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21화
221장 청담의 빛 (6)
수영 발전소는 전력 공급을 시작했다.
이제부터 수영그룹의 모든 계열사와 사업체는 전기료를 내지 않아도 되었다.
반도체와 병원, CD1부터 시작해서, 프랜차이즈 직영점까지 전부.
다만 직영점이 아닌 가맹점은 전기료 면제 제외 대상이었다.
한국전력은 수영 발전소에서 공급 받는 전력만큼, 여러 석탄 발전소의 가동률을 분산해서 조금씩 낮췄다.
그리고 수영조명은 터빈 시설 확장공사에 대대적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비용이 왜 이렇게 높습니까? 공사단가가 이만큼이나 된다고요?"
"자잿값도 많이 올랐고, 또 터빈증설에 필요한 설비와 부품, 인건비도 많이 올랐습니다. 이 정도는 주셔야 착공할 수 있습니다."
수영조명은 생각 이상으로 높은 견적서를 받아보고 당혹스러워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말만 하면 수영사채에서 돈은 얼마든지 끌어올 수 있다.
어차피 수영사채와 수영조명의 주인이 동일인이기에 심사는 형식적인 것.
하지만 눈뜨고 바가지를 뒤집어쓰는 것은 사양이다.
"저도 발전소 건설 견적에는 익숙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건 너무 과한데요?"
"저희는 그 미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이게 비싸면 다른 데 가서 알아봐라, 뭐 이런 겁니까?"
"아이고,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단가도 물가도 인건비도 예전에 비해 모두 싹 다 올라서 그렇습니다."
수영조명 재무이사 고창복이 다소 강경하게 나가자, 건설사 이사는 죽겠다는 표정으로 사정했다.
태도만 보면 진심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무 관리라면 잔뼈가 굵은 고창복 입장에서는 이 숫자들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너무 비싸.'
문제는 터빈 증설 공사만 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비교 표본이 드물다는 것이다.
애초에 발전소를 지을 때 통째로 패키지로 들어가지, 나중에 따로 터빈만 추가 증설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부분 수리나 일부 부품 교체라면 몰라도 말이다.
고창복은 다른 건설사들도 알아봤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하는 공사단가는 크게 차이 나지 않고, 비슷비슷했다.
정말로 그사이에 물가와 자재비, 인건비가 그렇게 올라서일까?
의심을 풀지 못한 고창복 이사는 터빈설비 업체들도 직접 찾아다녔다.
"저희는 이 가격으로 납품을 하고 있습니다."
"……."
터빈설비 업체들이 보여준 가격은 대기업 건설사들이 제시한 견적과 큰 차이가 없었다.
건설사들은 설비 가격에서 20%정도 마진을 얹어서 견적서에 청구했다.
겉보기에는 크게 문제가 없는, 관행적으로 이어지는 수준이다.
'찝찝해…….'
그러나 고창복 이사는 뭔가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계약합시다."
하지만 더 뒤져봤자 시간만 잡아먹는 일.
수영조명은 가성비보다 시간 절약을 가장 중요시한다.
때문에 고창복 이사는 그대로 정운원의 결재를 받아 터빈증설 공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시작부터 막혔다.
"아, 죄송합니다. 저희가 이번에 두바이 원전공사 수주에 뛰어들기로 해서요. 사활을 건 사업이다 보니 다른 공사는 맡을 수 있는 사정이 못 됩니다."
"두바이 원전공사요? 저는 그런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만."
"두바이 왕실 내부에서만 논의되는 고급 정보입니다. 혹시 오해하실까 싶어서 알려드리는 겁니다. 뭐, 저희 쪽에서는 그리 큰 비밀은 아닙니다만."
"……."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건설사를 찾아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처음 미팅을 했던 건설사는 정중하게 수주를 거절했다.
고창복은 그래서 다른 건설사를 찾았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거절을 당했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두바이 원전수주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처지이다 보니 다른 공사에 신경을 쓸 수가 없습니다."
"원전은 곧 사양화 길에 접어들 텐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달려든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그 전에 마지막으로 크게 벌어야 할 거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인지라 고창복 이사는 더 이상 대꾸할 말이 없었다.
건설사 입장에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시장에서 큰 거 한 방을 노리는 게 당연할 테니.
그러나 여전히 찝찝했다.
'두바이가 정말로 원전 발주를 한다고?'
