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29화
222장 청담에 맞선 결과 (5)
"여러분, 농사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어느 정도 환호가 진정되었을 무렵, 하수영이 진지하게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하수영의 말에 집중했다.
"농사 한번 제대로 짓자고 무선송전탑까지 개발해야 하는, 참으로 무서운 시대입니다. 이런 야만의 시대에서 저는 식량패권을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밭을 갈고 있네요."
"……."
"문명에 가속력을 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비열한 핵피아들의 음모에 맞서서 그들을 빡치게 만들기 위해서는 저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
듣다 보니까 뭔가 이상한 뉘앙스였다.
마치 무선송전탑이 오래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지만, 핵피아들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꺼냈다는 말 같지 않은가?
'에릭 로한 교수가 그런 말을 하긴 했지만…….'
'설마 회장님도 이미 오래전부터 무선송전탑 완성 사실을 알고 계셨던 건가?'
'그, 그런데 지금까지 상용화를 하지 않고 묻어두기만 하셨던 거야?'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핵융합과 무선송전 기술의 결합…….'
'그러고 보니 핵융합을 먼저 꺼내셨지. 농장에 필요한 전기를 자급자 족해서 블랙아웃 위기에 대비한다는 취지로.'
'혹시 더 많은 오버테크놀로지들이 이미 완성돼 있는 건가? 당장 농사에 필요한 게 아니라면 꺼내지 않고 그냥 묵혀만 두는?'
'맙소사.'
사고 흐름을 이어가던 중 거듭된 충격에 과학자들은 입을 쩍 벌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게 말이 안되는데.
프리덤, 반수성 금속 처리기술, 핵융합, 그리고 무선 송전 기술을 차례차례 꺼낸 걸 보면.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그러니까 핵피아 따위가 농피아앞에서 깝치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농피아? 설마 농부 할 때 그 농?'
"핵피아 놈들. 내가 귀엽다, 귀엽다 하고 웃어줄 때 주제 파악하고 재롱도 정도껏 떨었어야지. 왜 선을 넘어가지고는……."
하수영의 표정은 어딘지 쓸쓸해 보였다.
과학자들은 그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상을 선도할 대단한 기술로 이제 그들을 싸그리 쓸어버릴 수 있는데, 왜 저렇게 허탈해하는 것일까?
'문명에 너무 가속력을 주면 안 되는데, 개입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하수영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을, 그들이 알 리가 없었다.
"이건 좀 위험하긴 해요. 잘못하다가는 전쟁이 날 수도 있겠어요."
"……회장님."
전쟁 그 자체가 두려운 게 아니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 벌어질 변화가 질리는 것뿐.
"어쩔 수 없이 지구 정복을 하게 되더라도, 최대한 길게 휴식을 즐겨야 하는데…… 이런 간단한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예?"
염치없는 핵피아들을 떠올리니, 새삼 이가 갈린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죠. 왜 내가 혼자 재밌게 놀 수 있도록 가만히 놔두질 않은 걸까요?"
"……."
동시출력은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강릉에서 마라도까지 무선 전기가 도달하는 것은 확인했다.
심지어 두꺼운 납상자 안에 있는 배터리까지 완벽하게 충전이 되었으니까.
과학자들은 무선 핵융합 전기가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꿔놓을지를 두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제 우리나라는 에너지 강국입니다."
"송전탑 20개 정도면 지구 반대편까지 전기를 공급할 수 있겠는데요."
"유럽은 지금 탈원전이 한창이죠. 그런데 우리가 무선 핵융합 전기를 판매한다면, 아마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겁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전기 영업을 시작하면, 그 매출이 대체 얼마야……."
그때였다.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지막한 하수영의 음성이 들떠 있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어느덧 로한은 '내 할 일은 끝났다. 라는 듯이 사라지고 없었다.
하수영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과학자들을 한 명 한 명 둘러보며 말했다.
"힘없는 이가 지닌 보물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
"……."
그제야 과학자들의 표정에 굳은 긴장감이 어렸다.
너드 계열 공돌이 출신이다 보니, 다들 순간적으로 무선 전기의 위대함에만 젖어 있었던 것이다.
하수영의 짧은 지적에, 그제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직시했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다.
힘없는 이가 지닌 보물, 그 한 마디면 상황을 깨닫는 데 충분했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이……
"핵융합 무선 전기는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을 부수고 새로 창조하는 천지창조급의 대발명입니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이 이걸 탐내서 당장 어떻게 나올지 모릅니다."
