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34화
223장 청담동 평화주의자 (5)
무선 송전.
어디서 말은 들어봤다.
아, 보통은 '무선 충전' 이라고 많이 하던가?
물리적으로 선을 연결하지 않고도 배터리에 전력을 충전하는 기술은 이미 실용화되었다.
하지만 배터리와 충전장치를 거의 접촉에 가까운 수준으로 밀착시켜야 한다.
정확한 위치를 벗어나거나, 불과 몇 ㎝만 떨어져도 제대로 된 충전이 이뤄지지 않는다.
하물며 라디오처럼 거대한 송전탑을 통해 도시 구석구석까지 전력을 보낸다는 것은, 아직까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1차관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 친구가 농담을 아주 거하게 하는군. 무선 송전이라니, 그게 말이 되나?"
"……."
"내가 경영대 나와서 전기 쪽은 잘 모를 거라 생각하고 막 지르는 건가? 강 실장. 무선 송전이 아직 아기 걸음마 수준도 안 된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어요."
"에릭 로한 박사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던 반수성 금속을 하루아침에 만들었습니다."
강성경이 이를 악물듯이 뱉어낸 말에, 1차관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강성경은 입술을 씹어가며 말했다.
"심지어 상온 핵융합이라고 추정되는 핵융합 발전기도 어느 날 갑자기 만들었습니다."
"……."
"무선으로 전기를 보내는 기술쯤은, 그에게 그리 어려운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그의 한계를 알지 못합니다."
진지함이 이글거리는 눈빛에 1차관도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어떻게…… 전파 따위에 실어서 보냈다가는 인체에 치명적일텐데."
"그 전에 천문대에서 전자기파와 자기장에 온갖 교란이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되겠죠. 하지만 그런 기록은 전혀 없었습니다."
"……."
"현재 무선 송전의 방법으로 전자기파와 자기장을 이용한 방법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인류가 상상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입니다."
"……자네는 무선 송전이라고 거의 확신을 하고 있군."
"논리적인 결론이었습니다. 전기를 생산하지 않으면서 전기를 쓰고 있고, 연결된 전선은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무선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결정적인 것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하수영의 태도.
하수영은 수소연료를 매입한 적이 없다.
그 당당한 태도에서 강성경은 확신할 수 있었다.
심지어 지금은 이런 마음까지 들었다.
'이왕 이리 된 거, 어디 한 번 속앓이나 단단히 해봐라. 차관 놈아.'
무선 송전이 진실이라고 치자.
자신으로서는 손해 볼 게 없다.
오히려 공학자로서 꿈에 그리던 미래 기술이 완성된 것을 한없이 기뻐할 뿐.
하지만 1차관은 다르다.
그는 원전 산업을 중심으로 전력 시장을 해처먹는 핵피아 카르텔의 일원이니까.
무선 송전이 널리 퍼지면, 큰 손해를 입게 되는 입장이다.
1차관은 기획조정실장을 돌아봤다.
그의 안색도 흙빛으로 굳어 있었다.
자신처럼 전기 전공은 아니지만, 강성경 실장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네 말고 누가 또 이걸 알고 있지?"
"저 말고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보고서를 만들었잖나? 그럼 2차관한테 보고를 했을 텐데?"
"보고를 하려다가 제가 생각해도 너무 허황된 거 같아서 그냥 세절하던 중이었습니다."
트집 잡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그리고 강성경은 1차관한테 호락호락하게 모든 걸 털어놓을 마음은 없었다.
숨길 수 있는 것은 숨겨야지.
"자네 밑의 직원들은 어떻고?"
"각자 쪼개진 정보만을 접한 터라 제가 다다른 결론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을 겁니다."
"자신하나?"
"예."
"…… 알겠네. 자네, 부디 단단히 함구해야 할 거야. 만약 이 말이 어디서 흘러나오면 자네가 흘린 것으로 간주하겠어."
