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23화
221장 청담의 빛 (8)
"농사짓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세요?"
"농사지으려고 밭을 갈다가 문화재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토지수용당하고 쫓겨나는 농부들이 세상에 한두명이 아닙니다."
"장비는 또 어떻고요?"
"트랙터가 있으면 뭐합니까?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무인화 시스템을 연동해서 굴려야 하는데, 중앙컴퓨터 세팅하려고 하니 돈이 또 조 단위로 깨져요."
"요즘 반도체값 엄청나게 비싼 거 아시죠?"
"이번에 농장 통제컴퓨터 세팅하려고 CPU, 옵테인 메모리, HDD, 네 트워크 장비, 칩, 등등 잔뜩 샀는데 관세청에서 거기에 관세 물리려고 해서 또 얼마나 싸웠는지."
"아니, 농기구용 반도체에 왜 관세를 물리는지 모르겠어요. 농기구는 관세, 부가세 모두 면제인데 말입니다."
"부산물로 나오는 볏짚으로 소 키워서 축산업도 하려고 보니까, 세상에 EU에서 목장에다가 메탄세를 물리겠다는 거예요."
"미국은 메탄 포집한답시고 4억 달러짜리 보잉 747-8을 1,000대나 새로 만들어서 굴린다고 합니다. 아유, 부러워라."
"그에 비해서 저는 진짜 농사지으면서 국가에서 뭐 하나 제대로 지원받은 게 없어요."
"농사컴퓨터와 농사로봇들이 하루에 먹는 전력량이 얼마인지 알면 까무러치실 겁니다. 웬만한 중형 공단 이상입니다."
"작년에 강풍과 물난리 때문에 단전 일어나서 어쩔 수 없이 농장이 하루 동안 가동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로봇들 충전을 할 수가 없어서요."
"그래서 개인 발전소를 만든 겁니다. 언제 어느 때든 안정적으로 농장과 농장컴퓨터를 굴릴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런데 핵피아들이 지네 밥그릇뺏길까 봐 요란법석 떨고 난리 났어요."
"아니, 한전 일 년 매출이래 봐야 60조 원인데, 제가 그 작디작은 시장이 뭐가 탐난다고 뛰어들겠어요?"
"황비버섯 하나 팔아서 일 년에 150조 원 이상 남습니다. 매출도 아니고 이익입니다. 이익, 전기 매출 60조 원이 별건가요?"
"아, 근데 선매출채권으로 빚진 게 하도 많아서 통장에 스치기만 하고 있지만요. 한 10년은 열심히 팔아야 겨우 빚 다 깔 수 있을 듯하네요."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안필성 위원장은 육신을 탈출하려는 정신을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하수영은 무려 3시간 넘게 쉬지 않고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안필성이 맞장구를 치면서 끼어들려고 하면 칼같이 타이밍을 가져갔고, 어쩌다가 안필성이 발언권을 가져와도 몇 분 지나지 않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회수했다.
안필성은 끝없이 하수영의 입담을 듣기만 했다.
농사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아느냐.
농사가 얼마나 첨단산업인지 아느냐.
농사가 얼마나…….
"충매화 작물 수확량을 위해 꿀벌의 천적인 말벌을 잡으려고 랩터 킬러까지 만들어야 했죠. 미국은 약으로 말벌을 퇴치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수영농장에서 만든 랩터 킬러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합니다. 제 농사 장비들을 전부 챙겨서 고려 말기로 시간여행을 하는 겁니다. 소에 쟁기 달아서 밭 갈던 농부들이 제 크고 멋진 4균 무한궤도 트랙터를 보고 놀라 자빠질 걸 생각하면, 크……."
"반도체, 로봇, 컴퓨터공학, 통신, 핵융합 전기, 중화학공업, 조선업, 자동차제조업, 로켓과 인공위성, 등등 이 모든 게 갖춰져야 첨단 농업시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안필성은 겨우 가까스로 질문 하나를 찔러 넣을 수 있었다.
"로켓과 인공위성이 농사와 도대체 무슨 상관입니까?"
"기상이요, 기상. 날씨. 기상위성 띄우려면 로켓 기술도 당연히 좋아야죠."
"……그러니까 핵융합 발전소를 만든 건 어디까지나 농장 전용이다. 이 말씀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니, 그런 거라면 조금 더 간략하게 줄여서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높으신 분들 특징, 보고서 1장은 잘 안 믿는다. 그래서 제가 책 10권 정도 분량으로 설명을 드렸습니다."
