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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 917화

221장 청담의 빛 (4)

"그래서 파실 겁니까?"

한수원 입장에서 태웅 원전은 계륵이었다.

매몰비용은 큰데 가동 가능성은 요원하다.

이미 2년은 끌었고, 앞으로 최소 8년은 가동 희망이 없어 보인다.

강원도 전체가 강하게 나오고 있었고, 서울시도 원죄가 컸다.

'원전으로 활용하지 않겠다는 게 사실일까?'

정홍진은 섣불리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수영의 이름을 동원하면 강원도를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테니.

핵융합 발전소로 개조하는 척하면서 원자력 발전소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럼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된다.

"원전은 강한 감시와 통제 대상입니다. 정부에서는……."

"파실 겁니까?"

"……태웅 원전이 우리 한수원 소유물이긴 하지만, 우리 마음대로 매각을 결정하지는 못합니다."

"지연된 2년간의 손해를 생각해서 2,000억 더 얹어드리겠습니다. 파실 겁니까?"

"이미 완공이 끝났고, 연료봉만 주입해서 원자로를 가동하기만 하면 막대한 전기를 생산……."

"파실 겁니까?"

"……."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마다 팔거냐는 질문은 반복한다.

정홍진은 그런 단호한 태도에 살짝 질렸다.

정운원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핵융합 프로젝트 투자 유치 브리핑을 하면서 벌벌 떨던 샌님이었는 이런 신경질을 감추고 있었어??

바늘 하나 제대로 들어갈 것 같지 않은 표정이다.

정홍진은 만약 거절을 하면 어떻게 될까를 불현듯 상상해 보았다.

그런 상상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정운원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하수영 회장님께서는 강원도에 정말 많은 선물을 하셨죠. 최고의 의료서비스와 닥터헬기, 농민들을 위한 트랙터와 담수헬기, 유류, 그리고 울릉도 해상교량으로 인한 관광 붐까지."

"……."

"여기에 민자고속도로와 자기부상열차 선로까지 완공되면 강원도는 더 이상 오지가 아니라, 서울과 다이렉트로 연결됩니다."

국토전문가들은 '하수영 도로'와 '하수영 열차'까지 완공됐을 때의 미래를 이렇게 예측했다.

여의도보다 강원도가 강남이 더욱 가까워질 것이라고.

자기부상열차를 이용하면 20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기에.

"강원도에서 회장님 지지율은 90%를 아득히 뛰어넘습니다."

"……태웅 원전을 안 넘기면 가동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겁니까?"

"그런 말은 한 적 없습니다. 다만 회장님의 강원도 입지를 강조했을 뿐이지요."

그게 그거인데,

정홍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박형상 경영부사장도 보이지 않게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이번 미팅에서 미끼를 던지고 성과를 낚으려던 생각이 안일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어렵게 지은 최신 원전입니다. 모회사를 설득하려면 그만한 명분이 필요합니다."

2,000억 원의 프리미엄으로는 부족하다는 소리였다.

정운원은 대놓고 조소를 보였다.

함께한 과학자들도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팔짱을 끼었다.

그 집단 팔짱에 정홍진 사장 일행은 기세가 살짝 눌려서 흠칫했다.

"이거이거…… 어차피 가동도 못하고 폐기를 하니 마니 하는 원전을 우리가 제값 주고 사주겠다는데도 부족하다는 겁니까?"

머리가 벗겨진 노교수가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흘리면서 끼어들었다.

"어디 한 번 우리가 물러나 볼까요? 19조 원 넘게 들여서 지은 원전을 싹 허물게 되면 국민 여론이 참 좋겠습니다?"

"유, 윤 교수님."

"윤 이사라 불러주세요. 지금은 수영조명 경영진 자격으로 온 겁니다."

"……."

"솔직히 우리 회사는 그딴 원전 필요 없어요. 아예 처음부터 새로 짓는 게 훨씬 싸게 먹힙니다. 그래도 거래를 제안한 건 그저 시간을 좀 아껴보자, 이게 전봅니다."

노교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정홍진 사장 일행을 움찔하게 만들었다.

