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901 화
218장 목장 업그레이드 (5)
하수영이 농사를 지으면서 품은 불만 하나.
바로 이 나라는 땅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테라리움 ver 2.0을 원통형 농장빌딩으로 짓게 된 것은 필수였다.
좁은 땅에 농지를 욱여넣으려면 그 방법이 최선이었으니까.
엘릭서 덕분에 파종부터 수확까지 순식간에 달릴 수 있던 덕분이기도 했고, 그래도 농장은 한곳에 몰아서 지었지만, 목장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소와 돼지 등의 성장 속도가 빠르다지만, 그래 봐야 수십 % 정도.
또한 한곳에 몰아서 짓지 못하고, 이곳저곳에 흩어서 지어야 했다.
다른 나라처럼 사방으로 지평선이 펼쳐진 그런 초대형 목장을 짓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음…… 제가 미국에 목장을 지을만한 땅이 남아 있겠습니까?"
"땅 남아도는 나라 하면 바로 우리 미국입니다. 원하는 지역과 면적을 말씀만 하십시오. 연방 정부에서 무상으로 내어드리겠습니다."
"에이, 무상으로 받기에는 제 양심이 조금 걸리니까 그냥 헐값에 받는 것으로 하죠."
"헐값, 알겠습니다. 최대한 저렴하게 넘겨받을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농무부 차관은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감을 달랬다.
가장 큰 허들은 넘은 것 같다.
"좋습니다. 제가 원하는 목장 부지를 확보해 주신다면, 미국의 다른 목장에도 포집 안테나를 세워 드리겠습니다."
"오오! 감사합니다!"
"어디까지나 메탄 포집 서비스를 제공하는 겁니다. 안테나를 비롯해서 모든 설비는 수영목장에서 소유하고 관리하며, 미 정부는 그 비용을 충분히 지불하셔야 합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단, 모든 목장에 설치한다는 보장은 못 합니다. 기한 역시 장담 못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생산이 매우 어려운 놈입니다."
"그 점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신경을 써주십사 하는 마음뿐입니다."
"포집된 메탄도 시세의 20배 가격으로 구매해 주셔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어떻게 되든 간에 지금보다는 훨씬 이득이다.
***
하수영은 37개의 에너지 바이오업체 사장들을 소집했다.
"제가 미국에도 목장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어, 그럼 국내에 있는 목장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것도 당연히 원래 계획대로 계속 키웁니다. 미국에 짓는 것은 어디까지나 멀티입니다."
"아, 멀티입니까?"
업체 사장들은 저마다 안심한 표정이 되었다.
미국 목장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들은 내심 깜짝 놀랐다.
하수영이 미국으로 목장을 옮겨 버리면 자신들은 버린 패가 되는 게 아닌가 해서 긴장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좀 많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회장님?"
"아, 제 목장에도 안테나 달아야 하고, 미국 다른 목장에도 여유가 되는 대로 안테나 달아주기로 했습니다."
그제야 업체 사장들은 할 일이 많을 거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설마 그 작업을 저희가 하는 겁니까?"
"그럼 이 좋은 일거리를 얼굴도 모르는 미국 업체들에게 던져줄까요?"
"……."
다들 순간적으로 말문을 잇지 못했다.
하수영은 손깍지를 낀 채 좌우를 돌아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미국 목장에는 200미터 간격으로 포집 안테나를 세울 겁니다."
"예? 안테나 포집 반경은 그보다 훨씬 더 넓지 않습니까?"
"미국에는 다운그레이드 모델을 쓸 겁니다. 그게 생산이 더 빠르거든요."
"아아, 그렇군요."
"그리고 안테나를 더 많이 설치해야지 더 많은 비용을 청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음…… 확실히 그렇습니다."
일단 안테나는 하나 세울 때마다 돈을 잡아먹는다.
충분한 높이의 안테나는 철근 등골자재를 많이 소모한다.
여기에 안테나마다 일일이 메탄 액화 장치를 달고, 파이프를 연결해서 액화 탱크까지 끌어와야 한다.
또 안테나를 가동하기 위해 전력을 끌어올 전선도 연결해야 한다.
200미터 간격으로 안테나를 세울 때마다 얼마나 비용이 증가할까?
