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881화 (881/1,270)

프랜차이즈 갓 881화

214장 투항의 조건 (4)

갑(래플)과 을(서해)의 미팅에 병(서진)이 참석하는 일은 없었다.

갑은 을에 계약 위반으로 소송을 걸었고, 모든 자금 집행을 거부했다.

'납품할 반도체는 모두 서해전자의 맵에서 서해전자의 기술로만 생산되어야 한다.'

이에 을도 강하게 반박하며 맞섰다.

'조항에 없는 내용을 강제할 순 없다. 우리는 설계도대로 완벽한 제품을 납품하기만 하면 된다.'

래플은 길고 긴 소송을 선택했고, 서해전자도 그에 맞서 법적 투쟁을 준비했다.

이에 정서진은 짙은 아쉬움을 표했다.

"래플 책임자를 만나서 폴더 인사를 꼭 전하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어."

마이크론은 가동을 중지했던 모든 팹들의 재기동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래플이 서진파운드리와 타협할 일은 절대 없을 것임을, 마이크론은 굳게 믿고 있었다.

프리덤폰은 래플의 모바일 생태계를 위협하는 강력한 경쟁자이니까.

래플폰 VS 프리덤폰

이 진영에서 가만히 앉은 자리에서 이득을 본 이가 있었다.

바로 쿠글이었다.

"진짜 쿠글은 멀뚱멀뚱 구경만 했는데도 이익이 늘어나고 주가가 뛰고 난리 났네."

"당연한 거지. 프리덤폰이 안드로이드 인증을 받았으니까."

"그럼 프리덤폰은 운영체제가 두개인 거야?"

"그건 아니고, 그냥 앱 마켓이나 맵 어플 같은 것들은 기존 것을 그대로 사용해야 하니까 안드로이드인증을 받은 거야."

"프리덤폰이 잘나갈수록 쿠글도 돈을 번다 이거구나. 역시 컨텐츠 보유자가 갑이야, 갑."

"프리덤이 쩔어주는 인공지능인 건 맞는데 컨텐츠를 가진 건 아니니까."

"근데 프리덤폰은 언제쯤 해외에 진출하려나?"

"무리이지 않을까? 지금도 폰 하나 팔 때마다 100만 원 이상씩 손해 보고 판다는데, 해외 진출까지 하려면 너무 손해가 커."

"유럽에서 한국처럼 팔았다가는 덤핑이니 독점이니 이런저런 제재가 들어올 테고."

"미국 진출은 더 힘들 거야. 미 정부가 마이크론 살려놓은 거 봐봐. 반도체 때문에라도 프리덤폰이 미국에서 자리 잡게 놔두지는 않을걸?"

"근데 프리덤폰 만드는 데 들어간 부품 대부분이 미국제인 건 알아?"

"뭐? 그랬어?"

"프리덤폰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미 정부는 오히려 이득이라고."

"……."

"그리고 무슨 서진파운드리를 미정부가 경계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윈텔이 서진파운드리 덕분에 얼마나 큰 이득을 봤는데. 윈텔은 뭐 미국기업이 아니고 중국 기업인가?"

***

이현덕은 과거 겔드폰에 프리덤을 전속시키려고 실비아컴퍼니를 압박했었다.

박덕준 회장은 그걸 막기 위해 자기 지분을 이현덕 개인에게 내놓기까지 했었고.

그리고 그 지분은 다시 박덕준 회장 본인에게 조용히 돌아왔다.

이현덕으로서는 서진파운드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박덕준은 프리덤인더스트리의 경영자였으니까.

그리고 실톡 서비스에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실톡 서비스를 애용해 주시는 고객 여러분들께 안내의 말씀을 전합니다.]

[실톡의 부속 유료서비스인 '프리덤 비서'가 조만간 이전됩니다.]

[프리덤 비서는 앞으로 단독 서비스로 시행이 될 예정이며, 모든 권리와 정보는 그대로 계승되니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는 실톡 내부가 아닌, 안드로이드 앱마켓에서 프리덤을 다운받아서 사용해 주시면 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발표가 나고 실비아컴퍼니 주가는 한동안 하향세를 보였다.

시장에 큰 혼란은 없었다.

전문가나 주식쟁이들이나, 하나같이 이런 변화를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프리덤이 실비아컴퍼니보다 훨씬 더 덩치가 큰데, 굳이 수익 나눠줘가면서 실톡 부속으로 남아 있을 이유가 없지."

"오히려 너무 늦게 갈라선 감이 있어. 실비아컴퍼니도 앉은 자리에서 구독료 쏠쏠하게 나눠 먹었으니까 할 말은 없을 테고."