"저는 1장으로도 충분합니다, 충분해요. 그러니 다음부터는 짧게 설명해주셔도 괜찮습니다. 바로 납득합니다."
"에이, 지금 별로 납득하신 표정이 아닌데요? 어떻게든 빨리 탈출하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고 정신이 혼미하신, 그런 눈동자입니다."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그걸 알면서 몇 시간 동안 화장실 갈 시간도 안 주고 떠들어댄 거냐!
안타깝게도 속으로만 조용히 주워 삼켰지만,
"아무튼 전 농장 전기만 안 끊어지면 상관없습니다. 수영조명 운영은 CEO가 알아서 하겠죠."
"하지만 수영조명이 터빈 증설을 추진하는 걸 보면 전력시장 진출에 큰 관심이 있어 보입니다."
"음, 확실히 CEO들은 전기팔이에 욕심이 날 수도 있겠네요."
남 일 말하듯이 말하는 태도에 안필성은 정신이 더욱 혼미해졌다.
"어쩌겠어요? 그건 국가와 수영조명 경영진이 잘 합의를 하셔야죠."
"수영조명은 의원님 소유가 아니었던가요?"
"소유와 경영 분리의 원칙, 아시잖아요? 전 일개 주주일 뿐이지, 이사회 멤버가 아니에요."
"……."
안필성은 여의도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이런 난공불락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의미에서 정치적 역량이 출중했다.
"아무쪼록 핵융합 전기 연착륙 문제는 수영조명과 잘 협의하시길 바랍니다."
"하수영 의원님?"
"제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주주랍시고 함부로 경영에 간섭하고 그랬다가는 유능한 경영자들이 회사 떠납니다. 무서운 시대예요, 요즘."
"의원님? 의원님?"
"혹 양측이 너무 날이 서게 되면 말씀해주세요. 부드러운 분위기를 위해서 제가 중간에서 술상무는 해드릴 수 있습니다. 하하."
결국 안필성은 하수영한테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일어나야 했다.
그러나 정말로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수영 의원은 전력 시장에 욕심이 크다. 수영조명을 앞에 내세워서 자기는 숨고, 모든 걸 다 챙기겠다는 뜻이다.'
수영조명은 핵피아의 공격으로부터 내세운 방패일 것이다.
안필성은 원전 시장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해서 쌓아 올린 이권인데, 그걸 외부인한테 단번에 넘겨줄 수는 없다.
***
올해도 여지없이 강한 폭우와 태풍이 왔다.
이제 국민들은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작년, 그리고 재작년.
두 번이나 연속으로 전국적인 재난 상황을 겪고 나니, 이제는 살짝 무뎌진 것이다.
서울은 대부분의 회사가 휴무를 발령하고, 집에서 쉬도록 권유했다.
백화점이나 복합엔터센터 등을 찾는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이런 날씨에 잘못 나갔다가는 엿되는 거야."
"작년, 재작년에 그렇게 큰일 겪고도 이런 날씨에 돌아다니면 사람이 아니지. 짐승이지."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은 집 주변에 미리 즉석 방수벽을 쌓았다.
전국적으로 침수 피해가 심했던 터라 나라에서 배포하기도 했고, 따로 사재 방수벽을 준비해 놓은 사람도 있었다.
"비가 진짜 많이 온다. 무슨 하늘에 구멍 뚫린 거 같아."
"작년에는 비보다는 바람이 더 거셌는데, 올해는 그 반대네."
"바람은 잔잔한데 비가 무슨……."
"그래도 재작년 생각해 봐. 그때보다는 낫지."
"아, 그야 당연하지. 그때는 초강우에 초강풍에 그냥 난리도 아니`었으니까."
"진짜 그 엄청난 난리에서 사람 한 명 안 죽은 게 신기할 정도라니까."
그리고 이번에도 재난관리본부는 프리덤 덕을 톡톡히 봤다.
한국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핸드폰을 갖고 있었고, 프리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극빈계층 중에는 핸드폰이 없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 주변에는 프리덤사용자가 반드시 한 명 이상은 꼭 있었다.
다발적인 위기의 순간이 있긴 했지만, 프리덤 덕분에 재난관리본부는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훌륭히 다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산사태로 인해 사망자 9명이 발생하긴 했지만, 그들은 프리덤의 통제를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 사실이 퍼지면서 프리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한층 높아졌다.
