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19화
221장 청담의 빛 (6)
느닷없는 핵융합 발전소의 등장으로 한국의 증시가 일제히 요동을 쳤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해외 시장도 마찬가지.
원자력과 관련된 주식은 모조리 폭락했고, 석탄이나 가스 등 다른 전력 관련주도 하락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해외 투자자들은 수영 발전소가 보인 퍼포먼스에 경악했다.
"겨우 그 정도 규모로 그 많은 전기를 생산한다고?"
"이제 에너지 연구는 망했어! 신재생이고 태양광이고 간에 죄다 쓸 데가 없다고!"
그나마 태양광만큼은 가까스로 가장 적은 피해를 보았다.
가정, 송전선이 들어올 수 없는 오지, 고립된 섬, 그리고 우주 등에서 여전히 활용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의 다른 에너지 분야는 직격탄을 피할 수 없었다.
원자력이 가장 심했고, 석탄과 가스 발전도 낭패를 봤다.
핵융합 연구 분야도 큰 피해를 봤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골 지점을 향해 실컷 경주를 해왔는데, 중간에 끼어든 수영조명이 우승을 해버렸으니.
어찌 보면 핵융합 분야는 원자력 분야 못지않은 피해를 입은 셈이다.
투자자들은 핵융합 연구에 쏟아부은 자금을 회수하느라 바빴다.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투자금 탈주가 이어졌고, 수영조명에는 닥치고 내 돈을 받아달라는 투자자들의 아우성이 쏟아졌다.
그 정도로 수영 발전소가 보인 퍼포먼스는 충격적이었다.
"아, 우리는 외부 투자는 안 받는다고, 우리가 시간이 없지, 돈이 없냐?"
"닥치고 내 돈 가져가! 제발 가져가! 가져가 주세요!"
***
한편 수영조명 경영진은 오히려 발전 출력에 매우 아쉬워하고 있었다.
"겨우 9%밖에 안 된다니."
"어쩔 수 없어, 김 교수. 발전소터빈이 몇 개 안 되잖아. 출력도 그저 그렇고."
"아, 한수원 놈들. 터빈 좀 더 크고, 더 많이 팍팍 만들지."
"애초에 원자로도 겨우 10호기까지만 갖춰놓은 빈약한 원전에 뭘 바라겠어."
"그러게 말이야. 넉넉하게 100호기 규모로 만들어봤으면 나라 전체 전력을 커버할 수 있었을 텐데."
평균적으로 원자로 1개는 한국 전체 생산량의 약 1%를 감당할 수 있는 터빈 시설을 갖추고 있다.
아무리 오브라는 인공 태양을 갖고 있어봤자 뭐하나.
수영 발전소의 터빈 규모가 따라주지 않는데.
"그래도 제로에서 하는 것보단 낫습니다. 터빈 시설만 증설하면 되니까요."
"동의합니다. 그게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거 같군요. 마침 발전소 주변에 땅도 남아돌지 않습니까?"
원래 원전은 안전을 위해서 외딴곳에 짓다 보니, 발전소 주변에는 넉넉한 부지가 공터로 남아 있었다.
터빈 시설을 증설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미 있는 발전소를 인수한 게 전화위복이 됐습니다. 넉넉하게 올해안에 하루 1,600 기가와트시(GWh) 규모를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과학자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재무 담당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상무님.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1,600와트시가 어느 정도 규모입니까?"
질문을 받은 노교수는 눈에 힘을 주고 대답했다.
"그냥 1,600 이라고 하면 안 되오. 하루에 1,600인지, 한 달에 1,600인지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아, 네. 죄송합니다."
"일소득 1,600만 원과 월소득 1,600만 원은 전혀 다르지 않겠소?"
"네, 맞습니다."
재무 담당자는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
이 회사에서는 이공계 출신일수록 서열이 높다.
"그리고 와트시라고 하면 안 되지. 와트시, 킬로와트시, 기가와트시는 각각 천 배씩 차이가 나는데."
"제가 좀 더 공부하고 시정하겠습니다."
재무 담당자가 고개를 더욱 숙였고, 노교수는 그제야 설명했다.
