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43화
226장 원수가 심심함을 품으면 (1)
오춘정 일당이 한국에 가진 모든 자산은 압류되었다.
그래도 두당 6,000만 원 이상씩은 열심히 모아 놓은 상태였다.
오춘정이 개인 아지트에 꼭꼭 숨겨놓은 돈 가방 5억, 메신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15억.
이렇게 총 20억이 더해졌다.
"이거 보십시오. 그럼 그렇지, 의원님 목숨값이 설마 겨우 500만 원일리가 있겠습니까?"
두당 500만 원을 주기로 했다면 1억500만 원이 되지만, 하수영이 500만 원에 꽂혀 있다 보니 그런 설명은 별로 안 중요하다.
"500만 원이나 20억이나, 거기서 거기죠.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
"그래도 다 긁어서 저 주십시오. 전리품은 무조건 챙겨야죠."
"네, 전부 의원님 것입니다. 염려 마십시오."
정식 기소 절차를 밟지 않고, 조용히 중국으로 영구추방을 해버릴 놈들이다.
하수영은 범죄 피해자이니 그들에게 배상을 받을 자격이 있고, 그래서 중간과정을 생략한 채 모든 일을 빠르게 마무리 지었다.
「35억 원이 들어왔습니다, 마스터.」
"이런 전리품은 오래 갖고 있어서 좋을 게 없지. 범죄 피해자 중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 7명만 골라봐."
「선정 완료했습니다.」
"적당히 포장해서 5억씩 돌려. 아, 내 이름 강조하는 거 잊지 마라."
「물론입니다. 선의와 자선사업은 크게 할수록 널리 이름을 알려야죠.」
전리품이자 피해배상으로 획득한 돈은 그렇게 한순간에 이적되었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밟아야 발바닥이 후끈후끈 즐겁게 달궈질 것인지를 고민해 보자."
「탑다운으로 가실 겁니까, 바텀업으로 가실 겁니까?」
위부터 조지면서 내려올 것이냐, 아래부터 박살 내면서 올라갈 것이냐.
"정말 어려운 고민이지. 둘 다 나름대로 짜릿한 포인트가 달라서 말이다.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하기 싫은데."
암살이 틀어졌다.
덕분에 사해전문용역업체 정국길 사장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김 실장, 확실한 거지?"
"걱정 마십시오, 사장님. 그놈과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습니다. 태호그룹과의 연결고리도 없고요."
처음부터 완벽하게 물증을 없애고 착수했다.
메신저 노릇을 하다가 붙잡힌 놈은 오랫동안 자신의 밑에서 일하다가 몇 년 전 독립한 녀석.
가족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절대 끝까지 불지 않을 것이다.
고문을 할 수도 없는 요즘 시대에서, 작정하고 입을 다물면 절대로 열지 못할 테니.
그때였다.
여러 대의 승용차가 사옥 앞에 멈춰 서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뭐야? 장승만이 패거리가 설마 이 대낮에 한판 붙자고 왔나?"
"아닙니다! 구청 직원들입니다!"
"구청에서 왜 저렇게 많이 찾아와?"
자세히 보니 승용차마다 '강남구청' 이란 문구가 붙어 있었다.
"구청에서 불법증축 신고를 받고 나왔습니다."
"불법증축? 너 새끼야, 내가 누군지 알아?"
조폭 우두머리 출신의 정국길이 벌떡 일어나서 욕설을 내뱉자, 공무원들 사이에 긴장감이 어렸다.
"선생님, 공무집행을 방해하시면 곧바로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그때 공무원 무리 뒤편에서 서글서 글한 인상의 청년이 튀어나와서 점잖게 말했다.
전혀 겁을 먹지 않고 타이르는 듯이 말하는 태도에, 정국길 사장은 더욱 열이 받았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놈의 시키가 지금 입이 뚫렸다고 어디서……."
성큼 다가가려는데, 뒤에서 강하게 옷을 붙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김 실장, 뭐 하는 짓이야?"
김 실장은 황급히 귀에 입을 가까이 가져가서 속삭였다.
"하수영 의원입니다, 하수영."
"뭐?"
정국길은 그제야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하수영을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자신, UCC포털 등에서 봤던 그 얼굴하고 똑같았다.
"구의원이나 되는 양반이 왜 이런 건물 단속에까지?"
