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937화 (937/1,270)

프랜차이즈 갓 937화

224장 강릉이 이상하다 (3)

열 명 남짓한 핵피아 중소 귀족들은 무선 전기를 가리켜 볼드모트라고 돌려서 불렀다.

함부로 무선 전기라고 언급하다가 어디서 새어 나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불러선 안 될 이름을 볼드모트라고 돌려서 부르다가, 거기서 더 줄여서 '볼트' 라고 부르게 되었다.

'차관님, 그거 말입니다.'

'아, 그거.'

'네, 그거요.'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는.

'차관님. 볼트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안 그래도 나도 볼드모트 때문에 할 말이 있었네.'

이게 더 낫지 않은가.

물론 무선 전기의 존재를 인지하는 이들은 핵피아 중에서도 10명이 채 안 된다.

청와대에서는 대통령과 정영술 과학수석만이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무선 전기에 관해서 모른 체하기로,어차피 떨어질 떡도 없는데, 괜히 나서서 방울을 달겠다고 설칠 필요는 없으니.

***

무선 전기의 존재를 모르는 홍웅기는 강릉-서울 송전라인 복구공사를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핵융합 발전소의 시장 진출을 최대한 늦추고, 그 안에 크게 해먹고 은퇴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당연히 그는 산자부 1차관 같은, 무선 전기를 인지한 이들이 대탈출 러시를 감행 중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발전소 특별법이 마침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었다.

"해냈습니다!"

"모두 수고했어요."

산자중기위 안필성 위원장.

태호건설 이강길 부회장.

한전 홍웅기 사장.

그 밖에도 원전사업에서 한 가락하는 거물 10인이 스위트룸에 모여앉아서 술잔을 부딪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건배사를 위해 안필성 위원장이 잠시 일어나서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다들 한껏 웃으며 앉은 채로 잔을 들어 올렸다.

"우리는 원자력 전소를 이 나라에 널리 보급하고, 또 해외에 수출을 하는 등 수많은 실적을 세운 일등공신입니다."

다들 진지한 표정으로 귀담아듣기 시작했다.

"핵융합 발전소, 말은 좋습니다만 세상에 나온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은, 아직 충분한 운용 경험이 없는 신생아를 완전히 믿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옳습니다!"

"때문에 과도기를 안정적으로 거치기 위해 원전 등 재래식 발전소 운영을 일정 기간 보장하는 것은, 이 나라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법이었습니다. 그 중요한 법안이 오늘 통과되었으니, 산자중기위원장으로서 참 보람이 큽니다."

솔직한 마음은 원자력 발전소만 법안에 넣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눈치가 보이니까, 화력 등 다른 발전소들도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법조문에 집어넣은 것이다.

핵피아들은 전력 사업 전반을 아우르지만, 가장 사랑하는 것은 원전이다.

위험한 최첨단이니만큼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그래서 해먹을 게 많은 발전소이기 때문에.

"자! 건배합시다! 대한민국 전력 사업의 미래를 위하여!"

"위하여!"

"건배!"

서로 유쾌하게 잔을 부딪치고 한 잔 거하게 마신 뒤, 문이 열리고 젊은 여자들이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

대통령은 아무것도 모르는 핵피아왕족들이 무척 괘씸했다.

그들 때문에 결국 무선 전기가 세상 밖으로 튀어나온 것 아닌가.

그래서 대통령은 그들에게 나름대로 한 방 먹이기로 했다.

[발전소 쿼터제 특별법 통과! 발전소의 다양성을 보존하여 유사시를 대비한다!]

[독일 전력전문가들 일제히 경악,  "아니, 핵융합을 완성해 놓고 대체 왜?"]

[미국 핵융합연구협회, "인공 태양을 만들어놓고 촛불 공장을 늘리는꼴."]

[정부, 발전소 쿼터제 시행에 발맞춰 원자력 발전소 규제 대거 완화한다!]

[고산 원전, 5호기에서 8호기까지 대거 증설 실시한다!]

청와대는 원자력 발전소를 위해 아낌없는 규제 해제를 풀었다.

덕분에 원전 업계는 신이 났다.

정부가 자신들을 살려주기 위해서 지원을 하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실제로는 폭락이 확정된 작전주를 대량으로 떠넘기는 꼴이지만, 핵피아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쿼터제가 보호하는 동안 실컷 꿀빨라고, 시간 벌어줬을 때 챙길 거 듬뿍 챙기라고.

그런 의미로 잘못 받아들인 것이다.

나중에 크게 엿 돼보라고 흥청망청풀어주는 대통령의 독심을 알 리가 없었다.

***

무선 전기 때문에 탈출 중인 핵피아 일부 세력들은 대통령의 의중을 짐작했다.

"지금 대통령은 원전 카르텔을 아예 죽여 버리려는 겁니다."

