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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962화 (962/1,270)

프랜차이즈 갓 962화

230장 천기누설 (2)

VIP실은 호텔 펜트하우스 스위트룸처럼 되어 있다.

보호자들이 따로 모일 수 있는 대기실이 VIP실 안에 갖춰져 있는데, 수십 명이 한꺼번에 들어와도 여유가 넘칠 만큼 넓었다.

방음도 완벽하게 되어 있어, 문을 닫으면 고성방가를 지르며 싸워도 병석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김범석은 두 딸을 데리고 조심스럽게 VIP실에 들어섰다.

보호자 대기실에는 이미 다른 형제자매와 친척이 모여 있었다.

말 그대로 피만 나눈, 진정한 가족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는 이들.

그들은 김범석을 봐도 모른 체하며 자기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일이래요?"

"몰라요. 들은 게 없어요."

"갑자기 쓰러지셨다던데……. 혹시 부쩍 심해지신 지병이 있었나요?"

"주치의가 꾸준히 검진을 했을 텐데요. 설마 서해병원 종신교수가 잡아내지 못할 질환이 있었겠어요?"

"큰일이에요. 아버님께서 얼른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셔야 할 텐데."

김범석은 걱정을 주고받는 그들의 눈빛에서 짙은 가식을 읽었다.

말로는 걱정하는 척하지만, 만약 이대로 사망할 경우에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다들 머리를 굴리기 바쁜 것이다.

이창영의 아내인 홍희수 관장이 보였지만, 그녀는 김범석 가족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아빠, 괜히 왔나 봐."

다들 자신들만 따돌리는 분위기에 큰딸, 김상희가 소곤거렸다.

"그런 말 하지 마라. 그래도 친할 아버지인데 쓰러지셨다는데 괜히 왔다니."

"다른 가족들은 우리를 손녀로 안봐주잖아."

"분위기 너무 불편해, 아빠, 우리 그냥 복도에서 기다리면 안 돼?"

"안 돼, 아빠가 받은 게 있어서 그 노릇은 해야 해."

"그건 아빠가 받은 거고."

"나중에 죄다 너희한테 돌아갈 것들이다. 이것들아."

그때 이현덕 부회장이 그들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었다.

"어, 왔어?"

"네, 부회장님, 소식 듣고 바로 달려왔습니다. 회장님은 괜찮으십니까?"

"검사가 나와 봐야 알지."

친절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태도.

김범석은 이현덕이 보이는 기계적인 매너가 왜인지 알 것 같았다.

부친이 쓰러진 지금, 자신이 진정한 가장이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것이리라.

그때 이장영을 오랫동안 보필한 김유신 전 부회장과 병원장이 같이 들어왔다.

"부회장님, 아버지는요?"

"병원장님이 말씀해주실 겁니다."

쓰러질 때 같이 있었던 김유신 전 부회장이 슬쩍 물러나고, 병원장이 조심스레 나섰다.

"급성 간부전입니다."

"간부전? 아버지가 평소에 간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는데?"

"그러게요. 의외네요."

"저도 당연히 심장 쪽 문제인 줄 알았는데, 만성 심부전으로 내내 고생하셨잖아요. 저번에 스탠트도 몇 번 하셨고."

병원장은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닦으며, 긴장한 어조로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심장 문제는 온몸의 장기 어느 곳 에든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회장님의 경우는 갑작스러운 혈전이 생겼는데, 그게 하필 간동맥으로 흘러 들어가서 산소 공급을 막았습니다."

이현덕이 날카롭게 반문했다.

"혈전? 그래서요?"

"간이 제대로 혈액을 공급받지 못해서 괴사가 일어났고, 그로 인해 급성 간부전이 와서 혼절하신 겁니다. 지금 상태가 매우 위중합니다."

"위중하다면요?"

"서둘러서 수술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러려면……."

병원장이 눈치를 보자, 이현덕이 팔을 걷어붙이며 나섰다.

"급하다면 시간 아낍시다. 지금 어머니 빼고 우리 모두 적합성 검사받으면 되는 겁니까?"

"네? 큰형님?"

"오, 오빠?"

이식이라는 말에 다들 질겁을 했고, 이현덕은 사나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아버지, 아니, 회장님이 위중하신데 그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이식 검사 받기 싫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세요. 강요하진 않겠습니다."

말은 강요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눈빛은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살기가 역력했다.