워낙 부지런해서 구의원이 하지 않을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마주치게 된 우연인가?
그런데 자신을 훑어보는 하수영의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자, 단속반 여러분, 건물 전체를 샅샅이 훑어서 행정 위반 사항을 모두 적발해 주시길 바랍니다. 신고하신 분의 수고를 생각해서라도, 하나라도 놓쳐선 안 될 겁니다."
"예!"
공무원들이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
"……."
넓은 사장실에는 기묘한 적막만이 내려앉았다.
하수영은 정국길 사장 일행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뒷짐을 진 채 사장실을 뚜벅뚜벅 걸으며 이리저리 살폈다.
책상을 손으로 쓸어보기도 하고, 비밀금고가 있는 벽면을 통통 두드려보기도 했다.
밀수 권총이 있는 봉인 서랍을 몇 번 잡아당겼을 때는, 정국길도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귀신같이 중요한 게 있는 부분만 찾아내서 툭툭 건드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고는 사장 자리에 앉아서, 신발을 신은 그대로 다리를 책상 위에 턱 하니 올린다.
이건 모욕 중의 모욕이다.
정국길은 분노로 얼굴이 빨개진 채 간신히 참았다.
보이지 않게 필사적으로 붙잡는 부하들의 손길이 아니었으면, 금방이라도 저 건방진 애송이한테 달려들었을지도 모른다.
"시선이 건방져. 뽑아버리고 싶게."
"……!"
"이강길이가 이래도 그렇게 꼴아보나? 이강길이가 그럼 가만두지 않을 텐데."
정국길은 물론이고 비밀을 아는 김실장의 안색도 새파랗게 질렸다.
우연히 행정단속팀에 섞여서 만난게 아니었다.
전부 다 알고 찾아온 것이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알잖아?"
"아, 알다니! 대체 무엇을!"
"그럼 계속 그러고 있는가."
하수영은 책상 위에 걸친 다리를 접고, 반듯하게 일어섰다.
몸을 살짝 숙이고, 오른손이 잠겨 있는 비밀 서랍에 닿았다.
"물증이 없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건 기특한데, 정 사장. 이강길이 앞에서도 그렇게 했나? 아니잖아?"
보복이나 응징을 하는데 물증이 필요 없는 이들이 있다.
심증만으로도 결심을 굳히는 데에 충분한 이들.
눈앞의 청년도 바로 그런 이들 중에 하나임을, 정국길은 뼛속까지 깊이 와닿았다.
우지끈, 하고 서랍이 부서졌다.
하수영은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권총과 탄알집을 꺼냈다.
"뭐, 뭐 하는 짓……!"
정국길이 험악하게 달려들자 하수영은 권총을 쥐고 목을 내려쳤다.
후두부를 가격당한 정국길은 그대로 쓰러졌다.
곧이어 무장한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경찰이다! 손들어!"
"의원님! 무사하십니까!"
"네, 이거 보세요. 아무래도 진짜 권총 같아 보이는데요?"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권총을 확인한 최선임 경찰은 희색이 돼서 외쳤다.
"밀수 권총이다! 모두 체포하고, 건물 전체 싹 다 수색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제보해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제가 돕는 게 훨씬 효율이 좋을 겁니다. 저도 중요한 물건을 많이 숨겨봤거든요. 어디어디를 중점으로 뒤지면 좋은지 알아요."
"아, 그러시다면… 감사히 의원님의 도움을 받겠습니다."
「마스터, 역삼동 나인클럽으로 간 행정단속팀에서 온 연락입니다. 소방법 위반, 식품위생법 위반, 등등해서 총 127곳이 적발되었습니다.」
"이야, 이 정도면 영업허가 취소감이네."
정신없이 포박당한 정국길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붉어졌다.
역삼동 나인클럽은 자신이 보유한 캐시카우 영업점이다.
여기만 덮친 게 아니라, 거기도 덮쳤다고?
그렇다면…….
「신주로 빌딩 행정단속에서 온 보고입니다.」
「에드나 주점 단속 중간보고입니다.」
「도박하우스 적발에 성공했습니다.」
들으란 듯이 줄줄이 흘러나오는 보고에 정국길은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맛봐야 했다.
사업체가 전부 털리고 있었다.
그것도 하수영 암살시도와는 무관한 건으로,
"그럼 이놈들을 먼저 호송차에……."
