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13화
220장 수영한우 1호점 (4)
임탁정은 천연덕스럽게 반응했다.
자신은 라테그룹의 장녀를 보내 버린 것 때문에 미움을 사서 제주지검으로 좌천되었다.
재벌의 스폰을 받고 싶은 검찰청윗대가리들은 눈엣가시 같은 자신을 서울에 놔둘 수가 없었으니.
중앙권력 구도가 드라마틱하게 재편되지 않는 이상, 자신이 서울 땅을 밟는 것은 요원했다.
하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법무부에서 먼저 러브콜이 들어왔다.
이유는 하나뿐이다.
"강남 일대에서 벌어진 화이트 스카치 범죄도 그렇고, 얼마 전 제주도에서 있었던 화이트 스카치 범죄해결도 그렇고, 모두 임 차장님이 없었다면 그렇게 쉽게 해결할 수 없었을 겁니다."
"흐음, 전공 승진이라는 겁니까."
"차장 승진도 무척 빠른 편이시라 더 이상 승급은 어렵습니다만, 서울로 다시 복귀해서 중요 수사 지휘를 맡으셔야죠. 우리나라는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닙니다."
임탁정은 이리저리 유도를 시도했지만, 차관은 끝까지 하수영의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았다.
웃음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다.
'의원님 때문에 무리해서 날 다시 서울로 불러오려는 거면서.'
로또 당첨금이야 그냥 찍어준 번호가 맞은 거라고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보잉 투자 정보를 미리 알려준 것은 확실한 친분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즉 제3자가 보기에 자신은 하수영 울타리 안에 있는 인물인 것이다.
그러니 중앙에서도 더 이상 제주도에 놔두기가 부담스러웠겠지.
하수영보다 라테그룹을 더 요시하는 공직자는 없을 테니까.
"그럼 슬슬 제주도 생활을 정리해야겠군요. 짧은 시간이지만 여기 제주지검 동료들과도 정이 참 많이 들었는데."
"하하, 차장님의 인품이 어찌나 자자한지 서울까지 소문이 다 났습니다. 일반 직원들까지도 그렇게 살뜰하게 챙기신다면서요?"
"다 제가 존경하는 분께 배운 것들입니다. 곳간이 커질수록 인심을 넉넉하게 베풀려 살라는 마음가짐 말입니다."
임탁정이 은근히 하수영을 암시하자, 법무부 차관은 살짝 굳은 미소를 보였다.
그는 여전히 하수영을 입에 올리지 않은 채 화제를 다시 돌렸다.
"혹시 희망하시는 청사가 있으신지……."
"보직 결정에 제 의사를 전부 반영해주시는 겁니까?"
"확답은 드릴 수 없지만, 의견은 가능한 적극 참고할 수 있습니다."
임탁정은 피식거렸다.
누가 법무부 아니랄까 봐 문장에 회피성을 잔뜩 심기는.
"대검에 다시 돌아갈 자리가 있습니까?"
"대검은 조금……."
"어렵다는 거군요. 그런데 저는 대검 반부패강력부 말고는 내키지 않는데요. 마약 수사 말고는 잘하는 게 없어서."
"……."
차관은 난처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법무부에서 대검찰청으로 발령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하기야, 대검에서 좌천되다시피 제 주지검으로 내려왔는데, 얼마 되지도 않아서 다시 대검으로 올라가면, 윗사람들 체면이 민망할 테지.
"천천히 고려해 주십시오. 사실 제 주도에서 더 오래 지내도 저는 괜찮으니까요."
임탁정은 마음에도 없는 말로 느긋하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
하수영은 장효주를 위해서 2호점을 내주었다.
2호점은 장효주가 월세로 살고 있는 청담동 아파트 근처의 작은 상가 빌딩에 차렸다.
아파트 단지 맞은편에 있어, 장효주가 언제든 편안하게 들러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위치였다.
심지어 상가 빌딩도 하수영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 집도 수영 씨 집이고, 가게도 수영 씨 건물이고, 영화도 수영 씨 제작에 출연하고, CF도 수영 씨 상품들만 찍네요? 이러다가……."
"간판을 크게 걸지는 않는 게 좋겠어요. 포털에도 등록하지 맙시다. 아는 사람만 알음알음 찾아올 수 있게."
하수영이 교묘하게 말을 돌리자 장효주는 살짝 눈을 흘겼다.
