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39화
224장 강릉이 이상하다 (5)
수영조명은 영업을 잘했다. 그리고 열심히 했다.
가능한 모든 곳에 무선 전기를 넣었다.
하수영의 모든 개인 빌딩, 모든 계열사의 사옥과 제조공장, 영업점.
전국에 있는, 10만 개가 넘는 하수영 프랜차이즈 가맹점.
철강, 조선, 기계 등 중공업 단지.
서해전자, JS그룹 등 친한 기업들에도 영업을 넣었다.
기업들도 기꺼이 반겼다.
한국전력보다 전기요금을 10%나 깎아주었으니까, 마다할 일이 없었다.
수소발전이라는 게 조금 걸렸지만, 수영조명이 무조건 안전을 보증했기 때문에 신뢰했다.
"근데 수소연료 충전하는 거 누가 본 적 있어?"
"아뇨, 전 한 번도 못 봤습니다."
"뭐, 업무 방해 안 하려고 밤사이에 충전하는 게 아닐까요?"
"그런 건가……."
수영조명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구 120만 명을 보유한 수원시를 상대로 영업에 나섰다.
수원시장은 수영조명 대표이사 정운원의 방문을 조금 이상하게 여겼지만, 그래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먼 길 오느라고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장님."
가벼운 담소를 주고받은 뒤, 정운원은 용건을 꺼냈다.
"저희 수영조명에서 여러 곳에 전기를 판매하고 있다는 건 아실 겁니다."
"네, 들었습니다. 조선소나 제철소같은 중공업 단지에도 거뜬하게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수소발전기라는 게 정말 대단하군요."
"그래서 말인데요, 수원시에도 전기를 공급해 보고 싶습니다."
"수원시라면……. 설마 시 전체에 말입니까?"
수원시장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고, 정운원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였다.
"네, 허락만 해주신다면 수원시 전체에 공급을 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한전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아는데, 괜찮은 겁니까?"
"이미 내부적으로 다 조율이 돼서 문제없습니다."
조율 따윈 한 적 없다.
이쪽은 계약파기를 강제할 힘이 있으니 거리낄 게 없었다.
그리고 송전선 테러, 고의적인 복구 지연 등 선빵을 날린 건 어차피 저쪽이다.
"법적인 문제는 전혀 없으니, 안심하고 한 번 맡겨 주시지요."
"흐음. 하지만 시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전기공급자를 바꾸라는 행정명령은 할 수 없습니다. 그건 시민들의 권리이자 자유니까요."
"예, 압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홍보입니다. 널리 알려진다면 시민들은 전부 우리 쪽으로 갈아탈 거라고 자부합니다."
"그 자신감의 근원이 무엇입니까?"
"저희는 누진제를 적용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얼마를 사용했던 간에 1kWh당 180원의 요금을 받습니다. 부가세 등 포함입니다."
"그럼……."
"일반 가정이 201kWh에서 400kWh 구간이 182.9원입니다. 그보다 조금 싸죠. 하지만 더 이상의 전기 요금 상승은 없습니다."
"……."
"1,000kWh을 사용하는 슈퍼유저요금은 하계에 704.5원/kWh이지만, 우리는 그런 거 없습니다. 무조건 180원입니다."
수원시장은 얼떨떨해하다가 물었다.
"그럼 저구간 사용자들이 너무 부담이 커지지 않겠어요? 가난한 1인 자취생나 저소득자들은 전기요금 1, 2만 원도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180kWh 이하는 kWh/80원이라는 할인 혜택이 있습니다."
조건만 보면 한전이 악마로 보일정도로 매우 좋다.
저전력사용자든, 고전력사용자든,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조건이다.
문제는…….
"그렇게 팔아서 남는 게 있나요? 손해 보고 파는 거라면 나중에 가격이 급등할 우려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적긴 하지만 그래도 이윤이 남습니다. 그리고 우리 그룹 회장님의 경영 스타일은 잘 아시지 않습니까? 박리다매입니다."
"박리다매라기에는 백화점 머쉬룸서비스나, 35,000원이나 하는 라면 가격이나……."
