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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932화 (932/1,270)

프랜차이즈 갓 932화

223장 청담동 평화주의자 (3)

강남역 사거리.

하수영과 장효주는 경호원도 없이 함께 인도를 거닐고 있었다.

장효주는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는데, 얼굴이 워낙 작다 보니 코와 입을 빼고는 거의 다 가리고 있었다.

수수하고 저렴한 보세 옷을 입었지만 늘씬하고 완벽한 S자 몸매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남녀 가리지 않고 잡아끈다.

"그래도 사람들이 용케 못 알아보네요? 전 바로 알아보고 달려들 줄 알았더니."

그렇게 묻는 하수영도 마찬가지로 크고 짙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가끔 혼자 이러고 돌아다녀요. 입을 열기 전에는 다들 저라고 의심은 못 하더라고요. 연예인인가? 하고 흘끔흘끔 쳐다보긴 하지만요."

톱여배우의 미모와 피지컬이 주는 존재감은, 고작 얼굴을 가린다고 쉽게 억눌러지지 않는다.

하수영이 다시 물었다.

"누가 알아봐 줬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마지막까지 들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편히 산책 나온 거니까 당연히 아무도 못 알아봐 주면 좋겠죠. 근데 또 너무 끝까지 못 알아봐 주면 서 운할 거 같아요."

"흐음."

"못 알아봐 주는 게 편하긴 한데, 그렇다고 또 너무 그러면 속이 상한 그런 이율배반적인 느낌? 수영 씨는 모를 거예요."

"왜 모릅니까. 잘 알죠."

"잘 알아요?"

"그럼요. 요즘 제가 딱 그런 기분입니다."

"신기하네요. 수영 씨는 매사에 다 당당하게 그러내고 다니니까 그런건 전혀 없을 줄 알았는데."

"제가 매사에 전부 드러낸다고 누가 그럽니까? 저도 숨기고 싶은 게, 하지만 또 자연스럽게 들키고 싶은 욕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숨기고 싶지만, 또 너무 사람들이 못 알아주면 서운할 거 같아서 자연스럽게 들키고 싶은 게 뭔데요?"

"맞춰 보실래요?"

"여배우 장효주와 남몰래 썸타고 있는 거?"

"오늘도 장효주 씨 팬 723명이 언제 결혼할 거냐고 DM 보내왔습니다만?"

둘은 영화 촬영 때 키스씬 찍은 사이일 뿐이지만, 장효주의 팬들은 공인 커플로 인지하고 있다.

'어차피 언젠가 결혼을 할 거면, 차라리 하수영 제작자와 해버려!'

'그럼 우리 효주 언니 평생 행복할 수 있잖아!'

하수영의 정치적 지지자들도 여기에 크게 동조하고 있다.

'하씨 일가에 장효주 DNA 섞어서 돈부터 키와 피지컬, 얼굴까지 모든 걸 다 가진 초인 2세를 한 번 만들어 보자.'

'야, 우리 의원님도 사실 얼굴 가지고 어디 가서 꿇리지는 않아. 하필 항상 에릭 로한, 장효주, 주효정, 정서희 부사장 같은 꽃미남 꽃미녀들만 옆에 끼고 다니니까 그렇게 보일 뿐이지.'

그리고 하수영의 '개인적 팬들'은 누구보다 불같이 뜨겁고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안 돼! 이 결혼, 나는 반대일세!'

'우리 하수영 의원님은 영원히 모두의 우상으로 남아주셔야 한다고!'

'누가 감히 하수영 대원수님을 품절시키자는 소리를 내었는가?'

'저는 개인적으로 정서희 부사장님이 배우자로서 더 적합하다고 생각 합니다. 미모는 장효주가 조금 더 낫지만 그건 톱배우라서 어쩔 수 없다 치고, 정서희 부사장님은 사업동반자로서 아주 훌륭한 내조를…….'

'여기 미국 그 미모의 요원 미레아신봉자는 없나요?'

'러시아 미녀 로마노프도 난 괜찮던데…….'

'그냥 확 넷 다 데리고 살아버리면 안 돼? 난 그럼 아주 행복할 거 같은데.'

'대체 왜 네가 행복한 거냐?'

'이 생은 답 없는 모쏠 시궁창 인생이라서 대리만족이라도 느껴보고 싶어서 그런다. 왜?'

