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922화 (922/1,270)

프랜차이즈 갓 922화

221장 청담의 빛 (7)

어느 순간 상용 핵융합 발전에 관한 기사나 뉴스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여러 언론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입을 다물어 버린 것이다.

오직 CVN에서만 뉴스, 특별 방송등에서 수영 발전소의 위엄을 매일 매일 떠들어대고 있었다.

-핵융합 발전은 인류의 꿈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저렴하고 깨끗하면서도 안전한 전기를 무한으로 공급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안전한 건지 설명부탁드립니다. 교수님.

-석탄, 가스, 원자력은 결국 연료로 불을 피워서 터빈을 돌린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핵융합은 그럼 연료가 아니라는 건가요?

-물론 핵융합도 엄연히 말하면 연료로 봐야겠죠. 하지만 앞선 셋은 전혀 다릅니다.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죠.

-위험이라면 어떤 거죠?

-관리에 소홀하면 연료가 참사를 일으킨다는 거죠. 석탄, 가스는 폭발위험이 있고 원자력은 방사성 누출의 염려가 있습니다.

-그만큼 관리를 철저히 하면 되지 않을까요?

-한순간이라도 고삐가 풀리면요? 그리고 지진 같은 자연재해를 인간이 관리할 수 있을까요?

-핵융합은 그럼 지진에서도 안전한가요?

-바로 그렇습니다. 발전소가 테러를 당해도 그저 활동을 정지할 뿐이죠. 오염물질도 나오지 않습니다. 아, 이미 끓여놓은 뜨거운 물이 대량으로 쏟아질 순 있겠죠.

-원전 테러를 생각하니 끔찍하네요.

-아직도 접근금지 된 체르노빌을 생각하시면, 원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겁니다. 위험비용을 고려하면 원전은 절대로 저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르는 발전 방식입니다.

CVN 채널은 하수영이 먹여 살린다.

초대박 드라마 부활의 이순신 투자 자인 데다가, 광고 매출의 대부분이 수영그룹에서 나온다.

수십 개의 계열사, 관계사들이 다 합쳐서 조 단위 광고료를 집행하고 있으니까.

광고료를 많이 주는 대신, 광고료의 상당 부분을 일반 직원들 보너스로 돌리도록 강제하고 있어, 직원들은 하수영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회사는 노사가 힘을 합쳐서 수영 발전소의 위대함을 널리 퍼뜨리는 데 힘을 쓰고 있었다.

-핵융합 전기를 쓰세요. 그게 미래세대를 이상기후와 방사능 폐기물과 방사능 누출 위험으로부터 구하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 여의도로 모여서 구시대 발전소를 모두 폐기하라고 목소리를 높입시다!

"요즘 다른 방송국들은 왜 수영 발전소 이슈에 잠잠한 거지? 초반에는 그렇게 미친 듯이 달려들더니."

"핵피아들이 움직인 거지. 광고 협박 카드 내밀고 당근도 줘가면서 입꾹 닫으라고."

"수영 발전소가 터빈 증설을 하려고 하는데, 터빈제작 업체들이 고사하고 있다더라고."

"발전소 지은 경험 있는 건설사들도 담합해서 움직이는 거 같아."

"핵피아들이 서로 뭉친 거야. 뭉쳐서 수영 발전소를 고립시키려고."

CVN 직원들은 둘만 모였다 하면 수영조명의 미래를 걱정했다.

하수영이 그간 뿌려댄 돈의 위엄이다.

"그럼 해외에서 들여와서 터빈 증설을 하면 되지 않을까?"

"그게 간단하지가 않아요. 오히려 해외가 더 까다로워요."

"아니, 왜요?"

"핵피아가 우리나라에만 있나요? 해외는 아주 더하죠."

"아, 그렇겠네."

"지금 수영 발전소 터빈 증설 맡겠다는 해외 업체들, 국제 발전소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당하게 될걸요? 그거 생각하면 함부로 못 나서죠."

국내 핵피아는 국제 핵피아에 비하면 그나마 귀여운 수준이다.

국제 핵 카르텔은 우라늄 광산의지분과 거래 통제, 국제원자력기구까지 입김을 마음껏 뿌리며 원전 시장을 통제한다.

