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18화
221장 청담의 빛 (5)
충격적인 기자회견이었다.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수영조명에서 벌써 상용 핵융합로를 완성했다니.
"개조 시간으로 한 달을 잡은 걸 보면 이미 핵융합로는 다 완성된 거야. 기존 원자로를 들어내고 갖다 끼우기만 하면 되는 상황인 거 같은데?"
"원자로를 그렇게 쉽게 해체할 수 있다고? 위험하지 않아?"
"상관없어. 아직 가동 한 번 안 한 미개봉품이라서 방사능 위험 같은 건 전혀 없으니까. 일반 작업복만 입고 떼어내도 된다고."
"미친. 진짜 핵융합로를 완성했다고?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조금이라도 관련 식견이 있는 기자들은 허탈함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수영조명은 핵융합 R&D 기관이 아니라 유통업체였던 거네."
"수영조명에 합류한 핵에너지 연구자들이 낸 성과는 아니겠지?"
"시간상으로 그럴 수가 없지. 이번에도 에릭 로한 박사가 내놓은 결과 물일 거야. 수영조명 연구원들은 그것을 다듬었을 거고."
"진짜 대단하다. 그 지성에 그 외모에, 도대체 신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 거지?"
에릭 로한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두뇌와 얼굴, 육체가 가장 섹시한 남자'로 손꼽히고 있었다.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었으니까.
"재벌가 사모님들이 그렇게 에릭로한 박사한테 군침을 흘린다던데."
"사윗감으로는 진짜 최고지."
"최고는 하수영 회장이 아니었어?"
"돈만 보면 그렇긴 한데, 두뇌와 외모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에릭로한 박사도 무시할 수는 없지."
"하긴, 유전자는 돈만으로는 안 되니까."
하수영도 외모가 어디 가서 빠지지는 않지만, 에릭 로한은 연예인 중에서도 압도적인 수준이다.
실물을 직접 본 유명 여배우들도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른다고 할 정도니까.
"그나저나 수영 발전소가 본격적으로 가동하면, 우리나라 원자력 시장은 어떻게 되는 거지?"
"원자력 마피아들의 심기가 편하지는 않겠는데."
"과연 핵피아들이 어떻게 나올지가 궁금한데."
"……."
핵피아, 원자력 카르텔을 일컫는 용어.
정부, 정치, 언론, 산업, 재계, 학계에 포진해 원전사업 이익을 빨아먹는, 실체는 있되 형체가 드러나지 않는 이익 세력.
원전사업을 크게 부풀려서 이익을 남기고, 그 이익을 직접, 간접적으로 알음알음 챙기는 이들.
"수영 발전소 가동 추이에 핵피아들의 미래도 달려 있으니까, 오늘 기자회견으로 지금 다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분일 거야."
***
"곧 핵 카르텔의 공격이 시작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꿋꿋하게 제 갈 길을 갑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경영회의에서 정운원이 그렇게 운을 떼었다.
다들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끄덕이며 동조를 표시했다.
서로 말은 안 하지만, 알고 있다.
여기 있는 자신들도 엄연히 따지면 핵 카르텔의 이해관계자로 분류될 것이다.
오랫동안 원자력 활용에 관해서 연구하고, 실적을 쌓아왔으니까.
핵 카르텔을 위해서 저임금 봉사를 한 부역자 정도쯤 될까?
"아시겠지만, 10년 안에 석탄 발전소를 완전히 없애고, 원전으로 모두 대체한다는 게 원전계가 그리고 있던 밑그림이었습니다."
"……."
모두 가벼운 끄덕임으로 긍정을 표시했다.
핵피아는 전력 생산을 100% 원전으로 바꾸는 것을 이상향으로 삼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신재생 에너지와 핵융합 기술의 가장 큰 투자자이기도 하다는 것.
"그런데 수영 발전소, 정확히는 오브가 결정적인 변수가 돼버렸죠. 그러니 핵 카르텔은 지금쯤 크게 당황하고 있을 겁니다. 여기 있는 우리들을 상대로도 상당한 로비가 들어올 테고요."
"로한의 오브 같은 게 갑자기 튀어 나올 줄은 우리도 몰랐으니까요."
