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87화
216장 라이플's 프리덤 (3)
돈 잔치의 효과는 탁월했다.
농촌 주민들은 멧돼지와 고라니가 입히는 작물 피해가 월등히 줄어들었다며 좋아했다.
"하수영 농민 회장님은 참말로 우리 농부들을 구원하러 지리산에서 내려오신 산신령이시랑께!"
"농민 회장님께서 농식품 장관을 하셔야 하는데."
"어허, 겨우 농식품 장관으로 되겠어? 총리 정도는 맡으셔서 이 나라 농사일을 크게크게 돌보셔야 한다고."
"기왕 하는 김에 총리 말고 대통령 합시다, 대통령."
"그냥 왕 하시면 안 되나? 그런 분이 천년만년 옥좌에 앉아주셔야 나라가 잘 풀리는 법인다."
무제한 돈다발.
프리덤을 통한 철저한 사냥 일정관리.
그 둘을 통해 엽사들은 착실하게 수렵 활동을 늘려나갔고, 멧돼지와 고라니 수도 빠르게 급감하기 시작했다.
돈이 되는 일에는 사람이 몰린다.
***
전문 엽사들 중에는 아예 따로 고용인까지 두는 이들도 나왔다.
운전을 맡기고 그사이에 자신은 낮잠을 자는 등 피로를 회복한다는 전략이다.
일당이 따로 나가지만, 그 대신 더 많은 시간을 수렵에 투자할 수 있었다.
경찰청장은 일을 제대로 처리했다.
신고하지 않은 불법시위, 사유지 무단점유를 들어 동물단체 시위대를 모조리 쫓아냈다.
갈 곳을 잃은 동물단체들은 강남구의회 민원센터에 하수영을 비방하는 글을 올리는 등, 포기하지 않고 끈덕지게 매달렸다.
덕분에 구의회 행정직원만 '본 구의회와 무관한 민원이므로 답변이 불가합니다.'라는 매크로 답변만 열심히 작성해야 했다.
사람이 계속 외면을 받다 보면 성질이 나는 법.
급기야 동물단체 회원들은 청담동휴민트타워까지 찾아왔다.
1층 로비까지 들어온 그들은 의원 사무실 입구에 진을 치고 눌러앉아버렸다.
수십 명의 인원들이 자기들끼리 몸을 단단히 묶어서, 함부로 끌어내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유리문 너머로 그런 광경을 내다보며 하수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거 참. 저것들을 다 쏴버릴 수도 없고."
"멧돼지, 고라니보다 못한 것들이여. 저것들이야말로 진짜 유해조수아닌가?"
"쟈들이 그 뭐시기 동물 보호해야 하니까 고기 먹지 말자고 하는 그런 놈들인가?"
"굶어본 적이 없어서 그래. 우리 때는 고깃국이 뭐여. 고기 살짝 담근 국물 한 수저만 줘도 감지덕지하면서 먹었는데."
"근데 하 의원, 저대로 놔둬도 괜찮은 건가?"
하수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바닥도 딱딱하고 차가운데 일부러 한껏 진 좀 빼게 만들어야죠. 나중에 증거로 쓸 동영상도 좀 많이 확보해 두고요."
"역시 하 의원은 다 계획이 있구먼."
"어차피 제 지지자들도 아닌데 밉보인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나도 청담동 주민으로는 안 보여."
"아니, 청담동 주민이면 어느 집안자식들인지 우리가 찾아가서 혼쭐을 놔줘야지."
하수영은 기초의원이다.
그래서 단체 회원들은 의원사무실로 찾아가면 강한 압박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치인은 외부로 보이는 자신의 이미지를 몹시 중요하게 여기니까.
아예 작정하고 서로 몸을 연결할 로프까지 준비를 해왔다.
만약 농장 앞에서 그러했듯이 경찰들을 동원한다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었다.
힘으로 밀리는 모습들은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좋다.
그런데 전혀 이상하게 돌아갔다.
"하수영은 반성하라! 반성하라!"
"야생동물 학살, 중지하라! 중지하라!"
"동물들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우리 인간들이 동물들의 영역을 지나치게 침범한 죄를 짊어져야 한다!"