"남몰래 썸은 무슨, 장효주 씨 팬들은 우리를 아주 공인 커플로 알고 있는데요."

"그럼 우리 썸은 맞긴 한 거죠?"

"숨기고 싶지만 또 너무 끝까지 세상이 몰라주면 서운한 게 뭔지 궁금하시죠? 제가 답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잘 빠져나가는 거 보면 진짜 능숙한데……."

장효주가 키득거리며 추궁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수영은 근엄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제가 세계대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혁신적인 대발명품을 얻었습니다."

"래플폰 같은 건가요? 처음 공개했을 때 반응이 장난 아니었다고 하던데. 저도 얼마 전에 그때 발표 영상찾아봤는데 엄청 감동받았어요."

"스마트폰이 IT 생태계를 재창조하긴 했지만, 세계대전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죠."

"뭐예요, 대체?"

"아, 이거 입이 너무 간질거리는데, 효주 씨가 알아서 괜히 위험해질까봐 말은 못 하겠어요."

"지금 장난해요?"

장효주가 새침하게 째려보자 하수영은 피식거리며 귀에 입을 가까이 가져갔다.

"아버지께서 회사 운영하지 않아요? 송전설비 만들어서 납품하시는."

"네, 맞아요."

장효주의 부친은 한전 하청업체에 케이블, 변압기 등 다양한 송전설비를 만들어서 납품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근데 핵피아 같은 거 아니에요. 아버지는 그런 거 모르세요. 그냥 전기설비 만드는 중소기업일 뿐이라 고요."

장효주가 변명하듯이 말을 하자 하수영은 킥킥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 말 안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업, 당장 정리하시는 게 좋아요."

"……정리해요?"

"네, 회사를 팔아치우든, 폐업을 하든 하루빨리 정리하세요."

장효주의 눈빛이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숨기고 싶지만 너무 끝까지 아무도 못 알아차리면 서운하다는 게, 그거였어요?"

"뭔지 알겠어요?"

"솔직히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근데 전기 시장을 박살 내려는 건 맞는 거 같아요."

"얼굴은 뵌 적 없지만 그래도 전속모델이나 마찬가지인 분의 부친이시니 이 정도는 챙겨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그리고 그날, 둘은 데이트가 끝날때까지 아무에게도 정체를 들키지 않았다.

하수영한테 자기 인기를 보여주겠다며 자신만만해했었던 장효주는 뭔가 시무룩해 보였다.

그래서 하수영이 그녀를 다독거렸다.

"그러게 조금 흘리기도 하고, 일부러 빈틈도 보이고, 너그럽게 맞아주기도 하고 그래야 끝까지 안 들키는 불상사가 없는 겁니다."

"자주 들켜보신 분처럼 말하네요?"

"중요한 건 최대한 자연스러운 타이밍에 들키는 거죠. 그 포인트를 잡고, 흐름을 유지하는 게 관건입니다."

일부러 수소발전기를 대량으로 구매한 것처럼 말이다.

***

수소연료는 중요한 관리 대상이다.

생산하기도 어렵고, 또 안전 위험성 논란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산자부에서는 눈에 불을 켜고 수소연료의 흐름을 감시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에너지산업실 수소경제정책관 에너지안전과의 한 직원이 이상한 흐름을 발견했다.

"어? 수영그룹에서 수소연료를 전혀 매입하지 않았는데?"

직원은 눈을 비비며 데이터를 훑었다.

"분명 얼마 전에 수소발전기 대량으로 설치해서 전기 자급화하지 않았나? 설마 아직 설치만 하고 자급 생산은 시작을 안 한 건가?"

그러나 알아보니, 수영그룹은 일체의 전기료를 내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는 독도 해상플래폼에서도 단 1원의 전기료도 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수소발전기를 설치했으면, 당연히 수소연료를 정기적으로 매입해서 사용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직원은 기이하게 생각하면서도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고, 곧 잊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

"이게 뭡니까? 웬 보안서약서죠?"

"나도 모릅니다. 닥치고 여기에 사인하세요. 인사 불이익 당하고 싶지 않으면!"

"아, 알겠습니다. 사인할게요."

갑작스럽게 까마득한 곳에서 들이닥친 감사팀이 보안서약서에 서명을 요구했다.

***

파편화된 정보를 접하는 이들은 자신이 접한 파편들의 완성형이 어떤 그림인지 모른다.

수영그룹이 수소연료를 매입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한 직원이 그러했던 것처럼.