"하루 1,600기가와트시 전력이면이 나라 전체를 커버하고도 남는 수준이오."
"헉! 그 정도면 엄청난 수준 아닙니까? 올해 안에 그 정도 규모를 갖출 수 있다고요?"
"이미 완공된 발전소에 터빈 몇 대더 추가하고 연결만 하면 끝이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바닥부터 시작했으면 몇 년이 걸렸을지."
"태웅 발전소 그거 짓는다고 꽤 오래 시간 잡아먹었잖습니까, 아마."
"연말까지 갈 것도 없이 몇 달이면 뚝딱 끝나겠는데요."
과학자들이 서로 희희낙락하는 걸 지켜보던 재무 담당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수영농장에 그만한 전력이 필요합니까? 대한민국 전체의 9%면 차고도 넘칠 거 같은데 말입니다."
"전력이야 모자라는 게 걱정이지, 남아도는 게 뭐가 문제겠소?"
"생산을 해두면 다 어디에는 쓸 데가 있을 거다. 이 말입니다. 물론 전기 발전이라는 게 생산하고 소모하지 않으면 소멸해 버리긴 하지만."
"일 1,600기가와트시라고 해봐야 연간 59만 기가와트시도 안 되는 수준이죠."
"우리 회사 핵융합로라면 연간 1천만 기가와트시도 가능할 것 같지 않습니까?"
'미친! 다들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 거야?'
재무 담당자는 과학자 경영진들의 대화를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
수영농장은 전기를 많이 쓴다.
네자릿수를 자랑하는 농사 로봇들은 전부 배터리 전기 충전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청담동에 있는 프리덤본체도 무지막지한 양의 전기를 먹는다.
"드디어 전기료 공짜가 됐네."
-그런데 전기료 자체는 주인님의사업체 규모에 비해서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자잘한 지출이 쌓이다 보면 얼마나 무서운 건데. 근데 전기료 걱정은 덜어서 이제 좋다."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군요.
"오, 그렇지."
약속 시간이 되자 한국전력 사장이 청담동으로 찾아왔다.
하수영은 의원사무실이 있는 휴민트타워에서 그를 맞이했다.
"아시겠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이번에 가정용 발전소가 하나 생겼습니다."
가정용이라는 말에 한전 사장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수행원들은 당혹스러움을 완전히 감추지 못했다.
'괴짜라고 하더니, 상상 이상이잖아?'
'한국 발전량 전체의 9%를 감당하는 발전소가 가정용이라고?'
"원래 개인은 본인이 생산한 전력을 한전에 팔 수 있고, 한전은 거부할 수가 없잖아요?"
"……품질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전기를 거래하고 싶습니다."
한전 사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 오면서 무슨 말이 나올지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전기 판매.
"의원님, 그 많은 전력 판매가 갑자기 이뤄지면 다른 발전소 운영에 차질이 커집니다. 이 점을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아, 알아요. 갑자기 깨끗하고 싸고 환경오염도 없는 퍼펙트한 전기가 대량으로 풀리면 전기 시장의 교란이 일어나죠. 뭐 꼭 전기 시장뿐만 아니라 모든 시장이 그렇잖아요?"
"네. 한창 가동 중인 다른 발전소들의 운영을 갑자기 확 줄일 수도 없는지라……."
"저도 전기 시장을 교란할 마음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가정용'이자 '개인용' 으로 만든 발전소이니까요."
"네, 가정용. 개인용."
"그런데 제가 전기 판매라고 하진 않았습니다. 거래라고 했지요."
"……차이가 있는 겁니까?"
"제가 한 달에 전기료가 좀 많이 나옵니다. 그걸 면제해 주세요. 그 대신 제가 쓰는 만큼의 전기를 한전에 공급하겠습니다."
"그 정도야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아아, 송전선이나 변압기처럼 한전이 열심히 깔아놓은 공급 인프라를 이용하는 비용은 어떡할 거냐, 그 말을 하려고 하셨죠?"
귀신인가?
말하기도 전에 자신의 속이 읽힌 한전 사장은 약간 당황했다.
"제가 쓰는 전기의 110%를 공급하면 어떨까요? 10%는 인프라 이용 수수료인 거죠."