"……."
"온갖 압박과 이유를 들어가며 구질구질하게 기술을 내놓으라고 지랄땡깡을 쓸 겁니다. 마치 맡겨놓은 것처럼 당당하고 건방지고 황당하게 행동하겠죠. 아, 전 벌써부터 그 꼴이 눈앞에 보여서 팝콘, 아니, 혈압이 오르는 거 같네요."
"……."
"반수성 금속처리, 핵융합에 이어서 이것 역시 특허를 내지 않고 '제가' 완벽하게 독점하는 것으로 할 겁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죠."
"추가적인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유진중 노교수가 조심스럽게 물었고, 하수영은 진지하게 끄덕여 보였다.
"전 농장 전용으로만 쓸 생각이었고, 지금도 그건 변함이 없습니다."
"회장님……."
"하지만 여러분들의 자율경영을 방해할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당분간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고 무선 전기 자체도 보안을 지킵시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킬 힘이 부족한 이상, 힘을 갖추기 전까지는 비밀로 하는 게 낫겠습니다."
"이걸 공개하면 당장 미국에서 귀화하라고 압박 난리 칠 게 뻔합니다. 어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쫄깃하네요. 회장님과 에릭 로한 교수가 미국으로 가버리면 이 나라는 어찌할지……."
너도나도 이구동성으로 당분간 비밀로 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런데 회장님, 국내에서 기존 송전선 대신 무선 전기를 사용하면 결국 우리나라 정부 감시망에는 잡히게 됩니다."
"대외비로 하려면 무선 전기 자체를 아예 쓰지 않거나, 정말 소규모로만 사용해야 합니다만……."
과학자들은 말끝을 흐렸다.
주파수를 사용하지 않는, 완벽한 동기화 방식의 송전 시스템이다.
당연히 잘만 감추면 정부가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망가진 송전선 대신 한전에 '너무 많은 전기를 공급하면, 당연히 한전이 알 수밖에 없게 된다.
'너희 대체 어디서 전기를 끌어오는 거야? 송전선은 박살 났는데?'
이렇게 나오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혹시 농장에만 전기를 공급하시고 자가발전이라고 둘러대실 겁니까?"
"아니죠. 한전과 맺은 계약대로 제 모든 식구들이 쓰는 전기를 공급해야죠. 서해전자에도 당연히 전기 줘야 하고요."
한전과 맺은, 그룹 전체가 사용한 전기의 110%를 한전에 공급하고 대신 전기료를 내지 않는다는 계약.
면제되는 전기료가 10조 원급 규모인데, 당연히 이행할 생각이다.
"그럼 한전이 의심을 품게 됩니다. 대체 어떤 송전망을 이용하는가 하고요."
"물리적 송전망이 존재하지 않으니 결국 무선전기를 개발한 거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겁니다."
"주파수에 변함이 없으니 어떤 무선 방식인지 혼란에 빠지긴 하겠지만……."
하수영은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말했다.
"그래서 NCND 정책으로 갑니다."
"NCND? Neither Confirm Nor Deny Policy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미국의 핵정책처럼 갑니다."
본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
미국은 해외에 배치한 핵무기의 존재에 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하수영은 그걸 말하는 것이다.
"한전이든 산자부는 국회든 물어보고 추궁하라 그래요. 우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냥 침묵합니다."
'너희 송전망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혹시 무선 전기라도 완성한 거니? 진짜 그런 거니?'
'근데 왜 주파수는 안 써?'
'특별한 전자파 변화도 없는데?'
라고, 그 어떤 질문들이 쏟아져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는 것.
과학자들은 하수영이 생각하는 스탠스를 이해했다.
동시에 우려도 생겨났다.
"괜찮을까요? 엄청난 압박이 쏟아질 겁니다."
"그건 제 전문이죠. 무선 전기 의심 들어오면 무조건 저한테 토스하세요. 중앙행정 노괴들을 여러분들처럼 순진무구한 공돌이들이 상대하면 말립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하수영이라면 장관도 쩔쩔매는 인물이니 손쉽게 요리할 수 있으리라.
따지고 보면 핵피아들이 저렇게 주제 모르고 설쳐댄 것은, 하수영이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던 이유도 있다.
욕심에 눈이 먼 상황인데, 가장 무서운 사람이 나서지 않으니 점차적으로 겁을 상실한 거겠지.