프로젝트 투자 구걸을 할 때에는 언제나 공손하고 가느다란 목소리였는데, 저렇게 패기 넘치는 목소리를 가졌다니.

"진짜 우리가 싹 털고 물러나 볼까요? 한 번 19조짜리 산업폐기물 만들어 볼 텝니까?"

"윤 교수님, 아니, 윤 이사님. 진정하시지요."

"커흠. 정 사장님. 미안합니다. 내가 조금 흥분했지요?"

"너무 그렇게 몰아세우면 우리 정홍진 사장님도 발 디딜 데가 없어지잖습니까. 정홍진 사장님 입장도 이해를 해줘야지요."

배드캅이 물러가고, 굿캅이 나섰다.

신경질적인 굿캅이긴 하지만, 그래배드캅보다는 낫다.

"좋습니다. 이건 어떨까요? 프리미엄 2,000억 원까지 해서 일시불로 한 번에 드리지요."

"일시불이라고요?"

정호진은 그 말에 귀가 솔깃했다.

쓰지도 못할 발전소를 짓는 데 큰 돈이 들어가는 바람에 회사의 재정도 힘들다.

그런데 매몰된 돈을 즉시 한꺼번에 돌려받을 수 있다면…….

"계약서에 도장 찍는 그 자리에서 즉시 시원하게 쏴드립니다. 이 정도 조건이면 모회사와 정부를 설득할 있겠습니까?"

"음, 한 번 해보겠습니다. 제 예감은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노력 부탁합니다."

***

정홍진은 모회사인 한전 사장에 보고했다.

한전은 당연히 산업통상자원부에 이 사실을 보고했고, 긴급 차관회의 열렸다.

"수영조명이 태웅 원전을 원한다고요? 강원도를 설득할 자신이 있다는 겁니까?"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원한다면 원자력 발전을 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넣어줄 수도 있다고 하는 걸 보니까요."

"그렇다면 핵융합 기술에 뭔가 큰 전진이라도 있는 걸까요? 에릭 실장이 또 무슨 대단한 발명품을 내놓았을까요?"

"그게 사실이라면 얼른 팔아치우는 국가적으로도 이익이 아닐까요? 지금도 서울은 블랙아웃이 간당간당합니다."

"차라리 사실이면 좋겠습니다. 그럼 석탄발전소를 더 늘리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태웅 원전은 서울의 부족한 전력을 대비하기 위해서 지었다.

하지만 2년째 가동을 못 하고 있고, 서울이 소비하는 전력은 나날이 증가 중이다.

부족한 전력은 결국 어디서든 보충을 해야 한다.

신형 원전이 오픈도 못 하고 막힌 상황에서 또 원전을 짓자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정부는 대량의 석탄발전소를 추가로 증설할 계획을 잡고 있었다.

대부분이 착각을 하는데, 한국의 전력 생산 1위는 석탄이다.

"이거 빨리 결정을 하지 않으면 수영조명에서는 곧바로 손을 털 모양입니다. 시간을 끌어선 안 됩니다."

"저쪽은 한 명만 설득하면 되니 속전속결이지만, 우리는 입장이 다른데……."

"설득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하수영 회장은 정운원 사장에게 경영을 완전히 맡겼습니다. 본인은 돈만 대고 경영은 알아서 하라는 식입니다."

순간적으로 실무진 사이에서 부럽다는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다들 동의하다시피, 태웅 원전은 계륵입니다. 프리미엄 2,000억을 받고 팔아치우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

"태웅 원전을 짓기 전보다 기술이 더욱 발전했습니다. 같은 규모의 원전을 더 저렴한 비용으로 지을 수도 있습니다."

실무진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조용히 끄덕였다.

국장의 설명대로, 원전을 정리하고 그 돈으로 다른 곳에 새로 짓는 게 훨씬 이익이다.

당장 부족한 전력 공급은 어찌할 수가 없겠지만…

"이 사실을 베이스로 해서 청와대와 국회를 설득해 봅시다."

"좋습니다. 한 번 해봅시다."

실무자들은 겉으로 밝히지 않은,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었다.

'하수영 의원님이 하는 일에 훼방놓을 순 없지.'

