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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945화 (945/1,270)

프랜차이즈 갓 945화

226장 원수가 심심함을 품으면 (3)

소란을 듣고 경호원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심상찮은 분위기를 보고, 선뜻 나서지 못하고 굳어 있었다.

하수영의 얼굴을 알아본 탓도 있었다.

20, 30대 군필자들에게 있어 하수영은 태양이자 신이었다.

글자 그대로 3주 군사훈련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신의 아들' 이며, 다른 재벌들과는 달리 모든 게 깨끗한 합법적인 군면제였다.

고아였으니까.

그리고 면제받은 것 이상으로 화끈하게 국군에 돌려줬다.

미국이 핵잠수함 2척을 임대할 수 있도록 해줬고.

즉시 전력 편입이 가능한 미사일 순양함과 경항공모함을 사줬으며,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 3척을 자기 돈으로 발주해 줬다.

그저 돈이 많다고 해서 태양처럼 숭배하는 게 아닌 것이다.

비서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경호원들에게 나가라고 신호를 보냈다.

주저하던 경호원들은 굳어 있는 이강길의 표정을 보고 얼른 물러났다.

부회장실에는 다시 셋만 남았다.

"너 같으면 널 죽이려고 한 놈을 사람으로 보겠냐? 정중히 대우해 줄 수 있겠냐?"

하수영은 뚜벅뚜벅 걸으며, 한쪽에 세워진 골프백을 열었다.

두툼한 골프채 하나를 꺼내어 손에 쥐자, 비서의 안색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다시 경호원들을 불러야 하나?

하지만 경호원들 앞에서 하수영이 조금 전처럼 엉뚱한 이야기라도 한다면…….

하수영은 골프채를 짊어지듯이 어깨 뒤에 올리고, 이강길 앞에 우뚝섰다.

분노와 수치, 두려움으로 붉으락푸르락거리는 표정이 참 보기 좋다.

"이해는 한다."

"……."

"자기들끼리 잘 해처먹고 있었는 데, 갑자기 무선 전기 같은 게 튀어 나오니까 당황했지? 뭐 90조 원짜리 해외 프로젝트가 통째로 날아가게 생겼다며?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시도라도 해보자, 로한과 내 모가지를 따면 살 수 있다. 그렇게 눈 딱 감고 저지른 거 아냐."

한껏 친절한 음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욕감을 심어 준다.

이강길은 핏발이 선 눈으로 하수영을 노려보며, 꽉 쥔 주먹을 부르르떨었다.

조금이라도 인내심이 풀어졌다가는, 그대로 한 방 칠 것만 같았다.

"재벌로 태어나서 세상 물정 모르고 나이 먹어서 그래. 고생이라곤 해본 적이 없으니 내가 칼을 쑤셔도 될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구별을 못 하잖아? 안 그럽니까, 비서님?"

"예? 예?"

비서는 저도 모르게 움찔해서 입을 다물었다.

다행스럽게도 부회장의 분노가 자신에게 튀지는 않았다.

하수영은 골프채 끝으로 이강길의 정수리를 토닥거리듯이 두드렸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욕적인 행위지만, 이강길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았다.

여기서 하수영을 들이박았다가는 끝장이다.

서해전자조차도 반도체 사업을 고스란히 갖다 바친 사람인데.

그럴수록 더욱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대놓고 적개심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죽을 뻔했던 것에 대한 분노?

그래서 앞뒤 안 가리고 날뛰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자극하기 위해서 일부러 한껏 모욕감을 주는 것인가?

'그렇다면 절대로 넘어가지 않겠다!'

이강길은 그렇게 이를 바드득 갈았다.

어떤 도발에도 넘어가지 않고 참아내고 말리라.

그렇게 입술을 곱씹었다.

"그러나 나는 매우 관대하지."

하수영은 정수리를 툭툭 치던 골프끝을 바닥에 놓고, 소파에 앉아서 탁자에 두 다리를 거만하게 올렸다.

어느덧 골프공 3개를 가지고, 골프채로 저글링을 시작했다.

골프채 끝이 단 한 번도 놓치지 않고 골프공 3개를 공중에 튕겨 올리는 광경에, 비서는 저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람이 저런 묘기가 가능하다고?

"10억 원."

"……?"

