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926화 (926/1,270)

프랜차이즈 갓 926화

222장 청담에 맞선 결과 (3)

정운원은 계약한 건설업체 사장들이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은행에서 어음 할인을 받아주지 않아서 곤란을 겪었다는 이야기.

노교수 유진중도 왠지 허투루 넘길수 없는, 찜찜한 일이라고 했다.

'일반어음이라고 무조건 못 믿을 그런 건 아닌데, 오히려 비자금 조성 때문에 일반어음이 선호되는 면도 있는데, 은행에서 무조건 거부했다는 게 영 찜찜해.'

'리스크가 이유라면 할인율을 더 높이면 될 문제였지, 아예 거부를 해버렸잖나.'

건설업체의 재정을 흔들리게 해서, 터빈증설 공사를 훼방 놓으려는 속셈이었을까?

"그렇게 비가 쏟아지는 날에, 그런 작업을 한다는 게 가능할까요? 송전탑이 보통 튼튼하게 지어지는 게 아닌데, 무너뜨리려면……."

"오히려 비가 많이 오니까 지반이 약해져서 산사태를 일으키기 더 쉽겠죠. 궤도 흔적을 보면 보통 큰 굴착기가 아닙니다."

"……."

"갑작스럽게 조용히 보자고 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감시를 받고 있을 수도 있어서요."

조성만 검사는 커피를 다 마시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중에 비대면으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대표님."

조성만은 황급히 카페를 떠났고, 정운원은 우두커니 고심에 잠겨 들었다.

"프리덤, 임원들 호출해줘. 지금 당장 회의를 열어야겠다."

-알겠습니다.

다들 회사 근처에서 사는지라 모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장 늦게 도착한 정운원은 임원들 앞에서 조성만한테 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다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리 큰 반응은 아니었다.

"송전 라인이 그렇게 광범위하게 끊어지는 게 조금 이상하긴 했어. 너무 비가 많이 와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 거지."

"정황만 보면 비 오는 틈을 타서 일부러 송전 라인을 망가뜨린 거 같은데."

"아무리 홍수라고 해도 그 초대형 송전탑들이 무너진 게 조금 이상했습니다. 애초에 약한 지반 위에 송전탑을 세우지 않았을 텐데."

"지반이 아무리 단단해 봤자 굴착기로 망가뜨리고, 거기에 비가 계속 쏟아지면 산사태로 위장하는 거야 쉽지."

"흙더미가 모든 흔적을 가려줄 거 고요. 그나저나 굴착기 궤도 자국이 용케 남아 있었군요."

정운원이 덤덤하게 말했다.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조검사가 고속도로 CCTV를 뒤져서 굴착기 이동 상황을 확인하려 했는 데, 상부 호출을 받고 복귀하는 거 랍니다."

"조성만 검사, 그 사람은 믿을 수 있습니까?"

"지금 200억인가 300억인가 하는 청담동 펜트하우스에서 무상으로 살고 있을 겁니다. 우리 회장님 소유저택입니다."

"아, 그럼 믿을 수 있겠군요."

하수영과 임대인 & 임차인으로 맺어진 끈끈한 사이라는 말에 다들 납득하고 넘어갔다.

"한전의 송전선 복구공사가 영 시원찮다고 싶었는데, 의도적으로 태업을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유진중 상무가 담담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핵피아들의 견제는 여론 조작부터 이미 시작됐습니다. 이제는 발톱을 들이댄 거지요."

"우리 증축업체들을 은행이 견제한 거하며, 의도적인 송전선 파괴, 그리고 검찰의 묵인까지…… 작정하고 움직이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송전탑 파괴는 엄연히 테러 아닙니까? 이거 걸리면 감당이 안 될 텐데요."

"누구 하나가 총대 메고 모든 책임을 짊어지면 그만이지. 정치판에서 그런 일이 어디 한두 번 벌어집니까?"

"……."

"우리도 나이브하게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여기 있는 우리들도 이미 감시의 눈길이 붙었을 거예요. 앞으로도 각자 행동거지 조심해야 합니다."

이미 그 전부터 언행에 주의를 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한층 더 긴장의 날을 세워야 할 것이다.

***

조성만은 서울로 복귀하자마자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지금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겨우 송전탑 작업하다가 죽은 인부들 수사나 하고 있어? 딱 봐도 그냥 사고사잖아, 사고사."