"고마워요. 무리한 부탁이라고 생각했는데 쉽게 들어줘서."
"저도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미인에 약하죠."
"안 약한 거 같은데? 수영 씨 보면 철벽이 보통 단단한 게 아니거든요?"
"약합니다. 약해요."
테이블은 6개밖에 되지 않는 작은 가게였다.
숙성실, 냉동고, 조리실 등등을 갖추다 보니 홀 면적이 자연히 줄어든 것이다.
또 테이블 간격을 널찍하게 배치해서 손님들이 쾌적하게 식사를 즐길수 있도록 인테리어를 꾸몄다.
딱 지인들만 골라 받는 용도의 매장이다.
"그런데 매장 지배인이나 직원들을 아무나 쓸 수는 없을 테고, 생각한 게 있나요?"
"제 주변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걱정 마세요. 가게 낸다니까 월급 사장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어요."
가게 주인은 장효주이지만, 당연히 그녀가 직접 관리하지는 못한다.
소유만 할 뿐, 전체적인 운영은 월급사장에게 맡길 것이다.
"흑자는 기대할 수 없겠군요."
"제 전용 소고깃집이라고 생각하면 저렴한 편이죠. 수영 씨 덕분에 돈많이 벌었거든요. 영화도 찍고, CF도 찍고."
"아시죠? 고기 납품 가격은 다른 매장과 차별을 둘 수 없습니다.
"알아요. 수익 별로 안 날 2호점허락해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죠."
"어차피 저야 고기만 팔지, 가게 인테리어부터 운영까지 모든 건 효주 씨가 알아서 하잖습니까. 전 손해 볼 거 없습니다."
1호점 규모의 2호점을 내야 한다면 기약 없이 밀렸을 것이다.
지금 청담수영마트와 1호점에 납품하는 육류 양도 간당간당한 수준이었으니, 오히려 2호점이 규모가 작고 찾는 손님이 적어서 부담이 없다.
"납품 가격입니다. 확인해 보시죠. 아무리 우리 사이라도 계산은 확실해야 기재부에서 헐레벌떡 달려올 일이 없습니다."
"계산 확실한 거하고 기재부하고 무슨 상관인데요?"
"계산이 불확실하면 세금도 불확실해지고, 그럼 국세청이 건수 잡았다고 좋아하고, 기재부는 이걸 가지고 어떻게 뜯어먹을까 설레발을 치게 되겠죠. 국세청이 기재부 하위기관이거든요."
"아하."
고개를 끄덕이며 견적서를 살피던 장효주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고기 가격이 너무 싼 거 아니에요? 1호점에서도 이 가격으받아요?"
"이 가격이 맞습니다."
"그, 무슨 제약 있지 않아요? 한우농가 보호 때문에 수영한우는 시세보다 약간 비싸게 팔아야 한다고 정부하고 계약하지 않았어요?"
"그거야 도매납품 할 때나 적용되는 거죠. 내 프랜차이즈 가게에서 파는 건 상관없어요."
"정부가 계약을 허술하게 했네요."
"공무원들은 언제나 상상력이 부족하죠. 제가 고깃집을 직접 운영할 거라는 간단한 발상을 왜 못 하는지도 저도 이해가 안 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발상을 못 했을 거예요."
"어차피 사문화될 조항이에요. 목장째로 넘기고 수영목장에 취직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거든요. 머지않아 국내 소 목장은 수영목장으로 천하일통이 될 겁니다."
장효주는 천천히 가게를 둘러보았다.
주요 세팅이 끝난 가게는 사람만 구한다면 당장 내일부터 장사를 해손색이 없을 듯했다.
"질문 하나 있어요."
"하세요."
"정서희 씨한테도 가게 내주기로 하셨죠?"
"네."
"우와, 조금도 고민 안 하고 바로 대답하는 거 봐."
"고민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태연한 하수영의 눈빛을 살짝 째려 보던 장효주가 가방을 챙겼다.
"됐어요. 밥이나 먹으러 가요."
***
수영한우는 그동안 청담수영마트, 수영펜션 등에서만 제공되고 있을 뿐, 시중에는 유통이 되지 않았다.
수영펜션에서 이미 수영한우를 맛얼리이터(Early eater)들은 삼성동 1호점을 방문하고는 흥분해서 날뛰었다.
