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47화
226장 원수가 심심함을 품으면 (5)
원전이 위험하다고 가동 중지 가처분 신청을 했는데, 원전을 지은 건 설사의 돈을 먹은 재판부에서 기각신청을 때렸다.
기가 막히게도 기각되자마자 지진이 일어나면서 원전 내부에 문제가 생겼다.
원전 내부에 엄연히 방사능이 누출되었는데도 언론은 필사적으로 덮고 있다.
[이래서 가동 중지하라고 가처분넣었는데 기각당함. 주심판사 아들은 하필 태호건설 상무보, 이게 우연? ㅋ]
하수영의 SNS 저격글은 CVN 케이블에서 대대적으로 다루며 큰 반웅을 얻었다.
최근 수영그룹에서 광고비를 받아 먹었지만 그간 건설사와의 친분 때문에 눈치를 보던 다른 TV 방송국들도 어쩔 수 없이 여기에 가세했다.
"이거 대세는 이미 정해졌어."
"기각되자마자 지진 나서 문제 생기다니. 이건 진짜 하늘이 태호건설을 버렸다고밖에 볼 수가 없는데."
"그러고 보니 이서환 의원도 대호 그룹 서자 아니야?"
"기각 때린 주심판사는 전관비리 변호사로 큰돈 땡길 생각은 접어야겠는데, 하수영 의원이 너무 대놓고 저격을 해버렸어."
배에 침몰 조짐이 보이자, 여기저기에서 짐을 챙겨서 탈출하려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수영조명 정운원 사장이 내부고발자와 가진 인터뷰가 공개되며 더욱 기름을 끼얹었다.
-오염수를 퍼내는 것은 로봇을 시켜도 될 일인데, 겨우 비용 문제 때문에 일부러 인력을 쓰려는 거군요.
-네. 누군들 방사능에 노출되고 싶겠습니까? 저는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수영조명은 그런 과감한 결단을 매우 환영합니다. 우리 수영조명과 계약해서 회사의 백혈구가 되어 주십시오.
수영조명은 용기를 낸 것에 대한 격려금으로 5억 원 일시불, 그리고 임원으로 채용했다.
이리 되자 오염수 제거 작업 압박에 시달리던 다른 이들도 너도나도 용기를 내서 들고 일어났다.
제보가 쏟아졌으며, TV 채널에서는 주야장천 고리 원전의 현 상황을 전파했고, 부산은 텅 빈 유령 도시가 되었다.
-언제 멜트다운, 멜트스루가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부산, 울산, 포항 일대는 죽음의 땅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아아! 체르노빌의 악몽이 우리나라에도 닥치는 것일까요?
-정부는 왜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요? 원자력 카르텔과 물밑에서 야합을 벌이는 중일까요?
핵피아에서 왕족 바로 아래 계층, 귀족에 속하는 이들이 있다.
한전사장 홍웅기 같은 이가 대표적이다.
그는 최근 변화하는 언론의 논조를 보며 직감했다.
"중앙정치에서 우리를 도려내기로 결심했다."
일이 너무 커지면 꼬리를 자르고, 수습한다.
그 꼬리는 자신이 몸통이라고 생각하지만, 중앙정치 입장에서는 조금 커다란 꼬리일 뿐이다.
"멜트다운이니, 멜트스루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냥 방사능에 오염된 냉각수가 안에 찼을 뿐이라고."
더 이상의 방사능 물질은 없다.
오염수를 퍼내거나 제거하고, 깨끗하게 청소하면 끝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걸 믿어주지 않는다.
이미 한 번 핵피아의 사주를 받은 언론이 필사적으로 숨기려고 했었기에, 사태를 감추려 한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태호건설 이강길 부회장, 구속!]
[포토존에 선 이강길 부회장, 입을 굳게 다물다!]
산자중기위원장 안필성은 포화를 비껴갔다.
언론에 아예 그의 이름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재벌 일가인 이강길 혼자 핵피아의 우두머리로서 짊어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앙권력의 힘이자, 위상.
검찰이 태호건설에 들이닥쳐서 온갖 자료들을 챙겨서 나갔다.