"실컷 씨앗을 뿌리게 만들어놓고 정작 수확 직전에 밭을 트랙터로 갈아 엎어버릴 셈이에요."

"지금 이거 보고 신나서 장에 들어갔다가는 지옥불맛 보고 나옵니다. 그거 식히려면 한강에 뛰어들어야 해요."

"절대로 쳐다도 봐선 안 됩니다. 지금은 폭탄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는 게 우선이에요."

"무선…… 아니, 볼드모트가 언제 갑자기 치고 들어올지 모르는데, 원전이라니."

"그런데 따지고 보면 원전도 볼드모트를 채용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무선 전기는 송전 방식이지, 생산방식은 아니다.

엄연히 둘은 별개.

하지만 그 의견은 즉각적으로 반론을 맞이했다.

"핵융합과 '볼트'는 패키지예요, 패키지. 어느 한쪽만 떼어서 취사선택할 순 없습니다."

"내가 하수영 의원이라면 '볼트'를 원한다면 핵융합도 무조건 함께 가져가야 한다고 갑질을 할 겁니다."

발전소 쿼터제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대통령의 공격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통령의 행동 동기는 조금 다르게 해석했다.

"볼트는 통신사업에도 대혁신을 가져올 겁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사돈은 통신 재벌가죠."

"분명히 퇴임 이후 이권을 약속받은 겁니다. 그래서 원전에 시한폭탄을 자꾸자꾸 떠넘기는 거고요."

"그 시한폭탄이 터지게 될 때쯤이면……!"

"하수영 의원은 당당하게 전력과 통신 시장에 입성하게 될 겁니다. 아무도 말릴 수도, 막을 수도 없는 패왕이죠."

존재를 아는 이가 국내에서 얼마 되지 않는 시한폭탄.

그 심지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속도로, 지금도 타들어가고 있다.

***

청담동은 오늘도 평화롭다.

-마스터, 정부에서 원전 사업을 적극 밀어주고 있습니다. 이거 마스터와 한 번 해보자는 게 아닙니까?

"쯧쯧, 1차원적으로만 보면 그렇겠지. 하지만 아니야."

-그럼 무엇입니까?

"지금 정부는 핵피아 놈들이 악성재고를 비축하도록 부추기고 있는 거다."

-아, 오히려 우리를 돕고 있는 거군요.

"우리를 돕는다기보다는 핵피아 놈들한테 빡친 거지. 어차피 레임덕빼면 실제로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이제 1년 정도고, 그동안에 최대한 여기저기 뻗쳐두겠다는 거지."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마스터는 어떻게 그렇게 잘아십니까?

"초은하단 수천억 개로 구성된 은하제국을 통치한 짬밥이 보통의 정치질 티어로 될 거 같냐?"

-그래서 마스터는 온라인 토론에서 그렇게 강하시군요. 물론 오프라 인에서도 충분히 강하시지만,

"은근히 기대도 하고 있을 거다. 자기가 이렇게 왼손이 모르게 챙겨줬는데, 나중에 뭐라도 챙겨주지 않을까 하는."

-챙겨주실 겁니까?

"내 음식점 오면 서비스 안주는 듬뿍 챙겨줄 수 있지."

-역시 불필요한 이권 상납은 하지 않으시는군요.

"아, 퇴물 된 양반 뭐하러 챙겨 줘. 날 위해서 칼침 대신 맞은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대로 실컷한 거뿐인데."

-그런 단호함을 저는 존경합니다. 사용자들을 보면 왜 이렇게 우유부단하고 심약한 사람들이 많은지…… 끊어내야 할 걸 끊어내지 못하고 고통받는 사용자들이 정말 많고, 또 안타깝습니다.

하수영은 킬킬거리다가 문득 혀를 찼다.

"그런데 핵피아 왕족들은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인덕이 없는 건지. 중소귀족 몇몇들은 벌써 눈치까고 자기 영지민 챙겨서 런(run)하고 있는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네."

-기이한 의미에서 보안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습니다. 열 명 넘게 퍼진 상황에서 더 이상 누출 확산이 이뤄지지 않다니, 저도 이번에 보고 놀랐습니다.

"욕망이야말로 인간을 강제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원동력이지. 그 많은 전생 중에서 이 진리가 틀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수영은 대놓고 무선 전기 공급을 늘리고, 수소연료는 전혀 매입하지 않는 등 빈틈을 보였다.

하지만 청와대와 한 몸처럼 움직이는 핵피아 '중소 귀족'들이 필사적으로 덮고 있는 중이다.

하수영은 흥에 겨워서 노래처럼 흥얼거렸다.

"난 숨기고 싶지만, 넌 적당히 눈치껏 알아채 줘야 해. 왜 그걸 몰라. 너란 바보 그 이름 핵피아."

***

원전산업계는 혹시라도 정치권의 마음이 바뀔까 부랴부랴 서둘렀다.