"부장님. 그런데 정황이 수상합니다. 애초에 그 사람들은 부산지사소속이었어요."

"일손이 모자라면 타 지사에 지원요청을 할 수도 있는 거지."

"강원도지사에는 요청 내역이 없었습니다."

"구두로 처리하고 일지에 적는다는 걸 깜박했나 보지. 우리도 그런 거 종종 있잖아."

"부산지사에서는 오히려 출장 기록을 은폐하려 했고요."

"작업 도중 사고사했으니까 지사장이 자기 목 지키려고 그랬나 보지. 어차피 사고보상금은 두둑하게 준다는데, 대체 뭐가 문제야?"

"송전탑 지반이 산사태에 휩쓸리기 쉽도록 굴착기로 지반을 고의 훼손한 정황이 있습니다."

"그걸 자네가 봤나? 봤어?"

"그래서 고속도로 CCTV 기록과 출입 내역을……."

"아직도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어? 거기서 손 떼고 다른 사건이나 뒤져. 아니, 그냥 사고사일 뿐이고 보상금도 많이 준다는데 뭘 그렇게 질척거려? 자네가 무슨 탐정이야?"

"……."

조성만 검사는 내심 속으로 확신했다.

지금 부장검사는 의도적으로 이 사건에서 자신의 손을 떼려 하고 있다.

아마 누군가의 청탁을 받은 것이겠지.

'정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뭔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눈을 감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확실하다.

핵피아들은 검찰에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카르텔에 재벌도 포함되어 있으니, 너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거 나 혼자 힘으로는 안 되겠는데."

조성만은 임탁정 차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야기를 듣고 난 임탁정은 신중히 말했다.

-정황이 전부 맞아떨어지는데. 이건 냄새가 너무 강해서 뭐 더 볼것도 없군.

"고 부장이 강하게 실드치고 있어서 제가 더 움직이기는 힘들 거 같습니다, 선배님."

-그럼 내가 움직이지, 뭐. 어차피 이제 서울로 다시 올라가는데.

"아, 마음의 결정을 하신 겁니까?"

-제주도 생활에 정이 들긴 했는데, 의원님에게 그런 날파리가 붙은 상황에서 유유자적하게 신선놀음이나 하고 있을 순 없지. 올라가는 대로 내가 움직이겠네.

"선배님이 움직여주시면 저야 든든하죠. 시키실 일이 있으면 뭐든지 말씀만 해주십시오."

-가장 먼저 지시할 게 있네.

"네, 선배님."

-목숨 아껴.

"……예?"

-수십, 수백 조의 전력시장을 자기 들끼리 해처먹는 놈들이야. 괜히 마피아란 단어를 붙이는 게 아니야. 알려지지 않았을 뿐, 죽어나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 거 같나?

"……."

-검사라고 해서 안 건드릴 거라고 착각하지 말어. 그러니 자중하고, 당분간 관심을 완전히 끊은 척 행동해.

"알겠습니다. 선배님. 그런데…… 선배님은 괜찮으신 겁니까?"

-난 돈이 많잖나. 사람 고용하면 되지.

조성만은 갑자기 미칠 듯한 부러운 감정이 생겨났다.

1,300억 원짜리 빌딩을 가진 검사.

아마 역대 검사 출신 중에서는 가장 큰 자산가가 아닐까?

***

대검찰로 복귀한 임탁정의 위세는 드높았다.

그는 여전히 인맥풀이 좁은 아웃사이더였지만,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1,300억 원짜리 빌딩을 가졌으며, 임대료만 연간 40억 원에 달한다.

게다가 1층에서 와이프가 운영하는 수영한우 1호점의 연간 수익은 100억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즉 재벌이면서도 고위검사인 것이다.

임탁정은 대검으로 복귀하자마자 언론에 대고 폭탄을 터뜨렸다.

[강원도 송전탑 붕괴, 북한 간첩의 테러 의심 정황 있어.]

[홍수를 틈탄 테러일 가능성 높다.]

핵피아들이 광고와 뒷거래를 통해 겨우 잠재워놓은 이슈가 빗장을 열고 튀어나왔다.

간첩 테러 의심.