"그 재료 구성에 35,000원이면 엄청 싼 거죠. 다른 경쟁자들은 아무리 가격 절감을 이루려 해도, 똑같은 구성이면 10만 원이 무조건 넘는다는 것 때문에 좌절했습니다."
"으음. 그런가요."
조건이 좋아도 너무 좋다.
무엇보다 하수영과 친분을 다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긍정적인 결정으로 향하게 했다.
'나중에 경기도지사 직을 노리려면 하수영 의원님의 후원이 필요해.'
자신에게도, 시민에게도, 전혀 나쁠게 없이 좋은 것만 있다.
수원시장은 결심을 굳혔다.
"좋습니다. 자세한 조건을 검토해 보십시다. 괜찮다 싶으면 시에서도 적극 밀어주겠습니다."
"미리 준비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시장의 과감한 결정을 토대로, 온갖 행정 편의를 등에 업고, 수영조명은 무서운 속도로 수원시전력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먼저 시청 관할의 관공서들이 일제히 수영조명과 전력계약을 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관공서는 또다른 요금제 혜택이 있습니다."
시정부 재정팀에서는 전기료로 나가는 예산이 10% 가까이 절감된다는 것에, 전혀 반대를 하지 않았다.
기존 전선을 이용하지 않고 각 건물에 직접 전기를 공급하기에, 한전과 얽힐 일 자체가 없었다.
관공서 다음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였다.
수영조명은 수원시에서 부유층이 많고 세대수가 많은 아파트 단지를 중점으로 공략했다.
"정말 kWh당 180원밖에 안 해요? 1,000kWh 이상을 써도?"
"그렇다니까요. 심지어 180kWh 이하 사용자를 위한 할인 혜택도 있습니다."
"안전과 단전 보장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안전은 400% 보장해 드리고, 단전 사고는 한전 그 이상의 서비스를 약속드립니다. 여기 계약서가 있습니다."
"음, 그래도 이건 입대위 의결을 거쳐야 해서 시간이 걸립니다. 제가 관리소장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단지 전체의 전기 공급처를 바꾸는 거니까……."
그러자 수영조명 영업이사는 조용히 태블릿을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수영조명 전기를 공급받겠다는 입주자분들의 전자서명입니다. 92%가 동의하셨습니다."
"……아니, 이걸 어떻게."
"그분들이 어떻게 알고 저희에게 먼저 연락을 주셨습니다. 당연히 개인정보 침해는 아닙니다."
-파격 전기료 혜택을 누리세요!
이런 프리덤의 영업에 홀랑 넘어간 입주자들은 두말하지 않고 수영조명에 연락을 했다.
물론 직접 전화를 한 게 아니라, 그것도 프리덤을 시킨 것이지만,
-주인님! 한전보다 무조건 싸답니다! 그리고 누진제도 없어서 얼마를 쓰는 걱정이 없어요!!
-뭐? 그럼 당장 해야지. 프리덤, 어떡하면 되냐?
-저에게 맡겨주시면 제가 알아서 아파트 단지가 계약을 맺도록 노력 해보겠습니다.
-그래, 네가 알아서 해줘. 난 찬성이다.
"그리고 지금 입대위 분들이 부랴부랴 관리사무소로 오고 계시답니다."
"……."
관리소장도 말을 잊을 정도로 놀라 워했지만, 영업이사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을 처음 봤다.
하루아침에 입주자들의 의사를 한 곳으로 모으고, 의결까지 끌어내다니.
새삼 프리덤이 활용하기에 따라서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래서 프리덤 프로, 엔터프라이즈 버전을 함부로 서비스하지 않는 건지도.'
그렇게 수영조명은 120만 인구를 자랑하는 수원시를 상대로 차근차근영업을 진행했다.
***
당연히 한전도 그런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강길 부회장 역시 보고를 받았다.
그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원. 이제는 아주 정부고 한 전이고 눈치도 보지 않고 움직이네."
"정부든 뭐든 자기네 무기를 막을 수 없다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행동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
사소한 계약 위반?