"10억 원만 남겨놓고 전 재산을 내게 바쳐라. 원자력 카르텔 놈들에 관한 정보도 전부 내놓고, 그리고 야인으로 돌아가서 죽은 듯이 살면, 특별히 용서를 해주겠다."

이강길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코웃음을 쳤다.

자신이 그런 말도 안 되는 백기투항을 할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건가?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놈의 심증만 있을 뿐이다.

"이봐요, 하수영 의원, 어디 가서 혼자 죽을 뻔해서 화가 난 건 이해 하는데, 지금 어디다가 화풀이를 하는 거요?"

피식거리는 미소가 진짜로 마음에 안 든다.

"살인교사?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우리 원전 사업이 핵융합 때문에 밀리게 된 건 사실이지만, 겨우 그 정도 가지고 누군가를 죽이려고 할 만큼 내가 막돼먹은 인간은 아니오."

표정과 목소리, 눈빛 모든 게 완벽하다.

이강길은 본인 스스로도 무고하다는 것을, 이미 굳게 믿고 있는 경지였다.

그때였다.

이강길은 주머니에서 진동을 느끼고, 폰을 확인했다.

[고리 원전 가동 중지 가처분 신청기각되었습니다.]

순간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그렇지.

법조계 로비에서 자신들이 밀릴 리가 없었다.

하수영이 판검사들에게 돈 크게 썼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아이야,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하겠느냐? 그 돈을 제대로 쓸 줄도 모르는데.'

"의원님의 사회적 지위가 본인보다 훨씬 높다는 건 인정하오. 그렇다 해서 큰아버지뻘 되는 사람을 이리 막 대하는 것은, 의원님 정치 인생에도 마이너스가 될 거라는 점을 알아두시오."

상대의 녹취에 대비해서, 이강길은 한껏 부드럽고 점잖게 대했다.

가처분 신청이 기각 났다는 점이 더욱 마음에 여유를 주었다.

방금 결정이 났으니, 이놈은 아직 모르고 있겠지?

만약 사실을 알면 얼마나 분해할까?

"가처분 기각됐다고 좋아하지 마라. 애초에 그건 기대하지도 않았다."

"……!"

"난 분명히 마지막 기회를 줬다. 네놈이 안 받을 건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종종 용서가 아닌 다른 이유로 최후의 기회를 주는 경우가 있다.

리미트 없이 마음껏 후려치고 밟아도 주변에서 만류하기는커녕, 오히려 손뼉을 치며 환호할 수 있도록 명분을 위해서.

하수영은 더 이상 처다보지도 않고 그 자리를 떠났고, 이강길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안도하고 있노라니 다시금 짜증과 수치스러움이 밀려왔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위기를 모면했다는 안도감은 사라지고, 새파랗게 어린 놈 앞에서 반항도 못하고 하대를 들었다는 모멸감이 밀려왔다.

이강길은 골프채를 들고 집기를 마구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비서는 한쪽에 부동자세로 서서 이 강길의 화풀이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한참 동안 때려 부술 것들을 때려 부순 후, 이강길은 씩씩거리며 지시했다.

"다 치워."

"예, 부회장님. 지금 사람 올려서 청소하고 세팅 다시 하세요."

-알겠습니다.

곧이어 비서들이 올라와서 사무실 정리를 시작했다.

깨진 집기 조각들을 쓸어 담아서 봉투에 담고, 곧바로 새로운 집기들을 가져다가 가지런하게 정돈해 놓았다.

걸터앉아서 지켜보던 이강길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 개자식! 내가 제일 아끼는 골프채를 가져갔어!"

이강길은 재킷을 걸치고 부회장실을 나섰다.

기분을 한껏 망친터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았지만,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았다.

차에 오르자 비서실장이 얼른 조수 석에 동승했다.

"기각 됐다며?"

"네, 정말 다행입니다. 부회장님."

"다행이고 말고가 어딨나? 그럼 우리 중에서 설마 그게 인용될 거라고 생각한 친구 있었어?"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하수영 의원이 뒤에서 손을 쓰지 않았을까 조금 우려가 되긴 했습니다."

"돈이 많으면 뭐 하나. 제대로 쓸 줄도 모르는데, 미사일 순양함? 경항공모함? 그거 쓸 돈의 1/10만 있어도 10배는 더 이득을 볼 방법이 수두룩한데. 돈을 쓸 줄 몰라, 쓸 줄을!"

