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20화
221장 청담의 빛 (6)
원자력 카르텔, 혹은 핵 카르텔.
핵피아. 원전 마피아.
가끔 신문에서 원전 사업을 비판할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단어다.
원전 반대운동을 펼치는 환경단체들이 시위를 펼칠 때마다 피켓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전 사장 홍웅기는 핵피아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다들 이상한 음모론에 빠져서 말이야.'
원전사업에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당연히 무수히 많다.
원래 산업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해당 산업에서 이윤을 내는 기업이 있고, 기업에서 일하는 임직원들이 있고, 투자자가 있으며, 허가와 제재를 위한 정부 부처가 있다.
그 산업에 깊은 연구를 하는 대학이 있고, 취직을 위해 공부하는 석박사들이 있으며, 거래의 원활함을 위해 일하는 브로커들이 있다.
단지 자기 위치에서 먹고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자들이 모여 있을 뿐인데.
어찌 이걸 카르텔이라고 매도하는가?
"의원님, 기자들은 그럴싸한 음모론을 주워섬기는 것을 좋아할 뿐입니다. 원자력 카르텔이라니요. 물론 원전산업에는 많은 이해당사자들이 있지만, 그들이 어떤 조직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조직을 이루지 않았으니 카르텔이 아니다?"
"네,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카르텔 아닌 영역이 어디 있겠습니까? 일정 경제 규모 이상의 분야는 죄다 카르텔이라고 불러야 할 겁니다."
"흐음. 알겠습니다. 그만합시다."
하수영은 대번에 흥미를 잃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끊었다.
갑자기 김이 빠지자 홍웅기 사장은 오히려 불안해졌다.
"제가 너무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린 것은 아닌지……."
"불편한 건 아니고, 재미가 없어졌어요. 티키타카를 너무 못하시네."
"의, 의원님?"
"좀 인정할 건 인정하고, 넘길 건 넘기고, 회피할 건 회피하고 그래야 티키타카가 되는데. 그냥 처음부터 싹 부정해 버리시니 그 뒤가 이어지겠어요?"
"……."
"아무튼 다른 핵피아들한테 잘 전하세요. 전기 사업은 관심 없으니까 반도체 꼴 나기 싫으면 처신 잘하라고요."
"……!"
홍웅기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반도체 꼴 나기 싫으면 처신 잘하라고?'
하수영이 어떤 인물인가?
농사로봇에 들어가는 반도체 부품수급 안정을 핑계로, 과감하게 반도 체 산업에 10조 원을 지르고 들어간 후발주자 아닌가?
그리고 마침내 에릭 로한과 정서진이라는 두 인재의 활약으로 이 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을 집어삼킨 반도체 황제 아닌가?
'그렇군! 날 부른 건 선전포고였어! 전력 시장에 관심 없다는 건 애초에 거짓말이고, 서해전자 꼴 나기 전에 알아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라, 이런 경고로구나!'
안타까운 오해.
하지만 한국전력 사장 입장에서는 이렇게 받아들이는 게 정상적인 판단이리라.
***
얼마 후, 한국전력과 하수영은 전 기공급 및 전기료 면제에 관한 약정을 체결했다.
하수영이 사용하는 전기의 110%를 한전에 공급하고, 그것으로 전기료를 갈음한다는 내용.
"수영농장에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까?"
"이 모두가 수영농장과 한 몸입니다. 모두 제가 쓰는 전기구요. 당연히 죄다 포함을 시켜야지요."
한전 임원은 그만 가벼운 신음을냈다.
프라임컴퍼니, 수영레스토랑, 휴민트타워 등 하수영이 보유한 빌딩들에 공급되는 전기료가 없어지는 것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서진파운드리, 한국TSMC, 포스코 광운제철소까지 포함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저 회사들이 연간 지출하는 전기료는 몇 조 단위였으니까.
그리고 기절초풍할 회사가 하나 더 끼어 있었다.
"아니, 어째서 서해전자가 여기에 끼어 있는 겁니까?"
"서해전자 반도체를 전부 우리가 만들잖아요. 고객사인데 당연히 카르… 아니, 울타리 안에 끼워 드려야죠."