***
이강길은 사지를 끊어내는 심정으로 받아들였다.
국민들의 분노와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서는 그만한 제물이 필요했다.
그리고 재벌 일가인 자신 정도는 되어야 진혼제가 성사될 것이다.
-몇 년 정도는 어쩔 수 없을 듯합니다. 그래도 최대한 힘을 써보겠습니다.
안필성 의원의 진심을 믿지는 않는다.
그간 그가 함께 나눠서 챙긴 이익을 믿는다.
뱃속으로 두둑하게 삼킨 돈이 내장을 괴사시키는 것은, 그도 원하지 않을 테니.
피구속인 신분으로 구치소에서 시간을 보내던 그는 면회실에 있는 TV에서 갑자기 흘러나온 속보에 눈을 돌렸다.
갑작스러운 하수영의 등장에 이강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놈 때문에 내가…….'
그런데 기자회견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았다.
하수영의 등 뒤에 언뜻 보이는 배경에 초점이 잡히기 시작했고, 이강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게 다 뭐지?"
***
"이제 내가 나설 때인가."
-모두가 마스터의 등장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임페리얼 마치는 준비됐겠지? 서라운드 스피커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마스터. 오늘 공연에 대한 저작권료도 이미 지불했습니다.
"좋아, 출발하자."
수백 대가 넘는 트럭 트레일러들이 질서 있게 주행하기 시작했다.
트레일러들은 저마다 뒤에 컨테이너를 여러 칸씩 싣고 있었다.
CVN에서는 헬기까지 여러 대를 띄워서 이 광경을 생생하게 보도했다.
-여기는 CVN입니다. 수영그룹 하수영 의원이 컨테이너 트레일러를 잔뜩 움직이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수영농장에서 고리 원전 사태를 해결할 방도가 있는 모양입니다.
-과연 일개 농장에서 대체 어떤 수로 이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것일까요?
-일단 저 컨테이너 안에 오염수제거를 위한 설비들이 들어 있다고 추정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어떤 종류의 설비인지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군요.
-그런 설비를 농업법인이 평소 저렇게 많이 보유할 이유가 있을까요??
온 국민의 관심이 하수영의 트레일러 행렬에 향해 있었다.
신문 언론사들은 그 와중에도 비판적인 논조를 감추지 못하고 비아냥거림이 삐져나왔다.
[무모하고 또 무모한 짓.]
[쇼맨십에 중독된 어린 졸부의 치기 어린 행동일 뿐.]
[애초에 고리 원전은 그리 큰 문제가 없다.]
온 국민의 관심이 모인 상황에서, 하수영은 당당하게 외곽 도로를 달렸다.
그건 마치 승전을 한 장수가 개선식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것만 같았다.
먼 외곽까지 구경을 나온 시민들은 트레일러 운전석을 보고 경악했다.
"운전수가 없어?"
"모두 자율주행이야? 맙소사!"
한국은 백두자동차의 욕심 때문에 아직 자율주행 보급이 제대로 장착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수백㎞의 도로를 사람 없이 완전 무인으로 운행하는, 수백 대의 트레일러 행렬이라니.
구경꾼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트레일러 행렬은 어느덧 고리 원전에 도착했다.
원전 근처에는 모든 사람들이 철수한 터라, 인기척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가까이 다가간 방송헬기는 하수영이 방호복을 입고 차에서 내리는 장면을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아냈다.
-정말 놀라운 용기입니다! 위험할 수 있는 사고 지역에, 전혀 거리낌없이 혼자 접근하고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용기일까요, 만용일까요? 확실한 것은, 저 사람이 바로 전 세계 유일무이한 핵융합 발전소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아! 지금 컨테이너 천장과 벽이 열리고 있습니다! 아아앗! 아니, 저것은?
정차한 트레일러의 컨테이너칸이 동시에 개방되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단단하게 웅크리고 있는 수많은 로봇들.
3개의 다리와 6개의 팔을 가진 로봇들의 헤드에 일제히 빨간 불이 들어왔다.
척. 척, 척, 척, 척, 척.
로봇들은 일사불란하게 각을 맞춰 움직이며 자리를 잡았다.
