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30화
223장 청담동 평화주의자 (1)
"그런데 회장님, 무선 전기 말인데요."
"네, 말씀하세요."
"이거 통신장비로도 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전파도청이 절대로 불가능한……."
"아, 그렇네요. 깜박하고 있었다."
"……."
"그렇구나. 이거 통신기술로도 쓸 수 있네."
하수영의 천연덕스러운 반응에 과학자들은 잠시 정신이 나갈 뻔했다.
"송전탑뿐만 아니라 통신탑이나 통신 케이블, 해저 케이블까지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겠습니다. 3대 이 통사들은 수영그룹 앞에서 그냥 무릎 꿇고 절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무선 전기의 가능성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핵잠수함 2대 빼고 죄다 디젤잠수함인데, 잠수함전력 기술로 응용하면 잠수함의 기동성도 극대화됩니다."
"아예 전기탱크는 어떻습니까? 모터의 순간출력, 지속출력은 엔진보다 월등히 셉니다. 전기를 무한정으로 공급할 수 있으니, 엔진보다 더 큰 힘을 내는 게 문제도 아니고요."
"이거 대단한데요? 기존 탱크들과 달리, 연료 공급 없이 쉬지 않고 무한정 달릴 수 있다는 거 아닙니까?"
"보급선이 짧고 간편해진다는 것은 전장에서 매우 큰 강점입니다. 괜히 전쟁은 보급으로 시작해서 보급으로 끝난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에요."
"근데 만약을 대비해서 예비배터리는 장착해야 할 텐데, 배터리는 너무 추우면 작동이 어렵지 않을까?"
"아, 24시간 히터 틀면 되죠. 어차피 전기는 우리 수영그룹 현금처럼 무한한데 무슨 상관입니까?"
"아, 그렇네. 방금 발언은 철회하지."
그때 한 명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손뼉을 쳤다.
"잠깐, 핵추진 항공모함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잖아? 항모 만들어서 무선으로 전기를 공급하면 그만인데?"
"근데 캐터펄트를 쓰려면 결국 원자로에서 나온 고온고압 증기가 필요해요. 요즘에는 다 증기식 캐터펄트라."
"아! 그거야 무선 전기로 물 끓이면 되죠! 어차피 전기는 남아돈다니까요! 우리 핵융합이에요, 핵융합!"
"아, 미안, 자꾸 그걸 깜박하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가 갱신되는 바람에, 허허……."
이 사람들이 핵물리학 전문가들인지, 밀리터리 전문가들인지.
공돌이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결국 머리를 맞대고, 무선 전기의 군사적 활용에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었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차지만, 한 줄로 요약하자면 결국 이거다.
핵융합 무선 전기는 현대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운석폭탄 그 자체라고.
얼마나 많은 혼란과 갈등, 그리고 불신이 벌어지겠는가…….
그 과정에서 무수히 도태될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선 전기의 존재를 알아버린 인류는 희생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것이다.
불현듯 조용해졌다.
섬뜩한 분위기가 과학자들을 휩쓸고, 어느덧 그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하수영이 조용히 말했다.
"이제 대충 아셨겠죠?"
"……."
"보물을 노리는 강자들이 우리나라를 무너뜨릴 수도 있지만, 보물 그 자체가 우리나라를 부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예."
"저는 흙 파먹고 사는 일개 농꾼입니다. 세상에 큰 혼란을 주기 싫었습니다. 딱 지금 정도가 좋다고 생각했어요."
"……."
"하지만 핵피아놈들이 선 넘었죠? 농장에 전기 못 대게 송전선 파괴하고 우회 공급도 안 되게 만들었죠? 이걸 가만 놔두면 안 되겠죠?"
조용히 훑어보는 하수영의 눈빛에서, 과학자들은 단단한 예기를 느꼈다.
"질척거리는 핵피아놈들, 영원히 질척거리지 못하게 해버립시다."
평화롭게 살고 싶었다.
패권주의를 덜덜 떨게 만들 기술은 존재조차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간절한 바람을, 핵피아들의 끝없는 욕심이 무너뜨렸다.
송전선 테러만 하지 않았어도 무선 전기가 이렇게 빨리 세상에 나오지는 않았을 테니.
***
현재 수영 발전소는 포항 쪽으로 이어진 송전선 하나뿐이다.