-해외의 도움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발전소 시장에서 퇴출당하기 싫다면, 수영조명의 거래를 받아 들일 수 없어요.

-국제 핵피아들은 우라늄 광산의 소유권 확보를 위해 국가 간 전쟁까지 부추기는 세력들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핵융합에 가장 많이 투자하던 큰손들이었죠. 그리고 핵융합이 실용화된 이상, 이제는 누구보다 핵융합을 배척하려고 벼르는 천적이 되었습니다.

CVN 패널에 출연한 핵융합에너지 전문가들은 핵융합을 놓고 벌어질 국제적 이해관계를,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차분하게 설명했다.

-이를테면 소와 말이 이동수단의 전부인 시대에서, 갑자기 승용차와 트럭, 버스, 트랙터, 기차 같은 게 무제한적으로 쏟아져 내린 겁니다.

-많은 우마와 목장을 가진 귀족들이 그걸 반길까요?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 후손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적어도 내수시장에서만큼은 원전을 퇴출해야 합니다.

***

유진중은 수영조명에서도 연장자로, 원자력 연구의 최고 권위자였다.

국내 원전 시장 발전에는 그의 영향력이 깊숙이 스며 있었다.

그렇다 보니, 터빈 제조업체들도 그를 섣불리 홀대하지 못했다.

"김 사장, 솔직히 말해주게. 담합이지?"

"휴, 교수님 앞에서 제가 어떻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저희도 압박을 받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말도 안 되게 부풀린 견적서에, 긍정적으로 미팅을 해보자고 하니까 되지도 않는 핑계로 이리저리 시간만 끌었잖나. 모를 수가 없지."

"저희도 그게 최선이었습니다."

"글쎄, 최선이라……."

유진중 교수는 너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핵융합 발전은 이미 완성되었어. 시대가 핵융합으로 흘러가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흐름이야."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거센 저항이 있어도 결국에는 그쪽으로 흘러가겠지요. 스마트폰이 나오고 폴더폰이 결국 멸종한 것처럼요."

업체 사장 역시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흐름을 앞당기려면 수영조명이 핵피아들과 그 이익을 나눠야 합니다. 겨우 지분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지분을 나누는 건 시작일 뿐이지."

거대한 산업에는 거대한 이권이 따른다.

그리고 핵피아들은 부자연스러운 이권을 추가로 덕지덕지 만들어내며, 자신들끼리 똘똘 뭉쳐서 돈잔치를 즐겼다.

하지만 핵융합은 그런 커다란 이권 자체를 줄여 버린다.

전력 생산량은 무제한이지만, 산업자체는 오히려 축소되는 것이다.

그런 '건강한 다이어트'를, 핵피아들은 절대 반기지 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 오너께서는 지분을 단 1주조차도 나눠주지 않을 거야."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항은 더욱 거세어질 수밖에 없겠죠."

"몇 년 예상하는가?"

"최대 20년 바라봅니다. 적어도 지금 잘 굴러가는 발전소들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는, 시장이 유지되겠죠."

한창 가동 중인 발전소들은 적어도 수명이 다할 때까지 유지할 것이다.

이것이 대다수의 예상이었다.

심지어 수영조명 임원들조차 정부가 그렇게 나올 거라고 예측했다.

"20년이라…… 난 3년이면 충분하다고 보네만."

"교수님. 최소로 잡아도 20년입니다. 그 많은 발전소들을 당장 다 폐기해 버리면 국가가 실업자들 감당못 합니다."

발전소 직원뿐만 아니라, 발전소건설과 유지에 기대어 먹고사는 다양한 업체들도 있으니.

유진중은 냉소를 보였다.

"내 말은, 우리 수영그룹이 자체 발전소 건설과 터빈 제조기반을 모두 갖추는 데 3년이면 충분하다는 뜻일세."

"교, 교수님."

"우리 오너는 돈과 인내심이 무제한일세. 그리고 그 둘이면, 뭐든지 할 수 있지."

"……."

"우리 핵융합로는 대한민국의 모든 전기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야. 다만 지금은 터빈이 부족해서 최대 출력이 9%밖에 안 되는 거지."

업체 사장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직접 풀패키지를 갖추는 데 겨우 3년이라니…….

"우리 수영조명에 가성비라는 말은 없네. 시간비라는 말은 있어도."