업체 사장들은 그 점을 계산하느라고 머리를 바쁘게 굴렸다.
'안테나 개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유지 보수도 필요하니까 상주해야 하는 직원도 늘어나겠고…….'
'이거 유지 보수까지 생각하면 지금 직원으로는 안 되겠는데? 사람을 더 뽑아야…….'
'미국 모든 목장에 200미터 간격으로 포집 안테나가 쫙 깔리면?'
거기까지 상상이 미친 업체 사장들은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말 그대로 일거리의 금광이다.
"기초공사부터 사후 유지 보수까지 원 패키지로 우리 수영목장에서 전부 소유하고 관리합니다. 메탄은 미정부가 알아서 일괄 수매해 준다고 했으니까, 우리는 탱크만 열심히 채우면 됩니다."
업체 사장들은 저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수영은 업체 전부에 지분 투자를 했다.
따지고 보면 37개의 업체 전부가 수영목장 계열사가 되는 셈인가?
"지금 여러분들 회사 규모로는 이거 감당할 수 없으니까 덩치를 충분히 키우세요. 신축 목장 지으면서 포집 안테나 건설도 같이 시행할 겁니다."
"네, 회장님."
"견적서는 최대한 부풀려서 제출하세요. 파견 직원 인건비도 연봉 1.5억 이상으로 팍팍 늘려서 잡으세요."
"그, 그렇게 해도 문제가 없겠습니까?"
중소기업 직원이 회사 지시로 미국출장을 갔는데 연봉 1.5억 이상이다?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 미국행을 원할 것이다.
"그럼요. 아, 시세에 비해서 얼마나 부풀린 건지도 대충 %로 표시해 주세요."
"그럼 견적서를 이중으로 만들까요?"
"아뇨, 하나만 만들면 됩니다. 어차피 미국 정부에 보여주고 설명도 다할 건데요."
"……."
그러니까 바이어를 상대로, 이만큼 삥을 뜯고 있다는 것을 세심하게 브리핑할 거다?
그래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은 솟구치자마자 눈 녹듯이 사라졌다.
하수영은 '진짜 좋은 건 안 팔아도 된다'라고 말을 했다.
안 팔려고 하는 것을 파는 것이니, 이 정도 부담은 기꺼이 감수하라는 것이겠지.
"해외 출장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낱낱이 청구하세요. 직원들 숙소도 임시 컨테이너 따위로 하지 말고, 조립식 연립주택이라도 지으시고요."
호텔에 묵으면 좋겠지만, 어차피 불가능하다.
도심에서 수백㎞ 이상 떨어진 목장에서 생활을 해야 할 테니까.
"작업복, 작업 도구, 식사도 모두 최고로만 챙기시고 거기에 프리미엄좀 끼얹어서 청구서 작성하세요. 돈은 제가 다 받아낼 테니 떼일 염려는 안 하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업체 사장들은 얼떨떨했다.
지분 투자를 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어마어마한 일감을 물어 오실 줄이야.
송아지를 통째로 물고 온 어미 황조롱이를 본 새끼 황조롱이들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미 정부 한번 거하게 뜯어먹어 봅시다. 어차피 티도 안 날 거지만요."
업체 사장들의 마음도 부풀어 올랐다.
***
-마스터. 미국 상위권 기업들이 연합해서 에릭을 회유하고 있습니다. 계약금으로만 1조 달러를 제시했다고 합니다.
"오, 나름 세게 불렀네. 근데 걔들 그만한 현금은 있대?"
-수십 개 업체들이 돈을 모으면 1조 달러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역시. 국가 예산으로 7조 달러씩 써재끼는 나라답구나. 안심하고 뜯어먹을 수 있겠어."
-제가 시뮬레이션을 해봤습니다. 미국 모든 목장에서 발생하는 메탄을 줄여도 기후 이상화는 멈출 수 없습니다. 추가 가속력을 조금 줄여주는 정도일 뿐입니다.
"메탄이 어디 목장에서만 나오나. 자연에서도 나오니까."
생물이 부패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메탄은 발생하니까.
"내연기관 팍팍 쓰고, 반도체 팍팍써가면서 지구가 뜨거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지."
