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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 882화

215장 반도체 티배깅 (1)

이현덕은 뒤집어지려는 속을 겨우 가렸다.

조금이라도 정신 집중이 흐트러졌다가는, 이 속이 다 까발려질 것만 같았다.

"사실 기대 같은 건 안 했어요. 반도체 하면 우리 자랑스러운 서해반도체가 글로벌 시장을 꽉 쥐고 있었던 때 아닙니까?"

지금은 아니지만, 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게 더욱 속을 뒤집어지게 했다.

"10조 원 가지고 뭐 파운드리 공장 적당한 사이즈로 하나 짓고 끝내겠지, 이런 생각만 했죠. 제가 반도체를 뭘 알겠습니까?"

반도체를 전혀 모른다는 사람이 글로벌 깡패 파운드리 업체를 쥐고 있는, 이 불합리한 현실에 절망했다.

"솔직히 지금도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습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데, 흙만 파먹던 농부가 무슨 반도체입니까."

반도체는 진짜로 흙, 아니, 모래를 파먹는 산업이라고 이현덕은 말해주고 싶었다.

"농소세 개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돈 좀 밀어 넣었는데, 그래도 까먹지는 않고 착실히 불리고 있어서 다행이지요."

이현덕은 속이 부글부글 끊었지만, 애써 웃는 낯으로 말했다.

"그래도 서진파운드리가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파운드리 업체입니다. 우리 서해반도체에서도 공정 기술의 뛰어남을 인정하고, 모든 생산을 맡기기로 했고요."

"에이, 그래 봤자 반도체 그거 하나로 벌어봤자 얼마나 벌겠어요?"

"의원님, 반도체는 전자산업의 쌀입니다."

"먹을 수 있는 쌀은 아니잖아요."

"……."

"사람이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쌀 없이는 못 삽니다. 제 신념입니다."

이현덕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 농기구들도 결국 반도체 없이는 생산, 운영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지 따져 묻고 싶었다.

'당장 본인도 무인 로봇에, 슈퍼컴퓨터로 농장을 굴리고 있으면서…….'

그런데도 반도체를 하찮게 여겨?

그런 사람이 세계 최고의 파운드리 업체 주인이라고?

이런 불합리한 현실이라니!

'이럴 거면 농소세 개정안이라도 그대로 밀어붙여야 했어.'

이현덕은 그리 생각했다.

그럼 적어도 하수영이 반도체에 10조 원을 투자하지는 않았을 거 아닌가?

그리고 서진파운드리가 나올 일도 없었을 테고, 서해반도체가 이렇게 팹리스로 전환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니, 잘만 하면 에릭 로한이 신반도체공정 기술을 들고 서해반도체로 찾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정치인 놈들, 지들 필요할 때만 꼬박꼬박 돈을 가져가 놓고 막상 도움 주는 거라고는 하나도 없는 머저리들 같으니!'

이현덕은 결국 농소세 개정안 로비대상자 국회의원들에 대한 원망에까지 이르렀다.

"하하…… 그럼 의원님은 서진파운드리 공장은 정작 둘러보신 적이 없는 겁니까?"

"네, 모든 업무는 정서진 대표에게 맡겨두고 있습니다. 전 농사짓기 바빠서 신경도 안 씁니다."

"그런 거치고는 독도교량과 핵융합투자 같은, 여러 분야에도 손을 뻗치시는 거 같던데요."

"독도교량이야 당연히 양식장 때문에 투자할 필요성이 있었죠."

"그럼 핵융합은요?"

"아이고, 농사와 목축업, 양식업이 얼마나 전기 많이 먹는 산업인지 아시면 부회장님 기절하실 겁니다. 제가 전기료 청구서 날아오는 날이면 아주 가슴이 콩닥거리거든요."

"……."

한국에서 제일 현금이 많은 사람이, 뭐?

고직 전기료 청구서가 무서워서 가슴을 졸인다고?

이쯤 되면 농락이 아닌가?

"한전하고 전기료 가지고 몇 번 드잡이질하다 보니까 안 되겠더라고요. 제가 쓸 전기만큼은 자급자족이 되어야 이 나라에서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핵융합에 투자를 하신 겁니까? 가능성이 있다고 보신 게 아니라 그냥 필요에 의해서?"

