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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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 880화

214장 투항의 조건 (3)

서해반도체의 백기 투항.

이 사실을 알게 된 래플은 큰 충격에 빠졌다.

"서해가 서진에 두 손을 들었다고?"

"네, 3년 안에 모든 반도체 팹을 포기하고, 앞으로는 생산을 전부 서진파운드리에 주겠다고 합니다."

3년의 기간을 명시한 것은 맵을 정리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넉넉하게 잡은 것이다.

실제로 서해반도체는 가급적 빨리, 가능한 6개월 안에 모두 정리하는 것을 내부 목표로 잡아둔 상태였다.

"서해전자가 이렇게 우리 뒤통수를 치다니!"

팀 콕은 분해서 길길이 날뛰었다.

"이건 명백한 계약 위반이다! 당장 서해전자에 계약 파기를 통보해! 위약금으로 회사가 망할 각오나 하고 있으라고!"

"그게, 법무팀 검토를 받았는데 이게 계약 위반은 아닙니다."

"계약 위반이 아니라니? 적 진영공장에서 우리가 쓸 반도체를 만들어오려고 하는데 이게 계약 위반이 아니라고?"

"서해전자가 반도체를 어떻게 만들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강제조항이 없습니다. 그저 품질과 납기, 가격에 관한 조항들만 잔뜩 있을 뿐입니다."

커다란 공정라인을 자체 보유하고 있는 종합반도체회사가 경쟁자인 서 진파운드리에 외주를 줄 거라는 가정은, 누구도 하지 않았으니까.

서해전자는 무조건 반도체만 납품하면 된다.

"계약을 파기하면 오히려 위약금은 우리가 물어야 합니다."

"……."

"그게 싫다면 서진파운드리가 만든 서해반도체를 우리가 쓰던가, 아니면 소송으로 끌고 가서 버티기를 해야 합니다."

서해전자가 갑자기 백기를 드는 바람에, 래플은 사면초가에 빠졌다.

결국 가장 큰 손해는 래플이 지게 된 셈.

"서진 팹에서 만든 반도체를 쓸 거였으면 애초에 우리가 직접 서진에 파운드리를 줬지.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역시 소송으로 끌고 가는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다른 쓸 만한 팹은 없나? 서해, 서진 말고 우리 물량을 소화할 만한 팹 말이야."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TSMC가 웨이퍼 생산을 포기한 이후, 글로벌파운드리 시장은 서진과 서해가 양분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제 서해마저도 서진의 앞에 굴복하고, 맵을 포기했다.

"중국 파운드리는 어떻지?"

"국가 차원에서 파운드리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죠. 중국 최대 파운 드리업체인 SMIC가 이번에 100억달러를 추가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거기라면 우리 물량을 받아줄 수 있겠지?"

"품질 관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팀, 아시잖아요. 중국 업체에 파운드리를 맡긴다는 것은 우리 AP 설계를 내주는 꼴이라는 걸."

중국은 신뢰할 수 없다.

파운드리를 맡긴다는 것은 설계도 자체를 내어주는 꼴.

아무리 보안서약을 하고 막대한 위약금을 걸어도, 래플의 설계는 어느새 중국 공산당의 입감이 닿은 반도체 업체들의 교본이 될 것이다.

그리고 14억 인구 시장을 바탕으로 차후에 강력한 스마트폰 경쟁자가 등장하게 되겠지.

팀 콕은 이를 악물었다.

"중국, 중국은 절대 안 돼……."

하지만 서진파운드리도 안 된다.

프리덤폰을 자기들 돈으로 키워주는 꼴이니까.

중국의 미래 경쟁자냐, 한국의 현재 경쟁자.

어느 쪽이든 키워줄 수밖에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TSMC만 건재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 실착이다.'

TSMC가 무너졌을 때, 자체적인 공장을 지어야만 했다.

생산을 100% 외주화한 것이, 이런 난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지금 마이크론 상황이 어떻지?"

"팀? 지금 이 상황에서 마이크론 처지가 왜 궁금합니까?"

"거기도 우리처럼 난처한 처지가 아닌가?"