'걸리적거리던 물건을 가져가 주시겠다는데 두 손 들어 환영하지는 못할망정.'

'우리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와드렸다는 걸 아셔야 할 텐데.'

혹시 아는가?

자신들이 나중에 공직에서 은퇴한 후에 하수영이 수영조명에 임원으로 받아줄지?

은퇴 이후의 삶의 질에 대한 염려와 욕망 덕분에, 그들은 청와대를 설득할 완벽한 보고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청와대도 태웅 원전 매매를 크게 반겼다.

강원도의 반대가 워낙 강경해서 골머리만 썩히고 있었는데,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게 됐으니.

그리하여 한수원은 수영조명과 발전소 매매 계약을 맺었다.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나서 정운원이 말했다.

"1분 안으로 입금이 완료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태웅 발전소가 아무 쪼록 귀사의 연구에 중대한 활용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겠군요. 한 달안에 수영농장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개조를 마치는 게 목표입니다."

"예? 한 달이라고 하셨습니까?"

정홍진 사장은 당황해서 반문했다.

한 달이라니, 이게 무슨…….

"서, 설마?"

"핵융합 장치는 이미 완성됐습니다. 물을 끓이고 터빈을 돌리고 전력을 내보낼 발전소가 없었을 뿐이죠."

"……!"

조용히 비밀을 들은 정홍진은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런……."

"안 그러면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발전소를 뭐하러 사겠습니까?"

핵융합 기술에 뭔가 큰 전진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했다.

하지만 그래도 최소 몇 년은 더 걸려야 할 거라고 봤다.

당장 즉시전력감을 갖췄다고는 누구라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겨우 한 달이라니.

"그, 그게 어느 정도입니까?"

"태웅 발전소가 원래 이루려고 했지만 못다 한 목표를 해낼 정도는 됩니다."

"……."

"저는 기자회견을 해야 돼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정운원은 비틀거리는 정홍진 사장을 지나서, 단상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기자들이 쉴 새 없이 플래시를 터뜨리며 질문을 해댔다.

"수영조명이 태웅 원전을 인수하기 위해 강원도정부와 주민들을 움직였다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민들을 설득해서 원전을 가동한 후 정부에 다시 비싸게 재판매할 계획이라는 게 사실입니까?"

"수영조명이야말로 가장 큰 핵피아라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핵융합 연구는 그저 명분일 뿐이고, 실제로는 국내 원자력 시장을 쓸어 담기 위한 발걸음이라는 게 사실입니까?"

"한마디만 대답해 주십시오!"

정신없이 쏟아지는 질문들을 들으며, 정운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죄다 쓰레기 같은 질문들뿐이군. 역시 K레기 수준은…….'

"핵융합 발전 상용화가 가시권에 들어와서 시간 절약을 위해 미리 발전소를 인수했다는 주장은 어떻게 보십니까?"

'그래도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 기자가 한 명은 있군.'

정운원은 목청을 잠시 가다듬고, 마이크를 켰다.

쏟아지던 기자들의 외침이 잦아들었다.

플래시는 여전히 쉴 새 없이 터지고 있었다.

"태웅 발전소는 수영 발전소라고 명칭을 개정할 예정입니다."

펑! 펑! 펑! 펑! 펑!

다들 예상한 터라 전혀 놀라지 않았다.

"수영 발전소는 나날이 증가하는 수영농장의 전력 소모를 자급제로 감당할 수단입니다. 발전소는 오늘 즉시 개조에 들어가며, 원자력 발전은 일절 없을 것임을 선언합니다. 그러니 강원도 주민 여러분은 안심해 주십시오."

기자들의 표정에 해소감과 의문이 동시에 서렸다.

역시 핵융합 발전이 가시권으로 들어온 것인가?

그렇다면 몇 년 안에 발전소가 제대로 가동할 수 있을까?

5년? 7년? 아니면…….

"한 달 후부터 태웅 발전소는 100% 출력으로 가동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하, 한 달이라고!"

"말도 안 돼!"

"서, 설마 이미 핵융합로가 완성되었다는 겁니까! 그래서 원자로를 뜯어내고 그 자리에 핵융합로를 설치하는 개조 시간이 한 달이라는……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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