"시간비요?"

"시간만 살 수 있다면 돈은 안 따져. 프라임건설이 지금부터 맨땅에 발전소 짓기 시작하면서 경험 쌓으면, 3년이면 충분할 거 같은데."

그리고 수영조명이 모든 무기를 갖추게 되면, 과연 외부 업체를 필요로 할까?

"오늘 이후, 내가 비즈니스로 자네를 먼저 찾는 일은 없을 걸세."

유진중 교수가 일어나려고 하자, 업체 사장은 얼른 그를 붙잡았다.

"교수님,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즉흥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충분히 심사숙고해서 움직이게. 나 역시 그러고 있으니."

충분히 심사숙고해서 하는 압박이라는 것을 돌려 말하는 것이리라.

"다만 나중에 우리가 외부 업체에 발주를 할지는, 글쎄 나도 모르겠군."

"터빈 공사! 정상 가격으로 즉시 들어가겠습니다!"

"터빈만 있으면 되나. 시설이 들어갈 건물도 지어야지."

"주진건설과 태성건설은 제가 책임지고 설득하겠습니다."

"거기는 하청업체 아닌가?"

"아이고, 요즘 대기업 건설사는 벽돌 하나 놓을 줄 모릅니다. 숫자와 입으로만 빌딩 짓는 놈들인데요. 죄다 하청에 하청이잖습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던데."

"적어도 발전소만큼은 염려 마십시오. 그 두 회사들이 설계부터 인테리어까지 전부 다 알아서 합니다. 수영조명은 결제만 제대로 챙겨주시면 됩니다."

핵피아의 마름, 아니, 소작농 노릇을 하던 하청업체들이 돌아서기 시작했다.

***

산자중기위원장 안필성이 청담동의원사무실로 찾아왔다.

4선 의원인 그는 후원회 노인들의 면면을 보고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껏 여유로운 웃음을 띤 채 그들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누었다.

"제 후원회 멤버분들과 친분이 상당하시군요."

"예, 전부 잘 아는 분들입니다. 저번에 국회에서 뵙고 오랜만이군요, 하수영 의원님."

4선 중진이라 그런지, 안필성은 하수영 앞에서도 한결 여유로웠다.

"제 개인룸에서 이야기하시지요. 완벽한 도청, 녹취 방지가 되어 있어 긴밀한 이야기를 하기에 좋습니다."

"허어, 철저하시군요."

"네, 저번에 검찰사무관들이 찾아와서 몇 가지 묻고 싶다면서 몰래 녹취를 하다가 걸려서 개망신당하고 쫓겨났었던 적도 있지요."

"개망신이라고 하셨습니까?"

"도청녹취장비가 감지되면 시끄러운 경보음이 울리면서 빨간색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거든요."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세요."

유진중은 화장실에 가서 녹취기를 아예 꺼버리고 다시 돌아왔다.

"실은 핵융합 발전소 때문에 찾은 겁니다."

"산자중기위원장이시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이슈겠지요."

"하수영 의원님, 이 나라는 당장 핵융합 발전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구 발전소에서 일하는 직원, 연계산업과 업종 종사자들, 발전소 폐기 비용 때문에 느린 연착륙이 필요하다, 이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급격한 변화는 사회적 혼란을 부추기는 법입니다."

웅기 사장한테 대놓고 핵피아라고 한 사람이다.

안필성은 언제 자신에게도 그렇게 기습을 가할지, 나름 긴장하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나오기를 기대하고 녹취장비를 챙겼는데, 다 쓸모없게 되었다.

'혹시 블러핑은 아니겠지? 설마…….'

"의원님, 아니, 위원장님."

"편한 호칭으로 부르십시오."

"작년 여름에 비가 엄청 많이 와서 온 나라가 개고생을 했던 거, 기억하시죠?"

"물론입니다. 이상기후가 요즘 말이 많죠."

"전국적으로 정전, 단전도 마구 일어나서 혼란도 컸고요. 저도 정전피해를 좀 입었습니다."

하수영은 깍지를 낀 채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비상용 발전기 하나 만든다, 라는 생각으로 수영조명을 세웠습니다."

"……."

"저는 전기팔이 소년이 아닙니다. 별로 흥미 없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