"안 그래도 맥산중공업 회장님이 기자회견 보고 직접 전화를 몇 통이나 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당장 이미 계약한 원자로 수주부터 어그러지게 생겼으니까요. 발등에 떨어진 불이죠."
"원전, 아니, 전력 산업은 이제 개편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원치 않든,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려고 할 겁니다."
수영조명을 둘러싼 거대한 폭풍이 예상된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펼쳐질 일을 상상하고 긴장감을 삼켰다.
[원자력 전문가 최진원 박사는 태웅 원전 개조에 깊은 우려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애초에 원전용으로 지어진 발전소를 굳이 개조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비용 증가, 효율의 저하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전기전자공학과 주충진 박사의 주장, "핵융합은 원자력보다 더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기에 매우 위험하다."]
[한국전력공사 내부 관계자의 우려, "순수 민간 핵융합 발전의 안정성을 신뢰하기 어려워."]
[핵융합 발전은 이제 겨우 수백 초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는 상황, 하루아침에 튀어나온 핵융합기술을 과연 믿을 수 있는가?]
[무늬만 핵융합이고 실제로는 원자력 발전의 응용일 가능성 높아. 굳이 완성된 원전을 인수한 것 또한 그런 이유.]
[수영조명의 핵융합, 진정 사실입니까?]
[미국 또한 연구용 핵융합로에서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 저명한 과학자들의 절망 어린 좌절의 눈물이 바로 수영조명이 거짓말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수영조명을 비난하거나 의심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영조명 경영진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이런 공격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우리 생각대로 핵 카르텔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일단 선동과 날조로 먼저 기선 제압을 하겠다는 거군요."
"강원도의 여론마저 흔들리고 있어요."
"오늘 정운원 사장님이 강원도지사를 만나러 갔으니까 어느 정도 다독일 수는 있을 겁니다."
하수영이 직접 나서면 강원도 분위기는 가볍게 어루만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용인이 되어서 고용주가 귀찮게 행차하게 만들 수는 없는법.
수영조명은 자체적으로 움직이며 해결을 보려고 했다.
물론 하수영의 이름은 아낌없이 여기저기에서 팔고 다녔다.
***
"도지사님. 우리 핵융합 발전은 매우 안전합니다. 폭발 위험도, 방사능 누출 위험도 없습니다."
"핵융합로가 아니라 핵융합처럼 보이게끔 개조된 원자력 발전기라는 말이 있던데……."
도지사의 말에 정운원은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원자력과 핵융합은 전혀 반대입니다. 전자는 무거운 원소가 쪼개지면서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고, 후자는 가벼운 원소를 합치면서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합니다."
"그래요? 내가 그쪽은 잘 몰라서 말입니다. 한 번 짧게 설명을 해보세요."
"네,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그리하여 도지사와 도의원들을 상대로 핵융합 강연이 시작되었다.
도지사는 강의가 시작되고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참견했다.
"너무 길고 복잡합니다. 짧게 요약안 됩니까?"
"하수영 회장님께서도 제 설명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셨습니다."
"하, 하수영 회장님이 끝까지 들으셨다고요?"
순간 웅성거리는 분위기가 도지사및 도의원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제 이름은 얼마든지 팔아도 좋습니다. 그게 수영조명의 경영에 도움이 된다면, 무제한으로 허락합니다.
정운원은 하수영의 호쾌한 당부를 떠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것이 청담동 스타일…….'
"네, 3시간이나 되는 긴 설명이었지만 끝까지 흐트러짐 없이 모두 들으시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몇 번이나 물어보시면서 끝까지 납득하시고나서야 만족하셨습니다."
"하, 하수영 의원님이 그랬다면야."
"우리도 들어봅시다."
그러고 보니 정운원은 하수영의 심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어쩌면 설명을 듣는 태도가 하수영의 귀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제야 도지사 및 도의원들은 자세를 가다듬고 집중했다.
그리고 고역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이런 겁니다. 여기까지 이해 하셨습니까?"
"워, 원소주기율이 원자력 발전소와 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겁니까?"
"미술품 진위 검증 기술이 대체 핵발전과 뭔 관련이 있다고……."