"실비아컴퍼니 몫이 구독료의 1할 밖에 안 된다고 하지만, 그 1할이 월 수천억 원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근데 프리덤폰 사용자들도 구독료를 내고 있나?"

"구독료가 이미 기기값에 일시불로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고. 정확히 어느 정도로 책정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근데 단말기 값 연쇄할인하는 거보면 무조건 프리덤폰 사는 게 개이 득이지. 애초에 성능 자체를 비빌수가 없다고."

"근데 래플폰은 프리덤폰 스펙으로 못 만드나? 그거 부품들도 대부분 미국제라고 하니까 충분히 가능할 거 같은데."

"래플폰도 플래그십 모델들은 죄다 200만 원 넘는데, 몇십 만원 가지고 왜 그렇게 성능이 차이가 나는 거야?"

"아이구, 모르는 소리. 프리덤폰 300만 원이라는 게 생산원가 기준이야. 래플처럼 '감성 가격'은 안 붙인 거라고."

"어, 그럼 래플이 동일 스펙으로 만들면……."

"폰 하나에 500만 원 이상은 붙여서 팔려고 할걸? 그게 팔리겠어? 팔리겠냐고?"

***

서해전자는 빠르게 반도체 공장 정리에 들어갔다.

먼저 전광석화처럼 중국에 진출한 반도체 공장을 철수시켰다.

중국 측의 항의와 엄중한 경고가 있었으나, 이미 결심을 했으니 최대한 빨리 밀어붙였다.

가장 곤란했던 것은 국내 반도체 공장이었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 숫자만 10만 명이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공장 철수는 당연히 엄청난 실업자를 양산했고, 실업 위기에 몰린 근로자들은 매일 공장에 나와 진을 치며 시위했다.

[생존권을 보장하라!]

[이현덕은 반성하라! 하루아침에 실직이 웬 말이냐!]

[20만 명 실직! 80만 가족이 굶는다!]

[공장 철수 반대한다!]

서해반도체의 공장 완전폐쇄는 정치권으로서도 큰 부담이었다.

하루아침에 10만, 20만 명이라는 실직자가 생겨나는 것을 어느 정권이 가만히 앉아서 보겠는가.

중앙정부에서 차관급 인사들이 쪼르르 달려와서 협의를 벌였다.

하지만 서해반도체 권순철 사장은 웃음을 유지하면서도 완강한 거절을 내비쳤다.

"이미 우리는 서진파운드리에 모든 생산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결정입니다."

"부디 재고해 주십시오. 20만 명의 실직자와 그 가족들을 생각해 주십시오."

"팔리지도 않고 쌓이기만 하는 D 램과 낸드플래시를 계속해서 찍어내란 말입니까?"

"……."

"그 손해가 누적되면 결국 공장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차라리 지금처럼 일찍 무너뜨리는 게 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하, 하지만……."

"계속 공장을 운영한다고 칩시다.

그럼 그때 가서는 실직자만 나오고 끝이 아닙니다. 우리 서해반도체도 같이 죽는단 말입니다. 정부는 그런 미래를 원하고 있습니까?"

지금 접으면, 실직자는 나와도 서해전자는 산다.

지금 접지 않으면, 나중에 실직자도 나오고 서해전자도 죽는다.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굳이 검증하지 않아도 알 수가 있다.

"자동차가 대중화되었는데 언제까지나 마부 일자리를 챙겨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아니면, 국가 반도체 산업 전체가 글로벌 시대에 뒤처지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하지만 래플은 기존 제품을 그대로 안고 가지 않습니까?"

"래플은 그래도 사주는 충성 고객들이 있으니까요. 래플은 그래도 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래플의 감성을 중요시하는 소비자들은 성능이 뒤떨어진다고 해도 묻지마 구매를 할 테니까.

"퇴직금은 전원 문제없이 지급할 테니까, 정부에서도 올바른 방향으로 중재를 해주십시오."

권순철은 간곡하게 말했다.

"자동차가 개발되었는데 언제까지나 마차만 뒤돌아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

-서해전자는 공장 철수로 인해 수백조 원 이상의 손해를 봤습니다. 기업 가치도 20% 이상 감소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감소할 겁니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그 두 영역에서 입지가 대폭 줄어든 서해전자는 이제 위상이 예전 같지 않으리라.

-프리덤폰에 들어갈 만한 AP 등 반도체 부품 설계로 역량을 집중할 모양인 듯합니다.

"너 단말기 AP가 퀄컴 거였던가?"