그제야 사장의 안색이 환해졌다.
"아, 그런 형태라면 크게 문제는 없을 거 같습니다."
"저도 상도의가 뭔지는 압니다. 한전이 깔아놓은 송전 인프라를 이용하는데 그 비용은 당연히 내야죠."
돈이 아니라 전기로 대신 내겠다는 것이지만, 한전 입장에서는 크게 나쁠 것은 없었다.
"10%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네, 그렇습니다."
"자, 그럼 그 부분은 그렇게 서로 합의를 본 겁니다. 나중에 약정서 쓸 때 다른 말씀하시기 없깁니다?"
"제가 다른 말을 할 일은 없을 겁니다."
분위기는 일단 화기애애했다.
한전 사장은 눈치를 보다가 슬쩍 물었다.
"의원님, 그럼 개인용 외에 수익으로 전기를 판매하실 생각은 정말 없으신 겁니까?"
"네, 말했다시피 전기 시장을 교란할 마음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가정용 발전소일 뿐이에요."
"하하, 가정용치고는 너무 스펙이 대단한 거 아닙니까?"
"에이, 그게 뭐 대단하다고요."
한전 사장은 사교 웃음을 유지하면서 하수영과 대화를 계속 나눴다.
그는 여기 오기 전, 맥산중공업 사장과 나눈 통화를 떠올렸다.
맥산중공업은 원전에 들어가는 원자로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핵융합발전소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된 입장이었다.
-하수영 의원을 만나게 되면 전력 시장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봐주시오.
오랜 친분을 쌓아온 이의 부탁을 거절하기에, 한전 사장은 자신이 너무 착하다고 생각했다.
"의원님은 전기 시장에 관심이 없다고 하셨습니다만, 사회에서 목소리가 높아지면 상황이 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기업들은 완전히 갈리겠네요. 전기를 쓰기만 하는 쪽은 수영조명에서 나서길 바랄 테고, 생산 쪽은 가만히 있기를 바라겠죠."
갑자기 하수영의 목소리가 진지하게 변했다.
한전 사장은 공기가 변한 것을 읽고, 미소에 더욱 가식을 주었다.
"일반 가정집에서야 싸게 전기를 공급해 주길 바랄 테고, 환경 걱정하는 분들은 아예 다른 발전소는 모조리 폐지하자고 말할 수도 있겠죠."
전혀 모르지는 않는구나…….
한전 사장은 왠지 대화가 힘들어질 것 같은 예감을 받았다.
"홍웅기 사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죠?"
"저야 깨끗하고 안전한 전기를 저렴하게 공급해서 국가에 공급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만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서 연착륙이 될 수 있도록……."
"그래요? 전혀 의외네요. 당연히 수영조명이 전기 시장에 영원히 진출하지 않기를 바라실 줄 알았는데."
"하하, 제가 왜 그런 걸 바라겠습니까?"
"원자력 카르텔이시잖아요."
하수영이 방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한 말에, 홍웅기 사장은 그만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갑작스럽게 냉각된 분위기에 당황한 탓이다.
그뿐만 아니라 수행원들도 분위기 반전에 놀라서 얼음이 돼버렸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원자력 카르텔이시니까 당연히 수영조명을 반기지 않으시잖아요?"
"그, 금시초문입니다. 원자력 카르텔이라니요. 그런 건 실체가 없는 허상에 불과합니다."
"형체가 없는 거지 실체가 없는 건 아니죠. 저도 제가 푸드 카르텔의 황제인 거 알아요. 저처럼 쿨하게 인정해 보시는 건?"
"하하, 하하하…… 의원님, 제가 너무 감당하기 힘든 말씀을 하십니다……."
"에이, 한전 사장이 원자력 카르텔을 전혀 모른다면 말이 안 되죠. 지나가는 유치원생도 안 믿어요. 애초에 그 자리가 아무나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
대놓고 먹이는 것인가??
이런 상황을 겪어보지 못했던 홍웅기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정적이라 해도 이렇게 대놓고 직설적으로 발언하지는 않는다.
'정치적 언어'라는 게 왜 있는 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