'뭔가 이상하다.'라고는 생각하지만, 거기에서 더 크게 나아가지는 못하는 것이다.

상상력의 부재라기보다는, 불필요한 범위까지 상상력을 확대하는 것을 절제하는 사회적 합의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네 직급에 어울리는 판단만 해라.' 라는 뜻이 되겠다.

그렇게 정보의 파편들이 그룹을 형성할수록, 상급자는 더 폭넓은 범위까지 판단력을 늘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불변의 팩트라도, 인간의상상력과 상식을 넘어서지 못하면, 진짜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지 못한다.

바로 지금처럼, 강성경 에너지산업실장과 산자부 제2차관의 대화가 그러했다.

"강 실장, 그러니까 수영그룹이 수소발전을 하는 게 아니다, 이 말인가?"

"네. 수소발전을 하려면 당연히 수소를 매입해야 하는데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전기는 자급화를 하고 있고?"

"그렇습니다. 차관님."

"이해가 안 되는데. 혹시 그럼 우리 몰래 다른 곳에서 들여오거나 만드는 거 아닌가?"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만한 양의 수소를 사용하려면 우리 산자부의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

"수영그룹은 각 빌딩과 회사마다 수소발전기를 도입해서 전기 자급화를 문제없이 이뤘는데, 정작 수소연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차관도 당혹스러워서 뭐라고 반응을 하지 못했다.

뭔가 있다. 뭔가 있어.

분명히 엄청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하지만 그 뭔가의 정체는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고 있었다.

차관의 상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첫 번째 가정입니다. 한전 내부 데이터를 조작해서, 수영 발전소의 전력을 송전하고 있으면서 그걸 숨긴 겁니다. 수소발전기는 당연히 껍데기일 뿐이겠고요."

"……그게 가능한가?"

"한전을 철저히 매수하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겁니다. 전기는 눈에 보이지 않고, 데이터는 조작하기 쉽죠. 그리고 하수영 의원은 매수를 시도 할 만큼 돈이 많고요."

"……."

"두 번째 가정은 그 발전기들이 수소발전기의 형태를 한, 전혀 다른 방식의 발전기라는 겁니다. 핵융합, 반수성 금속처리 기술을 만든 에릭로한 실장이라면 그만한 걸 만들어 낼 수도 있겠죠."

"효율이 매우 높은 이동식 발전기라도 된단 말인가?"

강성경 실장은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가능성을 늘어놓았다.

이미 자신의 입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 수소연료의 비밀반입도 거론했다.

"그나마 첫 번째와 두 번째가 가장 현실성이 있어 보이는데."

한전 매수, 수소발전기가 아닌 특별하고 새로운 발전기라는 가정.

차관은 혼란과 의심을 품고 이 일을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보안이라는 두 글자가 그의 머릿속에서 선명해졌다.

"강 실장, 어디 가서 이 일을 말하진 않았겠지?"

"보안은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파편화된 정보를 제가 모아서 추론한 거라서, 하급 직원들은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 특히 1차관 쪽에 들어가면 안 돼."

1차관은 산자부 내에서 대표적인 핵피아 카르텔로 꼽힌다.

그에 비해 2차관인 자신은 반핵피아로 분류되고 있었다.

핵피아 카르텔에 비해서 반핵피아는 산자부 내에서도 입지와 영향력이 낮은 편이다.

"그럼 일단 우리 둘만 알고 있는 셈이군. 조용히 한 번 알아봐야겠어. 이건 내가 하겠네. 강 실장 자네는 보안에 다시 한번 신경 쓰고."

"네, 차관님."

"혹시 다른 의심되는 건 없나? 허황된 거라도 좋네. 그래야 방향을 잡는 데 편해."

"하나 더 있긴 한데, 이건 제가 생각해도 너무 허황된 거라서요."

"말해보게."

"무선 송전…… 이 아닐까 하고 상상을 해봤습니다. 그 수소발전기는 일종의 전력 수신 장치고요."

"……."

"하하,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말이 안 되지 뭡니까. 그 대량의 전력을 무선으로 안전하게 송전하는 것은 아직 불가능하거니와, 그랬다가는 당장 전국의 주파수가 뒤틀려서 발각이 될 겁니다."

"아냐, 특별한 방법으로 주파수 교란을 속일 수도 있는 거지. 내가 그 부분까지도 신경을 써서 조사해 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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