"아, 잠시만요. 이것까지는 보여줘야겠어요. 여기 비밀금고 같은데요?"
"엇! 정말이군요!"
"12자리 숫자 암호가 필요한 기계식 금고네요."
정국길은 절대로 암호를 말하지 않으리라고 굳게 결심했다.
"자, 열렸습니다. 어휴, 말 그대로 금고네요. 무슨 금괴가 이렇게 많아?"
"의원님, 암호를 이미 알고 계셨군요."
"그냥 찍었는데요?"
"하하하, 농담도 참 재미있게 하십니다. 저 배꼽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경감님도 참. 사회생활 정말 잘하실 것 같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정국길의 정신은 더욱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하수영은 구의원으로서의 권력을 십분 발휘해서 정국길 패거리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공개 사업장은 모조리 단속을 당했고, 작은 행정위반 혐의도 놓치지 않고 수집했다.
사업장은 줄줄이 영업정지, 혹은 영업취소 처분을 맞이했다.
정국길과 주요 간부들은 구치소에 갇혀 있느라고 제대로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구청과 구의회가 작정하고 표적으로 삼고 찍어대는 데는, 당해낼 길이 없었다.
하수영은 닥터헬기를 타고 부산으로 날아갔다.
느긋하게 드라이브를 즐길 건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을 절약한 것이다.
자신의 계파인 부산시의원 이서환을 만나기 위해서다.
「마스터. 마스터의 목숨을 노린 조선계 중국인 청부업자 21인이 모두 죽었습니다.」
"어쩌다가?"
「중국 영해에서 배가 침몰했는데, 그들만 구조되지 못했습니다. 누군가가 입막음을 위해서 손을 쓴 거 같습니다.」
"입막음이라고 할 것도 없을 텐데. 태호그룹에서 손을 썼으려나?"
「가능성은 있습니다.」
"나도 그놈들한테 더 볼 일은 없으니까 중국 보내라고 한 건데, 누군지 몰라도 헛돈을 썼구나."
이서환은 하수영의 연락을 받고 모든 스케줄을 취소한 채 만나러 나왔다.
센텀시티 뉴월드백화점 명품관 에르메스 매장에서 둘은 여자 가방을 고르는 척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서환 의원님. 갑자기 연락해서 놀라셨죠?"
"아닙니다. 먼 길 오시느라고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전화를 주시거나, 아니면 제가 올라가도 됐을 텐데요."
"헬기 타고 와서 금방 왔습니다. 1시간도 채 안 걸렸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이서환은 무슨 일인지 내심 잔뜩 긴장했다.
"시의원 일은 어때요? 할 만합니까?"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게 좀 힘들지만 그래도 보람이 있습니다."
"그래도 캐시카우 있으니까 정치가 그렇게 어렵진 않죠?"
"네. 모두 의원님 덕분입니다."
이서환은 재벌가의 숨겨진 서자다.
상속받은 빌딩을 하수영한테 1조원에 팔았고, 뉴월드백화점에 수영레스토랑을 차려서 매달 상당한 돈을 벌고 있다.
그는 부산시청, 시의회에서 제일가는 부자 정치인이었다.
"이서환 의원님, 미안하지만 저하고 작업 하나만 해주셔야할 거 같습니다."
"의원님의 의향이라면 뭐든지 따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이서환 의원님의 개인사를 건드리게 되는 일이라서요."
"제 개인사요?"
이서환은 처음에는 의아해했다가, 잠자코 바라보는 하수영의 눈빛에서 그게 뭔지 깨달았다.
"설마 태호그룹을."
고인이 된 태호그룹 창업주, 이태호, 이서환의 나이 많은 친부.
어머니를 첩으로 거느렸던 남자.
"태호그룹에 유류분 소송 겁시다. 이서환 의원님이 '원래 받아야 했을' 상속분을 전부 받아내지요."
"의원님, 저는 태호그룹 그 어떤 일에도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예전에 의원님께 팔았지만, 청담동 빌딩 하나를 받은 것으로 족합니다."
"이강길 부회장 아시죠? 태호건설부회장. 의원님의 나이 많은 배다른 작은 형."
"왜 그러십니까?"
"그 사람이 청부업자를 써서 절 암살하려고 했습니다."
"오늘 당장 소송장 내겠습니다. 그 망나니 새끼가 감히 우리 의원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