그러나 그쪽 라인으로 서울경기 쪽에 전력을 우회 공급하는 것은 한전이 '비효율'이라며 거부하고 있다.
한전이 관리하는 전력거래시장에 전기를 팔 수도 있지만, 내수시장진출은 한전의 승낙을 얻기로 협의를 했기에 당장은 불가능하다.
"지금 서울에 전기 보내봤자 한전이 무선 전기를 더 빨리 눈치채기만 할 뿐이지."
-그렇습니다.
"한전이 한꺼번에 알아차리는 것보다 천천히 자연스럽게, 소수만 눈치 챌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맞습니다, 마스터.
"좋아, 이제부터 내가 가진 모든 빌딩과 주택의 두꺼비집을 개조한다."
하수영은 한전에서 들어오는 전력 선을 차단하고, 그 대신 모든 빌딩중앙전력시스템에 무선전기 수신칩을 달았다.
송신탑과 동기화된 수신칩은 미리 정해진 전압, 출력으로 전기를 보낸다.
빌딩, 자동차, 스마트폰 등등은 저마다 요구하는 출력이 다르니까.
전기 사용을 해제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제부터 전력 사용량이 0이 되었을 뿐.
그렇게 수십 채가 넘는 청담동 고가 빌딩의 전력 사용량이 하루아침에 0으로 변했다.
당연히 한전에서 연락이 왔다.
-네, 선생님, 여기는 한전인데요. 선생님 소유의 빌딩의 전력 사용량이 0을 찍어서 무슨 이상이 있는 건 아닌가 하고요. 저희가 언제 점검을 나가야 할 거 같은데.
"한두 채가 아닐 텐데요. 청담동에서만 수십 채에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아, 네. 맞습니다. 어떻게 그걸 아셨죠?
"그게 전부 제 빌딩이라서 잘 압니다. 저, 청담동 기초의원 하수영입니다."
-헉! 하수영 의원님이셨습니까?
이름을 밝히자 그제야 한전 직원이 목소리가 변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그냥 모니터링 중 전력 사용량이 0인 빌딩이 뜨니까 기계적으로 전화를 걸어서 점검일자를 잡으려 했던 것이리라.
그런데 한국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농민 재벌이 전화를 받았으니.
'고객님, 이번에 저희가 겔드폰 최신 기종을 저렴한 가격에 행사하고 있어서 연락을 드렸는데요.'
'나, 이창영이요.'
한전 직원은 마치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점검을 나와도 상관없는데, 별로 그럴 필요는 없을 겁니다. 제가 따로 자가발전기를 달아서 쓰고 있어서 전기를 안 쓰는 거거든요."
-아, 그러십니까? 그래도 저희가 확인을 해야 해서…….
"그럼 세 군데 정도만 확인해 드리면 되겠죠?"
-물론입니다. 배려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수영은 위장용 자가발전기를 보여주었다.
껍데기만 그럴듯하게 갖춘 더미였다.
"수소연료발전전지입니다. 수소를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하는 전지죠. 미국 농장에서는 송.전.선.이. 부실한 경우가 많아서 요즘 종종 쓰는 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제 빌딩들에 도입을 해봤습니다."
"아, 이거 유명한 모델이군요. 그런데 이렇게 되면 그냥 전기를 쓰시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비쌀 텐데요."
"대신에 공기청정 효과가 끝내주죠. 수소발전을 하려고 공기를 흡입해서 정화해서 쓰는 놈이니까요."
수소연료전지는 그런 점 때문에 주변 공기를 정화하는 효능이 있었다.
"강남도 매연이 심하잖아요? 그래서 도시형 공기청정기 들여놓는다는 생각으로 빌딩에 한 번 설치를 해봤습니다. 전기료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앞으로 의원님께 이런 걸로 귀찮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제 빌딩뿐만 아니라 회사에도 하나둘씩 설치를 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알아두세요."
"다음부터 미리 살짝만 통보를 해주시면 더욱 폐를 끼칠 염려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한전 직원들은 대형 수소발전기를 보고는 납득하고 넘어갔다.
보고를 받은 홍웅기 사장은 조금 미심쩍은 마음이 들었다.
"자가 수소발전기를 설치했다고?"
"네, 사장님. 직원들이 총 3군데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을 했습니다."