"동물학살의 스포츠화, 멈춰!"
여기 빌딩이 하수영 소유인 것은 확인했다.
그러니 건물에 소란을 피운 것 때문에 쫓겨날 염려는 없었다.
하지만 의원사무실 앞에서 아무리 목청을 높이고, 확성기로 고함을 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시끄럽게 하는데 왜 아무 반응이 없는 거야?'
'좋아, 어디까지 참고 있는지 한번 두고 보자.'
그들은 몰랐다.
투명한 출입문은 완벽한 방음처리가 되어 있어, 이쪽에서 아무리 시끄럽게 해봐야 저 안까지는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몇 시간을 그렇게 외치다 보니 몸도 지치고, 화장실도 가고 싶어졌다.
"어? 뭐야?"
"1층 화장실 왜 죄다 잠겨 있어?"
"젠장, 일부러 공용화장실을 폐쇄했구나!"
그들은 할 수 없이 다른 층에 있는 매장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매장에서 철저히 제지당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매장 화장실은 방문해 주신 고객님이 아닌 외부인은 이용 금지입니다."
"아, 그런 게 어딨어요? 잠깐만 화장실 쓰고 간다니까요!"
"죄송합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오기가 난 회원 둘은 테이블을 잡고 자리에 앉았다.
"좋아요. 그럼 우리도 손님 하면 되는 거잖아요? 그쵸?"
"야야, 빨리 아무거나 시키자. 시발, 더럽게 비싸네."
"대충 먹고 총무한테 식비 청구하자. 아, 오늘 뭔가 운이 더럽네."
둘은 자리에 앉아서 대충 메뉴를 시키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직원도 제지하지 않았고, 둘은 자리에 돌아와서 기다렸다.
이윽고 메뉴가 나왔다.
먹음직스러운 돼지고기 요리를 막한 입 뜯으려는 순간, 옆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쯧쯧…… 야생 멧돼지를 그렇게나 사랑한다는 친구들이 정작 돼지 고기 요리를 맛있게 먹고 있는 건가?"
"가축돼지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거 아녀?"
"농부한테 해를 끼치는 야생멧돼지는 보호해야 하고, 인간한테 도살당하는 가축돼지는 모른 체하면 된다.
아주 자기들만 편한 논릴세."
옆 테이블에 앉은 두 노인의 들으라는 듯한 대화에 두 회원은 발끈했다.
"저기, 할아버지들. 지금 그거 저희 들으라고 하시는 건가요?"
"우리가 뭐 어쨌다고요?"
그러나 두 노인은 둘의 반박이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야생동물들이 밭을 파헤쳐서 농작물 피해가 얼마나 큰지는 생각도 안하지."
"지들 밥상에 풀쪼가리라도 하나 빠지면 성질을 낼 거면서 말이야."
"그렇게 동물이 좋으면 고기는 대체 왜 먹나?"
"아니! 이 노친네들이 정말 진짜! 노망이라도 났나!"
한 명이 참지 못해서 그만 쥐고 있던 포크를 노인들 테이블로 집어던졌다.
다행히 포크에 맞진 않았지만, 두 노인은 깜짝 놀라서 둘을 바라봤다.
"이게 뭐하는 짓이오!"
"할아버지들이 먼저 우리더러 들으라고 말을 했잖아요!"
"무슨? 우리는 1층에 진을 친 놈들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뭐, 뭐예요?"
일단 여기 테이블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닌 듯한데.
1층에 진을 친 놈들이라면 결국 자신들도 포함되지 않는가?
둘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지배인이 얼른 달려와서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손님들, 돈은 받지 않을 테니 이만 일어나서 나가 주십시오."
"뭐, 뭐라고요?"
"다른 손님들에게 폐가 됩니다. 어서 나가 주십시오."
"아서라. 돈을 안 받긴 왜 안 받냐. 포크 비용까지 알뜰하게 다 받아라."
"아,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사장이라는 말에 두 회원은 표정이 창백해졌다.
저 노인, 여기 사장이었어?
사방에서 눈치를 주는 바람에 둘은 쪽팔려서 계산만 하고 얼른 1층 로비로 내려왔다.