"그래! 바로 이 맛이라고, 이 맛!"
"SNS에서 아무리 설명을 해도 사람들이 알아주지를 않아서 얼마나 답답했는데!"
"이 통짜 마이야르 덩어리 육질이 얼마나 환상적인데!"
"뭐? 그래 봤자 흔한 고급 소고기아니냐고? 아니다. 진짜 차원이 다르다."
"오픈일 방문한 연예인들 단체로 난리 난 거 보고도 감이 안 오지?"
그전에는 일반인이 수영한우를 먹고 싶으면 수영펜션 투숙을 해야 했다.
하지만 펜션은 너무 멀리 있고, 객실은 한정되어 있다.
서울 시민들이 즐기기에는 난이도가 높은 맛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달라졌다.
여전히 예약이 힘들기는 하지만, 서울에 거주하는 얼리이터들은 부산과 독도를 찾지 않아도 수영한우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고 위장이 터질 때까지 꾸역꾸역 처넣고 싶은 이 환상적인 중독성……."
"신들이 먹는 음식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어쩌면 하수영은 신이 아닐까?"
1호점은 어느덧 4개월 치 예약이 꽉꽉 밀릴 지경이 되었다.
노쇼 방지를 위해서 1인당 5만 원씩 예약금을 받았는데도 이 정도였다.
양희진은 나날이 미소가 늘어났으며, 임탁정은 서울 검찰 출신 선배들의 전화를 하루가 멀다 하고 받아야 했다.
-어, 임 검. 오랜만이야.
"네,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잘 지내기는, 역시 지검장까지는 찍고 개업을 할 걸 그랬나 봐. 매일 파리만 날려서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하고 있어.
"저는 개업 같은 건 꿈도 꾸지 말아야겠네요. 검찰 내부에서도 아웃사이더라서 전관으로 한몫 땡길 수도 없을 테니 말입니다."
-들이박고 나온 친구 중에 개업해서 잘된 케이스가 별로 없지. 그나 저나 내가 염치없게 부탁할 게 조금 있는데…….
"수영한우 가맹점 말씀하시는 거 죠?"
-어떻게 알았어? 이거 너무 민망하네.
"제가 검찰 쪽 선후배들한테서 오늘만 그 전화 다섯 통 받았거든요. 지금까지 다 합치면 30통은 넘을 겁니다."
-…….
"죄송하지만 저도 의원님한테 크게 은혜를 입은 몸이라 제가 뭔가를 부탁하거나 말을 꺼낼 그럴 염치가 없습니다."
-……이거 민망하게 됐네.
"물론 의원님이 먼저 물어보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 선배님 이름을 꼭 기억하겠습니다."
-아이고, 그것만 해도 고마워. 만약에 잘만 된다면 나 변호사도 때려 치우고 아예 장사 쪽으로 올인을 해보려고 해. 각오가 그렇다는 거야.
"기억해 두겠습니다."
-고맙네. 서울로 발령 오면 내가 꼭 술 한 잔 대접할게.
임탁정은 흐릿하게 웃었다.
"서울 발령이 거기까지 소문이 났습니까?"
-서초구에서 이미 소문이 파다해. 검사들 모였다만 하면 모두 자네 이야기인 거, 알고 있나?
"저야 제주도에 박혀 있으니 서울 소식은 알 리가 없죠."
-이번에 재산 변동신고 한 것도 그렇고, 지금 자네는 서초구의 전설이야, 전설, 그나저나 자네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벼르고 있는 사람들도 좀 있는 거 같아.
"저야 원래부터 아웃사이더였으니까요. 조언은 감사합니다."
-……그래. 더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만나면 하자고, 복귀 축하는 열어야지.
임탁정은 안부를 전하며 전화를 끊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전화가 울렸다.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탁정과는 그리 친하지 않은 사이였다.
이번에는 말투가 은근히 달랐다.
-우리 안사람이 관심이 있어서 말이야. 자네가 한 번 도와주면 내가 참 고마울 거 같아.
부탁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요구다.
그리고 이런 이들은 자신의 요구가 거절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힘을 써보죠."
-고맙네.
그제야 지검장은 목소리가 더욱 부드러워지며 전화를 끊었다.
물론 임탁정은 힘을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뤄지지 않을 망상에 잠겨서 기약없이 시간이나 낭비하라지.
"쪼인트 까러 오면 나야 환영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