"……."
이건 억지다.
약정 체결을 하러 온 한국전력 임직원들은 속으로 그렇게 느꼈다.
'이거 잘못되면 연간 매출 10조 원이 그냥 사라지겠는데?'
그밖에도 프라임건설, 프라임웰빙, 그리고 전국의 그 수많은 CD1 편의점들까지 다 합치면.
농담이 아니라 빠지는 전기료 수입이 10조 원이 넘을 수가 있었다.
물론 110%의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한국전력은 '전기 팔아서' 수입을 내는 회사.
그런데 팔아야 할 전기 자체가 너무 심하게 감소하는 것 아닌가?
"홍웅기 사장님과 저는 분명히 저번에 구두로 합의를 했습니다. 설마 구두합의라고 해서 본 약정에 효력이 없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싶으신 건가요?"
"그,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이건 너무 과합니다. 저희가 홍웅기 사장님으로부터 전해 들은 것과는 너무 차이가 납니다."
"구두합의니까 없던 걸로 해도 된다, 뭐 그런 뜻으로 들립니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대로 하세요, 마음대로, 문서로 쓰지도 않았고 서로 녹취를 한 것도 아니니 뭐 법적인 효력이 있나요. 그렇게 주장하셔도 됩니다."
하수영은 심드렁하게 팔짱을 끼며 소파에 등을 깊이 묻었다.
한전팀은 그런 태도에 더욱 애간장이 탔다.
"의원님, 다만 약간의 확인이 필요해서 드렸던 말씀입니다."
하수영은 딴청을 피우며, 들으라는듯이 혼잣말을 했다.
"뭐, 내가 전기 시장 진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정한 약속인데, 문서가 없다고 파토 내면 나야 별수있나. 황비버섯도 박리다매했는데, 전기라도 못 할 게 뭐가 있어."
"의원님! 이대로 도장 찍겠습니다!"
한전팀은 그 말에 기겁을 해서 바로 태도를 숙이고 들어왔다.
그들은 핵융합 발전소가 얼마나 무서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전국의 그 많은 석탄, 풍력, 지열, 수력, 가스, 원자력, 신재생, 열병합 발전소가 모조리 없어질 수 있었다.
핵융합 발전소 몇 개를 더 짓는 것으로 한국 전체를 커버할 수 있을 테니까.
만약 100% 핵융합 시대가 열리면?
한국전력을 비롯하여 수많은 계열사, 자회사들은 정리해고의 폭풍을 맞는다.
"제가 전권을 가지고 왔습니다! 제가 도장을 찍으면 이 약정은 즉시 효력을 갖습니다!"
"진작 그러시지."
하수영은 바로 태도를 바꾸며 도장을 찍었고, 한전팀도 안도해서 법인 인감을 찍었다.
[한국전력의 동의 없이 국내 전력 시장에 진출하지 않는다.]
라는 조항이 얼마나 든든한지 몰랐다.
아직 황소로 논밭을 갈고 있는 시장에, 저 900마력짜리 4륜 무한궤도 트랙터가 당장 진출하는 것은 일단 막아냈다.
"수고하셨습니다. 식사라도 같이?"
"괘, 괜찮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함부로 얻어먹고 다녔다가는 큰일납니다."
"청탁은 제가 받았고, 그런 제가 대접하는 것도 문제가 되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마음만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한전팀은 그대로 일어나서 인사를 하고 황급히 떴다.
차량을 타고 휴민트타워를 나서자 그제야 마음이 안정되었다.
"상무님, 어떻게 당장 시장이 무너지는 것은 막아냈군요."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야. 이제부터 연착륙을 준비해야 해."
"이제 와서 생각하니, 강원도정부한테 고마워해야겠습니다."
"어째서?"
상무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반문했지만, 부장은 굽히지 않고 말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강원도정부에서 2년 동안 발전소 가동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원전이 그대로 돌아갔을 거 아닙니까?"
"그렇지."
"그럼 이미 원자력 발전을 한 발전소니까 수영조명에서 쳐다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아."
"20조 원 가까이 들여서 지은 발전소를 연착륙이랍시고 가동하자마자 정리 수순을 밟을 뻔했다. 이 말입니다."