"다아 관련이 있는 겁니다. 기초를 완벽하게 이해하셔야 응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언제든지 물어봐 주십시오. 제가 중간중간 이해하셨는지 한 분 한 분질문을 하겠습니다."
설명의 모습을 띤 사정없는 팩트폭격은 어느덧 3시간을 넘겼다.
전혀 지치지 않은 정운원의 태도에 그들은 깊은 절망을 느꼈다.
여기에는 정운원의 소소한 보복 심리가 작용했다.
'전문가 말은 제대로 귀 기울이려고도 하지 않고, 사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만 해온 사람들!'
정운원은 정치인들을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그들은 항상 똑같았다.
팩트에 기반해서 정책을 세우려 하지 않고, 이미 정한 정책에 팩트를 칼질해서 끼워 넣으려고 했다.
그동안 정치인들을 상대로 연구 과정 등을 설명하면서 쌓인 답답함을, 정운원은 마음껏 풀어냈다.
"최상수 의원님, 핵융합은 발전소가 갑자기 무너져도 안전한 이유가 뭐라고 했지요?"
"1, 1억 도를 만들기 어려워서?"
"맞는 것으로 해드리겠습니다. 발전소가 무너지면 연료 공급이 끊기겠지요? 그럼 곧바로 온도가 식으면서 핵융합 반응이 즉시 중지됩니다."
"오오, 답을 맞췄으니 그럼……."
"네, 10분간 개인휴식 시간 드립니다. 잠시 담배나 피우고 들어오시지요."
"알았어요. 늦지 않게 오리다."
다들 정운원의 뒤에 있을 하수영의 그림자가 무서워서 꼼짝없이 강의에 집중했다.
노트에 메모까지 하면서 열심히, 경쟁적으로 경청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수영 발전소는 매우,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합니다. 이해가 안 되시는 분, 손들어주십시오."
어느덧 5시간이 지났고, 더 이상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도지사는 핼쑥한 얼굴로 정신없이 손뼉까지 치며 정운원을 치켜세웠다.
"아아, 그렇군요.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저도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설명이 너무 명쾌하고 간결해서 머릿속에 쏙쏙 박히더군요, 허허."
"주민들 걱정은 우리 도정부에서 책임지고 설득할 테니, 어서 빨리 태웅, 아니 수영 발전소를 가동해 주시오."
***
핵피아들이 사방에서 포화를 해왔지만, 수영조명은 꿋꿋이 갈 길을 갔다.
강원도 도민들은 더 이상 언론에 휘둘리지 않았고, 수영 발전소가 안전하다는 것을 믿었다.
수영조명과 도정부에서 스스로 해결한 후에야 프리덤이 느긋하게 나섰다.
-하수영 의원님이 그렇게 위험하고 더러운 발전소에 본인 이름을 붙이겠습니까? 그분은 생각이 매우 깊으십니다.
"아아! 그렇구나! 하수영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위험할 리가 없지!! 암!"
-원자력 발전소는 잠시만이라도 눈을 떼면 폭동을 일으키려는 죄수들입니다. 반대로 핵융합은 잠시만 주의를 꺼도 바로 드러누워서 자려는 노예들입니다. 위험하지는 않죠.
"아니, 진작 그렇게 설명을 해줬으면 이해하기 편하고 얼마나 좋냐고. 신문에서 다들 그렇게 떠들어대니 그런가 하고 혹하는 거지."
***
수영 발전소 내부 개조가 모두 끝났고, 오브 발전기가 장착되었다.
각 호기들은 증기파이프가 모두 연결되어 있어, 1개의 오브 발전기로 모든 호기의 터빈을 돌릴 수 있었다.
대망의 첫 가동일.
전국이 시끄럽게 주목하는 가운데, 수영 발전소는 72시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풀파워 출력으로 전기를 생산했다.
발전소 혼자서 전국 전력 생산의 9%를 거뜬히 부담했다.
경이적인 수치라며 놀라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일침을 놓기도 했다.
"겨우 9%?"
"전기버스 배터리에 스마트폰을 연결하니, 출력이 그거밖에 안 나오지."
"엔진이 페라리면 뭐하나? 모닝도 아니고 세발자전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