진위 여부를 떠나서 언론들이 도저히 물지 않을 수가 없는 떡밥이었다.

조성만은 나날이 쏟아지는 기사들을 보고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역시 우리 차장님! 마약수사 외길 하나로 그 직급까지 올라간 짬밥이 어디 안 가는구나!"

핵피아들의 힘만으로 억누르기에는 너무 큰 블랙홀 이슈가 되었다.

임탁정이 간첩 테러 프레임을 선점하자, 전국의 여론이 들썩거렸다.

당장 특별수사팀을 구성해서 강원도 송전선 붕괴의 원인을 샅샅이 조사해야 한다고 난리였다.

이에 대검은 특별수사팀을 편성, 한국전력 부산지사를 시작으로 수사를 실시했다.

***

"그걸 북한 테러로 몰고 갈 줄이야."

"설마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도 못 했습니다."

넓은 호텔 스위트룸 회의실에는 세명의 노인과 한 명의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중년인은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경청하는 쪽이었고, 세 노인들은 느긋하게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요?"

"문제될 거리가 있나, 진 사장?"

야당 원로 성승환의 물음에, 태호 건설 이강길 부회장이 고개 숙인 중년인을 불렀다.

진옥도 사장은 얼른 고개를 들고, 흙빛이 된 얼굴로 대답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부회장님. 제아무리 들쑤셔도 나올 것은 없습니다."

"그래야 할 거야. 자네가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으려면 말이지."

그 말에 진옥도 사장은 더욱 사색이 되었다.

일이 잘못되면 알아서 모든 걸 책임지고 폭사하라는 뜻 아닌가.

여당 소속이자 산자중기위원장인 안필성이 느긋하게 말했다.

"부회장님, 너무 겁을 주지는 마시지요. 우리 진옥도 사장님이 어련히 알아서 일을 잘 처리했겠습니까."

편을 들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옥도 사장은 이 또한 경고라는 것을 알았다.

애초에 이 자리는 해결책을 찾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원전산업의 큰 이해당사자인 저 셋이 모여서 변함없는 권위를 확인하는 자리일 뿐이다.

"적어도 20년은 수영조명이 국내전력 시장에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합니다."

"구 발전소 직원들의 생계도 걸려있으니, 관련 법안 통과는 크게 어렵지 않을 겁니다. 염려 놓으세요, 부회장님."

"당분간 핵융합 의심 논조는 내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지금 온 나라가 북한 테러라며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상황이니."

"참 한심하군. 북한이 뭐 얻어먹을게 있다고 그깟 송전선이나 테러한다고, 그걸 덥석 또 믿는지."

"임탁정, 그 친구가 아주 교묘하게 큰불을 질렀어요. 이제 수사는 막을 수 없게 됐습니다."

"진 사장, 그러니 자네 역할이 중요해. 불이 안전선을 넘지 않도록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하네. 알겠는가?"

진옥도 사장은 얼른 의자에서 일어나 카펫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박았다.

"네! 부회장님! 제가 알아서 모든 것을 책임지고 처리하겠습니다!"

사시나무 떨리듯이 경련하는 그의 어깨를 무심하게 내려다보던 이강길 부회장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염려 놓으시지요. 강원도 쪽 아무리 파봤자 나올 건 없을 겁니다."

***

임탁정의 지휘 아래, 수사팀이 강도 높은 수사를 시작했다.

피의자 소환 조사 같은 것은 없었다.

임탁정은 사람을 붙들고 조사하지 않았다.

장부, 일지, CCTV 자료, 신용카드결제 내역, 통장 이체 내역 등의 물적 증거만 철저히 파고들고, 그것들이 가지는 의미를 탐구했다.

팀을 이룬 휘하 검사들이 피의자를 닥치는 대로 소환해서 압박 심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임탁정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누구 하나는 반드시 죽어 나가는 판이다. 빌미를 줄 순 없지."

"죽다니요? 누가 죽는다는 겁니까?"

"난 사람 죽게 한 검사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한꺼번에 일망타진한다."

닥치는 대로 증거를 확보하고, 어느 정도 밑그림을 완성했을 무렵, 수사팀은 한국전력의 어느 하청업체를 덮쳤다.

그러나 업체사장 진옥도는 이미 모든 자료를 파기하고 자살한 뒤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