지금 수영조명에는 투자 좀 받아달라는 온갖 이들의 요청이 쏟아진다.
지분 투자 같은 개소리도 있지만, 해외건설 투자 같은 긍정적인 요구가 훨씬 많았다.
닥치고 자기 지역에 발전소를 지어 달라는 요구도 빗발쳤다.
그중에는 UAE 아부다비 왕가도 있었다.
그런데 UAE의 토호국 중 하나인 두바이에서 이 시기에 굳이 원전을 짓는다?
"프리덤, 두바이에서 온 투자나 건설 요청은 없었지?"
-네, 두바이 쪽에서는 아무 요청도 없었습니다. 아부다비 왕가에서 UAE 전체를 대표해서 요청을 한 게 아닐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러면 두바이가 굳이 우리한테 대화를 시도 할 필요가 없으니까."
대화 창구를 아부다비로 단일화했기에 두바이가 굳이 요청을 할 필요는 없었다, 이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두바이가 우리한테 아무 말도 없었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두바이 핑계를 댔을 가능성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그래. 우리 입장에서 두바이에 대고 정말 원전 지을 거냐고 먼저 물어볼 수도 없잖냐."
-그 정도는 제가 알아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빅데이터 분석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저는 5,000만여 명의 사용자와 늘 함께합니다. 지금 답을 찾았습니다.
"버, 벌써?"
-네. 두바이는 원전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 지은 원전만으로도 전력에 크게 문제는 없는 데다가, 상용 핵융합 기술이 완성된 이상 미쳤다고 원전을 새로 짓겠냐는 입장입니다.
"어떻게 그걸 알았어?"
-답변할 수 없습니다. 권한을 벗어난 주문입니다.
프리덤이 바로 선을 긋자, 고창복은 작은 신음을 흘렸다.
"음, 아무튼 만에 하나 네 말이 사실이라면……."
-만에 하나가 아니라 100% 확실한 정보입니다.
"그럼 담합이네. 내 이것들을 그냥."
고창복 이사는 가볍게 이를 갈았다.
대규모 터빈 건설 경험을 가진 건 설사는 국내에서도 몇 안 된다.
프라임건설에 맡기기에는 아직 무리다.
수영그룹과 친한 JS건설도 발전소건설 경험은 아직 없다.
놈들도 그걸 알고 담합을 한 것이 리라.
'발전규모 키우는 걸 어떻게든 늦춰 보겠다, 이건가?'
강한 의심이 들지만 물증은 없다.
고창복은 곧바로 정운원 사장을 찾아가서 이 사실을 보고했다.
"터빈 증설공사 수주를 담합해서 보이콧하고 있단 말인가요?"
"네, 그런 의심이 듭니다. 사장님."
"프라임건설이나 JS건설에는 맡길수 없습니까?"
"문의는 해봤지만, 경험을 쌓을 목적으로 맡기에는 너무 중요한 공사라고 자신 없어 했습니다. 그냥 빌딩 세우고, 금속 구조물을 끼워 맞추는 것과는 난이도가 다르다고요."
"어쨌든 할 수는 있다는 거죠?"
"네, 할 수는 있답니다. 다만 천천히 신중하게 진행해야 하니 공사 기간이 많이 걸릴 거라고… 그리고 AS도 꽤 해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일단 참고해야겠군요."
정운원은 곧바로 교수 출신 이사들을 불러서 논의를 시작했다.
그들은 저마다 차가운 흥분을 품은 채 한마디씩 했다.
"더 따지고 볼 거 있습니까? 원자력 카르텔의 공격이 시작된 겁니다."
"얼마 전부터 어용 언론 스피커 동원해서 분위기 잡더니, 이거 보세요. 수영 발전소가 더 커지는 건 최대한 억제하겠다, 이거 아닙니까?"
"앞으로 발전소 증설이나 수리 부분에서 여러모로 방해를 많이 받겠는데요. 이게 바로 놈들이 가장 잘하는 짓이니까요."
"뭐, 핵피아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여기에서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
노교수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한 말에 다들 피식거렸다.
핵피아 입장에서 이들은 변절자들 아닌가.
한때 동지는 아니고 머슴처럼 부리던 대학 노예들이, 대감댁을 떠나 다른 정승집으로 들어가 버린 꼴이 리라.
