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84화
215장 반도체 티배깅 (3)
반도체 시장이 급변을 맞이했다.
7,000억 달러란 거대한 시장의 핵심을 서진파운드리 오롯이 떠받들게 된 것이다.
전통의 파운드리 강자 1위였던 TSMC는 서진파운드리 종합 패키징하청 업체로 포지션을 변경했고, 파운드리 2위였던 서해전자는 자사생산 물량까지 전부 서진파운드리에 위탁을 맡기기로 했다.
여기에 윈텔, ADM, 퀄컴 등의 업체들도 앞을 다투어 생산을 맡겼다.
서진파운드리가 반도체 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래플에 인수합병 된 마이크론이 '20등 같은 2등'을 차지하게 되었고,한 자릿수도 안 되는 나머지 점유율을 자잘한 파운드리 업체들이 나눠서 차지하는 형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규모 7,000억 달러의 반도체 시장.
그 중 6,300억 달러어치 이상을 서진파운드리가 생산을 책임지는 구조가 되었다.
-주인님, 한동안은 중국과 일본 방문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우리 회사가 반도체 시장을 너무 해처먹었나?"
-네, 그렇습니다. 가급적 방문은 삼가는 게 좋겠습니다. 어떤 수작을 부릴지 모릅니다.
정서진은 프리덤의 조언에 끄덕이며 수긍했다.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경쟁력을 따라잡기 위해 전 국가적인 차원으로 엄청난 투자를 했다.
그런데 뭔가 결실을 제대로 맺기 전에, 시장 판도 자체가 바뀌어버렸다.
ADM, 윈텔, 서해전자, 퀄컴 등 세계적인 반도체 업체들이 몽땅 서진 파운드리 진영에 섰고, 래플은 마이크론을 인수해서 작정하고 자사 공장으로 키우기로 작정한 이상.
중국제 반도체를 사줄 만한 글로벌기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중국 반도체는 이제 내수용 외에는 설 길이 없습니다.
"그래도 14억이나 되는 시장이니까 나름 소화는 잘될 텐데."
-중국 전자제품 회사들도 꺼려 하는 내수용 반도체를 말입니까?
"중국에서 완제품을 팔고 싶으면 자기네 반도체를 일정 이상 넣으라고 요구를 하던가 하겠지."
반도체 공정에 들어가는 소재, 부품, 장비 등을 만들어서 납품했던 일본 업체들도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것은 마찬가지.
반도체를 찍어내는 핵심 설비, 입자집합명령 장치는 하수영이 신어 권능으로 전생의 기술 중 하나를 구현한 것.
즉 외부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 외의 다른 공장설비들은 미국, 독일 등 여러 나라에 주문을 해서 들여온 것으로, 일본이 낄 자리는 없었다.
또 불화수소 등 기존 화학약품이 전혀 필요하지 않고, 규소, 금, 게르마늄, 갈륨비소 등 소자 구성물질만 있으면 끝이다.
"후후, 이런 이유에서 여행 제한을 당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 평생 중국과 일본을 밟지 않아도 좋아."
-선금을 땅겨 받은 것 때문에 한동안 매출이 정지 상태였는데, 이제 다시 매출이 늘어날 거 같아서 다행입니다.
"마이크론은 어때?"
-미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미 정부는 우리 서진파운드리가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을 홀로 떠맡는 것을 부담스러워합니다.
"미국이라면 그럴 수 있지. 우리가 잘못되면 전 세계 반도체가 멈춰 버리는 거니까."
-한반도의 전략적 요충성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주한미군을 더욱 증강해야 합니다. 미국이 더 많은 주둔비를 지불하는 한이 있어도 말입니다.
정서진은 가슴이 벅찼다.
서진파운드리가 멈추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이 정지한다.
세계의 반도체 공장, 서진파운드리!
이 얼마나 가슴 뛰는 명예로운 호칭이란 말인가.
"마이크론이 살아남아서 다행이야.그래도 우리 최초 고객이라서 내심 찜찜했었는데."
-하지만 마이크론도 알고 있을 겁니다. 환경오염과 돈낭비를 동반하는 재래식 공정으로는 끝까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요.