"아직 어려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절약 정신도 없고 그냥 돈을 마구 뿌리기만 하면 사람들이 그만큼 모여드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군함 몇 적 사줬다고 누가 고마워하겠어? 어차피 얼마 안 있으면 다 까먹을 사람들투성이라고."

"맞습니다. 부회장님."

비서실장은 이강길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확실하게 처리했겠지?"

"예, 용역업체와의 연결고리는 전혀 없습니다. 놈들 역시 믿을 만한 놈을 골라서 한 번 더 쿠션을 먹였고요. 물증은 전혀 없습니다."

"딴 건 몰라도 그 부분은 확실하게 처리했네. 기왕이면 실패하지 말고 성공을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증거는 전혀 없다.

놈이 아무리 떠들어봐야 법원은 유죄를 선고하지 못한다.

심지어 그 법원과 더욱 친한 쪽은 자신.

이강길은 느긋하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가, 다시금 인상을 팍 썼다.

'그나저나 한 번 실패했으니 이제 전력 사업은 완전히 나가리 됐는데…….'

발전소 특별법으로 브레이크를 걸어놓은 게 그나마 신의 한 수였다.

그러나 해외 원전, 송전망 수출 사업은 완전히 날아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약 15년 남짓한 유예기간 동안, 국내에서 최대한 빨아먹을 수 있을 만큼 빨아먹어야 하리라.

'내수시장만큼은 반드시 지킨다. 여기는 우리 구역이니까 충분히 시간을 끌 수 있어.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선 전기가 가진 허점을 밝혀내야 한다.

'분명 약점이 있을 거다. 그러니까 놈들도 곧바로 공개하지 않고 있는 거겠지.'

그렇게 파괴적인 무기라면, 벌써 공개를 하고도 남았을 테니까.

이강길은 자신의 추측을 강하게 확신했다.

'그러고 보니 수영 발전소에 새로 지은 송전탑에 이상하리만큼 금이 많이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설마?'

혹시 무선 송전 설비에는 대량의 금이 필요한 것인가?

이강길은 메모장에 자신의 생각을 떠오르는 대로 정리했다.

나중에 한꺼번에 지시를 내릴 참이었다.

"부회장님, 부산시의회 이서환 시의원이 유류분 소송을 냈습니다! 지금 법원에 소송장이 접수되었다고 합니다!"

"음. 그놈은 하수영 계파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이미 예상한 일이야."

이강길은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게 반응했다.

"어차피 아버지도 돌아가셨고, 유전자 검사에 우리가 응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놈이 아버지 핏줄이라고 증명할 방법은 없다."

유전자 검사에 응하라는 법원의 명령은 듣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예 그런 명령이 나오지 않게끔 판사들을 잘 구워삶을 자신도 있었고,

"고리 원전 신형 원자로 건설 현장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현장을 점거하고 공사 진행을 막고 있다고 합니다."

"하, 이렇게 나오는군, 언론에 보도 좀 팍팍 뿌려. 가처분이 기각되었다는 거 강조하고, 기자들에게 돈도 좀 뿌리고, 아끼지 말고 진행해. 이제 남은 시간은 15년 정도뿐이다."

이강길은 더 이상 흥분하지 않고, 냉정하게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

이 나라 전력 산업은 아직까지는 자신들이 좌지우지할 수 있으리라는 굳건한 믿음.

핵융합 발전소와 무선 전기가 아무리 좋아도, 행정과 법원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충분히 방어할 수 있으리라.

그것이 바로 카르텔이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저력이니까.

***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드는, 재벌가 유산 소송이 시작되었다.

아버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서자의 유류분 청구는, 대중의 말초신 경을 흥분시키기에 딱 좋은 이야깃거리였다.

대호그룹은 유산 소송에 관해서 침착한 대응에 나섰다.

원전 공사장 시위대에 하수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입김이 닿은 것이 분명하기에, 정부와 경찰은 시위대를 강제해산하는 것을 매우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강제해산을 고민할 필요도 없이, 시위대는 며칠 지나지 않아 스스로 해산했다.

해산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고리 원전, 지진 발생!]

[건설 중인 일부 구조물 붕괴! 무차별 대피 명령 발동!]

[발전소 긴급폐쇄! 가동 중인 원자로들 모두 멀쩡해! 다행히 방사능 누출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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