"난처한 처지 정도가 아니죠. 회사가 파산하게 생겼습니다. 마이크론은 D램과 낸드플래시가 주력 상품이었는데, 옵테인 때문에 몽땅 날아가게 생겼으니까요."

직원은 대답을 하다 말고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팀? 설마?"

"마이크론도 자체 팹 규모가 상당하잖나. 거기에 우리 AP 생산을 맡기는 거야."

"그럼 우리도, 마이크론도 살아날수 있겠군요!"

"이참에 마이크론 인수도 추진해. 놈들 설계팀이라 봐야 D램과 플래시 쪽 아닌가. 이미 쓸모없어졌으니 파운드리로 변신이라도 해야겠지."

종합반도체회사와 파운드리 업체는 상당 부분이 겹치지만, 방향성에서는 분명히 다르다.

파운드리는 규모의 경제를 통한 생산단가 인하, 그리고 공정의 안정성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남의 반도체를 생산해 본 적없는 마이크론으로서는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클 것이다.

"이 길밖에 없어. 우리나, 마이크론이나."

그날 팀 콕은 극비리에 마이크론회장과 회동을 가졌다.

***

"부회장님, 서진파운드리에서 보내 온 언론사들 리스트입니다."

투항의 조건 중 하나.

서진에서 지목한 언론사에는 그룹차원에서 어떤 광고도 줘서는 안 된다.

먼저 국내 톱 10 신문사들은 죄다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두고 있었다.

그중에는 서해그룹과 사돈지간으로 얽힌 친족 신문사도 있었다.

"약속은 지켜야지. 오늘부터 즉시 모든 광고 다 내리라고 해."

"이미 계약이 된 광고는……."

"벌써 돈 넣은 건 어쩔 수 없고, 광고는 올리지 말라고 해. 우리로서도 노력했다는 건 보여야 할 거 아닌가."

돈을 돌려줄 필요는 없지만, 광고는 절대로 올리지 마라.

그런 메시지에 담긴 뜻을 언론사들이 못 알아차릴 리가 없다.

비서실장도 미래가 예상되는지,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리가 날 겁니다."

"당분간 신문 기사는 쳐다보지도 말아야겠군."

돈줄이 끊긴 신문사들은 결국 펜을 딱딱거리며 아우성을 피울 것이다.

서해그룹을 까는 기사가 한동안 신문지상에 오르락내리락하겠지.

어쩌면 지금의 수영그룹 포지션을 서해그룹이 건네받을 수도 있다.

한 번도 안 준 놈보다는, 주던 걸 뺏는 놈이 더 미울 테니까.

***

옵테인 메모리가 PC시장을 마구 휩쓸었다.

슈퍼 사이클 주기가 갑작스럽게 도래한 것처럼 어마어마한 폭풍이었다.

D램과 SSD는 자취를 감추었고, 옵테인 메모리가 대신 그 자리를 독차지했다.

메모리카드 제조업체들은 기존 낸 드플래시 대신 옵테인 메모리를 탑재하기를 원했다.

윈텔은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주문량에 그저 함박웃음만 나왔다.

"패트린, 모두가 옵테인을 원하고 있어요. 역시 서진파운드리가 정답이었습니다."

"SSD제조업체, 메모리카드 제조업체, 그리고 종합가전 회사들도 앞을 다투어 옵테인을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저장용 반도체는 모든 가전에 들어간다.

컴퓨터, 게임기, TV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세탁기와 냉장고, 전기밥솥에도 들어간다.

기존에는 낸드플래시가 그 자리를 차지했고, 낸드플래시는 여러 업체들이 나누어서 생산했다.

하지만 낸드플래시가 퇴출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윈텔이 그 시장을 독점하게 될 것이다.

낸드플래시 제조업체들은 더 이상 제품을 생산하지 못할 테니까.

"곧 기업 서버 시장도 우리가 독차지할 수 있을 겁니다. 옵테인을 팔곳은 넘쳐납니다."

"서진파운드리에 다시 발주를 해야겠어. 메모리카드 완제품 말고 칩형태로도 따로 만들어달라고."

"네, 그렇게 발주를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제 추가 집행을 준비해야 합니다."

"벌써?"

"네, 서진파운드리에 밀어 넣은 선매출이 전부 차감되었습니다."