"아무도 못 믿을 거라고 생각해서 세절하려던 중이었습니다."
"오늘 들은 말 중에 가장 신뢰가 가는군."
손짓으로 강성경을 보낸 1차관은 기조실장을 돌아보며 물었다.
"기조실장, 자네 생각은?"
"이 보고서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무선 송전의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할 거 같습니다."
"혹시 2차관이 우리를 엿 먹이려고 꾸몄을 가능성은?"
"강 실장이 최근 들어 남몰래 바쁘게 뭔가를 열심히 조사했던 건 사실입니다. 저 역시 은밀히 지켜봤고요. 2차관 측의 교란은 아닙니다."
"음…… 만약 수영그룹에서 정말 무선 송전 기술을 갖고 있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일단 정말 사실인지 교차 검증을 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전에는 어떤 추정을 하던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래?"
"예. 무선 송전이 사실이라 치더라도, 그 정확한 스펙이나 출력을 먼저 알아야 앞으로의 일을 추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1차관은 크게 끄덕거리며 말했다.
"좋아. 그럼 자네가 한 번 검증해 봐. 아, 자네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거 명심하고."
"네. 조사관들은 자기가 뭘 조사하는지도 모르게 잘게 쪼개서 움직이겠습니다."
똑똑한 대답이다.
1차관은 흡족해서 끄덕이는 한편, 속에서는 불안한 감정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
기조실장은 부하 직원, 인맥, 기관협조 등을 통해 최대한 다양하고 자세하게 파고들었다.
각자 역할을 잘게 분산해서, 자신들이 무슨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결론이 나왔다.
"무선 송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걸 보십시오. 수영 발전소에서 얼마 전에 새로 설치한 송전탑입니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은 모두 이 송전탑으로 모여드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
"네, 그리고 지금 수영 발전소는 광운제철소와 자급화 시설들이 소비하는 총전력에 해당하는 양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120% 정도 됩니다."
필요전력보다 20%쯤 넉넉하게 생산을 하니까,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특히 서진파운드리 등 제조공장들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합니다. 당연히 대형 연료 차량이 자주 드나들어야 하는데, 한 번도 그런 게 잡힌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수소발전기는 100%가짜라는 거군."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정황을 보면……."
자세한 브리핑을 접한 1차관도 기조실장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무선 송전을 완성한 것이다.
그게 아니고는 이 모든 걸 설명할 수가 없다.
1차관은 초조해서 뒷짐을 진 채 이리저리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울부짖음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머리를 북북 긁었다.
"으아아! 으아아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차관님!"
"무선 송전? 무선 송전? 아니! 그런 게 하루아침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게 말이 되냐고! 예고 정도는 해줬어야지!"
핵융합도 예고 없이 나왔지만, 무선 송전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둘 중 어느 쪽이 더 대단한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는 단언할 수 있다.
무선 송전은 핵융합과는 달리 대체가 불가능한, 전력 시장을 파괴할 비대칭적 무기라는 것을.
전력 공급이 너무 편해진다.
일단 그 많은 케이블을 깔 필요가 사라진다.
송전탑은 이제 과거의 흉물이 되어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도심에서는 더 이상 전력 케이블을 지하에 매설할 필요가 없어진다.
아파트 전기차주들은 더 이상 충전자리를 두고 얼굴을 붉히지 않아도 된다.
스마트폰 유저들은 더 이상 배터리 잔량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핵융합보다.
더 쇼킹하고, 대혁신이다.
한참 발광을 하던 1차관은 이내 진정하고는, 냉정하게 지시했다.
"수영조명을 계속 찔러 봐. 뭐라도 나올 때까지 말이야."
"네, 차관님."
"그리고, 알지?"
"절대 비밀 유지하겠습니다. 차관님 외에 다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믿고 있겠네."
***
산자부 기조실장 신차빈은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선 송전에 대한 확고한 판단만 품어갔다.