자잘한 행정법 위반?
그런 건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핵융합 무선 전기라는, 이 말도 안되는 기적과 편리함을 누릴 생각에, 다들 눈이 충혈돼서 강릉으로 달려가리라.
수영조명의 겁 없고 거침없는 행보에, 이강길 부회장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모든 게 날아가게 생겼는데, 가만히 잠자코 있을 순 없지.'
가능성은 생각보다 높았다.
표적은 뭘 믿고 그리 겁이 없는지, 경호 차량 한 대 거느리지 않고 오늘도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으니까.
원거리에서 조용히 따라붙는 경호차량이 있지 않나 싶었지만, 아무리 조사해도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틀림없다.
그는 경호 따위 없이, 항상 혼자 다닌다.
'총기 관리가 엄격한, 치안 좋은 한국이라는 사실에 안심하는 건가. 하지만 그게 네 패착이 될 것이다…….'
표적은 둘이다.
바로 하수영과 에릭 로한.
오랫동안 철거 용역을 문제없이 처리해 온 놈이니, 실수는 없으리라.
최악의 경우라 해도 누가 사주했는지는, 절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테니.
***
하수영은 장효주를 조수석에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이었다.
통영 양식장을 보여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의외네요. 멀다고 귀찮아할 줄 알았어요."
"귀찮긴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잖아요. 평소 저를 귀찮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속박과 책임은 귀찮고 무겁지만, 미인과 같이 드라이브를 하고 식사를 하는 것은 즐겁죠."
"기분 좋아해야 하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네요."
통영을 지난 둘은 어느덧 양식장에 도착했다.
장효주와 하수영은 스쿠버 다이빙복장으로 갈아입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차지한 거대한 가두리 그물.
그 안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수많은 참치, 그리고 가두리 그물을 자유자 재로 드나들며 주변을 떠나지 않는,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들.
바닷속 풍경을 실컷 즐긴 뒤, 둘은 다시 캠핑카를 타고 통영을 벗어났다.
이번 목적지는 해운대 수영펜션이었다.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그녀는 아직도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정말 놀랐어요. 어쩜 그렇게 물이 맑고 깨끗해요? 저 몰디브 바다에 온 줄 알았다니까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우리 통영앞바다가 물이 얼마나 투명하고 깨끗한데요."
"수심이 꽤 깊은데도 그렇게 물속이 비쳐 보인다는 게 놀라워요. 원래 안 그렇잖아요?"
"그게 다 해신의 축복을 받아서…… 어? 뭐야?"
좁고 행적이 드문 비포장도로였다.
하수영은 도로 앞을 가로막은 여러 대의 차량을 보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뒤쪽에서도 남자들이 우르르 나타나서 드럼통 등 장애물을 쌓았다.
차는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장효주가 겁에 질려서 몸을 웅크렸다.
"뭐, 뭐예요? 저 사람들? 강도인가요? 다 칼을 들고 있어요!"
"흠, 강도 같지는 않은데요. 저한테 좋은 감정은 없어 보입니다."
"경찰, 경찰에 신고할게요. 프리덤!"
"아아, 놔둬요. 신고 같은 건 천천히 해도 되니까 지금은 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봐야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내 앞을 가로막았는지."
"미쳤어요? 칼 든 남자들이 수십명인데, 나가서 대화를 하겠다는 거예요?"
"폭력은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만, 대화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문명인이 누릴 수 있는 고귀한 전통이죠."
"위험해요! 이건 영화도 아니고 당신도 마피아 김주환이 아니잖아요!"
"괜찮습니다. 차 방탄이니까 문 잠그고 안에서 기다려요."
"아,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많이 칼을 들고 있는데 맨몸으로…… 어? 지금 뭐 꺼낸 거예요?"
장효주는 하수영이 운전석 뒤쪽 바닥을 열고 꺼낸 물체를 보고 정신이 멍해졌다.
"왜…… 캠핑카에 기관총이 있어요?"
"기관총 아니고 발칸포입니다. 대화 좀 나누고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