병원장이 황급한 얼굴로 나섰다.

"아니, 아닙니다! 이식 수술이 아니라 괴사한 부분을 잘라내고 인공혈관으로 부분을 대체하는 수술입니다! 이식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소리 없이 안도하는 한숨이 들렸다.

"다만, 아시다시피 회장님 가게가 유전적 특이성이 있어서 수혈에 적합한 피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혈액일치 반응이 있는 분들은 헌혈을 해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이창영이 큰 수술을 할 때마다 피가 모자랄 경우를 대비해서 대기했던 경우는 잦았다.

이미 몇 번 했었던 일이기에, 친족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저는 옛날에 검사했을 때 일치하지 않아서 수혈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저는 일치해서 몇 번 했습니다. 따로 체크할 필요는 없어요."

"저도요."

이미 몇 차례 겪어본 일인지라, 수혈 경험자들은 부담 없이 앞으로 나섰다.

이현덕의 시선이 김범석을 향했고, 그는 조용히 끄덕였다.

"동생, 자네도 체크는 해봐야지?"

"알겠습니다. 사장님."

"자네 두 딸도야. 예외는 없어."

"제 딸들은 아직 어린데……."

"수혈 조금 한다고 죽나?"

두 딸이 눈치를 보며 얼른 나섰다.

"……아냐, 아빠. 우리도 수혈할게."

"일단 맞는지만 검사하고, 할아버지 위독하신데 피 좀 뽑는 게 뭐 대수라고."

김범석은 왠지 내키지 않았지만, 겨우 피 뽑는 거 가지고 더 이상 반대하기가 그랬다.

이미 이현덕 부회장과 몇몇 친족들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채혈실에 들어가고 있었으니까.

그들이 수혈팩을 채우는 동안, 두 딸도 수혈 검사를 받았다.

"아, 나는 안 맞네."

"나는 맞네. 아빠, 나도 피 뽑고 올게."

"……그래."

"할아버지 덕분에 평생 떵떵거리며 살게 됐는데 이렇게라도 효도하니까 마음은 가볍네."

큰딸 김상희는 씩씩하게 말하고는, 채혈실로 들어갔다.

이미 채혈을 시작한 친척들이 일자로 누워 있었는데, 빈자리는 하필 이현덕 옆자리밖에 없었다.

비스듬히 누워서 폰을 보던 이현덕이 힐끔 바라보았다.

"와서 누워라."

"……네, 부회장님."

김상희는 조심조심 옆자리에 누웠고, 간호사가 와서 굵은 주삿바늘을 혈관에 찔러 넣었다.

헌혈용 주삿바늘은 처음이어서 아팠지만, 애써 얼굴을 찡그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바늘을 꽂고 가만히 누워있는데, 가시방석 위에 올라온 기분이었다.

그때 이현덕 부회장이 툭 내뱉듯이 말했다.

"익숙해져야 할 거다."

"예?"

"우리 집안은 특이유전질환이 있어서 맞는 혈액을 찾기가 힘들다. RH-까지는 아니지만."

"……네."

"회장님이 네 아비한테 물려주신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야 기뻐하는 마음으로 해드려야지."

"무, 물론이에요. 부회장님, 기쁜 마음으로 효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간 이식이 아닌 게 어디에요, 라는 말이 나올 뻔했지만 겨우 주워 삼켰다.

이현덕은 그 뒤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친족들도 익숙한 듯이 헌혈이 끝나기를 기다렸고, 다들 먼저 일어났다.

"고생하거라."

"네, 부회장님. 먼저 들어가세요."

혈액 반응을 보느라 늦게 들어왔기에, 김상희는 나머지 시간 동안 혼자 채혈실에 누워 있었다.

텅 빈 채혈실을 둘러보다가 김상희는 작게 피식거렸다.

"그래도 VIP실이 좋긴 좋네. 이런 것도 따로 전용 공간이 있고."

친족을 위해 피를 뽑는 공간까지 일반인과는 분리되어 있을 줄이야.

재벌은 사적인 공간에서 일반인과 마주칠 일이 없다고 했던가.

김상희는 그 말이 새삼 실감 났다.

그리고 채혈이 다 끝났고, 텅 빈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아빠와 동생에게 돌아갔다.

"아빠! 나 어지러워. 소고기 사줘."

"알았다. 오늘은 상희가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어도 돼."