"역시 재난상황에서는 닥치고 프리덤 말을 듣는 게 옳아."
"프리덤은 절대로 틀린 지시를 하지 않는다고."
"프리덤이 절대로 가지 말라고 했으면 접근을 하지 말아야지. 왜 그 위험한 곳을 가서 산사태에 깔리냐고……."
나흘간 내리던 폭우가 마침내 그치고, 피해가 집계되기 시작했다.
전국 곳곳에서 폭우로 인해 산사태가 일어나고, 강이 범람했으며, 논밭이 물로 뒤덮였다.
"본부장님, 저지대 대부분의 논밭이 침수돼서 농사를 망쳤습니다. 올해 소출은 아무래도 바닥을 칠 거 같습니다."
"수영농장을 제외하고, 많은 축산농가들이 집단 폐사 피해를 입었습니다. 소와 돼지, 닭들이 물에 떠내려가며 하류에 그 사체가 엄청나게 쌓였습니다."
"지반 약화로 인해 무너진 건축물이 1,000여 개가 훌쩍 넘습니다."
"송전탑이 무너져 전력 공급이 끊긴 지역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또 한해 농사를 망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국의 곡물창고에 보수 작업을 해놔서 비축 곡식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는점.
"수영농장과 수영목장은?"
"무사합니다. 거기는 완벽하게 침수 대책이 되어 있어서요."
"이런 물난리를 어떻게?"
"목장 축사는 평지보다 1미터 이상 콘크리트로 높게 지어놔서 물이 침수하지 못했습니다. 농장은 외벽 전체가 방수 처리가 되어 있어, 물이 아예 들어오지 못하고요."
본부장은 그 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군. 수영농장이 무사하니 식료품 가격 폭등이 그래도 작년만큼은 아니겠어."
"수영농장이 비축한 곡식만 해도 엄청납니다. 이번에는 굳이 해외에서 긴급 수입을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나저나 축산 농가 피해가 너무 큰데, 죽어버린 소를 되살릴 수도 없고."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역대급 재물 피해를 낳은 폭우였다.
"진짜 이상기후가 심해지고 있긴 한가 보군. 내년에는 또 어떻게 될지……."
"내년이 아니라 이제는 철을 가리지 않고 날씨재해가 닥치고 있어서요. 당장 올해 겨울도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말도 안 되는 혹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지금은 무너진 송전탑들 복구가 우선입니다. 지금 서울도 전력 공급이 들쭉날쭉한 상황이에요."
폭우가 지나가고, 온 나라가 피해 복구에 몰입했다.
중장비들이 무너진 건축물을 치우고, 토사들을 부지런히 퍼냈다.
홍수에 휘말려 죽은 가축들을 한데 모아 묻거나 불에 태웠다.
발전소들은 홍수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대형 송전탑들이 곳곳에서 산사태나 지반 약화로 무너지는 피해를 입으며, 전력 공급이 불안정해졌다.
수영 발전소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운원은 피해 내역을 보고 받고기가 막혔다.
"피해 구역이 총 52km라고요?"
"네. 산사태 피해가 워낙 크다 보니 송전탑이 수없이 무너졌습니다."
수영 발전소는 서울과 울산으로 초대형 송전라인으로 이어져 있다.
하지만 울산 송전 라인은 비상을 대비한 예비일 뿐, 수영 발전소의 태생 목적은 서울에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 송전 라인의 52km가 무너져서 못쓰게 되었다.
"아무래도 피해 구간이 너무 많고 또 넓다 보니, 복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거 같습니다."
"그럼 지금 우리 수영농장은……."
"다른 데서 끌어오니 당장 전력 문제는 없습니다. 거기 연결된 송전라인이 한두 개가 아니니까요. 전기 료는 내야겠지만요."
울산과 포항 쪽은 수영 발전소의 도움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으니, 당분간 발전소가 놀게 생겼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참에 발전소 가동을 멈추고, 터빈 증설 작업이나 후딱 해치웁시다. 24시간 밤낮으로 불을 켜놓고 작업을 하죠."
"대낮처럼 라이트를 띄워놓으면 작업하면 되겠군요. 전기는 넘쳐나니까요."
송전선 복구 작업 동안, 수영 발전소는 증축 공사를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