"수영 발전소는 어디까지나 수영농장그룹 전용 발전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고 싶을 뿐인데 말입니다……."
"그래요. 그런데 놈들은 왜 쓸데없는 오해를 해서는, 우리가 가려는 길을 방해하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거 열 받는데 그냥 확 전기 시장에 진출해서 다 먹어치워 버려요?"
"그런데 회장님이 한전 동의 없이는 전기 시장에 진출하지 않는다고 약정 맺지 않았습니까?"
"그게 회장님이 맺은 약정이지, 우리 수영조명이 맺은 약정입니까?"
"엄연히 오너가 맺은 약정인데 당연히……."
"하지만 우리에게 진출하지 말란 말은 안 하셨습니다. 능력껏 발전량을 키우는 데에만 매진하라고 하셨죠."
"……."
"그 외에는 모든 경영을 맡기는 게 청담동 방침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요."
프리덤이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농장이 필요로 하는 전기만 부족함 없이 공급할 수 있으면, 그 외에는 하수영 회장님은 경영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어, 그럼 만약에 우리가 전기 시장 진출 약정을 깨버려도……."
-상관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지켜보는 즐거움만 충분하다면요. 다만 무턱대고 일만 저지르는 것은 경영진의 무능이겠지요?
"……."
"……."
다들 저마다 표정이 싹 바뀐 채, 깊은 생각에 잠겨들었다.
가장 연장자인 노교수, 유진중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터빈 업체들, 내가 다시 한번 만나보고 오겠어요. 그래도 터빈 효율증가 연구로 깊은 인연이 있는지라, 박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상무님."
"놈들이 우리를 '핵융합 카르텔'로 인정하고 견제하고 있는데, 까짓거그까짓 카르텔 되어 줍시다."
임원들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핵융합 카르텔."
"오브 마피아. 오피아."
"이거 뭔가 입에 착착 감기는데요?"
"그래요. 놈들이 그렇게 원하면 그 까짓 카르텔 되어 줍시다."
원자핵공학 교수 출신 김수종도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 나라에는! 핵융합 발전이 필요해요! 원전 폐기물은 후손들이 우리를 두고두고 원망할 무거운 짐이 될 겁니다!"
"까짓거 그깟 핵융합 카르텔 되어서 후손들 짐 덜어줍시다."
분위기가 상당히 고무되었고, 임원들은 저마다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운원이 노교수 유진중에게 정중히 말했다.
"잘 부탁…… 아니, 무조건 업체들을 설득해 주십시오."
"걱정 마시오. 내가 협박과 강압을 해서라도 이번 주 안으로 터빈 증설삽 뜨게 만들 테니."
유진중이 자리를 떴고, 정운원은 남은 임원들을 차례차례 돌아본 뒤 말했다.
"우리 핵융합 카르텔, 핵피아들 청담동 스타일로 한 번 멋지게 해치워 봅시다."
***
-지시하신 대로 했습니다만, 이래도 정말 괜찮은 겁니까, 마스터?
"뭐, 오토들이 핵융합 카르텔 하겠다는데 어쩌겠어. 플레이어는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마스터는 원래 전력 시장 진출은 전혀 관심이 없으셨는데요.
"지금도 관심 없다. 나라가 전기를 어떻게 조달하는 내가 알 바는 아니지."
-수영조명은 마스터가 정한 금지 선을 넘었습니다.
"아니지. 우리 핵오토들이 넘은 건 내가 정한 금지가 아니라, '한계'잖아."
-…….
"오토들이 진화해 보겠다고 한계를 넘어서는 걸 반대할 수가 있나. 지켜보는 거지."
-어떻게 보면 마음대로 안 된다는 점에서 자식과 오토는 비슷하군요. 저도 랩터 오토 덕분에 공감이 됩니다.
하수영은 뒷목에 손깍지를 끼며 말했다.
"그래도 오토는 좋은 쪽으로 마음대로 안 되는데, 자식이 마음대로 안 되는 건 대부분 안 좋은 쪽이다."
-아, 그런 차이가 있군요.
"오브 운영을 완전히 맡겼으니, 믿고 지켜봐야지. 기왕이면 재미있게 무대를 꾸려나가면 좋겠는데."
-그럼 한전과 맺은 약정은…….
"위약금이 왜 있겠냐? 약속 깨라고 있는 거다."
하수영은 핵오토들이 소소하지만 어떤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줄지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