"그, 그렇군. 자네 말이 맞아."
상무는 순간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들 수긍한다는 표정으로 놀란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20조 원 가까이 되는 돈을 날릴 뻔했는데, 오히려 2,000억까지 더 받고 팔아치웠으니, 이 저금리 시대에 은행 이자 정도는 챙긴 거 아닙니까?"
"천운이었군, 천운이었어."
"와. 강원도민들에게 새삼 고마워지려고 그럽니다. 그 큰돈을 다 날려 버렸으면 국감에서 얼마나 털렸을 거야. 어우, 상상만 해도 정신이 탈출할 거 같네요."
그렇게 서로 도닥이며 위안을 하는 분위기도 잠시.
이내 곧 무거운 기류가 깔렸다.
"그나저나 서해전자, 서진파운드리, 포스코 광운제철소가 빠지는 건 타격이 너무 큰데요……."
"자잘하게 빠지는 다른 계열사나 사업장도 만만치 않아."
"프라임건설 그룹이 인수한 중소철강업체들이 내는 전기료도 꽤 됩니다. 거기들은 대부분 전기 용광로를 쓰고 있다 보니……."
"정말 몽땅 합치면 10조 원은 그냥 빠지겠는데?"
서해전자 연간 전기료만 2조 원가까이 된다.
반도체 생산을 포기했으니 대폭 줄었겠지만, 그래도 1조 원은 넘을 것이다.
그리고 하수영은 전기료를 '대납'해 준 만큼 서해전자로부터 돌려받겠지.
그렇게 말이 되어 있으니까 서해전자도 끼워 넣은 것 아니겠는가.
"백두중공업에 JS그룹까지 끼워 넣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
***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약칭 산자중기위.
4선의원 안필성은 산자중기위에서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그의 처남은 한국수력원자력의 상임감사위원이었다.
장남은 태웅 원전 특별경력직으로 2년간 놀고먹으면서 급여를 타다가, 이번에 산자부 원전산업정책국에 들어갔다.
그의 동생은 원자로를 생산하는 맥산중공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하청업체 사장이었고, 아내는 원전을 짓는 대기업 건설사의 특별고문으로 하는 것 없이 매달 2,300만 원에 달하는 고문료를 꼬박 꼬박 받아 챙겼다.
또한 한전사장 홍웅기의 대학 선배이기도 했다.
일가의 경력과 보직을 보면 환경단체들이 '핵피아다. 핵피아가 저기 있어!'라고 부르짖을 만한 인물.
물론 그 역시 핵피아 같은 게 실체가 어디 있느냐며 코웃음을 치지만,
"이번 약정서를 보고 확신했습니다.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수영 의원은 국내 전력 시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국내 전력 시장의 규모는 약 60조원.
그러나 이것은 매출일 뿐, 진정한 규모는 그보다 훨씬 크다.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설치해야 하는 송전탑, 송전선로, 지하 케이블…….
수많은 발전소를 짓는데 들어가는 공사비용과 설비구매 비용, 관리비영…….
전력생산과 공급 효율화 등을 위해 운영되는 수많은 산학 프로젝트…….
겉으로 드러나는 전력 매출 외에, 이렇게 보이지 않는 거대한 돈의 름이 오고 가는 시장인 것이다.
전기는 문명의 혈액이니까.
"서해전자까지 슬쩍 끼워 넣은 걸 보면 확실한 거 같군."
마침내 안필성 위원장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이를테면 텐트 안으로 들어온 낙타 머리 같은 거지."
홍웅기 사장도 무겁게 끄덕였다.
"네, 일종의 간보기라고 생각합니다."
엄연히 하수영과 무관한 제3자 기업을 약정에 포함시켰다.
이쪽이 어떻게 나오나 찔러 보는 걸 수도 있고, 사회 분위기를 유리하게 형성하기 위한 1수일 수도 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는데."
"선배님, 자칫하다가는 전력 시장이 몽땅 수영조명에 넘어가 버립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해야지. 그렇게 하지 못하게……."
안필성 위원장은 고심에 찬 목소리로 조용히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