"자신감을 가지세요. 우리 수영조명, 여러분들의 생각보다 더 갑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핵피아들이 저렇게 제정신을 못 차리는 거죠. 우리가 충분히 자기들 밥그릇을 몽땅 아작낼 능력이 있음을 아니까, 저렇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발악을 하는 겁니다."
밥줄이 싹둑 끊어질 위기 앞에서, 인간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
설령 그게 자신의 목을 조르게 될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밥줄을 지킨다는 것은 그렇다.
"무선 전기 당당하게 쓰면서 긍정도 부정도 안 하면요? 오히려 한전, 산자부 놈들이 먼저 쫄아서 전전긍긍해요."
"그, 그렇게 됩니까?"
"무선 전기 가지고 해외로 가져가버릴까 봐 겁이 나겠죠. 이 허접, 아니, 위대한 기술을 우리나라가 독점했으면 하겠죠. 그런데 나라가 힘은 없고, 미국에 알려지면 뺏길 수도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할 거 같아요?"
"……숨긴다?"
정운원이 멍청한 표정으로 중얼거렸고, 하수영이 손가락을 딱 튕기며 가리켰다.
"빙고! 바로 그겁니다!"
"……."
"우리나라에 무선 전기는 말이죠, 판자촌 사람이 얻은 1조짜리 복권 같은 거예요. 뺏길까 봐 무서워서 철저하게 숨기죠. 행정규제니 뭐니 하고 잡소리도 못하고 입 다물 겁니다."
"하지만 기관이라는 게 워낙 여러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자기 이익을 챙기려고 해외에 정보를 누설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요."
"당연히 유출되죠. 이런 큼지막한 건수가 그럼 유출이 안 되겠어요? 결국 시간문제입니다."
"예?"
"근데 이런 사이즈는 몰래 유출이 돼도 제대로 터지는 데까지 시간이 걸려요. 입수처에서도 거짓 정보라 오해할 가능성도 있고, 행복회로도 열심히 돌릴 테니까요."
"……."
과학자들은 하수영의 템포를 따라 잡기가 힘들었다.
정보 유출을 교란하기 위해서 긍정도 부정도 않는 스탠스(NCND)를 취하면서, 유출은 또 시간문제라고 하니까.
"그래서! 제가 따로 교란정보로 맞유출을 할 겁니다. 다양한 첩보가 쏟아지면서 첩보기관들이 정보의 홍수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거죠. 때문에 NCND 스탠스가 중요한 거예요."
"아아, 정보의 홍수! 이제야 회장님의 의중을 알 것 같습니다!"
"물론 유출한 놈들, 나중에 찾아내서 인생 퇴근하고 싶어질 때까지 멘탈 박살 낼 거긴 한데, 뭐 그건 심심할 때 틈내서 하면 되고."
"……."
"아무튼 그래서 스펙은 다운그레이드 좀 섞어서 맞유출을 할 겁니다. 커버 범위는 반경 5km, 제조비용은 한 100배쯤 껑충 띄우면 되겠네요."
"아, 당장 도입하기에는 너무 가성비가 나쁘다, 그런 이미지를 만드는 거군요."
"우리 철밥통들이 애국심과 보안의식이 투철하면 이런 교란을 안 해도 되겠지만, 강남아파트 몇 채에 국가기밀을 팔아넘길 사람들이 수두룩하니, 지저분하게 플레이해야죠."
"회장님. 그런데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해외에서 모든 걸 알아내서 요구를 해온다면……."
"들어는 봐야죠. 만약 헛소리를 한다면 전쟁, 결코 전쟁, 아차차. 아닙니다. 이런 말실수를."
"……."
하수영은 얼른 얼버무렸지만, 과학자들은 똑똑히 듣고 보았다.
전쟁을 입에 담는 표정은 분명히 진심이었다.
그것도 몹시 신나 하는.
하수영도 그런 분위기를 느꼈는지, 얼른 표정 관리를 하며 점잖게 말했다.
"한전이 무선 전기를 눈치채는 말든, 쫄아서 비밀을 지키는 안 지키든, 유출이 되든 안 되든, 전쟁이 나든…… 아무튼 우리 평정심만 지키고 있으면 문제 될 건 없습니다."
"……."
"그러니 지금만큼은 다 같이 '현재를' 즐깁시다. 송전탑 복구공사로 장난치던 놈들, 이제 엿 됐잖아요?"
"회장님의 그런 마음가짐, 진심으로 닮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