"먼저 투자를 해야 언젠가는 결과가 나올 거 아니겠어요? 전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

이현덕은 들으면 들을수록 기가 막 혔다.

아니, 물에 뜨는 금속처리 기술과 핵융합은 농사, 목축업, 양식업에 필요하면서, 정작 반도체는 불필요하다고?

그렇게 많은 농업로봇을 굴리는 사람이?

"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서진파운드리의 반도체 공장은 세계 최고 수준이자, 또한 독보적입니다. 의원님도 직접 본다면 파운드리를 남의 반도체 대신 만들어주는 하청이라고 낮게 보는 마음이 없어질 겁니다."

"그럴까요? 그럼 한 번 같이 보러 가실래요?"

그 말에 이현덕은 눈이 번쩍 뜨였다.

그 소문이 무성하고 신비함으로 가득한 서진파운드리 공정라인을 직접 견학할 기회라니.

다른 이도 아닌 오너의 견학, 정서 진이 대표라 해도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저도 우리 반도체 기술진을 일부 대동할까요? 기존 공정법에 비해서 얼마나 효율이 좋은지 아마 유의미한 설명을 해드릴 수 있을 겁니다."

하수영이 아무것도 모르고 같이 보러 가자고 한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적어도 적의 실체만큼은 확실히 파악해서, 다시는 미련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계산이 섰다.

"아, 그렇게 해주시면 저야 좋죠. 사실 투자받은 사람들이 하는 말은 결국 자기 자랑이고 투자는 잘 될 거라는 장밋빛 이야기밖에 없거든요."

"그럴수록 더욱 제3자의 시선으로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겠지요."

"이거 우연찮게도 부회장님 도움을 받게 됐네요. 감사합니다. 그럼 말나온 김에 지금 출발할까요?"

"예, 저도 바로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

이현덕은 전화 지시를 내리겠다고 양해를 구하고는 자리를 떴다.

하수영은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한마디 했다.

"이야, 어떻게 한 번 빼지도 않고 바로 덥석 물어버리네."

-너무 좋은 기회라서 점잔 빼다가 그르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서겠지요. 아, 마스터. 장효주 씨가 저녁 같이 먹자고 연락 왔습니다.

"현실 티배깅하러 가야 해서 오늘은 안 된다고 전해."

-알겠습니다.

말을 전하자마자 장효주가 곧바로 전화를 했다.

-수영 씨, 현실 티배깅이 뭐예요?

"승리 세레머니 같은 거예요."

-승리? 무슨 경기에서 우승이라도 했어요?

"그럼요. 쌀 치킨 레이스에서 이겼거든요. 상대방 곯려줄 목적으로 세레머니 하는 걸 티배깅이라고 해요."

-게임이 아니라 현실 이야기인가 보네요?

"네."

-그런 재미있는 기회는 놓칠 수 없죠. 그럼 우리 밥은 내일 먹어요.

"그러죠."

***

이현덕은 서해반도체에서 다섯 명의 수행원들을 거느렸다.

권순철을 포함해서 하나같이 반도체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기술 전문가들.

진작 하수영한테 줄을 선 권순철을 제외한 네 전문가들은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반드시 서진파운드리 공정의 비밀을 알아내고야 만다.'

'이런 좋은 기회가 주어질 줄이야.'

'대체 어떤 장비를 쓰길래 물도 없이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거지?'

'서진이 반도체 장비를 구매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이제 그 비밀이 밝혀지겠어.'

마침내 서진파운드리 반도체공장의 굳건한 문이 열렸다.

권순철을 제외한 네 명의 전문가들과 이현덕은 공장 내부의 풍경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사람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사람의 외형을 한 안드로이드들뿐.

심지어 설비를 다루는 입력장치 같은 것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서진이 덤덤하게 설명했다.

"보다시피 우리 공장은 100% 무인화 시설입니다. 물론 이건 이미 알고 계셨겠지요."

둥근 실리콘 원판, 웨이퍼가 쌓여 있어야 할 곳에는 네모 반듯하게 완성된 반도체 칩만 가득히 정렬되어 포장되고 있었다.

"기존 웨이퍼 생산 방식은 공정 단계 여럿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고, 각 단계마다 대량의 화학약품이 투여되며 이를 씻어낼 초순수 역시 대량으로 필요합니다."