"아씨, 졸라 더럽게 비싸네. 역시 더러운 청담동."
"근데 우리 너무 쉽게 일어난 거 아냐? 결국 그 할배들 우리 욕한 거 맞는데?"
"야야, 청담동에 저런 가게 있는 노인네면 돈 좀 있다는 뜻이야. 얽히지 않는 게 좋아."
슬그머니 진영에 참여하려는데, 분위기가 아까와 사뭇 달랐다.
"형! 저 녹취 대체 뭐예요!"
"아, 아니야! 저건 조작된 거야!"
"저게 조작이라고요? 형!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어요?"
매장에서 내려온 둘은 조용히 합류하며 분위기를 살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녹취라니? 대체 무슨 일이야?"
"잘 들어보세요. 지금 저기 천장스피커에서 나오고 있는 소리요."
-치직…… 의원님께서 저희 단체에 지원을 해주시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힘을 쓰겠다, 이겁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단체라는 게 아시다시피 여기저기 돈이 많이 들어가잖아요. ……중략…… 다행히 저희는 청년 위주로 구성된 단체라 그리 많은 비용이 들지는…….
-맞습니다. 솔직히 시민단체라고 이름 걸고 다들 이렇게 하잖아요? 이게 뭐 잘못된 겁니까? 예?
녹취는 계속 반복되고 있었고, 회원들의 표정은 심각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녹취 대상자인 부협회장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로비 데스크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당신들! 지금 당장 저거 안 끄면 명예훼손죄로 고소할 거야!"
"사실적시 명예훼손?"
"무, 무슨 사실적시야! 모두 다 허위날조라고, 허위날조!"
부협회장은 누가 '사실적시' 라고 말했는지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두리번거렸다.
그때 한 무리의 회원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난 그냥 집에 갈래!"
"나도! 나도!"
"이거 뭐야? 우리 단체도 결국 다른 곳이랑 다를 게 없었던 거야?"
"자기 돈 받아먹으려고 우리를 이용했구나. 그래도 여기는 좀 다른 줄 알았어. 진심으로 야생동물을 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인 줄 알았어."
"탈퇴서는 따로 제출 안 할 테니까 그냥 탈퇴 처리해 줘요."
"하. 동물을 사랑하는 우리의 순수한 마음을 이딴 식으로 이용하려 하다니."
대부분의 회원들이 하나둘씩 동조하며 결속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협회장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그들을 만류하려 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데 로비 정물을 막 나서려는 찰나였다.
"다들 그 자리에 멈춰 주십시오."
수십 명의 경찰이 밖을 에워싸고 있었고, 협회원들은 흠칫 긴장했다.
"무, 무슨 일이에요?"
"설마 겨우 시위한 것 때문에 잡아 가려고? 정치인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요?"
"자연을 보호하라고 한마디 좀 했다고 그걸 경찰을 부른단 말이야? 하, 청담동 역시 못돼처먹은 동네 맞네!"
"잠깐만, 문화재청 직원이 왜 끼어 있어?"
경찰 가운데 문화재청 직원증을 목에 건 이들이 몇몇 보였다.
그들은 선두에 서서 서슬 퍼런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지금 동물보호 시위를 가장하여 국보급 문화재, 훈민정음창제일지를 절취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예……?"
"뭐라고요?"
"그게 무슨……?"
협회원들은 순간 얼이 빠져서 얼어붙었다.
분명 한국어인데도 무슨 말인지 잠시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어서 경찰 책임자로 보이는 인물이 나섰다.
"중요 문화재이고 비상사태다 보니 철저한 현장조사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신속히 문화재 행방을 찾아내는 게 다급하므로, 이 순간부터 빌딩 전체를 봉쇄합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제야 협회원들은 약속이라도 한듯이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 있었던, 훈민정음 창제일지가 보이지 않았다.
단단히 잠겨 있던 유리 전시관 한쪽도 휑하니 열려 있었다.
그렇게 휴민트타워는 전체가 봉쇄되었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하수영이 흥얼거리듯이 말하자 최우석이 받았다.
"청담동 마왕성을 모욕한 대가를 마땅히 치러야지,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