일부 로봇들은 바깥에 길게 늘어서며 진형을 잡았고, 일부 로봇들은 원전 내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로봇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고 있습니다! 세상에, 저렇게 많은 로봇들이 군단처럼 흐트러짐 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저 로봇들은 수영농장에서 농사를 짓는 로봇들이라고 합니다!
-설마 저 로봇들을 이용해서 원전내부 정리 작업을 하려는 것일까요? 어떤 식으로 하려는지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아, 로봇들이 도구를 들고 있습니다!
-양동이! 양동이입니다!
임페리얼 마치가 우렁차게 울리기 시작하고, 하수영은 들으라는 듯이 힘차게 외쳤다.
"작업 실시!"
그러자 로봇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부에서부터 물에 가득 담긴 양동이가 뒤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마치 도미노가 무너지는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심지어 단 한 방울의 물도 흐르지 않았다.
0과 1이 빚어내는, 수백 대의 로봇들이 오염수 양동이를 뒤로 전달하는 장면은 전율이 흐를 정도로 규칙적이었으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다.
-맙소사! 제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죠?
-저 이거 어렸을 적에 봤습니다!! 시골에서는 이웃집에 불이 나면 모두 몰려들어서 저런 식으로 불을 끄곤 했어요!
-아아, 그렇군요! 물양동이 도미노를 반대로 하고 있는 거군요!
-자세히 보시면 양동이가 상당히 커요. 사람이 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을 정확하게, 지치지 않고 매우 빠르게 옮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차라리 흡입관을 들고 가서 물을 빨아들이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충분하게 긴 흡입관을 당장 구할 수가 없었던 거겠죠! 그리고 시골에서는 원래 저런 식으로 불을 끈다니까요!
그리고 로봇들은 가장 후미에 있는 컨테이너에 물을 붓고 있었다.
컨테이너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토양과 잡목, 풀이 섞인 듯한 물질이 가득 담겨 있었다.
-오염수를 지금 어디에 붓고 있는 걸까요?
-아! 추가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수영농장에서 사용하는 제염물질이라고 합니다!
-제염이요? 아니, 저게 효과가 있는 겁니까?
-지금 제염을 마치고 방수하는 쪽에 있는 공무원들이 보이시죠? 방사능 등 오염 수치를 재고 있는 거라고 합니다.
[속보 : 수영농장식 제염을 마친 오염수, 식수로 마셔도 문제없을 정도로 깨끗해.]
[하수영 사전 녹화 : "수질 정화하나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농사는 바로 물을 다스리는 직업이거든요."]
[속보 : 물이라서 다행. 다른 물질이었다면 제염에 나서지 못했을것.]
-추가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저 제 염기는 수영농장에서 기르는 잡목과 풀 등을 적절하게 분쇄하고 섞어서 만든, 일종의 거름 물질이라고 합니다.
-제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뭘 보긴요. 미래를 보고 있으신 거죠.
-부산 시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고리 원전은 이제 안전합니다.
로봇들은 쉬지 않고 양동이로 물을 퍼 날라서 정화를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내부에 고여 있던 모든 오염수를 퍼낼 수 있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로봇들은 핵 연료봉과 제어봉을 모조리 빼내서 봉인 박스에 차곡차곡 담았다.
그 광경은 모조리 녹화되었고, 한 수원은 단 1개의 연료봉도 유실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드디어 작업이 다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들의 식탁을 수호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던 로봇들이, 이번에는 고리 원전의 사고를 완벽하게 수습했습니다.
-단 한 명의 인명 손실도 없었습니다. 단 한 명도 말입니다.
-어? 로봇들이 타지 않았는데 트레일러들이 그냥 출발하고 있습니다. 작업은 다 끝난 거 같은데요?
-지금 다른 차량들이 도착했습니다! 수영농장 차는 아니고…… 한수원 소유의 폐기물 수송 차량 같습니다.
-아! 로봇들이 양동이를 들고 폐기물 수송 차량에 올라타고 있습니다!
-…….
잠시 숙연해진 침묵 위로, 웅장한 임페리얼 마치가 로봇들의 퇴장을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