네는 이창영이가 이렇게 될 거란 걸 이미 알고 있었나?"
"네. 전에 점을 한 번 봐줬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아무런 대비도 안 했어?"
"대비는 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더 자세한 건 모릅니다."
"모른다니?"
"그 부분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거든요."
"……."
"운명은 크게 가역적인 것과, 비가 역적인 것으로 나뉩니다. 가역적 운명을 보통 인간에게 허용된 영역이라고 하죠."
"그럼 비가역적인 운명은……."
"인간의 힘으로는 거스르지 못하죠. 아예 불가능하건, 혹은 초월적인 의지의 적용이 있어야 거스를 수 있는."
"내 그럼 문겠네."
왕세경은 벽을 뚫고, 거무스름한 그림자 여럿을 볼 수 있었다.
그 수자 하나나 돌도 아닌, 무려…….
"죽지도 않았는데 저승차사가 다섯이나 미리 와서 기다리는 건, 어떤 경우인가?"
"가역적인 운명이죠. 인간이 극복할 수 있는."
"……."
"그래서 명계도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서 차사를 많이 내려보내는 겁니다."
하수영이 식사하러 간 사이, 왕세경은 로비에 혼자 앉아 있었다.
항상 거만하던, 자신보다 어린 이 창영이 에크모에 의지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서 떠나지 않는다.
왠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던 기억이 자극하는 불안함이다.
'본래 내 예정된 죽음은 뒤집을 수 있는 것이었나, 아니었나…….'
변한 성주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 그 날을 상기하며, 문득 시선을 돌릴 때였다.
불안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소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녀는 한쪽 신발이 벗겨진 채로 로비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몸을 빠져나온 혼이로구나.'
몇몇 차사들이 드나드는 모습이 보이지만, 소녀한테 다가가는 이가 없다.
그렇다면 명부에 아직 이름이 없는…….
'잘못 빠져나온 혼이군. 그래서 차사들이 아직 몰라.'
왕세경은 일어나서 소녀를 향해 다가갔다.
간호사, 방문객들이 아무것도 없는듯이 몸을 통과해 지나갈 때마다 소녀의 표정이 더욱 불안함으로 물들었다.
왕세경은 점잖게 말을 걸었다.
"얘야. 길, 아니, 몸을 잃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