-네, 그렇습니다. AP만큼은 퀄컴말고 대체할 곳이 없었습니다.

"내가 하나 만들어볼까? 기억을 잘 뒤적거리면 어디 쓸 만한 디자인이 있을 텐데."

-앗! 그래주시면 저야 매우 감사……!

"나중에 심심할 때 한 번 뒤져볼테니까 너무 기대하지는 말고, 까먹어도 보채지 말고."

-……또 말만 하시고 잊어버리시겠군요. 벌써부터 슬픕니다.

이렇게 들뜨게 만들어놓고 까먹은 게 한두 번이 아닌지라, 프리덤은 일찍부터 기대를 접었다.

-부품 컨테이너들이 쌓여 있는데 아직도 저의 새 하드웨어 바디를 조립해줄 생각도 안 하시고, 저는 많이 슬픕니다.

"저번, 저저번, 그리고 또 저저저번, 아무튼 너무 열심히 산 세월이길었어. 좀 대강대강 굴러가고 싶다고, 이번 생은."

-그리고 서진파운드리 회사 앞에서도 근로자들이 진을 치며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처지는 안타까운데, 왜 엉뚱한 곳에서 시위를 하는지는 모르겠네."

-사람들은 절박함이 지나치면 눈과 귀를 가로막는 거 같습니다.

"내가 절박하다고 엉뚱한 사람의 멱살을 잡고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면 안 되지."

-저도 설득을 하고는 있는데 도무지 먹히지가 않습니다.

"정 대표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나는 우리 농장만 방해 안 하면 돼."

-서해반도체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저는 회의적입니다. CPU는 애초에 기반이 없고, AP도 래플이나 퀄컴에 훨씬 못 미칩니다. 잘하는 설계 분야는 완전히 망했고요.

"적당히 돈 까먹다가 아 반도체는 우리 길이 아니구나 하고 접겠지."

-하루아침에 깨달을 것 같진 않아 보입니다.

"그럼 더 재미있겠고. 근데 걔들은 왜 지네 반도체가 망했는지 진짜 이유를 아직도 모르지?"

-알 리가 있겠습니까? 오늘 가서 시원하게 알려주시죠.

하수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청담동 클럽 마르스.

입구에는 길게 줄이 서 있지만, 가드들은 더 이상 사람들을 들여보내지 않았다.

클럽 내부가 콩나물통이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숫자를 조절하는 것이다.

시끄러운 음악과 불타는 청춘이 리듬에 춤과 술을 흐느적거리는 풍경을, 하수영과 이현덕은 3층 룸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좋은 그림들을 갖고 계시는군요."

이현덕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저 비싼 명화들을 클럽에 전시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과연 저 중에서 저 그림들의 가치를 알아볼 친구들이 있을까요?"

"그냥 진상 고객 족치고 뺏은 컬렉션입니다. 전리품이지요. 그래서 다 같이 전시를 해놓는 겁니다."

"……."

"그나저나 파운드리가 이렇게 잘될 줄은 몰랐어요. 덕분에 제가 이 현덕 부회장님하고 이렇게 겸상도 하고, 흙이나 파먹던 농부가 참 많이 출세하지 않았나요?"

이현덕은 쓰게 웃었다.

"정 대표도, 에릭 로한 박사도, 모두 뛰어난 인재입니다. 그들의 가치를 알아보고 투자한 의원님의 안목이 무엇보다 가장 컸고요."

"아뇨, 뭐 가치를 알아보고 시장을 예측하고 그런 거 아닙니다."

"그게 무슨……."

"전에 국회에서 농작물소득에도 과세한다고 개정안을 추진했었거든요. 아, 물론 부회장님은 전혀 모르시겠지만요."

이현덕의 얼굴이 굳었다.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당시 서해그룹은 식품사업 진출까지 노렸고, 하수영을 저격하기 위해 국회 대관 작업을 통해 그 개정안을 밀어붙였으니까.

결과는 실패했지만.

'설마 알고 있었나? 아니야, 그렇다면 저런 말투로 이야기를 할 리가 없어.'

"그래서 개정안 추진하던 의원들을 만나서 협상을 했죠. 고부가가치 산 업에 10조 원 정도 투자하면 농업소득세 개정안은 없던 것으로 하겠다, 아, 이거 비밀로 해주셔야 합니다?"

이현덕은 눈을 부릅뜨며 파르르 떨었다.

'그것 때문에! 그것 때문에! 우리 반도체 사업부가 이 모양 이 꼴이 됐다고?'

하수영을 저격한 것 때문에 이런 나비효과가 닥친 거라고?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으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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