핵융합 발전소가 건재하니, 느긋하게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서둘러 원자로를 추가로 발주했고, 아예 금액까지 선불로 집행을 해버렸다.

"아예 낙장불입으로 만들어버려야지. 나중에 정권이 바뀌더라도 뒤집을 수 없게끔. 당장 대선이 내년인데."

"국회 임기는 얼마 안 지났지만, 시간 금방입니다. 원자로만 미리 만들어두면 원전 확장은 밀어붙일 수 있습니다."

"환경단체 놈들이 핵융합 100%시행하라고 난리 치고 있는데, 느긋하게 한 걸음씩 나갈 여유가 어딨어? 서둘러서 집행하라고!"

이미 써버린 돈을 다시 돌려줄 필요는 없으니까.

원전산업계는 하루라도 빨리, 최대한 많은 돈을 미리미리 써버리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였다.

맥산중공업은 추가 원자로를 생산할 자재도 알아보지 않은 상황에서, 대금을 선불완납으로 받아 챙길 수 있었다.

누가누가 먼저 곳간에서 돈을 빨리 빼내서 써버리나.

그런 경쟁이라도 하듯, 카르텔에 몸을 담은 이들은 부지런히 자기 자리에서 움직였다.

고위 공무원, 정치인, 기업인, 직원, 고문, 언론인, 학계 교수 등등.

당장 돈이 없으면 채권에 어음을 남발해서라도 낙장불입으로 만들었다.

아직 출발선에 서기는커녕 운동화를 신지도 않았는데, 목표지점을 통과한 것으로 확정해 버렸다.

수십조 원의 자금이 그렇게 번갯불에 콩 튀기듯이 집행되었다.

숨 가쁘게 돈 잔치를 벌이고 난 뒤, 그제야 그들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한국전력 매출이 왜 이렇게 떨어진 거지?"

평균 월 5조 원의 전기요금을 수거해야 한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4조원 밑으로 떨어져서 3조 원대를 찍고 있었다.

철강, 조선, 기계 등 중화학 공업단지에서 한전 가입을 해제해 버렸다.

심지어는 한국철도공사마저 물밑에서 가입 해제를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국전력 홍웅기 사장은 도저히 이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젠장, 백두조선소에서 수소발전기를 도입하는 걸 막았어야 했는데."

"사장님, 이제라도 안전을 이유로 허가를 취소해야 합니다. 지금 철강업체들은 광운제철소 빼고 죄다 수소발전기로 전력을 자급하고 있습니다."

광운제철소는 자급화가 아니라 한전에서 받고 있지만, 그 전기는 결국 수영발전소에서 공급한다.

그래서 광운제철소가 얼마를 쓰든간에 한전은 전기료를 못 받는다.

"사장님, 강릉이 뭔가 이상합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발전량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공급받는 전력보다 훨씬 많은 양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전력이 다 어디로 가고 있는데?"

"그걸 모르겠습니다."

"자료 전부 가져와! 지금 당장!"

홍웅기 사장은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임직원들과 밤새도록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리고 좀 늦었지만, 먼저 탈출한 핵피아 중소 귀족들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씨발! 이것들, 우리 몰래 아주 당당하게 여기저기 전기를 팔고 있었잖아!"

그는 그제야 산자부 1차관의 최근이상한 행보가 모두 납득이 되었다.

대번에 1차관을 찾아간 그는 험악하게 눈을 부라리며 압박했다.

"위원장님과 부회장님, 그리고 다른 회장님들과 원로 의원님들이 아시면 가만있지 않으실 겁니다."

"나한테 이런다고 뭐가 바뀔 거 같나?"

"어서 말하십시오! 수영 발전소가 어떻게 여기저기 전기를 팔고 있는 겁니까! 어느 라인을 우리 한전 몰래 따로 떼어준 겁니까!"

"한전 몰래? 그게 가능할 거 같나?"

1차관은 초췌한 안색으로 비웃었다.

"히든 케이블 같은 건 없어, 이 사람아. 전기 전문가가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돼?"

"히든 케이블이 없다니, 그게 무슨…… 아!"

큰 충격을 받은 홍웅기 사장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내 돈…….'

한전사장 퇴임 후 원자로 제조업체 맥산중공업 사장으로 이직해서 받기로 한 연봉 수십억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

"볼드모트? 그게 뭔가?"

"그것이……."

핵피아 왕족들은 뒤늦게 무선 전기를 알게 되었다.

이미 원자로 실컷 주문하고, 증설에 신축에 송전에 모든 공사 계약이다 끝난 뒤였다.

태호건설 이강길 부회장은 마지막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 새끼야. 똑바로 설명을 해! 아니, 전선이 없는데 어떻게 전기를 보낸다는 거야! 공기 타고 전기가 흘러? 그럼 대한민국 사람들 죄다 감전돼서 뒈져야 정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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