"결국…… 언젠가는 미국이 우리에게 요구하게 되겠군."
-그렇습니다. 입자집합명령 장치의 도입을 요구하게 될 겁니다.
"당연히 절대로 줄 수 없지."
-염치가 있다면 달라고 요구하진 않겠죠. 대신 미국으로 회사를 이전하거나, 공장을 세워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거야……."
기술을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미국에서도 생산을 해달라는 요구까지 거절하기는 부담스럽다.
뭐라 해도 미국은 최고의 우량 고객이니까.
"미국은 세금이 너무 쎄서 큰 사업을 하기에는 좀 그런데."
-사업하기에는 미국보다는 한국이 더 좋죠.
***
마이크론은 래플과 미 정부 덕분에 살아남았다.
아니, 미국의 유일한 반도체 생산거점으로서 전략카드 취급을 받게 되었다.
래플은 자사 제품에 들어가는 모든 반도체 부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파운드리 역량을 부풀릴 것을 요구했다.
미 정부도 천문학적인 지원금을 집 행함으로써 뒤에서 마이크론을 보조했다.
"마이크론 반도체가 우리 미합중국전자시장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전통의 강자 윈텔마저 반도체 공장을 포기하려는 움직임은, 미 정부에 경각심을 일깨웠다.
미 정부는 윈텔을 만나서 미국 공장 일부라도 유지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윈텔은 거절했다.
"우린 오로지 수익만 생각할 뿐이오."
"옵테인을 우리 공장에서 생산하면 얼마에 팔아야 하는지 아십니까?"
"지금 전 세계가 옵테인에 열광하고 있어요! 돈이 무한정으로 복사되고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케케묵은 재래식 기술에만 매달려있으란 겁니까!"
"이제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
백악관에서 미 대통령은 심층 회의를 주재하는 중이었다.
주제는 바로 서진파운드리.
"서진파운드리는 처음부터 반도체 공정설비를 전혀 수입하지 않았습니다. 공정에 쓰이는 화학약품도 마찬가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초순수 정제시설 역시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마이크론의 주문을 받고, 초고성능의 D램을 뽑아내기 시작했죠."
"이론상 극한 성능까지 무리 없이 뽑아내는 제품을 불량률 제로로 찍어낸 겁니다."
"공장 내부를 조사할 순 없었지만, 기존 웨이퍼식 방법으로 생산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럼 에릭 로한 박사가 외계인이라도 된단 말이오?"
"차라리 그런 것이라면 오히려 신빙성이 있을 겁니다."
"반수성 금속처리 기술처럼, 서진 파운드리의 공정기술도 현대 기술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외부 관찰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직접 공장을 둘러보고, 설계자의 설명을 들어야 이해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서진파운드리가 기업기밀을 공개할 리가 없었다.
"수영그룹은 평화를 사랑하고, 미국 시장에도 매우 우호적입니다."
한 참모가 조용히 입을 열었고, 대통령과 다른 이들도 그의 입을 주시했다.
"그러나 계란이 작은 바구니 하나에만 담겨 있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더 큰 바구니에 나눠 담거나, 아니면 그 바구니를 더 크고 튼튼한 것으로 교체해 줘야 합니다."
서진파운드리 공장의 분산.
혹은 한반도에 철저한 전쟁억지력 투입.
미국은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서진파운드리, 아니, 수영그룹을 한 번 설득해야겠군요."
"서진파운드리가 아예 미국으로 이전해오면 더 좋을 텐데 말입니다."
***
하수영은 한 농가를 찾았다.
원래 담배농사를 짓다가 상추 등 식용작물로 전환을 한 농가였다.
하수영이 농사로봇을 렌탈해 주었기에, 늙은 농부는 비교적 편안하게 농사를 짓고 있었다.
"아이고, 회장님! 이거 좀 봐봐요! 아주 빌어먹을 것들이 이렇게 다 망쳐놨어!"
하수영을 보자마자 늙은 농부는 손가락으로 밭을 가리키며 그렇게 울화를 쏟아냈다.
하수영은 온통 파헤쳐진 밭을 보고 턱을 긁으며 침중하게 중얼거렸다.
"멧돼지 피해가 확실하네요."