-인풋에는 당연히 아웃풋이 따르는 법인데 말입니다.
"어쩔 수 없다. 인간이라는 게 원래 그래. 맛있는 건 위장이 터질 때까지 먹고 싶지만, 살은 또 절대 안찌고 싶고."
-온실가스 배출을 대하는 인류의 심리와 동일하군요.
이미 이상기후는 티핑 포인트를 돌파했다.
목장 배출 메탄을 포집하는 것은, 이미 병에 걸린 환자에게 약을 주는 것이다.
이상기후를 되돌리기 위해선 대기권에 이미 녹아든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포집해야만 한다.
"정크 푸드는 계속 먹겠지만 보디빌드 대회에는 나가야겠다는 우리 고객님을 어쩌겠니. 다이어트 약이라도 팔아드리는 수밖에."
-대기권에 섞인 메탄의 99% 이상을 포집한다 해도 이상기후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다른 온실가스들도 포집을 해야 합니다.
"나중에 여유가 되는 대로 대기권 포집 서비스도 해드려야지. 어휴, 어제도 2시간 동안 신어로 떠들어대느라고 혀가 마비된 거 같다."
***
하수영은 비프스 캘론에게 목장으로 쓸 만한 땅을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비프스 캘론은 흔쾌히 하수영의 요청을 수락했다.
어떻게 보면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파트너를 자국에 받아들이게 된 셈이지만,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중국의 육류 소비량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요. 다른 개발도상국들도 경제가 성장하면서 세계적으로 육류 소비량이 늘어날겁니다. 메탄을 배출하지 않는 대형 목장이 들어선다는 것은 매우 반길 일이죠.
"캘론 목장은 가장 먼저 포집 안테나가 들어서는 타인 목장이 될 겁니다."
-저도 아주 좋은 부지를 한번 골라보겠습니다. 하수영 사장의 말대로 가격 생각 말고 부지 그 자체만 보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37개의 업체들은 저마다 견적서를 작성해서 하수영한테 제출했다.
하수영은 견적서를 훑어보고는 그들에게 한 번씩 확인했다.
"충분히 부풀린 거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한국에서 이 정도로 납품 견적을 부풀렸다가는 서류 열자마자 바로 퇴출입니다."
"저희가 생각하기에도 좀 심할 정도로 부풀렸습니다."
"미국 출장 나갈 직원들 월급을 1,500만 원으로 책정했더니 너도나도 나가겠다고 난리입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을지……."
"어차피 돈은 바이어가 주실 테니까, 우리는 마음껏 쓰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음, 그래도 금액이 너무 적네요."
하수영은 견적서에 적힌 '1차 사업총소요비' 숫자 부분에 두 줄을 그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새로운 숫자를 적어 넣었다.
얼핏 보기에 9배로 증가한 숫자다.
"회, 회장님?"
"자, 총액만 제가 대충 수정했으니까 여기에 맞춰서 세부 금액들 다시 작성해 오세요. 그러면 바로 미국에 제출할 겁니다."
대기업 상대로 납품을 하면서 견적을 강제로 수정당하는 경우는 늘 있는 일이다.
그래서 퇴짜를 맞은 게 아프지는 않다. 늘 함께 안고 살아가는 일이다.
하지만 요구하는 돈이 적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아본 일은 처음이다.
원청의 비자금, 리베이트, 정치자금우회 제공 등이 아니라, 자신들을 챙겨주기 위해서 금액을 부풀리는 일은.
"이, 이건 너무 많이 부풀린 게 아닐까요?"
"저희도 얼굴에 철판 깔고 최대한 이것저것 말도 안 되는 걸 욱여넣었습니다만……."
"……거기에 다시 900%로 바꾸시다니."
하수영은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단숨에 삼키고는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0 하나 더 붙이진 않았잖아요. 미국도 이해할 겁니다."
"……."
"……."
사장들은 다 비슷한 생각을 했다.
'1억 달러는 아닌 9,000만 달러? 9,000만 달러 같은 1억 달러? 아니, 이게 아니지. 아무튼 혼란하다.'
'9배와 10배…… 어쨌든 자릿수는 다르다 이런 말씀이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