정서진은 1개의 긴 측면으로 구성된 공정라인으로 안내했다.

공항 방사선 검색대를 연상케 하는 설비에서 컨베이어를 통해 네모반듯한 반도체 칩이 쉬지 않고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공장은 단 1개의 라인으로 구성되어 있고, 화학약품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세척용 초순수는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화학약품을 쓰지 않는다면, 실리 콘 벽막 위에 회로도를 어떻게 인쇄하는 겁니까?"

"그건 기업 핵심 기밀이기에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힌트 역시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런……."

"보시는 이것이 우리 반도체 공정과정의 전부입니다."

서해 전문가들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들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불가능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차라리 종이에 반도체를 그렸더니 그게 진짜 제품으로 변하더라는 동화 속 이야기가 더 현실성이 있을 거 같습니다……."

정서진이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도로 발전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하기 어려운 법이지요. 에릭 로한 박사가 개발한 이 공정 기술을 이해 할 수 있는 반도체 전문가는 거의 없을 겁니다."

충격에 빠져 있던 이현덕이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그럼 생산량은 어느 정도나 되는 겁니까? 생산 단가는?"

"생산량은 사실 수치로 논하는 게 무의미합니다. 굳이 말씀드리자면, 전성기의 TSMC가 생산하던 물량의 30배 이상도 거뜬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모든 반도체를 주문받아도 소화가 가능한 수준이군요."

"단가 역시 정확히 공개할 수 없지만, 손해를 보고 판 적은 없습니다. 항상 괜찮은 수준의 이익을 봤지요. 이번에 일괄적으로 시행한 단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파격적으로 가격을 내렸는데도, 여전히 이익을 보고 있다고?

"한 가지 더, 생산 단가 추가 인하역시 언제든지 가능할 정도로 여유가 있습니다."

"……."

충격의 연속이었다.

이현덕은 하수영이 부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냥 생각 없이 돈 10조 원 투자해서 이런 다이아몬드를 쏟아내는 거위농장을 갖게 되다니.

자신이 먼저 에릭 로한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망상이 그를 괴롭혔다.

하품을 하며 딴청을 부리던 하수영이 서해반도체 일행한테 물었다.

"어때요, 괜찮은가요?"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대단합니다."

눈치를 보는 임원들을 대신해서 이현덕이 침중하게 대답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어차피 서해전자는 이제 모든 반도체 생산을 서진에 맡기기로 했으니.

하수영이 볼을 긁적이다가 물었다.

"그럼 부회장님이라면 서진파운드리를 얼마나 파시겠어요?"

"팔다니요. 이거 팔지 않고 끝까지 쥐고 있어야 할 사업체입니다. 연간 수십 조 원 이상의 이익을 내는 우량사업체를 왜 처분합니까?"

"그야 돈이 필요해서 그렇죠."

"갖고만 있어도 수십조 원이 매년꼬박꼬박 쏟아지는데……."

"그러니까 그걸 감안하면 일시불로 얼마를 받아야 제가 손해를 안 볼까요?"

"……."

이현덕의 표정이 변했다.

'뭐야? 정말 이걸 팔려고?'

애초에 무조건 갖고 있는 게 이득이다.

그런데 이걸 판다고?

물론 그만큼 아주 비싸게 받으면 되겠지만, 그럼 가격을 얼마로 책정해야 하지?

아니, 그전에 굳이, 진짜로 판다고?

"무슨 사정이 있으신 겁니까?"

"제가 안살린 교수님과 친하잖아요. 그분이 기름도 무상으로 주셔서 농사에도 크게 도움이 됐고요."

"설마."

"그래서 그분에게 팔까 하고 지금 말이 오가는 중이거든요. 저야 가격만 잘 쳐주면 큰돈 받고 그냥 팔아버리고 그 돈으로 농축수산업에 재투자하는 게 이익인 거 같아서요."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전 농사 외길이라서 말입니다."

이현덕은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자신이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이 속을 가득 메웠다.

***

-마스터, 서해그룹이 전방위적으로 현금 확보에 나섰습니다.

"우리 부회장님 많이 설레시겠네. 그 부푼 가슴을 나중에 조만간 펑터뜨려 준다면 얼마나 실망하실까."

팔 생각이 없는 물건을 파는 척 들쑤시는 것은 오래된 농락 수단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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