껍데기를 그럴듯하게 만든 가짜이기에, 직원들은 전혀 확인하지 못했다.
직원들은 그 안에 수소연료가 아니라 무선전기 수신장치가 들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근데 왜 갑자기 이런 짓을? 전기 요금 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들 텐데."
설비 가격도 그렇고, 전력 생산 비용도 그렇고, 여러모로 한전 전기를 쓰는 게 100% 나은데?
'아무래도 경북 쪽으로 우회 공급을 하지 못하게 해서 불쾌한 모양이군. 그걸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하는 거겠지.'
홍웅기 사장은 자살한 진옥도를 떠올렸다.
그가 송전탑 재건설 발주를 노리고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믿지 않는다.
홍웅기 역시 이 판의 비숍이니만큼, 그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눈치 채고 있었다.
다만 자신은 모른 체하는 게 모두에게 좋기에, 입을 다물고 있을 뿐.
'조성만 검사가 움직였다고 했었지. 어쩌면 송전선 붕괴로 우리를 의심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수영이 송전선 붕괴 배후로 핵피아를 의심하고 있다? 가능성이 높았다.
'의심을 줄이기 위해서는 송전선 복구를 서둘러야 하지만, 그건 내가 맡은 역할이 아니다.'
지금은 최대한 수영 발전소의 전력을 강릉에 묶어두고 일을 진척시켜야 한다.
발전소 특별법, '원전 등 재래식 발전소'들을 골고루 유지하도록 보장하는 법안이 통과되는 게 우선이다.
산자부의 모두가 핵피아인 것은 아니고, 핵융합 쪽에 줄을 선 이들도 상당하다.
싸우고 어르고 달래고 화해해서, 일단 법안을 국회에 올려야 한다.
자잘한 것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
하수영은 자신이 소유한 모든 빌딩과 주택, 그리고 직영점 매장에 무선전기칩을 달았다.
전국의 CD1 편의점 직영점도 마찬가지.
심지어 모든 목장과 양식장, 해운 대와 독도의 수영펜션까지 모조리 설치했다.
프라임컴퍼니, 프라임오일, 프라임웰빙, 서진파운드리에도 설치했다.
안타깝지만 서해전자 설치는 보류했다.
무선전기에 대한 의혹의 여지를 줄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스터, 이제 마스터가 한전에 내는 전기료는 0원을 달성했습니다. 가맹점주들은 여전히 전기료를 내지만요.
"아니,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0원은 아니지. 내 지분이 들어간 큰 사업체가 하나 남았잖아?"
-광운제철소를 말씀하시는군요.
포스코는 30년간 반수성 금속처리 기술을 독점하는 대신, 광운제철소지분 50%를 넘겼다.
당연히 반수성 금속은 광운제철소에서만 생산해야 한다.
애초에 무인화 반수성 처리공정을 광운제철소에만 설치를 해줬다.
"제철소가 처먹는 전기가 얼마나 많은데. 그걸로 한전 좋은 일을 시킬 순 없지."
광운제철소가 부담하는 전기료만 연간 5,000억 원.
심지어 사용하는 전기의 50% 이상은 조업 과정에서 나오는 열을 이용한 자가발전전력인데도 이렇다.
"5,000억 원이면 청담동에서 건물 10채는 살 수 있어. 한전 녀석들, 어림도 없다."
광운제철소는 무선 전기가 아닌, 유선 전기로 당당하게 공급하기로 했다.
***
포스코 김항철 사장은 하수영을 반갑게 맞이했다.
광운제철소 지분 50%를 가진 대주주인 데다가, 반수성 금속 덕분에 선박용 철판 발주량이 대폭 늘어났다.
반길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광운제철소가 수영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사용해줬으면 합니다. 서울경기와 달리 광운제철소는 우회공급 제외대상이 아니거든요."
"아, 물론 그렇게 해드려야죠. 그런데 전기료는 어떻게 결제할까요? 한 전 승인 없이 외부에 판매하시는 건 안 되는 거 같던데요."
"수영사채에 법인계좌 따로 파서 전기료를 적금 형식으로 다달이 예치해두세요. 나중에 한전과 해결이 되면 한꺼번에 인출하겠습니다."
"생각이 있으시군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포스코도 핵피아들에 한발 걸치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