"놈들이 작정하고 로보트가 다른 밭에 간 틈을 노렸다니까!"
"로봇들이 사람인 줄 알고 피해 있었던 거겠죠. 프리덤, 녹화 영상은 없어?"
-분석이 끝났습니다. 250m 떨어진 수풀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영상 해상도가 낮아서 정확한 영상 추출은 어렵습니다.
프리덤은 해독 작업이 끝난 영상을 보여 주었다.
흐릿한 먼 풍경을 선명하게 샘플링한 덕분에, 멧돼지의 형태를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
"흐음, 여기만 피해를 보는 건 아닐 텐데. 다른 농가들은 어때?"
-하드하우스 전환 작업이 끝나지 않은 농가들은 일상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하드하우스,
수영농장처럼 단단한 벽과 천장으로 논밭을 아예 감싸는 걸 말한다.
하수영은 홍수 피해 방지를 위해서 전국적으로 하드하우스 보급을 시행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전파율이 5%도 채 되지 않을 만큼 속도가 더디다.
-마스터, 멧돼지 엽사가 도착했습니다.
사냥용 엽총을 메고, 사냥개 5마리를 거느린 40대 엽사가 다가왔다.
"안녕하쇼. 농민 회장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요즘 이 주변에 멧돼지 피해가 많다면서요?"
"어디 멧돼지뿐이겠소? 고라니들도 아주 밤낮으로 장난 아니게 설쳐대고 있어요."
"갑자기 개체 수가 늘어난 건가요?"
"새끼를 많이 친 건지 외부에서 밀려온 건지는 모르겠고, 여기에 이렇게 맛있는 먹거리들이 많잖소?"
엽사가 보란 듯이 손을 들어 주변의 밭을 훑었다.
상추, 당근, 양파, 고구마 등 풍성한 작물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이렇게 맛있는 것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야생짐승들이 몰려오는 게 당연하지."
"이곳에서는 엽사님 혼자만 활동하고 계신가요?"
"일단은요. 나 빼고 나머지는 죄다 다른 지역으로 떠났어요."
"어째서죠?"
"여기 지자체 포상금이 다 소진됐거든. 올해 3억인가 책정했었는데 그새 다 없어졌지."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엽사가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멧돼지 한 마리 잡을 때마다 최대 50만 원까지 포상금을 받아요. 근데 그게 포상금을 미리 정해놓는단 말이지. 그걸 다 지급하면 그 이후부터는 더 이상 지급할 돈이 없는 거고."
"그래서 포상금이 남은 다른 지자 체로 지역으로 사냥을 떠난 거군요. 엽사님처럼 사명감으로 하는 분만 남았고요."
"사명감은 무슨. 그냥 취미로 하는 거요. 여기가 내 집이기도 하고, 우리 부모님도 이 지역에서 농사지으시거든. 아들인 나라도 열심히 잡아야지 별수 있어요?"
엽사는 그러면서 껄껄 웃었다.
"다른 지역도 포상금 거의 다 소진됐을 테니, 더 이상 받을 데 없으면 여기로 다들 돌아올 거요. 이래도 돈 못 받고 저래도 돈 못 받으면 집 근처에서 사냥하지 않겠소? 너무 걱정하지 마쇼."
-마스터, 전국의 농장은 보호받아야만 합니다. 농장 보호를 위해서 킬러 드론 머신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천합니다!
"라이플 단 드론 수만 기 이상 만들어서 전국 산과 들에 쫙 뿌리자고? 그렇게 해서 유해조수들을 사냥하자고?"
-농장 보호를 위해서 필연적으로 갖춰야 할 최소한의 무력입니다!
"정부에서 퍽이나 잘도 허락해 주겠다."
-폭력은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가장 확실한 방책입니다.
"드론에 달 수 있는 건 벌레잡이용 레이저까지야. 라이플은 무슨 라이플."
그때였다.
별안간 프리덤이 날카롭게 외쳤다.
-마스터! 근처에서 멧돼지 습격입니다! 저의 귀염둥이 농사 로봇 1대가 차지 어택을 맞고 반파되었습니다!
"뭐? 좌표 불러! 엽사님, 빨리 잡으러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