"그럼 다시 집어넣어야지. 이번에는 한 500억 불을 집어넣자고."

전 세계 메모리칩 시장을 홀로 독차지하게 생겼는데, 그깟 500억 달러가 뭐라고.

"앞으로는 모든 전자기기들이 우리 옵테인만을 저장장치로 쓰게 될 거라고! 하하하!"

"EU 독점 제재가 떨어질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웃음이 나오는데요?"

"그럼 공급 끊어버리면 되지. 그놈들은 이제 단종 될 낸드플래시나 실컷 사다가 쓰라고 해."

"그 느려터진 낸드플래시를 계속 붙잡을 건지 아닌지, EU 위원회보고 결정하라고 해야겠습니다."

***

조용히 한국을 찾은 마이크론 회장은 정서진을 만나고 있었다.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정서진은 진심으로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를 대했다.

마이크론은 서진파운드리 최초의 고객.

수십억 달러 이상을 선금으로 밀어 넣으면서 D램 생산을 전부 맡겼다.

그런 돈독한 사이였지만, 서진파운 드리가 만든 옵테인 때문에 마이크론은 궁지에 몰렸다.

"아닙니다. 윈텔이 워낙 사기적인 제품을 만들어서 우리가 손해를 본 거니, 그렇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마이크론 회장은 애써 웃어 보였다.

"귀사는 고객사의 제품을 최대한 낮은 비용으로 생산하려고 노력했을 뿐이잖습니까. 우리가 밀려난 건 절대로 귀사 책임이 아닙니다."

정서진은 선금을 돌려달라고 하지는 않을지 속으로 전전긍긍했다.

사실 돌려줘야 할 의무는 없다.

서진파운드리가 휘두른 칼이 시장을 망가뜨렸다 해도, D램과 낸드플래시가 망한 것은 엄연히 마이크론의 사정.

"파운드리 품목 종류를 변경하고 싶습니다."

"우리 회사가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스마트폰 전용 낸드플래시 칩을 만들어주시오. 남은 금액 전부."

정서진은 그 한마디에서, 지금 마이크론의 선택을 깨달을 수 있었다.

"래플과 손을 잡으셨군요."

"AP는 우리가 생산하기로 했어요. 플래시 메모리는 귀사에서 모두 받으면 됩니다. 그럼 우리가 손해 볼건 없지요."

"다행입니다. 그래도 귀사에 덜 미안하게 돼서요."

마이크론은 파운드리 선금을 고스란히 날리는 게 아니라, 품목만 바꿔서 납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래플의 AP 생산을 맡았다는 것을 밝혀도 되는 겁니까?"

"상관없어요. 곧 기사가 뜰 건데 굳이 숨길 만한 보안도 아닙니다."

"잘되었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미 정부에서도 우리 마이크론을 적극 밀어주기로 했습니다. 곧 미국의 유일한 반도체 팹이 될 예정이니 말이오."

마이크론 회장은 씁쓸히 웃었다.

"종합반도체회사에서 파운드리로 업종을 변경하는 게 다소 굴욕적이지만. 아, 파운드리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 말기 바랍니다."

"이해합니다. 설계분야에 나름 애착에 깊으셨을 텐데 강제로 내려놓아야 하니까요. 마음이 심란하시겠죠."

"스마트폰 시장은 파운드리처럼 쉽지 않을 겁니다. 래플이 완성한 컨텐츠 생태계는 뛰어난 비서 AI 하나로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래플을 의식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우리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지요."

마이크론 회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팀 콕 회장이 그 말을 들으면 아주 분해하겠는데요. 팀 콕은 지금 누구보다 프리덤폰에 경쟁심을 불태우고 있거든요. 그런데 정작 상대는 의식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스마트폰은 자회사의 사업일 뿐, 제 주력 임무는 반도체 생산입니다."

마이크론 회장은 가벼워진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돌아갔다.

얼마 후, 래플이 마이크론 인수를 전격 발표했다.

마이크론의 모든 지분을 소각하고 100% 자회사로 편입하며, 향후 마이크론은 래플의 전용 팹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래플이 드디어 자사 공장을 운영하겠다는 방침에, 미국 사회는 한동안 그 이슈로 들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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