김상희는 VIP실을 나오기 전, 전용 보호자 대기실에 걸린 모니터를 응시했다.

[이창영 회장님 - 수술 중]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할아버지, 제 피 받으시고 힘내세요. 파이팅."

***

같은 시각.

수술실에 있어야 할 이창영은 VIP 실 전용 회복실에서 에크모를 달고 있었다.

그 앞에는 안절부절 못하는 병원장, 그리고 다그치는 기세의 김유신 전 부회장이 있었다.

"부회장님. 이거 알려지면 난리 납니다. 진짜 뒤집어진다고요."

"진짜 뒤집어지는 건 이대로 회장님이 돌아가시는 걸세. 박 원장."

김유신은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병원장을 몰아세웠다.

"자네는 주치의가 되어서 환자가 죽는 걸 보고만 있을 생각인가? 뭐라도 해야지!"

"하, 하지만 유전적 조직 적합성검사를 멋대로 한 게 알려지면……."

"걱정 말게. 우리가 몰래 검사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인 걸세."

김유신은 서슬 퍼런 안색으로 덧붙였다.

"우리는 다른 자제분들은 절대로 몰래 검사를 한 적이 없어. 회장님이 마지못해 거둬들인 천한 핏줄만 검사했을 뿐이야. 뭐가 문제인가?"

"……."

태연스레 말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이미 병원장은 오래전에 김유신 부회장의 압박으로 몰래 친족들의 조직 적합성 검사를 했다.

이현덕 부회장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당사자들이 모를 뿐이다.

심지어는 이창영조차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건 심장인데, 간이라고 거짓말을 해도 괜찮을까요? 나중에 어떻게든 이상하게 보일텐데……."

"박 원장, 사람의 의심을 너무 우습게 보는군. 심장에 문제가 있다면 그 천한 서자가 자기 딸들까지 수혈검사를 하라고 했겠나?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 그렇습니다. 듣고 보니……."

그 의심 많은 서자놈은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심장 대신 간이라고 한 것도, 단순수혈이라고 한 것도, 최대한 의심을 제거하고 자연스럽게 연출하기 위해서다.

"나중에 적당히 둘러대면 돼. 어차피 원래 심장이 안 좋으셨으니까. 검사 결과는 언제 나오나?"

"한 시간이면 나올 겁니다."

"장기센터는?"

"국내에는 아직 적합한 심장이 없습니다. 있어도 워낙 고령이시라 센터에서 내주지 않을 겁니다."

"그거야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네! 자네는 그저 적합한 심장을 찾아내기만 하면 되는 거야!"

김유신이 차갑게 노려보며 나지막하게 호통을 치자, 병원장은 다시금 움츠러들었다.

김유신은 에크모를 달고 있는 이창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회장님, 염려 마십시오. 저만큼은 마지막까지 회장님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회장의 자손 중에 후보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식이 겨우 가능한, 턱걸이 합격 수준의 적합성.

평생 면역억제제를 잔뜩 복용해야 하니, 삶의 질이 급격하게 떨어질 것이다.

또한 나이도 40대가 넘어서 그리 젊은 심장도 아니다.

'이 전무 심장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보험이다.'

김유신은 평생의 주군을 위해, 가급적 최고의 선물을 바치고 싶었다.

기왕이면 천한 핏줄에서 나오면 좋을 텐데, 어차피 회장님이 자손으로 인정하지도 않는, 필요에 의해서 받아들인 존재 아닌가.

'회장님께서는 하원석 박수무당의 점이라면 아무리 터무니없는 것이라도 굳게 믿고 따르셨지. 그게 지금의 그룹을 만들었지만.'

그렇기에 김범석에게 어떤 애정도 없으리라는 것을, 김유신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한 시간이 흘렀다.

"결과는 나왔나?"

"……예, 나왔습니다."

"표정이 안 좋군. 젠장. 그럼 일본과 중국 쪽 센터까지도 다시 처음부터……."

"이보다…… 더 잘 맞을 수는 없을 정도입니다."

"뭐야? 이럴 수가! 이런 경사가! 그 천한 서자가 그래도 재산 받아먹은 값은 하겠군 그래!"

크게 기뻐하던 김유신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병원장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자네 표정이 왜 그렇게 씩어 있나?"

"죄송합니다. 너무 긴장돼서, 그만……."

"회장님이 살 수 있게 되었네. 가슴을 펴고, 기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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