그러나 대체 어떤 원리인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전자기파와 자기장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전기를 보내는 방법이라니.
'혹시 양자얽힘?'
오죽 답답해서 신차빈은 양자역학까지 혼자 찾아보기도 했다.
말을 타고 활과 창으로 싸우는 시절에, K2흑표 전차가 느닷없이 출현한 기분이다.
수영조명은 실로 대담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10만 개가 넘어가는 전국의 프랜차이즈 가맹점에 무선송전전력을 보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소발전기라고요?"
"네, 매우 안전하니 염려하지 으셔도 됩니다. 옆에서 폭탄이 터져도 터지지 않고 그냥 망가질 뿐입니다."
"아유, 수영그룹에서 그렇게 보증한다면 저희야 의심 안 하죠."
"관리는 저희가 알아서 할 거고요, 전기 요금은 따로 본사 정산에서 차감이 될 겁니다. 지금보다는 적게 나오실 테니까 걱정 마세요."
"믿습니다. 우리 본사야 언제나 가맹점에 이익을 양보하잖아요."
노골적인 움직임이었다.
모든 가맹점까지 무선송전전력을 보급했고, 그들로부터 전기요금을 대신 받았다.
이건 분명한 계약 위반 행위지만, 입증할 방법은 없다.
겉으로 보면 수영 발전소 전력을 판 게 아니라, 자가발전기를 공급하고 그 비용을 받은 것이니까.
"수소연료는 매입하는 시늉조차도 하지 않는군."
무선 송전이 들키지 않으리라는 허술함일까?
아니면 알아차려도 상관없다는 노골적인 자신감인가?
감시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신차빈 기조실장의 속은 새카맣게 썩어 갔다.
그 와중에 뜻하지 않은 방향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효장일렉트론이 사업을 접었다고?"
"예, 자산과 부채를 모두 정리했습니다. 설비고 공장이고 부지고 전부 다 팔고 폐업 신고했습니다."
"아니, 어째서? 그냥 팔아도 200억은 족히 받을 텐데?"
멀쩡히 굴러가던 송전설비 제조업체가 하루아침에 사업을 정리했다.
야반도주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깔끔하게 청산 절차를 밟았다.
회사를 남에게 팔았으면 200억은 받았을 텐데, 장비도 중고로 팔고 직원들 퇴직금도 챙겨주고 하느라고 실제로 남은 것은 30억 정도.
업체에 관해 알아보니 더욱 기가 막혔다.
"여배우 장효주 부친이 운영하던 회사였어?"
그렇다면 모든 게 납득이 된다.
하수영으로부터 사업을 정리하라고 귀띔을 받은 것이리라.
아마 송전설비 시장이 초토화되리라는 이야기를 들었겠지.
이기적인 사람이었으면 남에게 떠넘기고 최대한 이익을 챙겼을 것이다.
하지만 장효주 부친은 그렇지 않고, 그냥 회사를 청산해 버렸다.
200억 손해에 원한을 품을 사람을 만들지 않는 것을 택한 것이다.
'무선 전기가 정말 사실이라면, 이미 원전은 끝났다…… 아니, 전력 시장 자체가 끝났다.'
상대가 핵융합 무기를 개발해서 필사적으로 저지선을 펼쳤다.
기득권이 학연과 혈연, 지연, 권력, 세월로 쌓아온 저항력을 여지없이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대가 이제는 요격이 불가능한 미사일을 꺼내 들고, 거기에 핵융합 무기를 장착했다.
'이거 잘못하면 이 나라가 전쟁터가 될지도 모른다.'
핵융합만 해도 지금 전쟁이 나니 마니 하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여기에 무선 송전까지 결합하면?
답이 없다.
"발전소 특별법! 아, 안 돼!"
이러다 그 법이 통과되면 진짜 다 죽어!
신차빈 기조실장은 뒤늦게 알아봤지만, 이미 발전소 특별법은 국회의결까지 통과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